한천정寒泉亭에 관한 명 병서
] 임자년(1672, 현종13)
계룡산(鷄龍山) 아래 우곡(牛谷)에 가면 골이 깊은 지역이 있는데, 바로 반남 박씨(潘南朴氏) 태로(台老)가 은거하는 곳이다. 박군은 뜻이 높고 강한 데다 행실이 반듯하고 신중한 사람이다. 일을 주도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고 쓰임에 걸맞은 국량까지 지녔다. 그러나 항상 한발 물러서서 겸허한 태도를 견지한다. 그래서 오십이 넘도록 고향 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나라에 이름이 알려진 적이 없다. 군은 자신을 은자(隱者)라고 여기지 않는다. 학덕이 있어도 추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은자라 부른다.
내가 한 번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는 기둥을 세우고 띠풀을 엮어 작은 정자 하나를 지어 놓고 그 위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었다. 정자 옆으로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는데,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 물이 고여 샘을 이루고 그것이 흘러 계곡물이 되었다. 물맛이 달고 시원한 데다 물빛이 맑고 깨끗하기 그지없어 먹을 만하고 음미할 만하였다. 그때가 마침 여름이었는데 정자에서 바람을 쐬고 샘물로 목을 축이니, 어느새 무더위가 싹 달아나고 없었다.
박군이 정자의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지 물었다. 내가 말하기를, “‘천(泉)’으로 해야지, ‘천’이 들어가야지. 그 외에는 다른 게 없을 듯하이. 주자(朱子)의 정사 이름도 ‘한천(寒泉)’이고 또 여기는 그대의 선영이 있지 않나.” 하였다. 그래서 삼가 ‘한천정’이라 이름하기를 청하고, 《주역》의 〈정괘(井卦) 구오(九五)〉의 의미를 취하여 명(銘)을 지었다. 명은 다음과 같다.
샘물은 양의 작용 泉者陽之用也
찬 건 물의 본성이네 寒者水之性也
먹느냐 못 먹느냐는 有食有不食者
그 물건의 운명이지 物之命也
본성이여, 운명이여 性乎命乎
바로 이 사람이 그러하네 斯若人之徒乎
그리 볼 때 내 마음 애달파지는 건 然則爲我心惻者
아, 장부를 몰라본다는 점이라네 噫其淺之爲丈夫乎
泉亭銘 幷序
壬子
鷄山之下。牛谷之中。有奧區焉。潘南朴君台老甫之所隱也。君志剛而高。行方而謹。才能幹事。器能適用。而常退然以謙卑自牧。年踰五十。迹未嘗出於鄕。名未嘗聞於國。君不自以爲隱。而以其有蘊而無求也。故人謂之隱焉。余嘗一造焉。架木編茅爲小亭。而遊息於其上。亭側有活水。自巖縫噴出。渟而爲泉。瀉而爲澗。甘洌淸瀅。可飮可玩。于時夏也。風乎亭而漱乎泉。爽然不覺歊赩之失去也。君問亭名。余曰泉哉。泉哉無以易此。且是晦翁精舍之號。而此地亦君之松楸也。請敬名之曰寒泉之亭。而取大易水風九五之義。以爲銘。銘曰。泉者。陽之用也。寒者。水之性也。有食有不食者。物之命也。性乎命乎。斯若人之徒乎。然則爲我心惻者。噫其淺之爲丈夫乎。
[주1] 우곡(牛谷) : 계룡산 아래에 있다는 말로 미루어, 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일명 ‘소울’이라는 골짜기일 것으로 생각된다.
[주2] 반남 박씨(潘南朴氏) 태로(台老) : 윤선거(尹宣擧)의 제자인 박세구(朴世耈)로, 태로는 그의 자(字)이다. 노강서원(魯岡書院)을 주도해서 세운 인물인데, 우곡에 은거하였으므로 우곡처사(牛谷處士)로 불렸다. 《明齋遺稿 卷40 四山監役李君墓碣銘》
[주3] 주자(朱子)의 …… 한천(寒泉)이고 : 주희(朱熹)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 가까이에 정사(精舍)를 세우고 그 이름을 한천정사(寒泉精舍)라 하였는데, 46세 때 이곳에서 여조겸(呂祖謙)과 함께 40일간 기거하며 《근사록(近思錄)》을 편찬한 것으로 유명하다. 《近思錄 朱子序》 여기에서는 집의 이름을 한천이라고 붙인 유서 깊은 실례를 들어 한천정이라고 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주4] 그대의 …… 않나 : 《시경》 〈개풍(凱風)〉에 “맑고 시원한 샘물이 준읍 아래 있다네, 아들 일곱 있어도 어머니는 고생하네.[爰有寒泉 在浚之下 有子七人 母氏勞苦]”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여, 한천은 부모를 그리워하거나 효도하기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태로가 살고 있는 곳에 그의 선영이 있으므로 효도의 의미에서도 정자의 이름을 한천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다.
[주5] 정괘(井卦) 구오(九五)의 의미 : 《주역》 〈정괘 구오〉를 보면 “우물물이 달고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을 먹는다.[井冽寒泉食]”라고 되어 있는데, 그 정전(程傳)에, “우물물은 시원한 것을 아름답게 여긴다. 게다가 달고 깨끗하며 시원한 샘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으니, 그것이 우물의 도리에 있어 최고선이다.[井泉 以寒爲美 甘潔之寒泉 可爲人食也 於井道 爲至善也]”라고 하였다.
[주6] 내 마음 …… 점이라네 :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卿)인 순언(荀偃)은 죽은 뒤에 눈을 뜨고 입을 굳게 다무는 바람에 반함(飯含)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선자(宣子)는 처음에는 그가 자식을 염려하여 눈을 감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가 나중에는 그가 나라의 대사를 걱정해서 그리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 일을 자신이 책임지고 행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자 시체가 눈을 감고 입을 벌려 반함을 받았다. 이에 선자가 나와서 말하기를, “내가 대장부를 안 것이 참으로 천박했구나.[吾淺之爲丈夫乎]” 하며 사심으로 사람을 판단한 것이 부끄러워 탄식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襄公19年》 여기에서는 박세구의 인물됨을 세상에서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여 한 말이다.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이기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