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제 3장은 모세보다 뛰어나시고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대조합니다.
모세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을 다했다는 의미에는 유사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모세는 [사환]으로서 수고한 것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당시 [모든 선지자보다, 천사보다, 모세보다 탁월하신(유일하신) 그리스도]를 얘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유대교 전통 때문입니다.
전통 유대교에서는 개종한 유대인들을 회유와 조롱과 협박으로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종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구원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함]을 권면하여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너 흔들리지 말라, 요동하지 마라. 유대인들의 어떤 특권보다 너희를(우리를) 붙들고 계신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신가를 알라]는 사실과 진실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공보다, 물질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자기 자신보다, 자기 교만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움직이는 모든 힘(게으름, 유혹,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무엇보다 강하고 크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크게 여기는 것은 그림자고, 우릴 붙들고 계신예수 그리스도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A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의 사명을 교훈합니다.
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러므로] = 앞의 2장 말씀에 대한 결론이거나 적용으로 이어지게 하는 접속사입니다.
[함께] = 메토코스 = 참여하는, 동료, 동역자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와 수신자들의 공통점은 유대교에 있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아 성도가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부르심] = 클레시스 = 초청, 초대 – 소명의 의미가 큽니다.
[거룩한 형제들아] = 그리스도의 보혈로 혈육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 가족, 한 지체.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도 자녀(양자)가 되어졌음을 가리킵니다.
이 고백이 3;1에서 필요한 이유는 [너희들이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고, 너희들은 그 길을 잘 가고 있으니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하여 믿음과 신앙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구원에서 미끄러지고, 흘러 떠내려가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 이 고백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유대인들이 그렇게 크게 여기고, 숭배하기를 마지아니하는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처럼 여겨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시종, 사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한 형제들]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인내(휘포모네 – 문제가 생기면 말씀 아래로 들어가 엎드림<말씀 아래 숨는 것>)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내는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내가 믿음으로 본 것이기에 지금의 고난과 어려움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 = 호몰로기아스 = 동의, 합의, 일치 - 복음의 메시지, 믿음의 길, 믿음의 이치, 이루어진 말씀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모든 선지자나 모든 의식을 통해 모델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실체로 우리 삶에 오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보내심을 받은 시작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대신 관계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중보자로 오신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유일한 축복의 통로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믿는 도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지성소로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언제든지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 외에 다른 것을 붙들면 죽습니다.
[깊이 생각하라] = 카타노에오 = 인지하다, 어떤 목적에 전심으로 몰두하다를 의미합니다.
[믿으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생각하라]는 말도 성경에 많이 기록된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믿기는 믿는데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깊이 생각하라] = 통전 - 깊이, 넓이를 포함 – 너의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너의 마음의 중심의 자리를, 너를 거룩하게 부르신 그리스도에게 내어드리라는 것이 원래 뜻입니다.
[믿음의 도리] = 다른 말로 하면 [아멘 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도리이시고, 믿음을 알게 하시고, 믿음을 전수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약속의 말씀을 실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의 생각에, 너의 마음에, 너의 중심에, 너의 삶에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내어 증명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2:1과 키아즘이 됩니다.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복음의 메시지)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들음] = 말씀을 듣고, 새기고, 지키어 행할 때를 가리킵니다. = 반석 위에 세운 집.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그는 듣고, 새기고, 지키어 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은 평상시에는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올 때, 연단이 올 때,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 홍수가 나고, 창수가 터질 때 그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유념] = 페릿소테로스 = 더욱 크게, 더욱 더, 더욱 진지하게 –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념] = 깊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념] = 충만하게 채우라(다른 것이 끼어들지 못하게, 틈타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유념은 마음에 두고 깊이 생각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것이 끼어들지 못하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그 무엇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야 흔들리지 않고, 구원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구원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장과 3장을 통해 점점 더 강조하고, 더 디테일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 점층법.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더 강하고 담대해져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가 된 거룩한 삶으로 즐겁게 쓰임 받는 사명을 다하는 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