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설명한 아이티섬은 많은 이름을 가집니다.
아이티, 히스파니올라, 산토 도밍고, 생도그맹,....
아이티는 콜럼버스가 1차 항해에서 과나히니, 쿠바와 같이 발견한 섬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951C335978B2352E)
이 당시 콜럼버스는 아이티를 에스파뇰라섬이라고 불렀는데,
후대에 이걸 영어식으로 읽으면서
히스파니올라 섬이라 불리워졌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남미 출신자를 히스패닉이라 부르죠?!)
콜럼버스 1차 원정은 3척의 배로 시작했는데
그 중 한 척인 산타 마리아호가 난파하면서
아이티 (히스파니올라)섬에 선원들이 남게 되었고
한동안 이 곳이 남미의 거점이 됩니다.
이 섬의 원주민을 콜럼버스가 인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미 원주민이 지금까지 '인디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5CF6335978B2560A)
1496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생 바살러뮤 콜럼버스가
아이티에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도시는 지금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인
산토 도밍고 Santo Domingo 입니다.
이 이름을 프랑스는 불어 발음으로 불러서 생도그맹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섬 자체를 산토 도밍고, 생도그맹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스페인이 금과 은이 나오는 중남미에 관심을 가지면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도미니카 공화국은
한동안 방치되었습니다.
한편,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공화국(생도그맹)쪽은
프랑스가 설탕에 집중하기 위해
길을 닦고 물을 대는 관계시설을 만드는 등
기간산업을 발전시켜 아이티의 국력이 신장하게되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6F51335978B2A01C)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대로 프랑스 혁명 직후
아이티 혁명이 일어나는데
아이티는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에만 만족하지 않고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통일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몇번의 엎치락 덮치락 끝에
도미니카는 아이티로부터 1844년 독립하게 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E17335978B2C520)
이러니.... 두 나라의 관계가 좋을까요?
게다가 한쪽은 불어를 쓰는 아프리카계 흑인,
한쪽은 스페인어를 쓰는 뮬라토 (백인 +흑인 혼혈) ..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앙숙이 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70FE335978B2E827)
두 나라 다 독립과정에서
복잡한 내전, 쿠테타, 독재 등을 겪었습니다.
현재까지 이르는 동안
아이티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진 반면
도미니카는 발전을 거듭합니다. (7%대 경제 성장중)
아래 GDP그래프만 봐도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티 혁명 당시와는 완전히 뒤집어진 결과죠?!
![](https://t1.daumcdn.net/cfile/cafe/26A75B33597D91F01D)
업친데 덥친격으로 2010년 아이티 공화국은
진도 8이상의 지진 쓰나미로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50C4335978B38E0A)
그래서 지금 아이티 섬은
서쪽의 지옥(아이티), 동쪽의 천국(도미니카)이라 불리우며
아이티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미니카로 밀입국한다고 합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비록 스페인의 관심에서는 멀어지고
쿠바처럼 문화의 용광로가 되어서
세계적인 음악 장르와 춤을 뿜어내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장르를 살사 문화에 추가합니다.
바로 메렝게와 바차타 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805C335978B47403)
메렝게는 대략 19세기쯤 발생해서
남미 전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도미니카 쪽에선 메렝게라 부르고
아이티에선 머랭, 메렝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기원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노예들이 발에 족쇄가 묶인 상태에서 일을 하다 보니
발을 질질 끌게 되고,
드럼 소리에 맞춰서 한쪽발로 사탕수수를 꺽는 동작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
또 하나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혁명 영웅이
다리에 부상당한 상태에서
축하파티에서 발을 질질 끄면서 춤을 췄다라는 설인데
개인적으로는 전자를 믿고 싶습니다.
현재 서로 앙숙인 두 나라에 비슷한 장르가 있다는 것은
이 춤이 적어도 아이티 혁명이전부터 공유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도미니카 TV에서 메렝게의 기원을 다룬 프로에 보면
170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
메렝게는 프랑스의 미뉴에트(Minuet)를 모방했고
여기에 아프리카 특유의 춤을 섞으면서
발전했다고 합니다.
물론 초반에는 남녀가 커플로 추는 춤도 아니었고
강강수월래처럼 모두 모여서 원을 그리고
췄다고 합니다.
헌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미뉴에트라는 춤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의 한장면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가발쓰고 드레스 입고
어떤 동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프랑스 귀족들이 미뉴에트를 추는 것을 본 흑인 노예들은
아프리카의 춤 동작을 접목시켜
남녀가 손잡고 추는 커플댄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킵니다.
여기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인데
미뉴에트의 기본형은 아직 살사에 조금 남아있습니다.
일단 3박자 춤이구요. 첫 박자부터 춤이 시작됩니다.
이 3박자 춤이라는 게
이후 라틴 댄스에 큰 영향을 줘서
4박자 음악에 3스텝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게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차차는 3스텝 다름 샤세(차차 스텝)을 하고
바차타는 3스텝 다음 텝
살사는 3스텝하고 쉬죠?! (슬로우)
춤의 기원에서 받은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참 재미있는 점은
두 앙숙이 한 섬에 있지만
같은 춤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P.S.
프랑스 혁명 직전 프랑스는
바로크 문화였고 춤은 미뉴에트가 유행했습니다.
이 미뉴에트를 즐기던 귀족과 백인들은
아이티 혁명 때 쿠바로 탈출해서
또 다른 커플댄스의 기원을 만듭니다.
(지난 시간 콘트라단사)
P.S.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에서 초창기는
주로 하급귀족, 군인이 주도합니다.
금을 찾아 팔자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집팔고 땅팔아서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사탕수수농장, 담배농장 이런거 꿈도 못꿉니다.
반면 프랑스는 귀족들이 참여합니다.
사탕수수를 보고
땅을 개척하고 노예를 사와서
대농장을 만듭니다.
백인이 다 다스리지 못하면
백인과 흑인 혼혈인 크레욜에게 교육을 시켜서
모자란 인력을 보충했는데
이로 인해 살사와 재즈가 발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