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산동/ 이혜원
현관 청소를 하며 물티슈로 시멘트 바닥을 닦아내던 어느 날, 물과 시멘트가 만나면 나는 특별히 싱그러웠던 물청소 냄새가 떠올랐습니다. 주말에 늦잠 자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던 냄새, 모두 모여 5층부터 현관까지 콸콸콸 물청소를 하던 나의 비산동.
148동 505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저의 첫 번째 주소입니다.
5층짜리 주공아파트, 제가 어릴 적 자란 곳입니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가족을 이루신 부모님은 막내딸을 낳고 아파트를 덜컥 계약하셨고 단칸방 살이를 하던 여러 가족들이 삼삼오오 아파트에 모여 살았습니다. 완만한 언덕을 깎아 만든 아파트 단지 맨 꼭대기에 우리 집 148동이 있었습니다. 5층 아파트에 각 집마다 모르는 가족이 없었고 어느 집에나 친구가 있어 날마다 놀았습니다.
1층에 어른스러운 하나언니, 2층에 별로 안 친한 지섭오빠네, 3층에 제일 좋아하는 동생 효원이네, 4층에 간호사 아줌마네, 5층에 우리집, 그리고 깍쟁이 같아서 잘 안 놀았던 앞 집 유리네. 효원이네 아빠는 과자공장을 다니셔서 과자랑 초콜릿이 항상 집에 많아서 부러웠고, 아들밖에 없는 4층 간호사 아줌마는 저를 볼 때마다 우리 강아지하며 예뻐해주셨던 게 생생히 기억납니다.
더워지면 오빠들과 동생들 모두 모여 뒷산으로 놀러가서 드문드문 있던 산소 앞을 무서워하며 뛰어 지나기도 하구요. 아카시아 냄새 맡으며 바위도 넘고 오솔길을 따라 산 속을 누비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동구밭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노래를 부르면 제 마음 속에 주공 아파트 뒷산의 오솔길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아파트 마당에 꽉 차게 피어났던 토끼풀밭에 앉아 꽃팔찌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고 솜씨 좋은 효원이 엄마가 꽃 화관도 만들어 주셨지요. 비산동 앞에는 지금의 평촌 신도시가 들어선 자리가 있었는데 그 때는 넓은 비닐하우스 밭이었어요. 거기서 토마토가 많이 나왔는데 철이 되면 파란 봉지에 토마토를 잔뜩 사가지고 와서 설탕 뿌려 시원하게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놀이터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그네를 탈 때면 늘어진 잎이 살짝 살짝 발끝에 닿아서 그 긴 잎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멀리 버드나무가 보이면 반갑고 다가가서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꽤 높았던 빨강 노랑으로 페인트칠을 해 놓은 미끄럼틀과 타고 나면 손바닥에서 쇠 냄새를 킁킁 맡았던 초록색 말 모양의 시소도 기억납니다. 해질녘에 집 앞 마당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도 하고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도 하구요, 딱딱한 플라타너스 나무 열매 찧어서 소꿉놀이 하다가 한 명 씩 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쪼르르 들어가던 작은 아파트.
자라면서 몇 개의 집을 지나왔지만 나의 유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집. 어릴 적 이야기는 차곡차곡 쌓아놓은 여러 색의 담요처럼 제 안에 있습니다.
유은실 작가의 <나의 독산동>을 읽으며 하나의 마을이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학교에 다녀와 엄마가 없으면 친구네 집에서 놀고 밥도 얻어먹고 엄마를 기다리던 날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요즘 아이들의 유년은 어떤 색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도 잘 모르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들과 한정적으로 어울리는 거 같고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뛰어노는 아이들이 마냥 해맑습니다. <나의 독산동>의 은이처럼 아이들이 온 몸으로 느끼는 유년의 모습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있는 제가 보입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저처럼 천연색의 세상을 보고 있을 거예요. 알록달록 따뜻한 담요를 이야기처럼 쌓아가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무얼 쓸까, 어떻게 쓸까 고민만 하다가 지난 유은실 작가 초청회 때 메모해 둔 글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네요.
“쓰지 않는 것이 쓰는 것 보다 힘들다. 그냥 써 버리는 것이 덜 힘들다.”
쓰고 싶은 것을 열심히 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