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관음보살입상> +느티나무, 미륵사
보살상과 나무와 미륵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문화재적 가치는 보살상인데 느티나무와 함께 해 서로 더 미관과 가치가 상승되는 듯하다.
명칭 : 석조관음보살입상
위치 :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문화재 지정 [증평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호
방문일 : 2023.5.17.
관람료 : 없음
*둘러보기
옆의 미륵사는 이 보살상 덕분에 1900년대에 와서야 건립된 절이다.
시대적으로는 관음보살상, 느티나무, 미륵사 순으로 조성된 것이다. 셋이 함께 있어 더욱 볼만하고 종교적 심성을 깊게 한다.
1) 느티나무
수령이 300년정도로 추정되고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2) 석조관음보살입상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에 있는 불상으로, 머리 위에 있던 보개석(寶蓋石)은 깨져 보호각 밖의 고목 밑에 있다. 눈썹사이에는 동그란 백호(白毫)가 있으며 눈·코·입 등이 정연하고 원만하다.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선명하고 몸체는 비대한 느낌이 든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어깨에 걸쳐 옆으로 내려졌고 배꼽 부분에는 하의가 선명하지 않게 새겨졌다. 왼손은 배 아래에서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으며 불상 앞에는 절을 할 수 있도록 돌이 놓여 있다. 머리에 썼던 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나 보개의 표현, 옷주름과 얼굴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중기으로 추정된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전재)
고려 전기 불상이라고 추정되는 보살입상. 해마다 마을에서 고사를 지내다 얼마 전부터는 윤년 정월대보름에 지낸다. 마을을 수호해주는 불상인 셈이다. 이 불상 덕분에 마을은 미륵마을이라 불린다.
고사 주관은 무당이 하다 미륵사 스님으로 최근 바뀌었다. 무속신앙이 불교신앙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사도 매년에서 4년마다로 축소된 것 또한 무속신앙의 약화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아래 기사 원문
수백년 이어온 증평 미륵마을 고사 "무사태평 빌어요"]
강신욱입력 2014. 2. 12. 13:06수정 2014. 2. 12. 13:06
[증평=뉴시스】강신욱 기자 = "미륵님께 비나이다. 무사태평을 비나이다"
12일 오전 10시 충북 증평군 증평읍 미암1리(미륵마을) 석조관음보살입상(충북도 유형문화재 198호) 앞에서는 이 마을 주민 등이 마을의 안녕과 주민 건강, 풍년 농사 등을 기원하는 마을고사를 지냈다.
미륵마을 고사는 윤달이 든 윤년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지낸다.2012년에 이어 2년만이고 올해 윤달은 음력 9월이다.
음(陰)의 달로서 손재(損財) 등이 없는 기간이어서 이장(移葬)·결혼·이사 등 어떤 행사도 부담 없이 치를 수 있다.
이날 제관은 이 마을 이장 이길영(72)씨가 맡았다.
제관은 사흘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마을 주민도 이 때부터는 비린 음식을 먹거나 죽은 짐승을 보지 않으며 문상을 갔다 온 사람은 고사에 참석할 수 없다.
고사 주관은 줄곧 무속인이 하다 2004년부터는 인근 미륵사 주지 도찬 스님이 맡고 있다.
도찬 스님은 "마을 주민의 가정과 증평군민의 평안은 물론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제물은 과일과 떡 등은 올리지만 육류는 쓰지 않는다.
이날 고사는 산신, 용왕에게 제를 올린 데 이어 미륵 고사 후 소지 축원과 영가(靈駕) 전송을 끝으로 마쳤다.
미륵마을에서 고사를 언제부터 지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수백년 이상 이어져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을 전설에는 조선 중엽 마을 사람 모두가 질병에 걸려 날마다 2~3명이 숨지는 불행이 닥쳐온 가운데 주민 3명의 꿈에 스님이 나타나 불교를 믿고 미륵사에 있는 관음불상을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하면 7일 이내에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줬다.
마을 주민이 정성껏 기도하니 모두 질병이 나았고 이때부터 마을에서는 해마다 고사를 지내다 요즘은 윤달이 든 해에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길영 이장은 "관음보살입상이 1000년 전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전의 이씨가 마을에 정착한 지 400년이 넘은 것으로 미뤄 마을 고사가 수백년 전부터 지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고사는 보살입상에 올린 막걸리를 신목(神木)처럼 여기는 보살입상 앞 보호수 둘레에 뿌리고 마을 주민의 명단과 생년월일을 적은 소지를 올려 축원하는 것으로 끝마쳤다.
미륵마을은 현재 44가구 104명이 살고 있고 석조관음보살입상으로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조선 정조 13년(1789) 작성한 것으로 추정하는 '호구총수'에는 청안현 근서면 29개 마을 가운데 '미륵리'란 마을이 보인다.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보관의 화불이나 옷무늬와 상호의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1998년 12월31일 지방문화재로 지정했다.
높이는 2.6m가량이고 눈썹 사이에 백호가 양각돼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ksw64@newsis.com
3) 미륵사
미륵사(彌勒寺)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혜능종 소속 사찰이다.본 사찰은 수령이 30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 옆에 모셔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듯하다.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미륵사 보다 더 오래도록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며 대비보살로서 중생구제 원력을 펼치고 계신다.관음보살의 영험이 알려진 것은 오래 전 한 마을 전체에 원인 모를 병이 돌아 매일 두세 명씩 죽어 나갈 때부터이다.어느 날 한 노승이 나타나 마을 어귀 느티나무 옆에 있는 석조관음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 이내 효험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떠났다.
주민들은 처음 보는 노승의 말인지라 그냥 흘려들었지만 이후에도 계속 질병이 심해져만 가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주민들이 모여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노승의 말처럼 7일이 되자 백약이 무효였던 마을 사람들의 병은 씻은 듯 완치가 되었다.그 후로 마을에서는 느티나무 옆 석조관음보살님께 매년 한 번씩 모여 기도를올리게 되었으며 현재는 윤달이 든 해 음력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재를 지내고 있다.미륵사는 천년의 세월 가까이 수많은 영험을 낳으신 석조관음보살입상을 기도처로 삼아 1930년 대 작은 초막을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사찰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50년대 새로 전각을 지으면서 부터이다.미륵사라는 이름도 이 때 가지게 되었고 현재의 ‘미륵댕이’라는 지명도 석조관음보살입상을 수호불로 모시는 마을 사람들의 깊은 신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재)
*조계혜능종?
낯선 종단이다. 아마 이 사찰이 유일한 종단 사찰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2000년쯤 창종하고 따로 본사가 있다고 한다. 조계종이 아닌 조계혜능종이라는 이 종단은 충북 단양의 국은사를 본사로 한다 한다. 국은사라는 절을 개창한 것이 2000년 경이라는데, 그때 종단도 함께 창안한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소속 사찰의 주지는 임명하는데, 이 사찰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불법 수호의 정통성을 잇는 격조 높은 사찰과 종단으로 자리잡으면 좋겠다.
지장전
대웅전
#증평가볼만한곳 #증평석조관음보살입상 #증평느티나무 #증평미륵사 #조계혜능종 #미륵마을
첫댓글 좋은 곳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증평에서는 가장 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답글로 고무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