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라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어릴 적 어른들이 아는 이, 모르는 이를 도우며 ‘한국이라 하면 정 아이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이 정이라는 문화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정이라는 문화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람을 떠올리면 타인을 적대시하고 혐오하거나 무관심한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모습까지 떠오른다. 이러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은 상처입히는 사람들과 상처를 받는 사람들뿐이다.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고부 갈등의 심화, 손해 보는 사람을 욕하고, 핀잔 없는 대화는없고, 인터넷을 통해 매일 하는 인민재판, 가르쳐 주는 사람을 꼰대라 하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당신은 이런 사회가 좋은가? 이런 사회가 싫다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남을 향한 비난이 당연한 것이 된 분위기이다.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를 생각해 보아라. 비난이 없는 대화가 있었는가? 우리는 그런 대화를 당연히 생각하고 문제 삼지 않는다. 이것은 자체로 크게 문제가 되지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당연시된 비난의 대화가 대화 외에서의 비난도 당연시하게 만든다. 머니투데이의 권성희 금융부장의 ‘당신이 하는 말이 두뇌를 바꿔 인생까지 변화시킨다(2016.08.06.)‘에서 뉴버그의 연구결과를 보면 말이 뇌에 큰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내가 말하는 것이 강한 나의 의견이 된다. 비난의 생각으로의변화의 결과는 대상에 대한 혐오이다. 따라서 이는 사람에 대한 신뢰성 감소, 상대에 대한 혐오를 생성한다. 이것이 처음예로 나온 상황들의 이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난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비난이 필요 없다면 비난은 완전한 악으로 없어져야할 것이다. 우리는 비난으로 안 좋은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싸움이라든지 관계의 단절 등 크든 작든 있었을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1936년 출판된 <인간관계론>에서 나온 예시로 미국의 전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쉴스를 비난해 봉변당한 것을 보면 비난이 때론 목숨을 위협할 만큼 큰일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난을 통해 화를 감당할 만한 이유가있는가. <인간관계론>에 나타난 데일 카네기의 견해를 보자.
비난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사람들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비난은 위험하다.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고, 자존감을 훼손하며,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는 사람이 논리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비판은 위험한 불꽃을 튀게 만든다.
사람들을 비난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왜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애써 보자.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변명할 사람들이 많다. 또한 비난을 받고 마음이 멀쩡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 않을 수 없다. 보면 카네기의 의견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통해 이에 동의할 것이다.
비난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비난을 하지 않으며 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자.
첫째로 카네기의 말대로 사람들을 비난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왜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하려고애써 보자. 질책하지 않고 상대의 상황을 헤아려 보고 상대의 입장에서 보아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한다. 이는 비난이 만들어낸 정당화의 일종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자신의 줏대로 판단할 수 있다면 비난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비난 하기 전 자신이 그러한 비난을 받는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는것도 좋다. 이는 비난 하기를 조심스럽게 한다.
둘째로 긍정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BBC NEWS 사라 그리피스의 ‘왜 비난은 칭찬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을까(2023.01.03.)‘에서 바우마이스터 박사가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보다 충격이 크다고 한다.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크게 느껴진다. 우리가 비난하는 대상이 긍정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것만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남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정적인 것이 더 크게느껴지기에 우리는 긍정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비난의 이유를 잃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비난의 위험성, 불필요성과 비난을 하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자신만 실천하면 사회에 변화가없을 것이라 지적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나만 실천하면 무슨 의미인가 나의 주변은 여전한데‘라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법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유튜브 Learn My Test의 영상’Solomon Asch's Study on Conformity Explained’에서 1951년에 실행된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에서 보여준 것처럼 보면 주변 사람에 의해 사람은 변한다는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말하듯이 자신의 행동은 주변인을 변화시킨다. 생각해 보아라. 비난하지 않는 사람을 당신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은 당신을 통해 비난 없는 대화를 경험한다. 주변의 변화는 더욱 주변으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비난 없는 대화가 조금씩 쌓이면 비난 없는, 서로를 포용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개인의 행동은 생각보다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주변인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이성보다 강한 것이다. 나는 상처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원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상처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비난 없는 대화가 가능한 인간 3/4이 있다면 남은 1/4은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에 따라 3/4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아니 비율이 서로 반대가 되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고 편안함을 추구하기에 가능할 것이다.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비난 없는 대화는 무엇보다 편안함을준다. 따라서 개인의, 나 자신의 행동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표현 전략>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부정)
비난하지 않는 사람을 당신은 비난할 수 있겠는가?(설의)
<글을 쓰면서>
제일 처음에 수행평가를 할 때 우리나라 내의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이와 관련해 생각해보니 비난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논거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논거를 사용하면서 글은 쓰니 마음으로 호소하는 글 보다 훨씬 글이 설득력 있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에도 글을 쓸 때 많은 논거를 사용해 글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첫댓글 비난하지 않는 사람을 당신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라는 표현을 보고 웃는얼굴에 침뱉을 수 있겠는가 라는 표현이 떠올랐는데 정말로 비난하지 않는 사람에게 비난하려 하면 망설여질것 같았다.나 자신의 행동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수있다는 마지막 내용이 인상깊었다
최근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를 논리정연하게 정리했고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어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부분을 민감하게 반응해보자 라는 방안이 인상깊었다. 최근에 10번 잘해줘도 1번 잘못하면 나쁜사람 이라는 인식을 갖기 쉽다는 글을 보았는데 효상이가 쓴 글에 나오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 보다는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면 서로에게 비난을 하지않는 사회에 한 발자국 다가갈수 있을거같다.
평소 친구들의 대화에서 비난과 혐오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와 내용에 공감이 되었다. 많은 친구들이 이 글을 읽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대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논거로 쓰인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책을 읽어본 적이 있어서 글의 내용이 더 잘 이해되고 와닿았다.
이 글을 읽고 나도 비난적인 말을 했던 기억이나 반성하게 되었다 나도 여기서 알려준 방법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되었다
최근 인스타에 연애인들 비난하는 댓글들을 많이 봤는데 나만 실천하면 무슨 의미냐고 생각하는것들이 종종 있지만 나 먼저 실천한다라고 바꿔 생각해본다면 점점 다수가 할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한 말이지만 깊게 다가오는 문장이였다.
인용글로 쓴 카네기 데일의 말중에서 사람들의 말을 비난하기보단 이해 해보자는 말이 인상이 깊었다. 결국 비난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우리 사회가 다시 정 있는 사회로 돌아가길 바래본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부터 비난하는 말들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떠올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처가 없는 이상 사회를 위해 나부터 노력해야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화할 때 남을 향한 비난을 섞어서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글에서 생각해보면 나도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어서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대화할 때 상대방의 부정적인면보다 긍정적인면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이 깊었다.
저도 남을 비난했던적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정말 쥐구멍엥라도 숨고 싶어지더라고요... 이 글을 계기로 비난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