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
주요 사실 |
1860년대 |
베이징 조약(1860)으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의 남하에 위협을 느낌 → 흥선 대원군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하여 프랑스 세력을 끌어들이고자 조선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프랑스와의 알선을 요청하였으니 프랑스 선교사들의 거부로 실패 |
1880년대 |
청의 외교관인 황쭌셴은 조선이 러시아의 남하에 대응하기 위해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해야 함을 강조 →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청의 알선으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1882)→ 갑신정변 직후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불안하자 부들러(독), 유길준 등이 조선 중립화론 주장 → 조·러 통상 조약 체결(1884), 조·러 밀약 추진(청의 방해로 실패) 등 조선과 러시아가 가까워지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1885) →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자 영국군이 철수(1887) |
1890년대 |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요동 반도를 차지하자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일본에 압력을 가해 요동 반도를 반환토록 함(삼국 간섭) → 조선에서도 일본의 내정 간섭을 배제하고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가까워짐 →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킴 →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 1896), 아관파천 시기에 러시아에 각종 이권(삼림 채벌권, 광산채굴권 등)이 넘어감 → 독립 협회의 이권 수호 운동 전개(만민 공동회에서 러시아 침략 정책 규탄, 러시아의 군사·재정 고문 철수, 한ㆍ러 은행 폐쇄, 절영도 조차 요구, 증남포 부근의 도서 매수 저지) *아관 파천 직후 러시아와 일본은 베베르ㆍ고무라 각서(1896. 5)를 체결해 한반도 내 일본과 러시아 주둔 군대 수를 동일하게 유지하기로 함 |
1900년대 |
러시아는 청의 의화단 사건(1900) 때 만주를 점령 →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은 영국과 일본이 제1차 영ㆍ일 동맹(1902) 체결 → 러시아의 용암포 불법 점령(1903. 5), 조차(1903. 8) →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 위기 고조 → 일본은 러시아에 조선에 대한 일본의 내정 간섭 인정과 만주에 대한 경제 침투를 허용할 것을 요구, 러시아는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과 북위 39도 이북의 땅을 중립 지대로 만들 것을 요구 → 협상 실패 → 대한제국의 국외 중립 선언(1904. 1) → 요동 반도의 뤼순항 공격으로 러ㆍ일 전쟁 시작(1904. 2) → 세계 최강의 발틱 함대가 대한 해협에서 전멸(1905. 5) →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 7), 제2차 영·일 동맹(1905. 8), 포츠머스 조약(1905. 9) 체결 →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국제적으로 승인 받은 형태 |
이외에 1900~1945년까지의 러시아(소련)에서의 민족 운동, 자유시 참변, 연해주 동포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등에 대해서도 공부해두세요.
이 문제와 연관하여 다뤄주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 그 부분까지는 다뤄주지 않을게요.
카페 내 다른 기출문제를 보면서 함께 공부헤서요.
■ 유사 기출문제 더보기 1860~1900년대까지 러시아와 관련된 기출문제로 올려드려요.
2회 2급 39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주어진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일본이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토지를 약탈하였다는 것이네요.
문제에 주어진 <보기>를 보면 경부선과 경의선을 부설한 배경, 목적, 특징, 그리고 토지 확보 내용을 파악하는 문제임을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9년에 개통된 경인선입니다.
이후 경부선과 경의선이 부설됩니다.
그런데 경부선(1901~1905), 경의선(1904~1906)은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는 남북을 연결하는 이 두 철도가 일본으로서는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러·일 전쟁 등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 꼭 필요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ㄱ - 경부선과 경의선은 일본의 군사적, 침략적 목적으로 부설된 철도입니다.
ㄴ - 경부 철도 합동 조관에는 철도 용지는 조선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선로 부지, 역사 부지 등은
일단 조선 정부가 사들여 제공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철도부지를 대규모로 무상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외에
도 많은 토지를 약탈하였습니다.
ㄷ - 러·일 전쟁 발발 직후 군사적 목적으로 착공된 경의선은 일본군이 총칼을 앞세워 철도용지를 무상으로 강탈하고, 철
도 건설에도 농민들을 강제 동원하였습니다.
ㄹ- 경부, 경의철도는 협궤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2회 2급 40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자료를 읽어보면 '우리나라의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되는 것은 러시아를 막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나와 있죠.
그러니 이는 유길준이 주장한 한반도 중립화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 중립화론은 갑신정변 이후 청·일본·러시아·영국 등이 조선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면서 국제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두되었어요.
거문도 사건 직전 열강들의 대립으로 한반도가 국제 분쟁에 휩싸일 조짐이 보이자 조선 주재 독일 부영사 부들러는 한반도 중립화를 조선에 건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유길준도 조선이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선이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중립화은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① 19세기 말 항일 의병이 처음 일어난 것은 을미사변과 단발령(1895)이 계기가 된 을미의병(1895)입니다.
② 청의 내정 간섭은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쳐 강화되어 청·일 전쟁(1894~1895) 전까지 이어졌죠.
③ 세계 각 지역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던 영국은 러시아가 조선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조선과 러시아가 가까워지고 조·러 밀약설까지 돌자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군사적 요충
지인 거문도를 불법 점령합니다(1885).
영국은 거문도를 해밀턴 항이라 부르며 영국기를 게양하고 포대까지 구축하며 군사 요새를 만들었어요.
조선은 영국에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청도 러시아와 일본이 이를 핑계로 조선에 파병할 것을 우려해 중재에 나섭니다.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영국군은 1887년에 거문도에서 물러났습니다.
④ 용암포 사건(1903) 직후 러시아가 일본에 제안힌 내용입니다.
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당시 거중 조정 조항을 넣었지만 미국이 조선의 위기 상황에서 조선을 도운 적이 없습니다.
미국은 러·일 전쟁 직후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승인하였으며, 러·일 전쟁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전쟁의 종결을 위해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하였지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2회 1급 43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는 '영국 군인들'이 '이 섬에 주둔하고 있었던 시기의 상황'을 묻고 있네요.
문제 주어진 자료를 봐도 이 섬이 어디인지 모를겁니다.
이 섬을 파악하는 가장 큰 힌트는 문두에 나와 있는 '영국 군인들이 이 섬에 주둔'이라는 내용입니다.
영국 군인들이 우리나라 영토에 주둔하였던 경우는 거문도 사건이라고 하는 거문도 점령(1885~1887) 때밖에는 없을 듯 하네요.
즉 1880년대 중, 후반의 시기적 상황을 파악하면 되겠네요.
물론, 6·25 전쟁 때에도 영국군이 우리나라에 파견되었었으니 섬에 주둔한 경우가 있었을 지 모르나 문제의 <보기>에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의 상황만 나와 있으니 거문도 사건만 생각하면 될 듯 하네요.
거문도 사건과 한반도 중립화론은 위 문제에서 잘 설명했으니 문제풀이로 바로 갑시다.
ㄱ - 제2차 영·일 동맹(1904)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ㄴ - 이 시기 조선은 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ㄷ - 영국과 러시아는 세계 각 지역에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데 최우선의 공을 들이고 있었죠.
ㄹ - 삼국 간섭에 대한 설명입니다.
삼국 간섭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요동 반도를 할양 받자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
고 있던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일본에게 압력을 가해 요동 반도를 반환하도록 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4회 고급 40번 문제
문제해설
제시된 글을 보면, 청·일 전쟁 승리(1895)~대한 제국 시기(1897~1910)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어요.
아관파천, 즉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한 지 1년 만에 경운궁으로 환궁합니다.
환궁 당시는 러시아와 일본 모두 한반도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세력 균형을 이루게 되어 외세의 간섭도 상대적으로 약해졌던 시기입니다. 이에 고종은 실추된 국가의 위상을 높여 자주 독립 국가를 대내외에 표방하고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 제국을 수립·선포하였습니다(1897).
이후 광무개혁이라고 하는 각종 개혁을 추진해 나갑니다.
① 대한 제국 성립 이전부터 을미사변, 을미개혁(1895) 등으로 조선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일본과 아관파천(1896)으로
응수하는 러시아와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립은 대한제국 수립 이후에도 지속되어 결국 러·일 전쟁
(1904~1905)이 일어나는 배경이 됩니다.
② 러시아가 연해주에 진출한 것은 베이징 조약(1860)으로 이 지역을 중국으로부터 얻어낸 이후입니다.
③ 삼국 간섭(1895)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요동을 확보하자, 이전부터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
던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일번에 압력을 가해 요동을 돌려주도록 압력을 가한 사건입니다.
결국 일본은 이에 굴복에 요동을 중국에 돌려주죠.
④ 아관파천 시기 조선의 많은 이권들이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에게 넘어갑니다.
이는 고종이 이 시기 러시아에게 많은 이권을 넘겨주었는데, 조선과 통상 조약 체결시 최혜국 대우 조항을 넣은 많은
국가들이 동일한 이권을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도 여러 이권을 얻었는데, 경의선 철도 부설권 획득(1896.7)도 그 중의 하나였어요.
⑤ 세계 각 지역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며 대립하던 영국은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한반도 진출을 막기 위해 일본
과 영·일 동맹(1차 : 1902, 2차 : 1905)을 맺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5회 고급 41번 문제
문제해설
문제에 제시된 자료 서두에 <조선책략>이 언급되어 있으니, (가)~(라)에 들어갈 나라는 조선책략에서 언급하고 있는 나라들이겠지요.
이 자료는 <조선책략> 유포에 반대해 영남 유림들이 올린 영남만인소의 내용입니다.
<조선책략>은 일본에 있던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지은 것으로, 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들어오면서 가지고 들어온 책입니다.
이 책에는 조선이 남하하는 러시아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하는 외교 정책을 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많이 들으셨죠?
그럼 <조선책략>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이니 자료의 설명을 보고 (가)~(라)에 한 나라씩 넣어봅시다.
(가)를 보면 우리가 신하로 섬겼던 나라라고 하니 중국,
(나)는 우리에게 매여 있던 나라, 즉 우리가 예전부터 한수 아래로 취급하던 나라이니 일본,
(다)는 본래 우리가 모르던 나라, 또 불러들인다(적이 아니라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이니)고 했으니 미국이겠죠?
(라)는 우리와 혐의가 없는 나라인데 남의 말을 듣다가 틈이 생긴다고 했으니(적대 관계 내지 견제를 해야할 나라로 지목한 나라겠죠?) 러시아입니다.
따라서 빈 칸에 들어갈 나라들은 (가) 중국, (나) 일본, (다) 미국, (라) 러시아입니다.
ㄱ - 한반도 중립화론을 주장한 조선 주재 외교관은 독일 부영사 부들러였습니다.
ㄴ - 경인선 부설권은 처음에 미국이 획득했다가 후에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당현 금광 채굴권은 독일이 얻었습니다.
ㄷ - 운산 금광 채굴권은 미국이 획득하였지요.
ㄹ - 절영도(부산 영도)를 조차하려고 시도한 나라는 러시아입니다.
그러나 이는 독립 협회가 만민 공동회를 열어 강력히 규탄하면서 저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6회 고급 42번 문제
문제해설
이 자료도 위 문제에서 자세하게 공부했죠?
자료에 나타난 일본, 미국, 아라사(러시아)에 대한 견해을 통해 볼 때 이 자료가 <조선책략>에 대한 반박 내용임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이 자료는 일본에 2차 수신사(1880)로 다녀온 김홍집이 귀국할 때 가져온 <조선책략>을 고종이 유포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 유림 세력들이 올린 영남 만인소(1881)의 내용입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조선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러시아이며,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국,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어요.
결국 청의 알선으로 조선은 서양 국가와는 처음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ㄱ - 영남만인소는 김홍집이 가져온 <조선책략>의 유포에 반발하여 올린 상소문입니다.
ㄴ - 동학 농민 운동을 계기로 국내에 들어온 일본군은 전주 화약으로 국내 잔류 명분이 사라지자 경복궁을 포위하고 내
정을 개혁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미 내정 개혁을 준비중이던 조선은 1차 갑오개혁(1894)을 추진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고 내정 개혁을 강요하는 등 무력 시위를 벌인 것에 반발해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2차 봉기를 하게 됩니다(1894. 9).
ㄷ - 개항 이후 정부는 수신사와 영선사, 조사 시찰단을 파견하는 등 선진 문물을 시찰하게 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개화 정
책을 추진합니다. 이러한 개화 정책에 반발해 유생들을 중심으로 위정 척사 운동을 벌입니다.
ㄹ - 거문도 사건(1885)은 영남 만인소(1881) 이후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ㄱ, ㄷ으로 묶인 ②번입니다.
8회 고급 33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의 자료도 요약하면 '조선의 급무는 러시아를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하고(친중국) 일본과 맺고(결일본) 미국과 연대(연미국)하여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네요.
이는 황쭌셴이 저술한 <조선책략>의 내용이죠.
위 두 문제에서 계속 공부한 내용이니 이제 눈감고도 알 수 있겠네요?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양반 유생들이 영남만인소를 올리는 등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며 반발하였지만,
결국 이것이 계기가 되어 청의 알선으로 조선은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게 되죠(1882).
① <조선책략>은 김홍집이 집필한 것이 아니라, 청의 외교관인 황쭌셴이 저술한 것입니다.
김홍집은 귀국할 때 이를 국내에 가지고 와서 고종에게 올렸을 뿐입니다.
② 청의 외교관인 황쭌셴이 지은 것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와는 관련이 없어요.
일본의 후쿠자와 유기치가 주장한 문명개화론은 김옥균 등의 급진개화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③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양반 유생들이 영남만인소를 올리는 등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④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은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이 조선에 강요하여 체결한 것입니다.
⑤ 임오군란을 진압한 후 청은 마졘창,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조선에 고문으로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2회 고급 35번 문제
문제해설
이 문제는 아관파천이 실행된 직후의 상황을 묻는 문제입니다.
문제에 제시된 글을 쓴 스페이에르는 1896년에 조선에 부임한 주한 러시아 공사입니다.
그리고 자료에 나타난 ‘이 계획’은 아관파천(1896~1897)을 의미합니다.
아관파천이 단행된 배경을 간단히 알고 넘어가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배상금과 랴오둥 반도를 할양받았어요. 그러나 일찍부터 랴오둥 반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의 랴오둥 반도 할양을 저지합니다(삼국 간섭).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려던 정부는 친러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일본은 친러 정책의 주도적 역할을 하던 민비(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킵니다(1895. 8. 20.).
을미사변 이후 친일 내각에 의해 태양력 사용, 단발령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3차 개혁(을미개혁)이 추진됩니다. 그러나 단발령 등에 대한 반발로 최익현 등 많은 유생들이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키게 되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 부임한 러시아 공사 스페이에르는 조선 내 친러 세력과 모의해 고종에게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길 것을 제안합니다. 결국 고종은 신변의 안전을 꾀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기는 아관 파천을 단행하게 됩니다(1896. 2.).
러시아가 순수한 마음으로 자국의 공사관에 한나라의 왕을 모시고 있지는 않겠죠?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는 고종의 신변을 보호하면서 국내에서 삼림 채벌, 광산 개발 등과 같은 각종 이권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각종 이권을 차지하자 과거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최혜국 대우 조항을 넣었던 미국, 일본, 프랑스 등도 동일한 이권을 요구함으로써서 조선의 각종 이권이 이들에게 넘어갑니다.
이들의 이권 침탈은 주로 철도 부설권, 광산 채굴권, 삼림 채벌권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의 이권침탈 모습은 아래 지도를 참고해 보세요.
[출처/미래엔 한국사 교과서]
② 프랑스는 1896년에 경의선(서울~신의주) 철도 부설권을 얻었습니다.
경의선
경의선은 프랑스가 부설치 못하다가 1899년에 대한철도회사에 부설권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대한철도회사도 이를 부설치 못해 결국 1900년에 국가에 환수됩니다. 대한제국은 정부 기관인 내장원에 서부철도국을 두고 철도 부설을 위한 측량 등을 실시합니다. 그 뒤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이 이를 부설하기 시작하여 완공하지요(1906). |
오답들을 살펴볼까요?
①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은 1885년의 일입니다.
이 당시 국내에서 유길준, 부들러 등에 의해 한반도 중립화론이 주장되었다는 것!!! 알아두세요.
③ 1894년의 일입니다.
동학 농민 운동군과 정부는 동학 농민군과 전주 화약을 맺자, 조선은 청과 일본에 군대를 철병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경복궁을 점령한 후 조선에 개혁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청·일 전쟁이 일어납니다.
④ 한성~의주를 연결하는 전신 가설권을 얻은 것은 1885년입니다.
⑤ 을사조약(1905) 당시 고종은 헐버트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을사조약이 불법임을 알리고 미국의 협조를 구하고자 하였어요. 이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할 때 거중조정(계약 상대국이 위급한 상황 등에 처했을 때 서로 돕는다는 것) 조항을 넣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 이루어진 조치였으나 미국은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 상태였기 때문에 헐버트의 면담 요구 조차 거부해버리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베스트셀러 1위 교재,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와 함께 공부하면 참 좋습니다.
바로구매☞
예스24 http://www.yes24.com/24/goods/4774706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47506
설명 잘 읽고갑니다
해설로 많이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