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오전 흐림 오후 맑음
필자, 옆지기 나의 허니 , 그리고 허니의 지인 soon님.
3주일 만에 대간을 찾았다.닭목재 백복령 산행 후 첫 주는 김장 하느라 가까운 불암산의 짧은 산행이 있었고, 그 다음 주는 교회 단체 산행이라 멀리 갈 수 없어서 가까운 한북정맥을 걸었다.
이 구간은 두리봉의 1033m. 그리고 가장 높은 석병산이 1055m에 불과할 만큼 높낮이가 심하지는 않다. 원래 이 구간은 자병산의 구간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심하게 훼손되어 길조차 사라져 버려서 갈 수 없어 안타깝다. 석병산을 지나서는 약 600-900m의 크고 작은 구릉지대 15군데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한다. 어렵지는 않지만 고요하고 고즈넉한 산길이 인상적이다.
산행지도(춘천 새윤병원산악회 블러그 펌)
삽당령에서 07:00분 출발한다. 새벽이 아침에 자리를 내어 줄 때다 ,
들머리 계단을 지나.. 대간 특유의 차가운 공기마저 기분이 좋음은 , 오늘의 한걸음 씩의 걸음에 의미를 부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680 과 866 무명봉을 지난다. 사람에게는 무명봉이지만 이들에게는 삶의 공간이다,
이길을 걷기 위해 그렇게 가슴앓이를 했던가?
새로움과 설레임은 경치에 좌우됨이 아님을 느끼게 해 준다. 그저 마음이 조금 열렸을 뿐인데..
두리봉(斗里峰 1033m)혹은 두위봉(斗圍峰) 이라하며 이름 그대로 두루뭉실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한자는 의미가 없고 그냥 음차한 것이다. 생짜 우리말로 두루산이라 하면 좋겠다. 두리봉에서 임도가 보이고 좌측에 기수무니 마을이 보인다. 기암괴석 봉우리라면 멋있을지 모르지만, 대간에는 실제로 이런 봉우리가 훨씬 더 많다.
이 구간의 특징은 카르스트(karst)지형으로 석회암 지형이 빗물에 씻기어 움푹 들어간 지형이 특징이다. 표면에 석회암이 녹아 작은 깔떼기 모양을 이루는데 이것을 돌리네(doline). 옆에 있는 돌리네와 합쳐져서 규모가 커진 것을 우발라(uvala)라고 하여 좁고 긴 계곡이 이루며 , 우발라가 커져서 수십리에 이르는 것을 폴리에(polije)라고 한다. 실제로 걷는 중간 곳곳에 많이 목격되었다.
초겨울에 눈도 별로 없어 많이 쌓이지 않고, 무거운 잎사귀를 버려 앙상한 가지를 한 나무와, 그 나무에 의해 버려진 낙엽의 잔해들 만이 산길을 메우고, 발길의 밟음에 저항하는 듯, 잎사귀의 날카로운 사각소리,.. 거기에다가 이따금 들리는 산새들의 배고픈 울음, 능선의 형태에 따라 움직이는 센 바람들의 들림만이 온통 주위를 에워싸는 을씨년스러운 이런 산이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세월은, 밥을 먹고 자라지 않고 발자국의 양에 따라 튼실해 지는걸 어찌하란 말이냐?
그래서 걷는다. 딱딱한 인공의 도로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길을 나이와 함께 정들며 걸을 뿐이다.
석병산 다와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능선 두리봉이 두리뭉실하게 보인다.
남진하다 보면, 석병산 거의 다 와서 좌측이 열린 개활지가 있는데, 여기서 석병산이 멋지게 보인다.
봉우리가 세개다.
석병산(石屛山 1055m).
깍아지른 듯이 솟아, 돌로 된 병풍 같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북으론 만덕봉(萬德峰 1,935.3m)이, 동으로는 상황지미골을 아우르는 삿갓봉(400.4m)이, 남으로는 도룡산(圖龍山812.6m)이 있고 , 멀리 유명한 노추산(魯趨山 1,322m)을 거느린다.
석병산은 봉우리가 세개다. 석병산 정상석이 있는 가운데 봉우리가 주산이며 일월봉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세번째 봉우리는 유명한 일월문이 있다 .
바로 밑 사진은 첫번째 봉우리이다
석병산(일월봉)
일월문
다시 돌아와서 오른 쪽이 첫번째 봉우리
석병산에서 1시간 정도 내려오면 908봉 헬기장이 있다. 이곳이 이번 산행의 정 중앙이 되는데, 20분 정도 더 내려오면 고뱅이재가 있다.
고뱅이재(고병이재 혹은 골뱅이재)는 강릉 산계리와 정선 임계리를 잇는 고개로서 강릉 석화동굴(石花洞窟)로 가는 곳이다 석화동굴은 절골에 있어 절골굴이라고도 한다
900봉, 981봉을 넘으면, 급좌틀하여 922봉에 이르는데, 태형봉이라 누군가 써 놨다. 이곳을 지나니 급한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태형봉과 829봉 중간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829봉을 넘으면 생계령이다. 829봉도 띠지가 많다. 829봉을 지나면 평탄한 길이다. 대간길은 서서히 좌로 구비돈다. 829봉에서 인증샷.
생계령(生溪嶺 640m). 주위에 도토리가 많아 마을 아낙네들이 생계(生計)를 위해 주워서 연명하였다하여 붙여진 슬픈 이름이다. 어른방향 즉 정선 쪽은 임계면 큰피원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은 옥계면 상황뎅이로 가는 길이었다. 옛날에는 주막집이 있었다 한다. 이 구간 중 제일 낮은 곳이다.
생계령을 뒤로 하고 762봉 786봉을 지나니 임도가 대간길과 함께 한다
힘겹게 까마득한 나무계단을 오르고
대간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815봉. 산불감시 초소에서 흉측한 자병산이 마음을 저미게 한다.
겨우남은 자병산(紫屛山 원래 높이 873m). 자병산은 석회암의 특유의 물질이 빛에 의해 굴절 되어, 아침저녁에 자색(紫色)빛을 내는 병풍같은 산이라는 의미로, 자색 빛을 내는 우리나라 산 중 으뜸 산이었다. 이 아름다운 산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 허리와 척추가 잘려나가더니 급기야 머리까지 댕강 떨어졌다. 조선시대 역적 중 으뜸에게만 행해졌던 능지처참이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매일 행해지고 있다. 아 자병산이여! 미안하구나!.
산하는 우리가 쓰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후손에게서 잠깐 지금 세대가 빌려쓰고 있는 것일 뿐인데.
위 사진은 지금의 모습. 아래 사진은 옛 자병산 모습 칼데라 분화구처럼 깎였다. 아 애잔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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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병산이 죽어가니까 그곳을 지나는 길도 사라져 원래의 대간길이 짧아졌다. 819m봉우리에서 자병산을 빙 둘러 가야하나 그냥 허리를 짚고 내려선다.
자병산을 잘라 시멘트 원석을 실어 나르려고 낸 흉측한 길을 얼른 가로지른다.
길이 보기싫어 도망치듯 달려 가니 얼른 품어 안아 준 백복령.
이를 묵묵히 보고 있는 백복령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우리 나그네들이야 가끔 한 번 장탄식만 울리면 되지만 백복령은 늘 보고 있음이랴.... 그럼에도 대인배 백복령이 그대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너희라도 살려므나!
거의 4개월 만에 백복령에 다시 왔다.한여름인 8월 6일에 댓재까지의 구간의 시발점으로 삼았는데....
길재 선생님의 "산천은 의구한데 "라고 쓴시구가 떠오른다. 백복령은 거기 그대로 계절과 세월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보니, 나그네의 기억으로 남아있던 잔상들이 다시 떠올라 행복하다.
참고로 동해시에서 백복령까지 시내버스가 2회 운행한다.
동해 자매공원출발 오전 05시 45분 06시 00분 백복령 임계 06시 39분 도착 30분 후 돌아감
(15-3번 시내버스) 오후 16시 33분 16시 48분 백복령 임계 17시 30분 도착 30분 후 돌아감
만보기기준 42,980 보.
순수 산행시간 7시간 34분 35초. 휴식, 식사, 사진촬영시간 포함 총 산행시간 9시간 35분 .
도상거리 16,020m 만보기상 거리 30,08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