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의 문학산책/ 도산별곡(2020.5.16)
개울이 마실 허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계마을의 토계천 위에 놓인 큰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바로 들어서면 느티나무 작은 숲이 눈앞에 나오고 이를 지나 양 논두렁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서 교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들어오는 영지산 자락과 함께 하늘에 닿을 듯이 키가 큰 플라타너스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들의 꿈 처럼 드넓었던 운동장이 펼쳐졌네.
운동장 왼쪽 산밑에는 시멘트로 마그마 분출과정을 만든 모형이 있었고 미끄럼틀과 철봉은 왼편 끝자락, 그네와 정글짐은 오른쪽 끝 모퉁이, 중간 끝에는 농구 골대, 중앙에 마주보고 세워진 축구골대, 교문 안쪽 오른쪽 바로 앞은 배구코트, 교문부터 그네가 있는 오른쪽 담장에는 줄을 지어 키 큰 플라타너스가 서 있는 가운데 나무 아래는 하얀 대리석 사각형 큰돌이 벤치 처럼 듬성듬성 놓여있어서 우리들의 쉼터를 만들어주었네. 교문 정면 약간 우측 산밑 끝자락에는 교사 사택, 그 앞에는 내살미 가는 좁은 샛길이 있고 그 옆에는 선생님의 넓은 과수원. 펌프 수돗가 뒤에는 교감선생님 사택, 교문 담장밖 바로 오른쪽 낮은 언덕 위에는 오동나무를 심은 작은 묘목장, 학교 뒷건물 오른쪽 언덕 위에 올라서면 무궁화나무와 측백나무를 키우는 큰 묘목장, 그 묘목장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건초와 퇴비가 뒤섞여서 구수한 옥수수 빵냄새를 풍기던 거름더미. 큰 묘목장 끝에 있는 작은 산길로 넘어가면 시야 가득히 강건너 내살미가 다시 들어오고...
학교 건물은 모두 일곱개 동이었네. 운동장서 바라보았을때 본관 격인 앞건물 중앙 바로 왼편 교실에는 재일교포 김청일씨가 기부한 검은색 커다란 피아노가 놓여있는 교무실이 위치한 길다란 목조 일제식 건물, 교무실 좌측 옆방은 학습기자재나 도구를 보관하던 골방, 그 옆 방은 다시 우리들이 수업하는 교실. 교무실 중앙 바로 뒷건물은 작은 숙직실, 양옆에는 각각 기와집이지만 내부는 시멘트로 만든 재래식 화장실, 숙직실과 왼편 화장실 사이는 작은 꽃밭, 오른편 화장실 사이는 멘땅, 숙직실 뒷편 건물 왼쪽은 신식 시멘트 교실, 중앙 오른쪽은 일제식 목조 귀신교실, 그 옆에는 신식 시멘트 건물. 본관 앞 건물은 교실 전부가 하나로 이어진 한 개 동이지만 뒷편 건물은 각각 떨어져 있는 세 개 동이었네. 앞건물과 뒷건물 앞에는 각각 화단이 길게 가로누워 있었는데 난과 무궁화꽃, 오동나무, 측백나무, 회양목 등으로 꾸며졌네. 뒷건물 바로 뒤에는 긴 도랑이 있었고 도랑 뒤는 학교와 뒷산을 경계 짓는 담장격으로 측백나무가 길게 양옆으로 끝까지 이어졌네.
본관 건물 제일 오른편에는 소사 아저씨가 자주 드나드신 창고. 그 창고 속에는 난로와 장작들이 가득가득 쌓여 있어 추운겨울 수업할때 아침마다 각 학급 당번들이 장작을 배급 받기 위해 자주 들렸지. 교감선생님 사택과 본관 왼편 건물 사이는 경사가 제법 졌는데 두 건물의 가로막이로 보이는 오동나무가 숙직실 왼쪽 화장실 까지 담장 역할을 하며 죽 심어져 있었지. 교문 오른편 담장 밖 완만한 경사 아래로는 바로 논두렁이 있고 논두렁 옆에는 제법 큰 논들이 펼쳐져 있었지. 그리고 본관 건물에서 운동장을 바라본 정면 중앙 끝에도 철봉이 있고 그 뒤에는 작은 플라타너스 담장, 그 밖에는 탱자나무로 된 작은 울타리가 운동장과 과수원을 다시 가르는 경계가 되었네. 한 폭의 그림 같은 교정을 빙둘러가며 품고 있는 어머니 같은 뒷산의 이름은 우리 학교 교가에 나오는 영지산이요, 도산면 전체를 보았을 때 가사리(가송)부터 배운지 대사 내살미를 지나 의인 앞으로 해서 섬마 부내까지 학교를 섬모양으로 크게 둘러싸며 여러개의 여울을 만들면서 굽이져 흐르는 강을 우리는 낙동강이라 불렀네.
교무실 있는 목조 건물의 동쪽은 의인 섬마 방향이요. 서쪽은 웃토계와 양평 방향이요, 남쪽은 내살미 방향이요, 북쪽은 분강이 흐르는 부내 방향이외다.
의인 번람에는 아흔아홉칸 고택이 있었고
웃토계 상계마을에는 퇴계선생의 계상서당이 있었고
종택 아래 느티나무숲 성황당을 돌아나가면
작은 골이 나오는데 이것이 죽동 대골이네.
퇴계선생 산소를 돌아 수졸당 고택을 지나 원천으로 들어서면 이원록선생 생가 앞에 가슴시린 청포도 공원이 나오고 앞에는 이 마을을 잉태시킨 젖줄같은 못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칼선대 끝자락이
이 마실을 향해 포도알 처럼 알알이 영롱한 정기를 품어 주었네. 내살미 앞산은 영지산이요, 뒷편 서남향 사이에는 유서깊은 공민왕의 왕모산성이 있고
부내 가는 길에는 이황의 도산서원과 시사단,
농암의 애일당ㆍ분강서원이 병풍처럼 줄줄이 백미를 이루었네.
소사아저씨 종소리는 행복의 소리, 제무씨(G.M.C) 빵차 크략숀 소리는 기쁨의 소리, 운동장 참새소리와 비둘기소리는 평화의 소리였네.
작은 양철집 속의 펌프 물맛 좋고, 교사 사택앞 과수원집 사과맛 좋고, 이용소가게집 비가사탕과 삼립단팥빵맛 좋고, 도산지서앞 자장면집 맛은 비할 데가 없었네.
등교길 도산우체국앞 교회당에 기도하며 꿈 키웠네. 하굣길 비행기장 앤떼이 지나 코스모스ㆍ아카시아 꽃길 걸으며 소년 시인이 되었고 참남배로 돌아 고향산천 한 눈에 들어올때 이 산야 정령들께 소원성취 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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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이 사진만 보면 눈물이 난다. 저 교실 속에서 한때 우리들을 지켜주었던 신성한 정령들도 세월따라 이제는 하늘나라로 제다 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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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짐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나가버린 옛시절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애수를 자아낸다(사진출처: 네이버 포스팅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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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종택이 있는 웃토계, 계상서당 아래 모롱이에 위치한 성황당의 모습이 찾는 이가 없어서인지 쓸쓸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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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봄 학기를 끝으로 도산국민학교는 전설로 남을 토계(하계)시대의 막을 내리고 단천에 새로 지은 신 교정으로 이사했다. 이해 봄 우리는 책상과 걸상 등 우리 어린이들이 나를수 있는 모든 학습기자재들을 개미처럼 줄지어서 옮기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가을학기(5학년2학기)부터는 온혜국민학교로 등교했는데 등교전날 밤 어린 마음에
도 안타깝고 서러워서인지 마루에 턱을 괴고 앉아 밝은 달을 바라보며 펑펑울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벌써 45년 전의 일이고 이제 우리들도 나이를 먹어 반백년이 넘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1981년 고2(18세)때 단천으로 이사한 새 교정에서 가진 58회 동창회 모습이 정겹다 못해 처연해 보인다. 객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오리지널 친구들. 앞줄 오른편에서 시계방향으로 세번째 교련복 입은 사람이 필자. 1916년 10월에 설립한 도산국민학교는 1947년 문을 연 온혜초등학교에 1993년 통폐합 되어 사실상 77년만에 폐교되는 아픔을 겪으며 도산면민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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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구 도산국민학교 전경. 중앙에 교무실이 있던 앞 건물의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문이 위 <도산별곡>에서 추운 겨울날에 난로에 넣을 장작을 받기위해 각 학급 당번들이 매일 찾아갔던 창고. 그때 소사아저씨(김성연선생님) 참 순하기도 하셨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백ㅇ이용소(이용소 상호와 머리해주시던 분의 존함은 기억이 나지않음)주인으로 이발해주시던 참 좋으셨던 그 분께서도 잘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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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구 도산국민학교. 뒷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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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이 길을 따라 구 교정에 있던 정든 책상과 걸상 등 학습기자재들을 5학년 이상 학생들이 총동원 되어 고사리 손으로 개미같이 줄을 지어 옮기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감행했다. 좋은 단천 길로 옮기지 않고 가까운 원천 못 둑 길로 가로질러 옮겼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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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도산국민학교 졸업 앨범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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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세 동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학교 부지와 전체 조망은 대체로 그런대로 나온 듯한 사진이다. 풍상과 일월에 빛바랜 푸른 스레트 지붕과 널부러진 일제식 목조 귀신교실과 옆의 1학년1, 2반 시멘트건물 교실, 밭으로 변한 운동장 등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듯한 학교 뒷산 영지산과 언듯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내살미 왕모산성과 대비 되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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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하에 있던 일제시대 때인 1916년10월, 우리 도산국민학교의 설립 당시 모습이다. 관ㆍ민ㆍ학생의 단체 사진 속에서 시대의 잔상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있다. 희귀 사진이 아닐 수 없다(출처: 네이버에서 가져옴).
첫댓글 사택앞 과수원집이 이동후선생님댁 이었지 .
정말 사과 맛 끝내주고
탱자나무 울타리 밑으로 들어가 사과 따 먹다가 들켜서 혼 난적도 있었는데. . .
정겨운 글! 고마워!! 글을 읽으니 학교 전경이 확 떠오르네
陶山國民學校舊基 (도산국민학교 구기) 현재 전경사진은 "추억마당 3번" 에 실려 있으니 참조바래요~~
위 우측 검색에서 ."구기" 로 검색해도 나옵니다
다 좋아요. 모든게 다 감사한 날들이죠. 친구들도 다 건강하고~
글 마지막 동창회 사진은 "추억마당 9번"에 실려 있는 사진과 같은거죠
1981년 9월 2일 동창회 사진 이죠
거기 댓글에 이름 나와 있어요.
또는
검색에서 "1981년 동창회" 검색하면 나와요~
추가로 올린 도산국민학교 전경 귀한 사진 잘 봤어~
친구들 즐감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