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독일이 ‘탈원전’을 달성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는 13년이 되는 날이었다. 올해 1월 발생한 노토반도(能登半島) 지진으로 안전ᆞ방재가 불안한 상황이지만 일본은 원전 활용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폐로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재가동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없다.
원문: 도쿄신문(2024.3.17.)13) 사쿠마 히로야스
번역: 박노보 박사
1. 해체 잔해물의 98% 재활용
지난해 11월 폐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독일 동북부 루브민(Lubmin) 그라이프스바르트(Greifswald) 원자력발전소를 찾았다. 기자도 방호복을 입고 콘크리트, 금속 등 원전 잔해물 해체·제염작업장에 들어갔다. 금속을 절단하는 ‘가~가~’ ‘기~기~’ 소음이 울려 퍼졌다. 작업 인력은 약 20명. 전기톱으로 부품을 자르거나, 부품 제염을 위해 고압수로 부품 표면을 세척하고 있었다. EWN 홍보담당자 카트 라도로프(32)씨는 “(부품 등은) 최대한 재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WN은 독일 연방정부가 100% 출자한 폐로 전문 기업이다.
연방정부 폐기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원전 잔해물의 약 98%는 방사능폐기물 기준치보다 방사능 레벨이 낮아 재활용할 수 있다. 잔해물의 약 2%만 처분장으로 반출되는 방사성폐기물이다.
재활용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원전이 가동 정지되었지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가 아직 선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며, 최종처분장이 건설되더라도 처분 용량이 무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원전 해체 작업은 1995년에 시작되었으며, 2030년대 후반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2. 중간저장시설 16개소‧최종처분장은 ‘0’
그라이프스바르트 원전 부지 내에는 방사성폐기물을 임시 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도 있다. 복수의 홀로 구획된 공간에는 방사성폐기물 잔해를 실은 컨테이너와 수십 미터 규모에 달하는 증기발생기, 핵연료 압력용기가 늘어서 있다.
홍보담당자는 “견학은 여기까지”라며 기자를 저지했다. 압력용기 등이 줄지어 있는 홀 옆 콘크리트벽 앞으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다. 이곳 원전과 다른 원전에서 옮겨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584t이 74개 용기에 담겨 보관되어 있었다.
독일에는 중간저장시설이 16개소 있으며, 현 시점에서는 최종처분장 건설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때 북부 고어레벤(Gorleben)이 후보지였으나, 주민 반대로 2013년 철회된 바 있다. 2020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을 위한 연방협회(Bundesgesellschaft für Endlagerung mbH, BGE)’는 최종처분장 기준을 만족하는 90개 지역을 발표했다. 대상지는 국토의 54%에 해당하는 면적이며, 2027년 후반까지 지상탐사지역으로 압축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당초 BGE는 오는 2031년 후보지 결정을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지상 및 지하 탐사작업 절차 등으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측되어 최종처분장 후보지는 2046~2068년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도 ‘재가동'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의존성을 낮추었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해지자 방침을 바꾸었다. 원전 수명을 60년 이상 연장할 수 있는 ‘그린트랜스포메이션(GX)탈탄소전원법’을 제정하였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호쿠리쿠전력(北陸電力) 시가(志賀) 원전 변압기가 파손되었고, 기름 유출로 외부전원 일부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였다. 도로 단절, 건물 붕괴가 이어지면서 ‘지진과 원전 사고가 동시에 발생할 시 피난 및 옥내대피를 할 수 없다’는 불안이 퍼졌다.
한편 독일에서는 원전 재가동 움직임을 볼 수 없다. 루츠 메츠 베를린자유대학 부교수(에너지정책)는 “전기사업자들은 재생에너지 투자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고 원전 재가동은 원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서북부 린겐(Lingen) 엠스란드(Emsland) 원전 가동을 중지한 기업 RWE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와 축전, 수소 분야에 550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EnBW 홍보담당자도 “독일 원자력법에 따르면 원전에 의한 전력 생산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자력 이용에 관한 논의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EnBW는 남서부 넥카웨스트하임 원전(Neckarwestheim)을 정지한 바 있다.
4. 독일의 탈원전
독일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이후 1998년 출범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권을 통해 탈원전을 국가 기본방침으로 정했다. 이후 2002년 원자력법 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중도우파 메르켈 정권은 탈원전 달성 목표 시기를 연장하였으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으로 2022년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같은 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발생하자 2023년 4월 15일까지 원전 가동을 정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원전 28기를 대상으로 폐로 작업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5기의 폐로는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
5. 일본은 아직 문헌조사 단계…앞으로는?
일본에서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 관련 부지 선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홋카이도 슷츠쵸(寿都町)와 카모에나이무라(神恵内村)에서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 1단계인 문헌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부지 선정이 완료된 국가는 핀란드와 스웨덴, 프랑스 정도이며, 가동 중인 최종처분장은 한 곳도 없다.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부지 선정을 담당하고 있는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는 지난달 슷츠쵸와 카모에나이무라에서 다음 단계인 ‘개요조사(지면을 굴착하여 지층조사)’ 진행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보고서(안)를 정부에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개요조사 이행에는 지사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 홋카이도 지사는 개요조사 이행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에 따르면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을 완료한 곳은 유럽 3개국뿐이다. 핀란드는 남서부 올킬루오토(Olkiluoto) 섬에서 최종처분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해당 처분장은 2020년대 중반 세계 최초로 가동될 예정이다. 스웨덴은 남동부 포스마르크(Forsmark)에서 2030년대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파리 동쪽에 위치한 뷰흐(Bure) 지하연구소 근처에 신설 허가신청이 제출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서부 네바다주 유카산(Yucca Mountain)이 후보지로 선정되어 있지만, 현재 안전 심사가 중단된 상태에 있다.
6. 중간저장시설도 재처리공장도 없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정의는 일본과 독일 등에서 다르다. 핵연료 사이클(Nuclear fuel cycle)을 금지하는 독일에서는 사용후핵연료 그 자체를 뜻한다. 반면 핵연료 사이클을 지속하는 일본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플루토늄, 우라늄을 추출한 후 남은 폐액을 유리와 섞어 고형화한 ‘유리고화체’를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정의하고 있다. 관련 규정에 따라 유리고화체는 금속 용기에 넣어 지하 300m 이상의 암반에 매립해야 한다.14)
일본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공장15)으로 반출하기 이전까지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 정비도 과제 중 하나이다. 도쿄전력 등이 출자한 ‘리사이클연료저장’(아오모리현 무츠시)은 올해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지난해 8월 인가를 받았다. 이달 말 쓰나미 침수 대책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아울러 중국전력(中国電力) 관서전력(関西電力)은 야마구치현 카미노모노세키쵸(上関町)에서 중간저장시설 공동개발 계획에 따라 관련 시설 건설을 위한 조사를 시작하고 있다.
<각주>
13) https://www.tokyo-np.co.jp/article/315624
14)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 농도와 열 발생률에 따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로 나뉠 수 있다. 한국의 원자력안전법은 열 발생량이 2㎾/㎥, 반감기 20년 이상인 알파선을 방출하는 핵종으로 방사능 농도가 그램당 4000Bq(베크렐) 이상인 것을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이지만 원자력안전법상 ‘폐기가 결정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는 ‘방사성폐기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 원전 가동으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각 발전소 내 수조에 저장하고 있으며, 저장수조의 용량이 초과하는 경우 다른 저장수조 혹은 건식 저장시설(현재는 중수로인 월성원전만 해당)로 운반하여 저장하고 있다. 방사능 농도와 열이 충분히 낮아진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특수 제작된 용기에 저장되어 영구처분되지만 현재 한국에도 최종처분장은 없는 상황이다. https://www.korad.or.kr/korad/html.do?menu_idx=144
15) 재처리공장은 아오모리 록카쇼무라에 위치하며, 2024년 상반기 완공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