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자
- 나무 도치 동배기 이원
<1>
엄마의 연금으로 생활하기 위해 죽은 엄마의 시신을 숨긴 50대의 명주
명주의 상황에서 그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요?
도치
명주는 이혼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발에 화상을 입어 직장도 그만두게 됐고 장애인 등급도 나오지 않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본인이 뭔가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명주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이원
준성이는 젊고 남자고 학교도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선택을 하는게 사회가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안되는건 알지만 그 순간 연금이 들어온 걸 직접 보게되면 나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무
명주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라면 나이도 많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연금으로 먼저 치료를 받으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먼저 따려고 할 것이다. 그 이후에 일을 하면서 사망신고를 하는게 어땠을 까..
치료를 우선으로 하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게 가장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또 엄마의 사망보험금이 나오지 않았을까?
뉴스에서 보면 예전에는 절대 그러면 안될거라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 현실을 알게되니 그런 상황의 사람들에 대해 판단 자체를 못하겠고
결국 살인자는 국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도치
하지만 곱씹어보면 결국 명주가 뭔가 하기 위해서 연금을 계속 타는게 아니라 들킬 때까지 연금으로 버텨보자 들키면 바로 본인도 생을 마감할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면 나무님 말처럼 차라리 사망신고를 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역시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무
아무래도 명주 상황이 그런 의지 자체가 생기지 않았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의지라는게 있다면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은 사건들에 의해 의지가 많이 꺾였던 상황이었다.
예전같았다면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조언을 했을 것 같은데 요즘에는 내가 그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왈가왈부할 수 없고 진짜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도치
본인은 뭘 하려고 해도 안되는 상황이 계속되니 꺾이는 것 같다. 근데 주변에서는 안해보고 현실에 수긍하며 산다라고들 하니 그 둘 사이에서 괴로워지는 것 같다.
최근에 더 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는 부분이 복지정책이다.
특히 프로그램에서는 극단적인 모습이 나오다 보니 예전과 다르게 무조건적인 복지정책이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복지 정책이라는게 사각지대 없이 이뤄진다면 좋은 것인데 그건 유토피아이고 좋은 사회를 위한 복지 정책이라는게 어렵다.
나무
복지의 부작용이 무서워서 복지 정책을 안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정수급하는 사람도 있고 복지 아니더라도 탈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에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복지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좁은 시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원
작년에 복지 관련 세조 1조 가량이 잘 안쓰였다는 기사를 봤다.
법에서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나올 바에야 그냥 100명의 범죄자를 놔주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복지도 이와 비슷하게 누구 한 명이 잘못 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소설에도 보편적인 복지, 선별적인 복지에 대해 나오는데 선별적인 복지는 어느 기준 하나가 맞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무에 어쩔 수 없이 보편 복지로 가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2>
준성이 학생일 때 뇌병변이 온 아버지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 형을 대신해 물리치료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대리운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합니다.
그 와중에 화상을 당한 아버지, 주차를 하다가 사고를 내버리죠.
준성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이겨내려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는 것과 절망이 계속되는 것 어떤 것이 더 이겨내기 힘들까요?
도치
희망이 사라지는 게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절망이 없는 상태여도 희망이 없으면 되게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준성이도 이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는 계속 공부를 하면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틴 것이다.
마지막에 벤틀리로 희망이 사라져서 아버지까지 모든 걸 놔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이원
책을 다 보기 전 발제문을 봤을 때는 당연히 희망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절망이 계속되니까 결국 희망도 사라진 것 같다.
결국 둘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무
희망이 사라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만약에 준성이가 물리치료사 합격을 했다면 벤틀리 사고도 이겨낼 수 있었을 거다.
어떤 절망이 계속돼도 물리치료사로 회사에 입사해서 돈을 벌 거야 라는 희망이 있었다면 계속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뭔가 희망이 있고 꿈이 있으면 절망 속에서도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살 수 있다.
희망이 없으면 동굴 속에서도 한줄기 빛만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것마저 없으면 사실 나아갈 힘조차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도치
나무님 말에 공감하는 게 저희도 계속 뭔가를 나무님이 수영을 시작했듯이 새로운걸 찾아서 계속 나아가고 그런걸 성취하면서 살아가는 데 의의를 둔다.
그런게 있어야 사는데도 의지가 생기지 않나
나무
이번에 희망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목표와 희망, 목적은 어떻게 다를까…
어떤게 더 큰 범위인가
동배기
목적이 훨씬 크다. 목적이 있어야 목표가 생기는 거다. 목적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기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결국 희망이 사라지는 것보다 절망이 계속되는 게 낫다.
나무
주변에 안풀리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왜 그런 선택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생각이 커지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유가 부여된다.
예전에 한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환경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저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이해하게 된다.
도치
저도 최근에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면서 책을 읽고 하다보니 느낀게
부의 대물림이 상속을 해서 대물림 되는 게 아니라 자라난 환경 속에서 부모님이 재테크하는 방식을 빨리 배워서 생기는 게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경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나무
하다못해 어려서부터 잘한다라는 소리만 듣고 자라도 도전하는 거에 두려움이 없어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
동배기
며칠 전에 교육격차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기초수급자 아이들과 강남 대치동 키즈를 보여주는 데 기초수급자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에
그 아이들 자체가 항상 한계가 정해져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 뭔가 해주지 않은 이상은 개인이 돌파하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3>
돌봄에서 벗어나 명주의 삶을 살아보려고 하지만 자꾸 나타나는 엄마의 주변사람들
내가 명주였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 인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번외) 중간에 당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있다는 명주의 집에 걸려온 전화는 누구였을까요?
은진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10, 20대여도 너무 철딱서니가 없고 영악하다. 더 불행하게 하는 인물
(번외)
나무
스팸, 보이스 피싱 아니었을까
그냥 찔러보고 걸리면 사기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그런 상황이었을 거 같다.
도치
그러기엔 너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아마 은진이가 누군가 벌인 일 아니었을까
들어보니 보이스 피싱도 맞을 것 같다. 명주의 불안감을 키우는 장치
이원
진천 할아버지 손자가 처음에 대신 연락해줘서 그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은진이가 찾아와서 이거 관 아니냐고 뼈 있는 말을 해서 은진이도 일리가 있다.
나무
관은 너무 관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ㅎㅎ
동배기
미스테리이기 때문에 전화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해석의 여지가 있도록 작가가 의도한 것 같다.
<4>
"한 여자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다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사회현상이라고 했던가. 명주는 어디선가 읽은 글귀를 떠올리며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처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이 글귀가 떠오르는 여러분의 위선을 고백해봅시다.
나무
나는 솔로 같이 안보면 되는데 보면서 욕하고 그리고 어떤 금기와 관련된 주제의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것
현실에서는 절대 발생하면 안되는 데 미디어에서 다루게 되면 솔직히 너무 재밌다.
그런 상황을 미화시키면 안되지만 헤어질 결심, 지금 읽고 있는 마담 보바리도 너무 재밌다.
동배기
남편 얘기를 꺼내자면 얌체 운전을 한다.
정말 이해가 안됐고 양아치 같은 놈이 이 사람이 었구나라고 비난했다.
근데 내가 운전을 하다보니 이럴 수 밖에 없구나 이해하게 됐다.
또 편법을 좋아해서 물건을 싸게 잘 산다. 그 방법에 대해 이렇게 까지 살아야하나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삶의 방식이 있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도치
가족들 빼고는 엄청 친절하다.
가족들이랑 있다가 전화를 받으면 엄청 친절하게 받아서 가족들이 놀란다.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고 더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진짜 중요한 건 가족인데 왜 이렇게 될까 생각을 하게 되지만 고쳐지진 않는다.
나무
뇌과학에서 본인을 인지하는 영역과 가족을 인지하는 영역이 동일화 된다고 한다.
가족을 나처럼 생각하게 되어 내 마음을 이해할거라 생각해서 그런다고 한다.
이원
네이트판 보는 것
욕하는 맛으로 보고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괜찮다라고 위로하는 게 위선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주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위로받는 거에 찔려한다. (진짜로 믿는 것도 아니면서 위로받는 것)
<5>
명주와 준성이 함께 관을 싣고 명주의 시골집으로 가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 소설은 해피엔딩일까요?
나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은진이가 어떻게서든 찾아올 것 같다.
그리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발목이 잡힐 것 같다.
준성과의 의견차이든 트러블이 생길 것 같다.
동배기, 이원
뭔가 명주와 준성과의 로맨스가 있을 것 같았다.
동배기
둘이 인간적인 연민으로 엮이게 될 것 같다.
그렇지만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다. 실종신고를 하면 수사를 시작할텐데 그렇게 되면 좋게 끝날 순 없다. 하지만 둘은 잘 이어지길 바란다.
이원
해피는 아니라고 느꼈고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다.
마지막에 운수 좋은 날이다. 라는 게 여운이 남는다. 결국에는 열심히 살았든 발버둥치고 했던 사람들이 불행하게 끝났고
일부러 열린 결말이지만 그런식으로 암시를 줘서 이게 더 잘못됐다고 메세지를 던지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만약에 결말이 이어진다면 뉴스에 부정 수급하던 50대, 20대 사람들이 잡혔다라는 기사 뜨는걸로 엔딩이 나오지 않았을까.
도치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보는게 어찌 됐든 이 사람들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 도피밖엔 없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촐하게 시작한 3월 지정도서모임이었지만
꼬꼬무가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기에 다 적지 못했지만
제가 요즘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많은 사람들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생각의 무게를 덜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다들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리구
자유독서모임때 봬용~~~~!!
첫댓글 이번 모임은 책 내용뿐만 아니라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지정도서도 넘 재밌었고, 책만큼이나 회원님들과의 모임 중 나누는 이야기들이 점점 소중해지네요😁 도치님 고생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