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동화사랑>에서 펴낸 동화책
<전북동화사랑>은
2013년 3월25일, 어린이들에게 좋은 동화를 선물하고
동화의 저변확대를 위해 6명의 작가가 모여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매월 정기모임과 임시 모임을 통해
회원들의 작품을 합평하고 완성도를 높여서 출간을 돕고 있습니다.
2016년 새해 모임 때,
어린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새겨야 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워주자는 취지로
10여개의 주제를 놓고 그 중에 각자 쓰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였습니다.
* 이 책은 전주문화관광재단으로부터 창작기금을 받아 출간하였습니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115 세종출판벤처타운 201호
전화 031)955-1817(편집부) 031)955-1816(관리부) 팩스 031)955-1819
전자우편 treefrog2003@hanmail.net 네이버블로그 청개구리출판사
김자연, 박예분, 장은영, 박월선, 서성자, 박서진 지음 / 서숙희 그림
판형 크라운판(173*225) 쪽수 116쪽 값 10,000원
출간일 2016년 12월 31일 ISBN 978-89-97335-86-2 (74810)
대상 초등학교 저학년 (2학년 이상)
:: 책 소개 ::
『내 멋대로 부대찌개』는 전북동화사랑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화작가들이 모여 함께 펴낸 동화집이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여섯 가지 ‘가치’를 주제로 여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협동, 사랑, 용기, 우정, 나눔, 존중>의 가치를 재미있게 동화에 담아냄으로써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지녀야 할 인성을 어린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다.
:: 출판사 서평 ::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섯 가지 빛깔의 가치동화들
『내 멋대로 부대찌개』는 전북동화사랑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화작가들이 모여 함께 펴낸 동화집이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여섯 가지 ‘가치’를 주제로 여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최근 교육·문화계에서는 어린이들이 지녀야 할 인성을 강조하고 있고, 글로벌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인성교육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 동화집에서 다루고 있는 ‘가치’도 어린이들의 인성 육성을 위한 덕목과 다를 바 없다. <협동, 사랑, 용기, 우정, 나눔, 존중>의 가치를 재미있게 동화에 담아냄으로써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지를 어린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인성교육이고, 어린이들의 마음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동화의 몫이라 하겠다.
첫 번째 작품인 「개미집 지키기」는 힘이 센 장수풍뎅이에게 시달리던 개미들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장수풍뎅이를 물리치는 일화를 통해 협동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겁을 내고 물러앉아 뒤에서 불평만 해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비록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라도 여럿이 함께 하면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집 없는 달팽이」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가치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녹여 버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사랑의 품은 넓고도 커서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이고 동물이나 곤충처럼 생명을 지닌 자연물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도 사랑이다. 보미네 가족이 집 없는 달팽이 가족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모습을 통해 나 아닌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표제작 「내 멋대로 부대찌개」는 용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꺼내기 힘들어서 말 없는 아이로 통하는 민채가 자신의 결점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다. 수줍어하는 성격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불안감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또 주위에 그런 친구를 둔 어린이도 느낄 점이 있다. 그런 친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응원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별을 닮았다」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얼굴에 흉터가 생긴 아이 이야기다. 그 흉터를 감추려 비비크림을 엄청 바르다 보니 비비공주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될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마음이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친구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씻게 된다. 우정이 지닌 힘이라 할 수 있다.
「천사, 인터뷰하기」는 나눔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 내 것을 쪼개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은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구두쇠처럼 절약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애써 모은 돈을 남모르게 기부해 온 기부천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나눔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다. 나만 잘 입고 잘살기보다 더불어 같이 잘사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햇살 나비」에는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지체장애가 있어 방안에서만 지내는 호진이를 찾아와 함께 놀아 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은호와 기원이를 통해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런 마음이 세상에 가득할 때 세상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충만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단순명료하게 보여주는 동화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 준 적이 있는지, 몸이 아파 누워 있는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해 본 적이 있는지 이 동화는 묻고 있다. 친구를 배려하는 작은 정성과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따듯한 햇살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 동화집에 실린 여섯 편의 동화는 각기 다른 주제로 어린이들이 소중히 간직해야 할 ‘가치’를 들려주고 있다. 이 여섯 편의 동화처럼 어린이들이 맑고 따뜻한 인성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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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속으로 ::
보미 아빠가 큰 손가락으로 막내 달팽이를 잡으려고 했다. 흠칫 놀란 막내 달팽이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 순간 엄마 달팽이가 온몸으로 막았다.
“안 돼요!”
엄마 달팽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 달팽이는 얼른 어린 달팽이들을 감싸 안았다.
“세상에나! 어미가 새끼들을 감싸는 것 좀 봐요!”
보미 엄마의 말에 보미 아빠가 맞장구쳤다.
“그러게.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미가 자식 챙기는 건 똑 같네.”
하지만 보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어린 달팽이들을 통 속에 집어넣었다. 엄마 달팽이까지 모두 작은 플라스틱 통에 갇혔다.
(43쪽. 박예분 동화 '집 없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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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말도 안 돼. 저게 된장찌개지 무슨 부대찌개야?”
다른 조 아이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이건 된장찌개예요. 하지만 저는 부대찌개라고 말할래요. 요리를 정하고 준비하면서 까칠했던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어 준 대단한 찌개, 그래서 우리 조가 만든 요리 이름은 부대찌개입니다.”
내 발표가 끝나자 우리 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규는 휘파람 소리를 짜내느라 입술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이제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62쪽, 장은영 동화 '내 멋대로 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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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은호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아얏!”
손목을 잡힌 은호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게 아니에요. 우리는 호진이에게 나비를 보여 주려고 그러는 거예요.”
기원이가 거울로 햇빛을 모아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자 방안에 들어간 빛들은 동그랗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호도 눈물을 훔치며 거울을 들었다. 반짝반짝 날아 들어간 빛은 마치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나, 나비다아!”
호진이가 소리쳤다.
(111쪽, 박서진 동화 '햇살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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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
사람은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이 건강해야 예쁘게 살 수 있지요.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소중한 영양소가 무얼까요? 가치입니다. 협동, 나눔, 배려, 존중, 용기, 사랑, 우정 등 어린이들의 마음 밭에 심어 주고 싶은 가치는 많아요. 가치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 꼭 필요한 소금과 빛이 될 거예요. 여기 여섯 명의 동화작가들이 어린이의 마음 밭에 꼭 심어 주고 싶은 가치를 선물합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마음속 텃밭에 가치의 씨앗을 심고 잎을 피우다 보면 긍정적인 생각이 무럭무럭 자랄 거예요. 그러면 마음도 넓어지겠지요. 마음 밭에 가치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사람은 멋진 사람이에요. 여러분도 친구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용서하고, 같이 나누는 마음이 따뜻한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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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
이 동화집을 지은 작가 선생님들
김자연1985년 『아동문학평론』 동화 당선,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됐다. 전북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을 받았으며, 동화집 『항아리의 노래』 외 2권, 동시집 『감기 걸린 하늘』, 그림책 『개똥할멈과 고루고루밥』을 냈다.
박예분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아동문예문학상, 전북아동문학상을 받았다. 동시집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 『엄마의 지갑에는』, 『안녕, 햄스터』, 동화집 『이야기 할머니』, 그림책『피아골 아기고래』 등이 있다.
장은영2009년 「걸치기 할아버지」로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통일동화공모전에서 수상했다. 동화 『마음을 배달하는 아이』가 있다.
박월선2007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 전북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동화 『딸꾹질 멈추게 해줘』, 『닥나무 숲의 비밀』 등이 있다.
서성자200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장편동화 『봉홧불을 올려라』가 있다.
박서진200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2012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 동화 『세쌍둥이 또엄마』, 『남다른은 남달라』, 『건수동생 강건미』 등이 있다.
그린이_서숙희
계원조형예술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지금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치즈는 그냥 쥐가 아니야』 『빨간모자』 『비밀편지』 『설문대할망』 『거인의 정원』 『버스 탄 꽃게』 『안녕, 햄스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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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1119651
전북도민일보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9577
새전북신문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39157
[출처] 작가 6인이 쓴 동화책 - 내 멋대로 부대찌개 (박예분/ 집 없는 달팽이)|작성자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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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달팽이 / 아동문학가 박예분
어제는 겨울비가 기와지붕을 적시더니, 오늘은 칼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바람은 온 집안을 기웃거리며 으르렁댔다. 창문이 마구 흔들리고 커다란 나뭇가지가 휘청거렸다. 장독대도 꽁꽁 얼어붙었다. 바람은 뱀처럼 허름한 욕실 귀퉁이를 날름거렸다. 찬 기운이 욕실 가득 스몄다.
욕실 천장에 사는 어린 달팽이들이 몸을 잔뜩 웅크렸다. 엄마 달팽이가 더듬이를 세워 바람을 쫓았지만 소용없었다. 한숨이 절로 났다. 엄마 달팽이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후유, 이러다간 꼼짝 없이 모두 얼어 죽겠네.”
엄마 달팽이의 한숨 소리가 욕실 천장 안을 맴돌았다. 어린 달팽이들은 작은 눈을 힘없이 끔벅거렸다.
“엄마, 너무 추워요.”
“배고파 죽겠어요!”
막내 달팽이가 칭얼거리자 엄마 달팽이가 몸을 길게 늘였다. 그리곤 막내 달팽이를 품에 꼭 안았다. 막내는 곧 스르르 잠이 들었다.
“너희들도 이리 가까이오렴.”
어린 달팽이들이 온 힘을 다해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달팽이의 품은 아직 따뜻했다. 춥고 배고프고 무섭다며 징징거리던 어린 달팽이들도 모두 잠이 들었다.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의 미끈한 등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평생 집 없이 살아가야 하는 민달팽이의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엄마 달팽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린 달팽이들의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 엄마 달팽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린 달팽이들을 다시 한 번 힘껏 끌어안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엄마 달팽이는 이 집 욕실 천장으로 이사를 왔던 때의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이 늘 안쓰러웠다.
‘번듯한 집을 한 채씩 짊어지고 나왔더라면…….’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에게 세상에서 최고로 아늑한 집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안전한 집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기 때문이다.
마땅한 집을 찾느라 산동네를 돌아다니다 일주일 만에 썩 괜찮은 집을 발견했다. 그곳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아랫집이었다. 엄마 달팽이는 작은 화단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 밑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 좋은 집이었다.
“아, 이젠 걱정 없다!”
엄마 달팽이는 생각할수록 흐뭇했다. 그 집에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화단 한쪽에 채소를 정성껏 가꾸었다. 상추, 쑥갓, 호박 이파리까지 초록색 이파리가 너울거렸다. 달팽이들은 먹을거리가 풍성해서 더없이 좋았다. 어린 달팽이들은 연한 상추 잎을 맛있게 갉아먹으며 꼼지락 꼼지락 자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며칠 뒤 괴물 같은 포크레인이 쳐들어왔다. 포크레인은 순식간에 낡은 집을 허물어버렸다. 달팽이들이 사는 화단까지 인정사정없이 파헤쳐졌다.
“엄마, 무서워요!”
“흑흑, 우린 어떡해요?”
간신히 몸을 피한 어린 달팽이들이 겁에 질려 울어댔다. 엄마 달팽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산동네에 남아 있는 집이라곤 보미네 집 딱 한 채 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곧 겨울이다. 다른 달팽이들처럼 돌멩이 밑이나 마른 나뭇잎에 기대어 살 수 없었다. 더구나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구 근처에 몸을 부릴 수도 없었다.
“얘들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린 달팽이들은 엄마의 따뜻한 말에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 달팽이는 그렇게 어린 달팽이들을 데리고 보미네 집으로 이사를 왔다. 추운겨울을 대비해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낡은 보미네 집은 흙벽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달팽이들이 머리만 들이밀면 어디든지 통과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특히 엄마 달팽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욕실이었다.
“바로 이곳이야. 사람들 눈에 띠지도 않고 좋겠어.”
달팽이들은 보미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살금살금 벽을 타고 욕실 천장 안으로 기어올랐다. 엄마달팽이가 긴 더듬이를 세우며 어린 달팽이들을 둘러보았다.
‘무사히 다 올라왔구나.’
엄마 달팽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어린 달팽이들은 따뜻한 욕실 천장에서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보미네 식구들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따뜻한 습기가 천정까지 스며들었다. 달팽이들은 기분이 참 좋았다. 몸이 촉촉해지고 탄력까지 생겼다. 특히 보미가 쓰는 비누는 꽃향기가 났다. 어느 땐 과일향기처럼 달콤하기도 했다. 달팽이들은 그렇게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긴 겨울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다. 기와지붕에 쌓인 흙먼지를 먹고 사는 것도 좋았다. 다만 똥이 검은색이라 약간 못마땅하긴 했다. 특히 천장 가장자리에 난 허술한 구멍은 어린 달팽이들의 호기심을 한층 부추겼다. 그래서 보미네 식구들이 잠들고 나면 달팽이들은 욕실로 기어 나와서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미엄마한테 들키고 말았다.
“이건 달팽이 똥이잖아?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욕실 청소를 하던 보미 엄마가 하얀 타일 벽에 붙어 있는 달팽이의 검은 똥을 발견한 것이다. 보미 엄마는 한참 동안 욕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엄마 달팽이는 순간 긴장을 했다. 어린 달팽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키득거리며 장난을 했다.
“쉿! 조용히 해.”
엄마 달팽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달팽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때 막내달팽이가 보미 엄마의 얼굴을 보려고 자꾸만 꿈틀거렸다.
“안 돼, 가만히 있어!”
엄마 달팽이가 막내 달팽이의 등을 살짝 눌렀다. 다행히 보미 엄마가 천장 안에 숨어 있던 어린 달팽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보미 엄마가 욕실 밖으로 나갔다.
“후유, 들키는 줄 알고 혼났네.”
엄마달팽이가 숨을 몰아쉬자 어린 달팽이들도 소리 없이 숨을 내쉬었다.
“얘들아, 앞으론 밤에 욕실 여행하는 걸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하얀 타일 벽에 함부로 똥을 싸면 안 되겠다. 알았지?”
어린 달팽이들이 스스로 조심해야겠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들키는 날엔 정말 위험할지도 몰라.”
엄마달팽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린 달팽이들은 그날부터 타일 벽에 똥을 싸지 않았다. 배가 슬슬 아플 땐 아예 욕실여행을 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보미네 식구들이 모두 잠들었다. 그 사이에 어린 달팽이들이 천장에서 욕실 안으로 하나 둘씩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욕실 여행은 최고야!”
어린 달팽이들은 신이 났다. 보미가 쓰던 비누에서 꽃향기가 났다. 보미의 향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욕실이 방에 붙어 있어서 더욱 따뜻했다. 겨우내 보일러를 틀어서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집은 세상에 없을 거야.”
어린 달팽이들은 욕조에도 들어가 보고, 변기 커버에도 앉아보고, 보미가 쓰는 칫솔 손잡이도 살짝 만져보고, 거울에 자기들의 모습을 비춰보기도 하고, 샤워꼭지에 붙어서 보미처럼 샤워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 올라가자!”
엄마 달팽이의 신호에 어린 달팽이들이 천장 안으로 슬슬 기어 들어갔다. 밤엔 이렇게 신나는 욕실여행을 하고 낮에는 천장 안에서 실컷 잠을 자고 놀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보미네 가족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꾸렸다.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설맞이를 하고 올 거라고 했다.
“보미야, 네 한복은 챙겼니?”
“여기 챙겨 놨어요.”
보미가 세뱃돈 받을 복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알았다, 알았어! 하하.”
보미 엄마와 아빠가 서로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곧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와 보미네 가족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다. 집안에 점점 따뜻한 기운이 사라졌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서 욕실까지 찬 기운이 올라왔다.
보미네 가족이 시골에 간지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달팽이의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어린 달팽이들이 모두 얼어 죽을지도 몰라. 어떡하지.’
엄마 달팽이는 잠든 어린 달팽이들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린 달팽이들은 긴 겨울잠에 빠진 듯 꿈적도 안했다.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을 감싸 안으려고 몸을 더 길게 늘였다. 하지만 엄마 달팽이의 몸도 점점 굳어갔다.
‘흑흑, 제발 도와주세요!’
엄마 달팽이가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개미 기어가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았다. 엄마 달팽이는 자꾸만 눈이 감기는 걸 참고 또 참았다. 자고 있는 어린 달팽이들의 모습이 점점 흐릿하게 보였다. 그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보미네 가족이 돌아왔다. 엄마달팽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딸깍, 욕실 문이 열렸다.
“솨아~솨아아~”
아저씨가 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갔다. 이어서 아주머니가 보미를 데리고 들어왔다.
“와, 꽃향기다. 보미가 돌아왔어!”
어린 달팽이들이 눈을 번쩍 떴다.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서 김이 모락모락 천장까지 피어올랐다. 천장 안까지 따스한 공기가 전해졌다. 어린 달팽이들이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풀었다. 달콤한 과일 향기가 감돌았다.
“흠흠, 냄새 좋다!”
엄마 달팽이는 그제야 큰 숨을 내쉬었다. 기운을 차린 어린 달팽이들이 더듬이를 세우기 시작했다. 달팽이들의 몸이 다시 촉촉해졌다. 어린 달팽이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보미네 식구들은 피곤했는지 일찍 잠들었다. 몸이 촉촉해진 어린 달팽이들이 오랜만에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다.
“엄마, 우리 이제 밖으로 나가도 돼요?”
보미네 식구들이 꿈나라 여행을 떠났으니 어린 달팽이들도 오랜만에 신나는 욕실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엄마 달팽이가 먼저 나가서 신호를 보냈다.
“얘들아, 어서 나와라.”
첫째 달팽이의 뒤를 따라서 어린 달팽이들이 졸졸졸 기어 나왔다. 어린 달팽이들이 하얀 타일 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미끄럼을 타며 놀았다. 한 가지 위험한 것은 절대로 사람들 눈에 띠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얘들아, 그만 내려가! 멀리 가면 되돌아오지 못해.”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어린 달팽이들은 욕조 안을 기웃거렸다. 욕실은 어린 달팽이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때 욕실 문이 딸깍 열렸다. 보미가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꺄아악~ 엄마, 엄마!”
보미가 놀라서 소리치자 보미의 엄마 아빠가 달려 나왔다. 보미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달팽이는 깜짝 놀랐다. 어린 달팽이들도 놀라서 몸이 작은 돌멩이처럼 굳었다. 보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린 달팽이들을 찬찬히 살폈다.
“아빠,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잡아줘요!”
보미가 거실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후다닥 가져왔다. 보미 아빠가 막내달팽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귀엽게 생겼네!”
보미 아빠가 큰 손가락으로 막내 달팽이를 잡으려고 했다. 흠칫 놀란 막내 달팽이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 순간 엄마 달팽이가 온 몸으로 막았다.
“안 돼요!”
엄마 달팽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 달팽이는 얼른 어린 달팽이들을 감싸 안았다.
“세상에나! 어미가 새끼들을 감싸는 것 좀 봐요!”
보미 엄마의 말에 보미 아빠가 맞장구쳤다.
“그러게.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미가 자식 챙기는 건 똑 같네.”
하지만 보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어린 달팽이들을 통 속에 집어넣었다. 엄마 달팽이까지 모두 작은 플라스틱 통에 갇혔다. 달팽이들은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벌벌 떨었다. 엄마 달팽이가 몸을 길게 늘여 어린 달팽이들을 감쌌다. 보미가 플라스틱 통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보미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손짓했다.
“이리 가져와!”
보미 엄마 옆에는 더 커다랗고 네모난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거기엔 이미 다른 달팽이들이 갇혀 있었다.
"여보, 어제 시골에서 가져 온 배춧잎을 더 깔아 주어야겠어요.”
“그러게, 식구가 많이 늘었네.”
보미 아빠가 커다란 플라스틱 통 바닥에 배춧잎을 깔았다. 그리고 보미가 욕실에서 잡아 온 달팽이들을 큰 통에 넣었다. 달팽이들은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얘들아, 봄이 올 때까지만 여기서 사이좋게 살아!”
보미가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봄에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데려다 줄게. 거긴 상추밭도 있고 배추밭도 있어.”
엄마 달팽이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린 달팽이들은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상추와 배추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린 달팽이들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박예분 약력
전북대학교에서 아동학을, 우석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동시‘솟대’가 당선(2004년)되었고, 아동문예문학상(2003년), 전북아동문학상(2008년)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창작기금 및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엄마의 지갑에는』,『안녕, 햄스터』 동화집 『이야기 할머니』 역사논픽션 『뿔난 바다』 그림책 『피아골 아기고래』외 다수와 글쓰기교재『글 잘 쓰는 반딧불이』시리즈 등이 있다.
첫댓글 집없는 서러움 엄마달팽이의 맘을 알아주는 또하나의 삶의 희망을 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