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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래
칠금(漆琴)·금능동(金陵洞)
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읍내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31년 읍제실시에 의하여 칠금동 금능동으로 명칭하다가 1962년 칠금·금능동으로 편제되었음. 달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한 평야지역으로 근교농업이 발달되어 시설채소단지를 형성 충주시 뿐만 아니라 서울, 대전 등 대도시로 시설채소를 공급하고 있으며 1990년대 대규모 택지개발로 도심화되어가고 있음. 1997년 시청이 옮겨오고 인근에 상권이 형성되는 등 충주의 중심지로 변모되어가고 있음.
칠금동(漆琴洞)
▣ 칠금-동(漆琴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대리(琴臺里), 신촌리(新村里), 칠지동(漆枝洞), 능암동(陵岩洞), 봉계동(鳳溪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칠지와 금대의 이름을 따서 칠금리라 해서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
●개내-모퉁이【들】새말 뒤에 있는 들. 근처에 개울이 있음.
●그란-이【내】새말 앞에 있는 내.
●금-대(琴臺)【마을】옻갓 서쪽에 있는 마을. 탄금대가 있음.
●금제-교(金堤橋)【다리】→ 새말다리.
●낙수당-거리【늪】탄금대 앞 개울에 있는 늪. 낚시터가 됨.
●대문-산(大門山) [견문산]【산】금대 북쪽에 있는 산. 반송산(盤松山)의 줄기로 남한강이 견문산으로 흘러 여름 장마 때면 달천평야가 물에 잠기어 농사에 피해가 크므로, 김생(金生)이 이를 근심하여 하룻밤이 도술을 부려 반송산의 중허리를 끊어 남한강 물을 견문산 북쪽으로 흐르게 하고, 견문산 서쪽에서 달천강과 한강 상류와 합류하게 만들었다 함. 속설에 의하면 개벽 때 달천강 상류인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개 모양의 산이 흘러 와서 들어누었다 하여 견문산이라 하며, 그 후 잘못 읽어 지금은 흔히 대문산이라 함.
●동산-너메【들】탄금대 뒤 동산 너머에 있는 들.
●똥골-모텡이【모롱이】탄금대 북쪽 강가에 있는 벼랑 모퉁이. 골짜기가 으슥함.
●멍에-배이【논】옻갓 남쪽 앞에 있는 논. 멍에 모양으로 굽었음.
●물못-거리【길】중간모텡이에 있는 길. 지대가 낮아서 장마 때면 마을의 물이 모임.
●물방통-거리【터】새말에 있는 터. 물레방아가 있었음.
●밭-가운데【마을】옻갓에 딸린 마을. 전에 밭 가운데다 마을을 이루었음.
●새-말 [신촌]【마을】옻갓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 ●새말-다리 [금제교]【다리】새말에 있는 다리. 금릉동의 금제에서 흘러오는 내에 놓임.
●새봇-들【들】금제교 좌우에 있는 들.
●서낭-댕이【길】아래모퉁이에 있는 길. 서낭당이 있음.
●섬-들【마을】옻갓 북쪽 내 건너에 있는 마을.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제방축조후 잔디구장건설등으로 옻갓과 연결되었음.
●세월-교 [회다리]【다리】새말과 탄금대 중간 지점에 있는 양회 다리로 잔디구장과 도로건설시 그대로 매몰되었다함.
●소시랑-배미【논】옻갓 앞에 있는 논. 지형이 쇠시랑처럼 생겼다 함.
●아래-모텡이【마을】옻갓 아래, 모퉁이에 있는 마을.
●열두-대 [십이대]【바위】탄금대 북쪽 절벽에 딸린 바위.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장군이 왜병을 만나 격전을 벌였을 때,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100여 척이나 되는 이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함.
●옻-갓 [漆枝]【마을】칠금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옛날 근처에 옻나무가 무성하였다 함.
●옻갓-늪 [칠지소]【늪】옻갓에 있는 늪.
●웃-모텡이【마을】옻갓 위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
●육각-정(六角亭) [천운정]【정】금대 뒷동산에 있는 육각의 정자. 조선조 고종(高宗) 광무(光武) 7년(1903)에 충청북도 관찰사 김석규(金錫圭)가 그 할아버지가 충주목사로 있을 때, 현 교육청 터에 있던 상련당(上蓮塘) 가운데다 석가산(石假山)을 모으고 모정(茅亭) 네 칸 반을 짓고 삼현육각의 풍악을 벌이면서 즐겁게 놀았으므로, 그 뜻을 이어받아 육각정을 신축하고 정자 이름을 '밝은 하늘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돈다(天光雲影共徘徊)'는 뜻에서 천운정(天雲亭)이라 하였다 함. 그 후 광무 10년(1906)에 현 충주시교육청 자리에 공립 보통학교를 건축한 후,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서 연당을 메울 때, 현판을 일인들이 훔쳐 가고, 천운정만은 사직산으로 옮겨 임시 사정(射亭)으로 쓰다가, 1955년에 읍장 박승두(朴勝斗)가 탄금대로 옮겨 세우고 그후 2충 정자로 새로 세웠음.
●정자-모텡이【모롱이】영호정이 있는 모롱이.
●조개섬-들【들】얹힌바우 아래에 있는 들. 전에 조개가 많았다 함.
●중간-모텡이【모롱이】옻갓 중간에 있는 마을.
●지덕-너메【터】대문사 앞에 있는 터.
●지등-개【내】탄금대 동쪽에 있는 개울. 빨래터가 있음.
●참나무-거리【터】아래모텡이에 있는 터. 전에 참나무가 서 있었음.
●충혼-탑(忠魂塔)【탑】탄금대 위에 있는 충혼탑. 1955년 10월에 대한 상의군인회 충북지부 충주분회와 대한민국 제대 장병 보도회에서 해방 이후에 전몰한 장병과 경찰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세우고, 해마다 현충일에 제사를 지냄.
●칠-지(漆枝)【마을】→옻갓.
●칠지-소(漆枝沼)【소】→옻갓늪.
●탄금-대(彈琴臺)【고적】대문산 위에 있는 대.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于勒) 악사가 신라에 귀화하여 이곳에서 신라의 악사 법지(法知), 계고(階古), 만덕(萬德)의 세 제자에게 가야금을 가르쳤으며, 늘 대문산의 풍취를 상미하고 산상 대석에 앉아서 가야금을 탔다 함.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순변사 신립(申砬)장군이 휘하에 8,000여 병사를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참패하자, 천추의 한을 품고 장강백파에 투신, 장결한 고전장의 유적이기도 함. 석기 시대의 토기, 고리돌(環石), 숫돌 들이 나왔음. 현재 충주시의 명승지로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음.
●합수-나루터[합수진, 합수머리]【나루터】탄금대 서쪽 밑에 있는 나루터. 북쪽에서 흘러오는 남한강 본류와 서쪽에서 흘러오는 달천(達川)이 서로 합수하는 목이 됨.
●합수-머리【나루터】→ 합수나루.
●회다리-목【목】회다리 근처에 있는 목. 탄금대(彈琴臺) 옻갓 서쪽 대문산(大門山) 기슭으로 늘어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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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능동(金陵洞)
▣ 금릉-동(金陵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北邊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제(金堤), 호암(虎岩)과 칠금동(漆琴洞), 연원동(連原洞), 능암동(陵岩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제와 능암의 이름을 따서 금릉동이라 해서 충주시에 편입됨.
●광명-산(光明山.팽구리산)【산】능암 동편으로 솟은 산. 이곳 안동권씨의 종산임.
●금릉-천(金陵川)【천】연수동에서 칠금동 쪽으로 흐르는 냇물.
●금제(金堤)【마을】금제동 동남쪽에 있는 원 마을. 예로부터 근처에 쇠가 많이 나왔다 함.
●금제-지(金堤池)【저수지】→ 응골못.
●낙수당-거리【늪】세월 서남방으로 있는 늪. 낚시터였음.
●도둑-골【골짜기】부채고개 서편 KBS 중계소 뒷편을 말하는데 옛날 장사꾼의 통로로서 도둑이 많았던 곳으로 택지개발로 현재 시청앞 주택가가 됨.
●둔시기-들【들】뒷거리 남쪽 앞에 있는 들. 둔덕에 있음.
●뒷-거리 [후거리]【마을】능암 뒤쪽에 있는 마을.
●뒷거리-구렁【들】뒷거리 북쪽에 있는 마을.
●뒷-골【골짜기】광명산 북쪽이며 능바우 동편의 길가 골짜기.
●멍애-배미【들】옻갓 남쪽에 있는 논. 멍애모양으로 굽었음.
●물못-거리【길】중간모텡이에 있는 길. 지대가 낮아서 장마 때면 마을의 물이 모임.
●물방탕-거리【터】새말 동남쪽에 위치한 옛날 물방아간터임.
●물-언덕【둑】중말 서쪽 물가에 있는 언덕.
●볏-골【골짜기】응골못 동쪽으로 들어간 골짜기.
●복성군-사당(福成君祠堂) [별묘]【사당】능바우에 있는 사당. 만휴당(晩休堂) 권언(權 )을 모셨는데, 그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증손으로 무략가이며, 과거에서 무과의 장원으로 뽑힘. 세조(世祖)를 도와서 단종(端宗)을 물리치는데 삼등공신이 되어 복성군(福成君)에 봉해지고, 양정(襄靖)이란 시호를 받았음.
●새모골-고개【고개】뒷거리에서 목행동으로 넘어 다니는 고개로 이 골짜기에서 항상 샘물이 나왔으므로 샘물골이라 하였음.
●섬-들【들】웃늪 서쪽 건너편에 있는 들. 장마 때면 물이 양쪽으로 흘러 마치 섬처럼 됨.
●세미-골[새모골]【골짜기】뒷거리 동편의 긴 골짜기.
●쇠시랑-배미【들】금제교 동편 들가운에 있는 논. 쇠시랑처럼 생겼었는데 현재는 없어졌음.
●쇠지울[금제2구]【마을】뒷거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연애-골【골짜기】능암과 쇠지울 사이에 있는 골짜기.
●웃-늪【늪】능암 남쪽에 있는 늪. 칠금동의 옻갓늪 위쪽이 됨.
●응-골[금제1구]【마을】금제 서북쪽에 있는 마을. 산 밑 응달에 있음.
●응골-못 [금제지]【저수지】응골 동쪽에 있는 저수지.
●자래-바우[자라바우]【바위】웃늪에 있는 바위. 모양이 자라처럼 생겼으며, 근처에 자라가 많음.
●작살-고개【고개】광명산 동편 국도의 고개. 돌이 많이 깔였었다함.
●장-고개【고개】응골에서 목행리로 넘어 다니는 고개. 옛날에 목행리에서 이 길을 넘어 충주장을 봤음.
●잿-들【들】능암 앞에 있는 들.
●정저리-들【들】잿들 남쪽의 들. 전답을 지키느라 정절을 지켰다함.
●조개섬-들【들】금대마을 서편에 있는 들.
●중-말【마을】능암과 중퉁말 중간에 있는 마을.
●중통-말【마을】중말 서남쪽 금능리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
●참-샘【우물】광명산 줄기에 있는 찬 샘.
●참샘-모롱이【모롱이】광명산 북방 참샘이 있는 모롱이.
●철-다리【다리】쇠지울 옆에 있는 철교. 충주와 목행 사이에 놓임.
●청룡-부리【모롱이】물가산소의 좌측의 언덕. 옛날 정자가 있었으며 풍수설에 의해서 산소의 청룡을 이룬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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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동(連守洞)
▣ 연수-동(連守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원(連原), 동수동(東守洞)과 대가미리(大加味里), 칠지동(漆枝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원(連原)과 동수(東守)의 이름을 따서 연수리라 하고 읍내면에 편입되었으며, 1962년 연수동으로 편제되었음. 총면적은 5.08㎢로 충주시 전체면적의 0.5%를 차지하고 있으며, 택지개발로 인한 도시개발로 대단위 아파트단지 및 신흥상권을 형성하는 충주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동임.
●곳집-거리【마을】금곡(金谷)못과 금곡마을 중간에 위치한 마을.
●공-말【마을】동수 동편 좁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관-기(官基, 館基)【터】→ 연원도찰방관터.
●관-터【터】동수마을 중심부에 지금도 관가건물이 남아 있는데 연원도(連原道) 찰방관가였다고 함.
●귀미-실【들】동수 동쪽에 있는 들.
●귀미실-못【못】귀미실 들에 있는 못.
●그능-고개【고개】동수와 금곡 사이에 있는 고개. 동수에서 약 200m 지점임.
●금-곡(錦谷)[금고리]【마을】동편 동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쇠가 많이 났다 함.
●금골-못[금골저수지, 배나무실못]【저수지】배나무실에 있는 저수지.
●난절-골【골짜기】계명산의 절골 밑에 있는 골짜기.
●동-수(東守) [동수마루]【마을】방자고개 동쪽에 있는 큰 마을. 옛날 연원역의 찰방이 있었으며 동편을 지키는 망대가 있었다함.
●동수마루-못[동수저수지, 귀미실못]【저수지】동수마루와 귀미실 근처에 있는 저수지.
●동수-산(東守山)【산】동수 뒤쪽에 있는 산.
●동수-저수지(東守貯水池)【저수지】→ 동수마루못.
●동창-들【들】동편과 금곡 사이에 있는 들.
●동-편(東便)【마을】연수교 동북쪽에 있는 마을에서 동편을 말함.
●동편-다리 [동편교]【다리】동편 앞 연수천에 놓인 다리. 길이 10m, 너비 4m. 1966년 3월 5일에 준공함.
●두루-봉【산】금곡 뒤쪽에 있는 둥근 산. 산위에 서면 두루 보임.
●뒷못-골【산】동편 뒤쪽에 있는 산.
●마당참나무-터【터】연원에서 동수로 가는 등성이에 있는 터. 옛 병참 마당이어서 큰 참나무가 서 있었음. 옛날 옹기장수가 이 나무가지를 베다가 연료로 썼는데 갑자기 반신불수가 됐고, 그의 아들과 부인까지도 다리를 못쓰는 불구가 되어 그 나무를 신성시 하고 고사를 지냈다 함.
●막은대미-재 [막은현]【고개】연안에서 용탄리 확골로 넘어가는 고개. 예전에 충주와 강원도 지방을 넘나들던 길임. 조선조 때 죄인이 판결을 받고 이 고개만 넘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함.
●막은대미재-샘【샘】막은대미재 중턱 엄씨종중답(嚴氏宗中沓)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박샘이 하나 있는데 이 샘은 장마 때나 가물 때나 수량이 일정하며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얼지도 않음. 이상하게도 이 물을 마시고 간 사람은 재수가 없다는 소문이 나서 아무리 목이 말라도 절대 안마신다는 물임.
●방자-고개2【마을】방자고개 아래쪽에 있는 마을. ●방자-고개1【고개】현 충북금속공업사에서 연원으로 넘어가는 국도고개. 옛날 어느 원이 방자를 데리고 이 고개를 넘는데, 범이 방자를 물어갔다 함.
●배나무-실【마을】금곡 동남쪽에 있는 마을. 배나무가 많았음.
●배나무실-못【저수지】→ 금골못.
●뱀-골【골짜기】뱀골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뱀처럼 길고 굽었음.
●보뚝-기미【뚝】금곡 앞에 있는 뚝. 뚝이 높아서 마을이 가려짐.
●부채-고개【고개】연수교에서 서북쪽 약 300m 지점에 있는 고개. 전에 부채꽃이 많았다 함.
●산-너매【산】서편 서쪽 등성이 너머에 있는 마을.
●산지-당【바위】금곡 뒷산 중턱에 있는 바위. 정초에 액막이 제사를 지냄.
●산지당-골【골짜기】금곡 동편 뒷산. 중턱에 큰 바위가 있어서 정초에 액막이 제사를 지냈었음. 그 골짜기를 말함.
●삼-거리【마을】연수교 북쪽으로 있는 마을.
●삼-봉【산】산지당골과 희승골이 내려온 산봉우리.
●서-편(西便)【마을】연수교 동북으로 있는 마을에서 서편을 말함.
●서편-교[조산바께다리, 연수교]【다리】서편암 조산 근처의 연수천에 놓인 다리. 길이 12m, 너비 6m였던 것을 확장함.
●세집-담【마을】금곡교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
●싸리밭-재【산】계명산의 중허리. 싸리나무가 많았음.
●아랫-말【마을】동수 서편 길건너 마을.
●양짓-말【마을】금곡교 북쪽에 있는 큰 마을. 양짓쪽이 됨.
●여단-터【터】동수산에 있던 여단( 壇). 충주의 북방으로 이근영(李根榮) 소유의 밭에 있었는데 1년에 3회 무주신(無主神)을 제사지내던 곳.
●연수-교(連守橋)【다리】 서편교.
●연수-천(連守川)【내】계명산에서 연수동을 거쳐 탄금대 쪽으로 흐르는 내.
●연-원(連原)【마을】→ 연수동.
●연원도찰방관-터(連原道察訪館-) [관기, 관터]【터】→ 연원역.
●연원-역(連原驛)【터】연원에 있던 옛 역 터. 속역으로 단월(丹月), 인산(仁山), 흔원(欣原), 신풍(新豊), 안부(安富), 가흥(可興), 용안(用安), 황강(黃江), 수산(壽山), 장림(長林), 영천(靈泉), 오사(吾賜), 천남(泉南), 안음(安陰)의 14개 역이 있었음.
●작은민-재이【고개】금곡에서 용탄동 절골로 넘어가는 고개.
●장뜰-말랭이【마을】공말 남쪽 산마루의 마을. 나무꾼들이 장치기 하던 곳.
●장텃-골【마을】금곡 동쪽 계명산에 딸린 골짜기. 절이 있었음.
●재-개울【내】금곡 앞으로 흐르는 개울. 자갈이 많음.
●절-골【골짜기】계명산에 딸린 골짜기. 절이 있었음.
●조산-바께【마을】서편 앞에 있는 마을. 옛날 연원(連原)의 부녀자들이 바람이 잘 났는데 이는 풍수설로 보아 마을 앞이 허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서낭댕이부터 서편까지 조산(造山)을 했었는데 해방후 산을 헐어 밭을 만들었음.
●조산-터(造山-)【터】조산바께에 있는 터. 옛날에 조산(造山)이 있었는데, 해방 후 숲이 없어지고 지금은 밭이 됨.
●천두밭-머리【밭】금곡과 동편 사이에 있는 밭. 조가 천두씩 났다고 함.
●회-다리[연교교]【다리】교현동과 연수동 경계에 있는 국도다리. 양회로 놨다는 뜻.
●회다리목-삼거리【길】회다리 근처에 있는 삼거리.
●희승-골【골짜기】산지당골 남쪽으로 있는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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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행(牧杏)·용탄동(龍灘洞)
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읍내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31년 읍제실시에 의하여 목행동 용탄동으로 명칭하다가 1962년 목행·용탄동으로 편제되었음. 남한강변에 위치한 지역으로 충주비료공장이 위치하여 우리나라 공업화의 주춧돌이 되었으며 현재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공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제2공업단지는 입주가 한창임.
목행동(牧杏洞)
▣ 목행-동(牧杏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北邊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목수동(牧水洞), 행정리(杏亭里), 미력리(美力里), 기탄리(岐灘里) 일부를 병합하여 목수와 행정의 이름을 따서 목행리라하여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
●강참의-골(姜參議-)【골짜기】미륵리 동쪽 계명산 낙맥에 있는 골짜기. 강참의 묘가 있음.
●개매기-들【들】미륵이 앞산 너머 새모골 맨끝 마을 옆에 있는 들.
●닥밭굴-고개【터】충주비료공장 사택 자리에 있던 고개 터. 닥나무가 많았음.
●마루-뜰【들】새모골 맨 끝 마루에 있는 들.
●목-수(牧水)[목수울, 후문]【마을】목행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옛 충주목의 북쪽, 한강가가 됨. 현재 새한미디어 뒷문 바깥쪽이 됨.
●목수-나루터(牧水-)【나루터】목수 뒤에서 동량면 용교리 용대로 통하던 나루터. 지금은 없어졌음.
●목수-저수지(牧水貯水池)【저수지】목수 앞에 있는 저수지. 1948년에 만듦.
●목행-교(牧杏橋)【다리】목수와 동량면 용교리 운교 사이, 한강에 놓인 공굴 다리. 길이 100m, 너비 15m. 1960년에 준공함.
●목행-역(牧杏驛)【역】목수에 있는 기차역. 1957년 충주비료공장 시설 및 충북선 연장 계획에 따라 세움.
●미륵-리(彌勒里)[미륵이, 미력리]【마을】은행정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 미륵불이 있음.
●미륵이-도랑【내】미륵리 앞의 도랑. 찬샘골에서 발원하여 미륵리 앞을 지나 한강으로 들어감.
●보광-천【골짜기】미륵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북창-나루터[북창진]【나루터】행정에서 금가면 유송리와 문산리로 건너는 유명한 나루터. 옛날 금가쪽에 북창(北倉)이 있었다 하며 80년대 중반까지 나룻배를 운행하였다함.
●뻥이-여울【여울】개매기들 끝에 있는 강여울.
●산-우물【우물】서흥 앞 산에 있는 우물. 옛날에는 약물이었으나, 우물 위쪽에 묘를 쓴 뒤로는 약 기운이 없어졌다 함.
●새모골-고개【고개】새모골 뒤에 있는 고개.
●새모-골【마을】미륵리 앞산 너머에 있는 마을. 골이 세모꼴로 생겼음. 현재 두 가구가 살고 있음. ●서-흥(瑞興)【마을】현 새한미디어 동쪽 산에 위치한 마을. 6.25때 피난민이 움막을 짓고 와서 정착한 곳으로 난민촌이라 부르다가 1970년에 개칭키로 함.
●안-번던【번던】목수 앞에 있는 번던.
●어린개-고개【고개】서흥 뒤쪽에 있는 고개.
●은행정이(杏亭)【마을】목수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6.25때 없어짐.
●장군-소【터】충주비료공장 정문 앞에 있는 터. 옛날에 장군이 주둔했던 곳이라 함.
●죽장-골(竹杖-)【골짜기】행상바위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상제가 죽장을 짚고 엎드린 형국이라 함.
●중군-소【터】비료공장 안에 있는 터. 옛날에 인공적으로 산을 모아 중군이 주둔하였던 곳이라 함.
●진터-벌【터】충주비료공장 대지 안에 있던 옛 진 터.
●찬샘-골【골짜기】강참의골 너머에 있는 골짜기. 찬샘이 있음.
●충비-사택(忠肥舍宅)【주택】구 충주비료공장 동쪽 평산(平山)에 새로 이룬 사택(舍宅)마을. 비료공장 사원들이 살고 있었으며 현 새한미디어 사택으로 활용되고 있음.
●충주비료-공장【공장】목행리 남한강변에 옛 비행장 일부를 포함하여 대지 15만평의 터에 세운 국내 최초의 현대식 비료공장이었음. 처음이 1,200만달러로 미국의 메크로 하이드 카본회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가 그후 1,900만달러를 추가하여 1959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1973년에 제6비를 추가 설립하였고 명칭을 한국종합화학이라고 하였는데 한강수의 오염을 이유로 1983년에 휴동되었고 대체산업으로 새한미디어 공장이 설립되었음.
●충주-비행장(忠州飛行場)【비행장】충주 비료공장 앞에 있는 군사 비행자. 일정 말에 만든 것인데, 6.25때 미군이 고쳐 썼으며, 그후 국군이 사용하였다함.
●후-문(後門)【마을】→ 목수. 목수(목수울.후문) 새한미디어 뒷문 바깥쪽의 마을. 옛 충주목의 북쪽 물가가 되므로 목수(牧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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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탄동(龍灘洞)
▣ 용탄-동(龍灘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동(臼洞), 용동(龍洞), 사라리(沙羅里), 기탄리(岐灘里) 일부를 병합하여 용동과 기탄의 이름을 따서 용탄리라 해서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
●가리-여울1 [기탄]【마을】가리여울이 있는 마을. 충주공업단지조성으로 없어짐. ●가리-여울2 [기탄]【여울】용골 서북쪽에 있는 여울. 경사가 심하며, 여울 가운데에 ●바위가 있어서 물이 두 갈래로 흐름.
●둔지-벌 [둔지동]【마을】확골 동북쪽, 둔덕에 있는 마을.
●마루-들【들】새모골 맨 끝마루에 있는 들.
●막은데미-재【고개】확골에서 연수리로 넘어가는 고개.
●바깥-말(外村)【마을】확골 북쪽 너머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
●벌1[벌에]【마을】용골 서쪽 강변에 위치한 마을. 1972년 수해로 없어짐.
●벌2【섬】벌에 있는 섬. 장마 때면 양쪽으로 물이 흘러 섬처럼 고립됨. . ●뺑이-여루【우물】개미기들 끝에 있는 우물. 약수였다고 함.
●사래-실[사라동]【마을】절골 동북쪽에 있는 사래실 골짜기에 있는 마을.
●사래실-서낭댕이【당】사래실 동구에 있던 당. 현재는 마을 진입로 포장으로 없어짐.
●신담-벌【마을】벌에 딸린 마을. 신담벌이라는 벌판에 이룩되었음 지금은 폐동됨.
●아래-절골【마을】절골 골자기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
●양창-이[양촌]【마을】가리여울 동북쪽에 있는 마을 공업단지 조성으로 없어짐.
●양-촌【마을】→ 양창이.옹기-점【마을】가리여울에 딸린 마을. 전에 옹기점이 있었음.
●외-촌(外村)【마을】→ 배깥말.
●용-골【마을】→ 용곡.
●용-곡[용골, 용동]【마을】용탄리에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 용소(龍沼)에서 용이 등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음. 현재는 충주댐 진입로로 편입되어 절골입구로 옮겨감.
●용-늪[용소]【늪】용골 서쪽 끝에 있는 늪. 옛날 늪에서 용이 등천하였다 함.
●용대-나루터[龍灘津]【나루터】용탄동에서 북진(北津)을 거쳐 동량면 용대로 건너다니던 큰배 나루터.
●용-소【늪】→ 용늪.
●용탄-진(龍灘津)[용대나루]【나루터】용탄동에 있는 나루터. 북진(北津)을 거쳐 합수머리(合水津)로 가는데, 충주 비료 공장 근처 정류장이 있는 데는 북진의 하류로, 용대나루라 함.
●절-골[寺谷]【터】계명산 중턱에 용곡사(龍谷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법정사(法貞寺)가 있음.
●조돈-나루터【나루터】벌에서 동량면 조동으로 건너 다니는 나루터.
●종당-산(宗堂山)【산】용탄리 서편에 있는 산. 계명산의 낙맥으로 높이 295m임. 이 산에서 결이 고운 돌이 생산되어 비석재로 많이 쓰이고 있음.
●죽장-골【골짜기】행상바위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상여 아래쪽이니까 상주가 죽장을 짚어야 격이 맞으므로 부른 것으로 보임.
●준암-나루터(樽岩津)【나루터】용탄리에서 조동으로 건너 다니는 조동나루 아랫쪽에 위치한 나루터. 근처에 술통모양의 바위가 있음.
●참나무정-못 [참나무정저수지]【저수지】참나무정 뒤에 있는 저수지.
●철-다리[鐵橋]【교량】벌과 동량면 조동 사이에 놓인 철교. 1957년에 가교했고 복선공사로 1982년에 증선되었음.
●확-골【마을】둔지벌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확샘이라는 우물이 있음.
●가리-여울【여울】용골 서북쪽에 있는 가리여울로 인해서 마을이름이 되었음.
●확새-미【샘】확골 끝에 위치한 샘. 확처럼 파인 바위사이에서 물이 솟는 샘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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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宗民)·안림(安林)·목벌동(木伐洞)
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읍내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31년 읍제실시에 의하여 종민동 안림동으로 명칭하다가 1962년 종민·안림동으로 편제되었으며 1986년 행정구역조정(대통령령12007호)으로 살미면 목벌리가 목벌동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충주댐이 조성되어 많은 가구가 수몰되었으며 호수가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고 내수면어업 및 호수면을 활용한 서비스산업의 발달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임.
종민동(宗民洞)
▣ 종민-동(宗民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민종리(民宗里), 범동(凡洞), 종당(宗堂)의 이름을 따서 종민동이라 하여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
●누루꾸지-여울【여울】웃종댕이 앞강에 있던 여울. 수몰로 없어짐.
●떡갈-봉【산】계명산 남쪽 아래로 솟은 잣은 봉우리. 떡갈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정월 보름날 달이 봉우리 밑으로 뜨면 흉년이 들고 봉우리 위로 뜨면 풍년이 든다고 함.
●마릿-들【들】아랫말 앞에 있는 들. 현재 수몰됨.
●마즈막-재(心頂峴)[마스막재]【고개】안림동에서 종민동으로 넘어 다니는 고개. 옛날 남한강 뱃길을 따라 이송되던 죄수들이 이 고개만 넘으면 충주 숲거리 처형장으로 가게 되고 마즈막 길이라는 뜻이었다고 함.
●매봉재-골【골짜기】종인 새마을회관에서 서편으로 들어간 골짜기.
●멍석-마루【산】계명산의 한 봉우리. 옛날 천지개벽 때 멍석 하나 깔만큼 남았다 함.
●며느리-소【소】동량면 치마벼루 쪽으로 있는 깊은 소. 수몰됨.
●민-마루(民宗)【마을】종민동 가장 하단에 위치한다는 뜻으로 민종(民終)이라 하였음.
●민-종(民宗)【마을】→ 민마루.
●밍-개(武音)【마을】원터 밑에 있는 마을. 홍수 때면 물이 들어 몽개(밍개)가 덮였다는 뜻인데 1983년 충주댐의 담수로 없어짐.
●밤나무골-도랑【내】밤나무골에서 내려오는 도랑. 밤나무-골【골짜기】종댕이 매봉재골 서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밤나무가 많았음.
●범-동(凡洞)【마을】→ 봉골.
●봉-골[鳳洞]【마을】민마루 위쪽에 있는 마을. 옛날 범의 굴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
●봉화-뚝【터】계명산의 한 봉우리. 옛날 봉화를 오리던 곳. 일명 심정산봉수(心頂山烽燧)라고 함.
●상-종(上宗)【마을】→ 웃종댕이.
●새절-골【골짜기】계명산 새절봉 동남쪽으로 내려온 골짜기.
●새절-봉【산】계명산의 한 봉우리. 새로 지은 절이 있는 새절골이 있는 산이란 뜻.
●서낭-당이【터】→ 장승배기.
●쇠코-바우【바위】상종 서편 계명산록에 있는 바위. 모양이 쇠코처럼 생겼다함.
●싸리-봉【산】계명산의 한 봉우리. 싸리나무가 많았다 함.
●아랫-말【마을】민마루 동북쪽 아래에 있는 마을. ●아랫-종댕이【마을】종민동의 중심에 있는 마을. 종댕이 아래쪽이 됨.
●여우박골-도랑【내】원터 근처에 있는 진너매 골짜기에 흘러내린 도랑이 여울박골로 흘러 큰 도랑을 이룸. ●여우박-골【골짜기】하종 서편 계명산에 딸린 골짜기. 여우가 많았다 함.
●왕-골【골짜기】계명산 동북방 상종 남쪽으로 있는 큰 골짜기. ●왕서-들【산】계명산 동남쪽으로 있는 큰 바위너설.
●용골-소【소】범동 강변으로 있던 소. 옛날 용이 승천하였다고 함. 지금은 수몰됨.
●용-구멍【소】→ 용수구미.
●용수-구미 [용구멍]【소】텃골과 봉골 사이에 있는 소. 옛날에 용이 승천하였다 함. 지금은 충주댐으로 인해 수몰되었음.
●우암-재【고개】종민동과 안림동 사이에 있는 고개.
●웃-말【마을】민마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웃-종댕이 [상종]【마을】아랫종댕이 남쪽 위에 있는 마을.
●원-터(院垈)【마을】밍계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 구장기(具長耆)가 현감을 지냈으므로 고을원이 살았던 곳이라는 뜻임. 1983년에 충주댐으로 반이 수몰됨.
●원터-나루터【나루터】원터 앞에서 기동으로 건너 다니는 나루터. 수몰되었음.
●작은-낭박골【골짜기】원터 북쪽 가장골에서 서쪽으로 두 번째의 골짜기.
●작은-말림【산】남산의 한 봉우리. 큰말림 서쪽에 위치한 낮은 봉우리.
●작은-봉우뚝【산】큰봉우뚝 옆에 있는 작은 산.
●작은-서렁【너설】원터 서쪽 계명산 기슭에 위치한 바위너설.
●장승-배기[서낭당이]【터】범동 동쪽 앞에 있는 터. 옛날에 장승이 박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서낭당이 있음.
●잿-마당【고개】민마루 남쪽에 위치한 고개. 고갯마루가 편편함.
●잿-배기【고개】봉골 동쪽에 있는 고개.
●절-골【골짜기】하종 서쪽 산골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뜯어 옮겼다고 하며 이 골짜기를 절골이라고 함.
●종-댕이(宗堂)【마을】원터 서북쪽으로 있는 마을. 상종(上宗)과 하종(下宗)마을이 이에 소속됨. 이 마을에는 정선전씨(旌善全氏)들이 많이 세거하였으며 사당을 세웠었으므로 종당(宗堂)이라고 불렀음. 1983년에 일부 수몰됨.
●지네-골【골짜기】계명산 동쪽으로 있는 골짜기. 지네가 많다고 함.
●진-너메【골짜기】원터 근처에 있는 골짜기. 마을 너머에 있음.
●진너메-도랑【내】진너메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도랑. ●집너메-골【골짜기】원터마을 큰골 서편 마을 넘어에 있는 골짜기.
●치매베루-나루터【나루터】봉골에서 동량면으로 가는 나루터. 근처에 치마를 두른 것처럼 생긴 벼랑이 있음.
●큰말림-번던【산】계명산에 있는 버덩. 권정승이 부인의 묘를 쓴 후 산을 말렸다 함.
●큰-봉우뚝[심항산봉수, 심항산]【산】종민동에 있는 산. 마즈막재에서 좌측길을 따라 충주댐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봉우리. 조선조 때 심항산 봉수가 있어서 동쪽으로 청풍군 오현과 서쪽으로 주덕읍 대소원의 마산 봉수에 응하였음. 옆에 작은봉우뚝이 있음.
●큰봉화-뚝【산】심항산(心項山) 봉수를 말함.
●텃-골(基洞)【마을】하종(下宗) 서북쪽에 있는 마을. 1984년 9월에 일부 수몰됨.
●형제-바위【바위】아랫종댕이 동편 강가에 있는 바위. 두 개가 형제처럼 나란이 서있었으나 댐으로 수몰됨. ●활석-광(滑石鑛)【광】아랫종댕이와 텃골 사이에 있는 활석 광산.
●활석-광산【광】밍개(武音)와 지네실(木伐里) 사이에 위치하며 일신산업(주)가 직영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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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림동(安林洞)
▣ 안림-동(安林洞)【동】본래 충주군 북변면(北邊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심리(安心里), 범의동(凡衣洞), 어림리(御林里), 교동(校洞) 일부를 병합하여 안심과 어림의 이름을 따서 안림리라 해서 읍내면(충주시)에 편입됨.
●갈바탕-번던【버덩】계명산에 있는 버덩. 옛날에 농초인 갈을 뜯던 곳이라 함.
●계명-산(鷄鳴山)[계족산(鷄足山), 심항산(心項山) 오동산(梧桐山), 동악산(東岳山), 객망산(客望山)]【산】충주시 동북방 안림동(安林洞) 용탄동(龍灘洞) 종민동(宗民洞)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775m. 이 산명의 유래는 백제때 마고성주(麻古城主)의 왕족이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지금의 官衙公園)을 왕복하던 중 길바닥에 지네(百足蟲)가 우글거려 피해를 입자 관내에 지네 퇴치령을 내려 잡았으나 피해가 날로 더해가므로 성주가 산신에게 기도를 하니 하루는 꿈에 용두백발(龍頭白髮)의 한 노인이 나타나 '닭을 기르면 없어진다' 하므로 닭을 많이 방사했더니 과연 없어졌다고 함. 그후 다시 지네가 못 나오도록 심정산(心頂山)을 계족산(鷄足山)이라 고쳐 불렀다고 함. 이 산정에 조선조때 심항봉수(心項烽燧)가 있어서 동으로는 청풍면 오현(吾峴)과 서쪽으로는 이류면 마산봉수(馬山烽燧)에 응하였음. 그리고 동단에 2,280척의 석성이 있음. 이 산에 대하여 불미한 전설이 있어 1958년 8월 18일 시의회를 거쳐 계명산(鷄鳴山)이라 개칭함.
●곡-말【마을】계명산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
●구-렁【들】안심 앞에 있는 깊은 들.
●남산-절(南山-)【절】큰말림번던에 있는 절.
●냉-정(冷井)[약막약수터]【약】약막에 있는 약수터. 물이 차서 땀띠에 잘 듣는다 함.
●느티나무-거리【터】옛날에 느티나무가 서 있었던 터 대원고등학교 동쪽 소로거리.
●느티나무-구렁【골짜기】옛날에 느티나무가 많았음. 용산,교현동과 경계를 이룸.
●다락-골【골짜기】지대가 다락처럼 높음.
●대궐-터【터】어림에 있는 옛 대궐 터. 조선사략에 의하면, 백제 개로왕(蓋鹵王) 21년(475)에 개로왕이 이곳에 도읍을 옮기고자 하여 역사를 시작하였다가, 같은 해에 태자 문주왕(文周王)이 곰나루(熊津)로 옮겼다 함. 그 후 이 근처를 소경(小京)이라 하였으며, 그 당시에 준비하였던 초석이 지금도 남아 있음.
●도장골-들【들】안림 서북쪽에 있는 들. 산혈이 돌아 있으므로 마치 토청이나 울을 막은 것처럼 되었는데, 옛날에 도둑들이 소를 훔쳐다가 이 속에 감추어 두고, 길러 가면서 잡아 먹었다 함.
●떡갈-봉【산】계명산의 한 줄기. 떡갈나무가 많았음. ●마당-참【마을】안심에 딸린 마을. 찬물이 났었다 함. ●마즈막-재 [심항현]【고개】계명산과 남산 사이에 있는 고개. ① 옛날에 경상도와 강원도 지방의 사형수들이 이 고개를 넘어와 숲거리에서 처형되었으므로, 이 고개를 넘으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였음. ② 계명산의 옛 이름인 심항산(心項山)에서 땀.
●멍석-마루【산】계명산의 한 봉우리. 옛날 천지개벽 때 멍석 하나 깔 만큼만 남았었다 함.
●무시랑-등【들】문서등이 앞에 있는 들.
●문서-등이【터】어림에 대궐 터를 닦을 때, 문서를 넣어 두던 창고가 있었다 함.
●바른-골【골짜기】안심에서 바로 보이는 골짜기.
●바른-바텡이【고개】큰골 안에서 바로 곧게 올라가는 고개.
●방아장-골【골짜기】화장장 동편 골짜기.
●배채-골【골짜기】약막에서 마즈막재를 향해서 왼편으로 올라간 골짜기.
●배천이-구렁【골짜기】계명산에 딸린 골짜기. 뱃줄바위가 있음.
●뱀-골【골짜기】약막에서 마즈막재로 올라가는 골짜기.
●뱀산-골【골짜기】이미정골 반대편 서북쪽으로 약바위가 있는 골짜기.
●번-던【마을】남산 버덩에 있는 마을.
●벌-들1【들】안심 뒤 벌판에 있는 마을. ●벌-들2【들】안림 서쪽 벌판에 있는 들.
●범-의(凡衣)【마을】→ 약막.
●붉은-언덕1【터】안심 앞에 있는 언덕. 흙이 붉음. ●붉은-언덕2【길】붉은언덕 옆에 있는 길.
●사-덕이【마을】계명산 줄기의 도랑 가에 있는 마을. ●사덕이-들【들】사덕이 근처에 있는 들. ●산지당-골【골짜기】옛날부터 산제를 지냈음. ●새절-골【골짜기】새전봉에 있는 골짜기. 새절이 있었음. ●새절-봉【산】계명산의 한 봉우리. 새절골이 있음. ●생교-터【터】문서등이 근처에 있는 향교 터. ●서드물-들【들】약막 남서쪽에 위치한 들 ●선-바우【바위】계명산에 서 있는 큰 바위.
●섬-말【마을】웃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마을. ●성-째【산】예전에 봉현성(鳳峴城)이 있었음. ●쇠옹-골【골짜기】통시골 밑 서쪽에 있는 골짜기. ●쇠전거리【터】황새모랭이 동쪽 안림교 부근의 우시장터. 1969년에 충의동에서 옮겨왔다가 1984년 11월에 가주로 또 옮겨 갔음.
●싸리-봉【산】계명산의 한 봉우리. 싸리나무가 많았음. ●아랫-말【마을】안심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아랫절 터【터】임이정 골 밑에 있는 절터. 아랫절이 있었음.
●안림-교(安林橋)【다리】동촌과 안림 어림에 있는 다리. 1965년 6월에 놓았음.
●안-말【마을】→ 안심.
●안-심(安心)[안말]【마을】안림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 예부터 피란지로 안전한 곳이라 함.
●앞-등산【산】안심 앞에 있는 작은 동산.
●약-막(藥幕)[범의]【마을】안림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약막약수터가 있으며 마을어구에 650년되었다는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음.
●약막-들【들】약막마을 앞에 남쪽으로 있는 들.
●약막-약수터(藥幕藥水-)【샘】→ 냉정. 토벽에서 많은 양의 냉수가 용출됨.
●약막-지【연못】약맛마을 상사골에 있는 저수지 없어졌음.
●약바위-골【골짜기】남산절터골 서남쪽 약바위가 있는 골짜기.
●양달-말【마을】어림의 양지쪽에 있는 마을.
●어-림(御林)【마을】백제 문주왕(文周王)이 가행궁(假行宮)을 짓고 있던 솔밭이라는 뜻으로 지은 마을 이름. 어림바위-골【골짜기】밤나무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이 바위 밑에 더울때도 어름이 있다함..
●어림-다리(御林-)【다리】약달말과 응달말 사이에 있는 다리.
●어림앞-들【들】어림앞에 있는 들. ●웃-말【마을】안심 위쪽에 있는 마을. ●웃절-터【터】아랫절터 위쪽에 있는 절터. 웃절이 있었음. ●음달-말【마을】어림의 음달쪽으로 있는 마을. ●이-꼴[이골]【골짜기】임이정골 위쪽에 있는 골짜기. ●이미정-골【골짜기】남산밑 쇠옹골과 퉁시골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작은-말림【산】큰말림 동쪽에 있는 작은 봉우리. ●잔치-참【마을】어림과 약막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옛날 사형수들이 마즈막재를 넘어와 숲거리 사형장까기 가는 도중 한참 쉬었다 가는 장소였다고 함. ●재피-등【고개】칼날같은 재 등성이만 타고 올라감. ●절-골【골짜기】절이 있었음.
●주막-거리【마을】약말로 들어가는 길목에 주막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고 술도 팔고 하던 곳.
●지네-골【골짜기】계명산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지네가 많았다 함.
●진-등【길】긴 등성이길.
●진실-재【고개】올라가는 길이 긺. ●진컬-양지【버덩】안심 뒤에 있는 버덩. 여름이면 물이 나서 짊.
●찬샘-골【골짜기】찬샘이 나는 골짜기. ●치랏-골【들】안림 서북쪽에 있는 들.
●칼바우-골【골짜기】칼바우가 있는 골짜기. ●큰-골【골짜기】계명산에 딸린 큰 골짜기. ●큰구렁-골【골짜기】뱀골 서북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골짜기
●큰-말림【산】남산절 뒤에 있는 산. 어림에서는 좀 크게 보임. ●큰말림-번던【버덩】계명산에 있는 버덩. 권정승이 부인의 묘를 쓴 후 터를 더 사들여서 말렸다 함. ●태-봉【산】남산의 한 봉우리. 높이 602m. ●터-골【골짜기】계명산에 있는 골짜기. ●터골-숲【숲】터골에 있는 숲. 통시-골【골짜기】약바우 밑 서쪽에 있는 골짜기. ●퉁수-골【골짜기】새절골과 지네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
●한덕-산【마을】어림에 딸린 마을. ●한자막-골【골짜기】남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한재막-골【골짜기】쇠옹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황새-머리1【마을】어림에 딸린 마을. 서쪽에 황새의 머리처럼 생긴 산이 있음. ●황새-머리2【길】황새머리 근처에 있는 길. ●황새머리-들【들】어림마을 아래쪽 황새머리 부근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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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벌동(木伐洞)
▣ 목벌-동(木伐洞)〔나무벌, 목벌〕【동】본래 충주군 살미면의 지역으로서 나무가 많았으므로 나무벌 또는 목벌(木伐)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요각골, 원터, 진의곡(眞衣谷)을 병합하여 다시 목벌리라 하였으며, 1986.12.23대통령령12007호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충주시 목벌동이됨.
●곱도-실【마을】나무벌 서쪽에 있는 마을. 곱돌이 생산되는 곳.
●꽃바우-나루터[화암나루터]【나루터】목벌에서 동량면 화암리 꽃바우쪽으로 건너는 나루터.
●남-벌[나무벌]【마을】목벌동에서 주가 되는 마을로 충주댐 수몰로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1993년 세운 '향수에 젖은 내고향'이라는 실향민비가 있음.
●말굴이-재【고개】목벌동(木伐洞)에서 문화리(文化里)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원이 말을 타고 가다가 굴렀다함.
●목-벌(木伐)【마을】→ 목벌동.
●밍-계【마을】목벌2구에 속하는 마을로 민밋한 들판으로 장마물로 1년에 한두번씩 개가 앉는다고 함. 현재 수몰됨.
●쉰-벙거지【광】활석광산이 있는 굴의 명칭임. 광부들이 작업을 하느르 갱 속에 들어갔다가 갱구가 무너져서 많은 인부가 압사했는데 인원을 확인할 도리가 없어서 굴밖에 있는 벙거지를 세어 보니까 50개가 되었다 해서 쉰벙거지라 부르고 있음.
●영샘-골【샘】곱돌광산 앞산에 약천(藥泉)이 있는 골짜기로 물탕골이라고도 하며 충주 영장의 가족들이 와서 먹은 샘이라고 함.
●요각-골[요각동]【마을】마즈막재에서 우측으로 있는 길을 따라 남방으로 약 700m 지점 산중에 위치한 마을.
●요각-동(要角洞)【마을】→ 요각골.
●원-대(院垈)【마을】→ 원터. ●원-터[원대(院垈)]【마을】곱도실 서북쪽에 있는 마을. 조선조 때 원집이 있었다함.
●진의-곡(眞衣谷)【마을】→ 진의실. ●진의-실[진의곡]【마을】요각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하느-골【골짜기】곱돌광산이 있는 골짜기. 하늘만 빠곰한 골짜기라는 뜻. ●화암-나루터(花岩-)【나루터】→ 꽃바우나루. ●활석-광산(滑石鑛山)【광】→ 곱돌광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