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이미 기울어 가는 북궁세가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당시 북궁세가에 절대적인 영향아래 있던 패도문을
호연세가로 돌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요보향이었다.
그녀의 성정과 배짱은 시아버지이자,
무림맹의 장로 중 한 명인 노광의 마음까지 완전히 휘어잡았다.
그 이후 패도문은 호연세가의 지원을 등에 없고,
북궁세가 대신 산동성의 완전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그런 이유로 사사건건 북궁세가와 패도문은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북궁세가에게 있어서 패도문은 가장 큰 골칫거리 중에 하나였다.
일단 일차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그녀는 패도문의 전대 가주인 노광과 의논하여 무림맹에 가입을 하였고,
적운 봉황대에 들어갔다.
그녀는 봉황대 안에서도 이미 굳건한 지지기반으로 대주가 된 당수련 대신
자신의 입지를 크게 가질 수 있는 서량을 선택하였다.
사실 서량을 선택한 것은 그녀의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당수련은 야심 많고 욕심 많은 요보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량을 선택한 그녀는 나름대로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서량과 많은 계획을 수립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량은 봉황대에서의 입지는 당수련과 비교할 수 없었지만,
무림에서의 위치는 달랐다. 당수련이 당가의 딸이면서도 당가를 싫어하였고,
그녀와 배다른 두 오빠와도 사이가 극도로 나쁜 방면에 서량은 맹주의 측근인 서종풍의 손녀였고,
그녀를 지지하는 여자들은 모두 맹주파에 속한 가문들이었다.
요보향은 일단 봉황대에서 서량의 신임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였고,
지금은 그녀의 가장 가까운 심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첫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서량을 적운봉황대의 대주로 옹립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자신은 부대주가 되는 것이었다.
소홀은 책자에다가 요보향에 대한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적어 놓았었다.
소홀은 요보향에 대해서 적어 놓은 맨 아래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었다.
- 하루 종일 때려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 계집.
아운은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아운의 손아귀를 빠져 나갈 방법이란 거의 전무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신만만하던 요보향은 사색이 되었다.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당장 변명을 할 방법이 없었다.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변명을 할 것 아닌가.
맹내에서 총사를 간음하려 했다면 죄도 이만저만한 죄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처참하도록 망가진 두 남매의 모습까지 보았고,
두 사람이 시인까지 하였으니 안 믿을 도리가 없었다.
당수련을 비롯한 봉황대 여무사들은 모두 아연한 표정들이었다.
"이제 요보향을 데려 가겠다. 이의 있나?"
당수련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같은 여자로서 수치스러울 뿐입니다."
당수련의 말에 서량이 나섰다.
그녀는 얼굴에 살기가 떠올라 있었다.
"요언니에게 변명할 기회라도 주어야 할 것 아닌가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내가 알기로 요 언니와 저기 두 사람은 서로 이런 음모를 꾸밀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네 년도 공범인가?"
서량의 말은 아운의 간단한 말 한마디에 끊어졌다.
서량은 이를 악물고 아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리 금룡단주라고 해도 함부로 말하지 마라!"
"계집, 그럼 입 닥치고 있어라!"
아운의 말에 서량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 본적이 있겠는가?
단 한 번도 격어 보지 않은 수치심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네 놈. 감히 내가 누구라고."
아운의 눈이 꼬아져 올라갔다.
"네 년이 누구긴 죽을지 모르고 설치는 멍청한 계집이지."
아운이 살기를 담고 말하자, 서량은 분을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선 여 무사들도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녀들의 무기는 창, 검, 도, 편 등 상당히 다양한 편이었다.
아운은 그 모습을 야릇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거지."
"옛"
이심방이 대답하였다.
"저 계집들이 먼저 무기를 뽑았다.
그리고 범인을 잡는데, 방해를 하는군. 그렇지 않은가?"
이심방의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분명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아운이었지만, 아운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아운이 서량을 보면서 말했다.
"네 년들은 감히 무기를 빼 들고 임무 수행중인 상관을 죽이려 하였다. 지금부터 그 죄를 묻겠다."
아운의 말에 서량은 아연해지고 말았다.
물론 그녀의 뒤에 있던 봉황대의 여 무사들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서량은 봉황대의 대주인 당수련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대가 강한 여자였다.
당황한 것은 잠깐이다.
일단 아운의 생각을 헤아린 그녀였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다면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흥, 개자식이 감히 나를 우롱하려 해. 쳐라!"
서량이 독랄하게 외치자, 그녀를 따르는 여무사들이 아운을 향해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미처 공격할 사이도 없었다.
아운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어느새 서량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제 아무리 서량이라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는 급히 자신의 검으로 아운의 목을 향해 그어 가려 하였다.
그러나 아운의 주먹은 그녀와 검보다 최소 몇 배는 빨랐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서량의 고개가 무서운 탄력을 지닌 채 뒤로 젖혀졌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서량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운은 그런 그녀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서량의 몸이 일장이나 데굴데굴 굴러 간 다음 멈추었다.
아운을 공격하려던 여 무사들의 몸이 전부 굳어 버렸다.
설마 서량 정도의 고수가 이렇게 간단하게 제압당할 줄은 그녀들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운의 신형이 다시 한 번 흐릿해지더니 창을 들고 있던 여자 무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대경질색해서 창으로 아운을 찌르려고 했을 때,
갑자기 손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아운은 빼앗은 창을 들고 창날이 붙어 있는 바로 아래 부분을 후려쳤다.
그러자 창대 위족이 반듯하게 잘려 나가면서 창날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아운의 손에 남은 것은 약 팔 척 길이의 창대뿐이었다.
창대를 봉처럼 돌려 본 아운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쓸 만하군."
창대를 빼앗긴 여자가 독하게 고함을 치면서 아운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아 내 무기를 내 놓아라!"
"이런 멍청한 년이 있나. 줄 거라면 왜 빼앗겠냐?"
아운의 창대가 무서운 속도로 호선을 그리며 달려드는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빡"하는 소리가 들리며 달려들던 여자 무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서운 고통 때문에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운의 창대가 서량과 함께 무기를 빼어든 여자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여자 무사들도 빠르게 협공을 하며 아운에게 달려들었지만,
그것은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했다.
창대을 휘두르고 찌르는 동작은 분명히 아주 단순했다.
그러나 그 단순한 공격은 여자무사들에게 있어선 불가항력이었다.
칼로 막으면 칼이 부러져 날아갔고, 손으로 막으면 손이 부러졌다.
그리고 그 창대는 여자들에게 조금의 사정도 없었다.
얼굴이고 몸이고 닥치는 대로 때려댄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던 서량은
다시 다섯 번이나 창대에 맞고 바닥에 쓰러져서 벌벌 떨어야만했다.
당수련을 비롯한 봉황대의 여자들은 모두 넋 나간 모습으로 아운의 무자비한 폭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로선 지금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서량을 비롯한 여자무사들의 무공은 결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자만 따져도 무려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런 여자 무사들이 아무리 검을 휘두르고 도를 휘둘러도
아운의 옷자락조차 건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운의 무자비한 공격은 보고 있던 그녀들조차 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녀들은 무의식중에 세뇌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룡단주에게 덤비면 안 된다.
그는 여자라고 봐주지 않고, 신분이 높다고 봐주지 않는다.
당수련을 비롯한 그녀들은 아운에게 달려들지 않은 것을 하늘에 대고 감사하는 중이었다.
다시 한 번 대주인 당수련의 판단력에 감사했다.
아운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던 당수련은
아운의 단순한 공격 속에 숨은 그의 절묘한 보법을 알아보았다.
수많은 여자들 속을 절묘하게 헤집고 다니는 아운의 보법은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떤 공격도 흘려버렸고, 공격해오는 여자들 틈 속으로 파고들 때는,
수많은 무기들 사이로 잉어가 물결을 타고 헤엄을 치고 올라가는 것처럼 스며들었다.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서량을 비롯한 여자무사들은 대항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아운의 무자비한 난타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말릴 생각조차 못한다.
이각의 시간이 지난 후 당수련을 비롯한
봉황대의 여자들은 떠나가고 있는 아운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 옆으로는 엉망으로 망가진 서량과
그녀를 따르던 봉황대의 여자들이 바닥에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실신 지경들이었는데, 얼추 보아도 상당한 내외상들을 입고 있었다.
지금도 금룡단주의 당호하고 잔혹한 손속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여걸로 유명한 당수련마저 그런 상황이니 다른 봉황대의 여자 무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당수련은 아운이 돌아서며 했던 말을 생각하자, 더욱 가슴이 서늘해 졌다.
"약 육개월 정도 누워 있으면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고, 무공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서량이란 계집은 일 년이 지나야 겨우 거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봉황대의 여 무사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아운을 보기만 하였다.
아무리 독한 남자도 여자에겐 손속에 사정을 두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상식은 이미 깨졌다.
더군다나 지금 심하게 당한 여자들은 모두 명문의 여식들이다.
대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
당수련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금룡단주를 바라보자,
아운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넌 나에게 큰 빛을 졌다. 잊지 말도록."
처음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당수련은 당대의 재녀였다.
지금은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봉황대에서 서량과 그녀의 일행은 큰 골칫거리였다.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제멋대로 일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서 당수련과 충돌해 왔었다.
봉황대를 완전이 장악한 그녀였지만,
서량을 중심으로 한 맹주파의 여자들은 언제나 제멋대로였다.
그나마 당수련이 아닌 다른 여자였었다면 대주조차도 완전히 무시당했을 것이다.
봉황대에 있어서 서량 일행은 종기와 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치자니 그녀들의 배경이 너무 막강했었다.
그래서 불편한 한 지붕 생활을 해 오던 참이었다.
이제 아운으로 인해 앓던 이가 빠진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아운은 그 것을 지목해서 한 말이었던 것이다.
육개월이면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이면 그녀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다시 나타나서 무엇을 하기엔 너무 호되게 당했다.
또한 육개월이 지나서 그녀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들의 중심이었던 서량은 무려 육개월은 더 있어야 겨우 거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동안 그녀들은 제 스스로 봉황대를 떠나고 말 것이다.
아니 당수련이 그렇게 만들면 된다.
나중에 서량이 돌아온다고 해도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당수련은 아운의 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생각할수록 권왕의 무게가 그녀를 누르고 있었다.
있었을 때도 무서웠지만,
사라지고 난 지금은 오히려 그 무게가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그는 내게 경고한 것이다.
자신의 눈 밖에 벗어나면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당수련은 아운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렇게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 봉황대의 여자들은 금룡단주의 그림자도 밟지 못할 것이다.
금룡단들은 봉황대의 건물을 빠져 나오자
바로 무림맹의 중심부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운은 걸으면서 이심방에게 말했다.
"풍룡백인대로 간다."
"헉."
이심방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내쉬고 말았다.
"정말 풍룡백인대로 직접 가시려고 합니까?"
"당연하다."
이심방은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풍룡백인대는 봉황대나 명왕당과는 다른 곳이었다.
무림맹엔 수많은 무력 집단들이 있고,
그 집단들은 외적으로 들어난 집단도 있는가 하면 전혀 들어나지 않은 집단들도 있었다.
그 중 대내외적으로 들어난 무력 집단은 철혈사자대와 풍룡백인대,
그리고 적운봉황대를 비롯한 일곱 개의 대와 세 개의 단이 있었다.
그것을 무림맹에서는 칠대 삼단이라고 하였다.
그 열 개의 무력 단체들은 그 힘의 편차가 다양했는데,
젊은 고수들을 위주로 한 무력 단체 중 가장 강한 것은 철혈사자대였다.
철혈사자대의 고수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서른 중반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인원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들 개개인의 무공은 모두 강했다.
그들은 어느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고수들로 무림맹에서 직접 기른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철혈사자대가 무림맹의 최고 무력단체는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무림맹이 용담호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채를 다 합해서 가장 강한 무력 단체는 천룡수호대(天龍守護隊)였다.
천룡수호대는 불과 칠십여 명에 불과했으나
, 모두 나이가 육십 이상의 내가 고수들로 구성된 맹주 직속의 무력단체였다.
그들의 대주가 누구인지, 정확한 인원이 얼마인지,
무공수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천룡수호대 다음으로 강한 무력 단체라면 풍룡백인대와 철혈사자대,
그리고 장로원의 명령만 수행하는 정의무적단이 있었다.
그 중 풍룡백인대는 총 인원이 백인뿐이었지만,
그들의 무공은 능히 일파의 장로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 백인으로 만들어진 만큼 그들의 무공은 고르고 그른 고수들이었다.
풍룡 백인대는 현무림맹의 부맹주 중 한 명인 신창(神槍) 조원의(趙願意)가 대주로 있는 곳이었다.
조원의는 바로 맹주의 친아들이었고, 흑룡의 아버지다.
그런 풍룡백인대를 일개인이 상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운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고, 그 의지를 꺾을 것 같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