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장학일 목사
예수마을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
【야고보서 5장 1-6절】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외국 인들이 한국에서 인상적이라고 말하는 장소 두 곳이 있습니다. 한 곳은 남대문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태원입니다. 신나고 활기차게 장사하는 모습들을 볼 때 한국의 생동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남대문 시장은 피난민들에 의해 세워진 시장입니다.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이 타향에서 악착같이 벌어 경제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곳이 남대문입니다. 이처럼 피난민들은 돈 버는 열심히 대단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1세기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방에 흩어져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들은 이권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현찰이 돌아가는 곳은 유대인도 따라 돈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또한 도시에서도 유대인들을 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대인이 들어오면 무역이 발달하고 상업이 번성해서 경제가 회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도시국가들이 유대인을 환영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은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을 따라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돈을 따라가지 않고 가난하게 사는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정든 고향에서 살수 없어 쫓겨난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했기 때문에 함께 장사를 할 수 없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똑같은 타향살이를 했어도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극심했습니다. 기독교 유대인들은 사업에 터가 잡히지 않아 생업에 골몰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분명했으나 현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유대인인 부자 유대인들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서운한 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이냐? 돈이냐?”하는 문제로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듯이,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세계에 흩어져 살았으나 부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는 마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그리스도인들의 물질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야고보는 일깨워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돈에 대해서 잘 쓰고 잘 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피츠버그 시에 사는 루이스라는 백인 남자가 높은 다리위에 올라가 강물로 투신하려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경찰도 출동했습니다. 경찰이 그 남자에게 죽으려고 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동네 불량배에게 2불을 빼앗긴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죽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이 5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니 다리에서 내려와 탈 없이 한시간만에 자살 소동이 종결되었다는 내용이 신문 기사로 났습니다.
겨우 2달러 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고 5달러 때문에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목숨이라는 말이 정말 ‘목에 걸려 있는 숨’ 정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그러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바른 물질관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올바르게 부자 됨이 성숙한 재물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약 5:1)
성경은 가난이 죄라 말하지 않지만 부유함이 죄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중에 부자들이 참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여서 자기 재산을 지켜 주는 군대만해도 318명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 자손들인 이삭,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부자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을 가졌다는 다윗입니다. 다윗의 재산의 전모는 모르나 그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드린 헌금을 보니 엄청난 액수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대상 22:14)라 했습니다.
금 십만 달란트면 무게로 3,400톤으로 10톤짜리 트럭 340대 분이고, 은 백만 달란트를 바쳤는데 그 무게가 34,000톤입니다. 금과 은을 트럭으로 실어 나를 분량이니 그 헌금 액수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역대상 29장에는 그가 두 번째 헌금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금 3,000달란트(100톤)과 은 7,000달란트(240톤)의 헌금을 더합니다. 그는 자기가 먼저 헌금을 하고는 전 이스라엘에게 성전을 위해 헌금할 것을 독려합니다. 그런데 그때 전 이스라엘이 민족이 하나님을 향해 연합하여 드린 것이 금 170톤과 은 340톤입니다. 다윗은 혼자 전 국민의 25배나 되는 헌금을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다윗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은 다윗이 “내 마음에 합한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자인 것이 죄이거나 악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일하지 않고 게을러서 가난한 자에게 악하다고 말합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부지런함을 배우라”했고 하나님께서도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다”라 축복하셨습니다.
영국사회를 변화시킨 요한 웨슬리는 성경전체의 재물관을 세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은 빈익빈 부익부가 극에 달해서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영국에는 성경적인 재물관이 있었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웨슬리는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일해서 최고로 벌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저축하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할 수 있는 대로 선한 일을 위하여 아낌없이 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요한 웨슬리는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어라. 열심히 저축하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멋있게 아끼지 말고 사용하라”는 돈에 대한 3대 지침을 모든 교인들에게 내렸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잘 살게 된 것이고 지금도 영국의 잘 사는 부자들을 보면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돈 많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잘못도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주님을 대신하여 돈이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할 때 이것은 죄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지난 숭례문 사건의 방화의 이유도 돈 때문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돈은 우리가 섬길 대상도 아니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최후의 대상도 아닙니다. 돈을 준 것 만큼 반드시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달란트 비유에서 그 책임을 물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었던 영향력, 우리에게 주었던 돈, 지식, 재능, 이 모든 것은 심판하는 날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돈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잘 쓰는 것입니다.
부한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판하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공개될 것이며 어떻게 해서 나의 것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는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재물은 정당하게 모아야 합니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약 5:4)
추수를 열심히 해 자기 창고에 가득 들여 놓았지만 일군들의 일당을 주지 않음을 경고합니다. 고용인들에게 일을 가혹하게 시킨 결과 자기 은행에 잔고는 쌓여 가지만 고용인에게는 임금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과정으로 부를 키워나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합니다. 그 잔인성과 비인간적인 모습이 마땅히 지불할 품삯을 일군에게 주지 않음으로 나타납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신 24:14-15)
성경은 임금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품삯을 하루라도 미루지 말고 정당히 지불해 주라고 하십니다. 해질 때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했으면 정확하게 지불하라는 말씀입니다.
칼빈은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빵을 공급해 주는 사람들이 부족함을 인하여 수척해져야 한다는 것보다 더 비열한 짓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끔찍스러운 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인간들이 단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버는 과정에서 남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업을 해서 이익을 많이 남겨 주님의 사업을 하면 참 좋습니다. 그러나 정당하게 이익을 남기십시오. 또한 내가 이익이 별로 남지 않을 때에는 주님의 사업을 조금 축소해도 됩니다. 없는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분수에 맞게 헌금해야 합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무리하여 헌금하는 것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만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벌어서 정당하게 헌금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업을 열심히 해서 고용원들의 복리를 증진시켜 주고 그들의 뒷받침을 정직하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자기만의 부를 위해 임금을 주지 않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말 3:5)
2) 돈을 잘 써야 합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 5:5)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잘 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을 ‘돈 잘 쓴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규모 있게 ‘잘 돈 쓰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연락 한다’는 말은 성적인 범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아지면 제일먼저 성적 부패가 시작됩니다. 우리주변에 얼마나 많은 성적인 타락과 범죄가 우글거리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조사통계에 의하면 여유 있는 집의 8할이 남편의 외도로 인한 문제를 겪는다고 합니다. 돈이 사치하고 음탕한데 쓰여 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이들에게 돈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맨하탄의 총재였으며 죤. 디. 록펠러의 손자였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어렸을 때 돈 다루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1주일에 25센트(250원)를 줍니다. 당시의 가치를 지금으로 따져보면 약 3-5불정도(3,000-5,000원)되는 돈입니다.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금전 출납부를 조사해 수입 지출이 엉망이거나 돈 쓴 명목이 나쁘면 5센트를 그 주간에는 줄였습니다. 하지만 정확이 잘 썼으면 5센트를 더해 줍니다. 그래서 일주일 주급이 적게 받으면 20센트 많이 받으면 30센트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아버지가 적은 용돈을 주었지만 줄 때마다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0%는 예금하라. 10%는 반드시 자선 사업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이 큰 재벌의 총수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졸라대면 비싼 장난감이나 핸드폰도 쉽게 사줍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좋은 신발을 잃어버려도 찾지를 않습니다. 다시 다 사주니까 귀한 것을 모릅니다. 비싼 장난감 사주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조른다고 비싼 음식점에 가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독을 먹이는 것입니다. ‘사치와 연락은 안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둘째, 선한 일에 부한 사용함이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재물관입니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약 5:6)
이것은 선한 일에 부한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를 위해 의로운 사람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악한 재판을 합니다. 부자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정사정없습니다. 부한 자들이 하는 재판은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자, 약한 사람을 억울하게 합니다. 재판은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고 합니다. 본문을 보니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자기 치부만을 위해 쌓아 두었기 때문에 옷이 좀먹고 금과 은이 녹이 슬었다는 것입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2-3)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그리스도인은 재물에 소망을 두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철인 스펜서의 “돈은 하늘아래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다”라 탄식한 말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황금 만능시대인 지금은 돈과 신앙에 대해 저울질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권력과 지위와 기회가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는 다니엘이나 그의 세친구와 같이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자신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을 따라 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은 반드시 남을 해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는데 사용할 줄 아는 자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여러분이 볼 때에는 얼마정도 가져야 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라고 하는데 부자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까요? 부자는 자기보다 더 돈 많은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부자의 기준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기준을 6장 7절에 세워놓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기 때문에 족한 것으로 알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바로 우리 모두가 부자이고 그 대상입니다.
미국의 부호 헨리 포드는 “돈은 팔다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팔다리를 잘 쓰면 건강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으면 몸이 약해지고 병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물질도 잘 사용하지 않으면 마음은 물론 환경과 가정을 병들게 합니다. 재물은 반드시 하나님이 계수합니다. 잘 사용한 자는 생명의 길로 잘못 사용한 자는 슬피 우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셋째, 재물을 소유할 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1) 마음을 높이지 말라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딤전 6:16)
재물 있는 사람에게‘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재물이 적은 사람을 보면서 교만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부자들은 ‘당시의 권세 자들’을 의미합니다. 부자는 권세도 얻고 권세를 얻으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2)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딤전 6:17)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란 소망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사람의 착각이 있습니다. 돈 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살 수 있고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돈으로 화려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평안한 잠은 살수 없습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사지 못합니다. 책은 살 수 있으나 지식은 살수 없습니다.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수 없습니다. 사람은 살 수 있으나 친구는 살수 없습니다. 쾌락은 살 수 있어도 행복은 살수 없습니다.
로마의 현인 세나카는 “돈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부자로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돈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돈은 정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우리는 돈이 미래를 보장해 준다고 합니다. 돈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
주식, 빌딩, 땅, 돈 등의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해도 그것 자체가 나에게 소망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살지 마십시오. 침대 없이도 단잠을 주시는 하나님, 약 이전에 건강을 주시는 하나님, 진정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주시면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그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벌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재물을 얻을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도, 승진할 때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월급봉투 받을 때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찬송과 감사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4) 재물은 선한 일에 풍부하게 사용하라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딤전 6:18) 돈은 물과 같습니다.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들어 냅니다. 마찬가지로 돈이 의롭고 경건한 신앙인들의 손에 쥐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고 선한 일에 쓰이면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그래서 돈은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해야지 악한일, 죄를 만드는 일에 쓰여서는 안 됩니다.
5) 남을 위해 풍성히 재물을 사용하라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내식구가 아닌 이웃의 작은 자들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억지로나 마지못해서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베풀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동정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앞서지 않는 구제나 헌금은 율법주의입니다. ‘동정하는 자가 되라’하신 말씀 따라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동정하고 쓸 수 있다면 참된 구원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재물을 이 같은 목적으로 귀하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9)
여러분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정함이 없는 재물입니까? 아니며 그 재물을 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십니까? 성도 여러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나눔의 삶을 삽시다. 온전한 물질관을 가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장학일 목사
한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협성대학교 신학과 및 대학원 졸업
미국 Ashland University 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D.Min)
현 예수마을 만들기 대표
현 밴드목회 연구원장
현 나사렛대학 객원교수
현 예수마을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