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었어,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시고 가슴에 품으신 분은
화진포의 일출-주님이 두 팔을 내미시며 세상을 축복하시는 모습
잠 못 이루는 깊은 밤에 화진포 해변에서 초도항으로 넘어가는 언덕 위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시원한 바람 소리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밤꾀꼬리들의 노래와 함께 밤 고양이의 웃는 것처럼 갸릉거리는 소리와 갈매기들의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제는 달이 져서 별들을 가리지 않기에 북두칠성과 북극성, 그리고 닻별은 왕과 왕비처럼 밝게 빛납니다. 그러다가 호랑지빠귀 한 마리가 그 떨리는 휘파람 소리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놓고,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소리에 화답하는 쏙독새의 쏙 쏙 쏙 소리도 겨우 들려옵니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점점이 보이고, 새벽에 출항하는 배의 퉁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버튼을 눌렀는지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립니다. 바람이 약간 강하게 지나가니 지난 저녁의 는개(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가는 비)로 나뭇잎에 맺혀있다가 포석(鋪石)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알레그로로 다시 고요가 깨집니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켜는 듯 나뭇잎 속에서 다시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이 깬 새들의 따로 떨어진 소리가 차례로 들리면서 주님 모습의 구름이 다가오며 빛이 솟아오릅니다. 두 팔을 벌리신 모습의 찬란한 해돋이가 ‘나는 믿나이다’ 하는 말을 써놓은 끝없는 책장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자연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정리하시고, 그것들을 훌륭하게 배합하시어, 사람의 구원을 위해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주신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어제는 고요하다가 오늘은 성난 파도가 일어나는 바다보다도 변덕이 심한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작은 일에 있어서나 큰일에 있어서나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자기 자신을 헤아리는 것은 사려 깊은 조심성입니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주님의 뜻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겸손과 행동으로 나타냅니다. 높새바람이 불면 세차게 이는 바다처럼 오늘의 편안함과 권력이 내일은 고통과 무기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과 시련을 잘 참아 받아서 그것이 삶의 사슬을 더 빨리 끊는 불꽃이 되도록 하루하루를 그리움(Saudade)으로 태워버립니다. 그들은 어둡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불행과 궁핍이 가득한 하루와 같은 인생을 태워버리고, 다시는 죽음도 고통도 없는 주님의 빛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며 노래를 부릅니다.
몰라, 아무도 몰라/ 왜 내가 파두를 부르는지 이렇게 상처받은 고통과 울음의 음색으로 그리고 이 괴로움 안에서 모든 것은 수난일 뿐 나의 영혼이 내 안에서 잠잠해지는 것을 느껴 내가 노래 부르는 가사들을 통해 주님이었어 눈에 빛을 주신/ 장미에 향을 불어넣으신 해에게 황금빛을 주시고/ 달에게 은빛을 주신 주님이었어/ 나를 가슴에 품으신 분은 내가 울며/ 노래 부르며 풀어낼/ 슬픔의 묵주 하늘에 별을 박으시고/ 끝없는 공간을 만드신 분/ 제비들을 애도하신 분 아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내가 노래 부를 때/ 무엇을 부르는지 나는 모르네/ 운명의 섞임/ 그리움(Saudade), 연정, 그리고 아마도 사랑 그러나 나는 노래하고 있음을 아네 그가 수심에 잠길 때/ 나도 같은 감정을 느끼네 그리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드네 주님이었어/ 바람에 목소리를 주신 분/ 창공에 빛을 그리고 바다의 파도에 푸른색을 주신 분 주님이었어/ 나를 가슴에 품으신 분은 내가 울며/ 노래 부르며 풀어낼/ 슬픔의 묵주 꾀꼬리의 시를 만드신 분/ 들판에 로즈마리를 심으시고 봄에 꽃을 주신 분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봄에 꽃을 주신 분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주님이었어(https://youtu.be/kgQ0QFQ69YM 작사, 작곡, 노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김정인 모니카 역 |
파두(fado)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인 Foi Deus(주님이었어)는 파두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랫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와 아랍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를 거쳐 간 포르투갈은 그 파란만장한 역사가 한민족만큼이나 많은 나라입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바다에 기대어 삶을 이어 왔고, 바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온 그들은 바다와 자신들 사이에 생겨난 많은 이야기를 담은 파두를 부르면서 사우다드 즉, 삶과 꿈에 대한 겸손과 사랑, 순종, 연민, 그리움, 용서, 참을성, 차별, 순종의 섭리를 받아들였습니다. 한민족의 ‘한’과 비슷하게 여러 가지 뜻을 가진 ‘사우다드(Saudade)’는 ‘그리움으로 인한 슬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무엇을 부르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르지만,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아마도 그리움(Saudade)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숙명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따름입니다. 그러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드네’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슬픔 속에 흘리는 눈물이 ‘이겨내기 위하여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라는 것을 깨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픔, 이것은 사탄에게는 황홀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어떤 시간에 슬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슬픔에 몸과 마음을 내맡겨 무기력한 실망과 원망에 빠지는 것이 죄가 될 뿐입니다. 사탄은 누가 정신적인 무기력에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면 곧바로 달려들기 마련이니까요. 슬픔은 시련 중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기쁨은 슬픔 중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 기뻐해야 합니까?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를 가슴에 품으신 주님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멈추어 서서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 속에 인자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바로 그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은 ‘주님이었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 세 가지, 정말 모를 일이 네 가지 있으니, 독수리가 하늘을 지나간 길, 뱀이 바위 위를 지나간 길, 배가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길, 젊은 여인의 가슴을 거쳐 간 사내의 길! (잠언 30장 18절) |
잠언에 나오는 이 말씀은 참으로 경외와 놀라움입니다. 네 가지의 길로 비유된 세상의 모든 변화와 조화는 모두가 주님의 섭리로 이루어진다는 은유가 있으며, 진실한 그리움을 경험한 사랑의 길을 마지막에 두어 신적, 인간적 사랑의 신비를 노래함으로써 그 의미에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해와 구름이 미소를 짓는 하늘을 쳐다보고, 그리고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아직은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지만, 파두를 노래하고 사랑하는 이들처럼 우리와 하늘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다리로 바다를 바라봅니다. 해돋이에 의한 새벽이 아니라 주님의 새벽이 다시 나타나 바다를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였으니, ‘사우다드(그리움)’를 노래하는 행복한 사람들! 그들은 지극히 행복하고, ‘사우다드’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도 지극히 행복합니다.
- "운명", "숙명"을 뜻하는 낱말인 파두(포르투갈어: fado, 포르투갈어 발음: [ˈfaðu])는 포르투갈의 음악 장르이다.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솔로 가수(포르투갈어: fadidsta 파디스타)가 부르는 노래 형식이며, 포르투갈 기타(포르투갈어: guitarra portuguesa 기타하 포르투게자)와 클래식 기타(포르투갈어: viola 비올라) 연주가 함께한다. 어쿠스틱 베이스 기타(포르투갈어: viola baixo 비올라 바이슈)나 콘트라베이스가 반주 악기로 포함되기도 한다. 2011년 11월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는개: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가는 비
-닻별 ; 별자리 중에서 카시오페아를 달리 부르는 말
추천곡
이상한 삶의 방식 (Estranha Forma de Vida)
주님의 뜻이었네
내가 불안 속에 사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한탄은 나의 것이며
모든 그리움은 나의 것이라네
주님의 뜻이었네
참으로 이상한 삶의 방식을
내 마음은 가지고 있지
길을 잃은 채 살아가는데
누가 마술 같은 힘을 준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한 삶의 방식이지
제어할 수 없는
독립적인 마음
사람들 속에 길을 잃은 채 살고
고집스레 피를 흘리는
독립적인 마음
나 이제는 너와 함께 가지 않으리
멈춰, 그만 뛰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달라지는지
나 이제는 너와 함께 가지 않으리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 황윤기번역)
Chuva(비)
인생의 통속적인 것들은
열망을 남기지 않네
아프게 하거나 웃음을 짓게 하는
추억만을 줄 뿐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남은 사람들과
이름을 들은 기억조차
없는 사람들
간직한 열망에 대해
인생이 주는 감정들,
그대와 함께했던 것들,
잃어버리기 위해 끝내버린 것들
사람들의 영혼과 삶에
표식으로 남은 날들과
떠나버린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나
비는 나를 적셔
춥고 지치게 만드네
내가 이미 방황했던
도시의 거리들
아, 길 잃은 소녀 같은
나의 울음은
도시를 향해 절규하고
빗속에서 사랑의 불꽃은
순식간에 죽어버리네
비는 조용히
도시에 대한 나의 비밀에
귀 기울이고
여기 유리창을 두드리며
내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Sete Letras(일곱개의 글자)
-테레사 드 노로냐의 노래로 사우다드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음
사우다드는 아름다운 단어라네.
끝없는 슬픔이나 고마운 추억을 말해주는
포르투갈의 좋은 단어라네.
그것은 언제나
마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묶여있네.
(중략)
만약 그대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사우드는 셀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지.
그러나 그대의 슬픔을 노래한다면
사우드는 나의 영혼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지.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시고 가슴에 품으신 분은
화진포의 일출-주님이 두 팔을 내미시며 세상을 축복하시는 모습
잠 못 이루는 깊은 밤에 화진포 해변에서 초도항으로 넘어가는 언덕 위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시원한 바람 소리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밤꾀꼬리들의 노래와 함께 밤 고양이의 웃는 것처럼 갸릉거리는 소리와 갈매기들의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제는 달이 져서 별들을 가리지 않기에 북두칠성과 북극성, 그리고 닻별은 왕과 왕비처럼 밝게 빛납니다. 그러다가 호랑지빠귀 한 마리가 그 떨리는 휘파람 소리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놓고,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소리에 화답하는 쏙독새의 쏙 쏙 쏙 소리도 겨우 들려옵니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점점이 보이고, 새벽에 출항하는 배의 퉁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버튼을 눌렀는지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립니다. 바람이 약간 강하게 지나가니 지난 저녁의 는개(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가는 비)로 나뭇잎에 맺혀있다가 포석(鋪石)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알레그로로 다시 고요가 깨집니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켜는 듯 나뭇잎 속에서 다시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이 깬 새들의 따로 떨어진 소리가 차례로 들리면서 주님 모습의 구름이 다가오며 빛이 솟아오릅니다. 두 팔을 벌리신 모습의 찬란한 해돋이가 ‘나는 믿나이다’ 하는 말을 써놓은 끝없는 책장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자연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정리하시고, 그것들을 훌륭하게 배합하시어, 사람의 구원을 위해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주신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어제는 고요하다가 오늘은 성난 파도가 일어나는 바다보다도 변덕이 심한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작은 일에 있어서나 큰일에 있어서나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자기 자신을 헤아리는 것은 사려 깊은 조심성입니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주님의 뜻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겸손과 행동으로 나타냅니다. 높새바람이 불면 세차게 이는 바다처럼 오늘의 편안함과 권력이 내일은 고통과 무기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과 시련을 잘 참아 받아서 그것이 삶의 사슬을 더 빨리 끊는 불꽃이 되도록 하루하루를 그리움(Saudade)으로 태워버립니다. 그들은 어둡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불행과 궁핍이 가득한 하루와 같은 인생을 태워버리고, 다시는 죽음도 고통도 없는 주님의 빛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며 노래를 부릅니다.
몰라, 아무도 몰라/ 왜 내가 파두를 부르는지 이렇게 상처받은 고통과 울음의 음색으로 그리고 이 괴로움 안에서 모든 것은 수난일 뿐 나의 영혼이 내 안에서 잠잠해지는 것을 느껴 내가 노래 부르는 가사들을 통해 주님이었어 눈에 빛을 주신/ 장미에 향을 불어넣으신 해에게 황금빛을 주시고/ 달에게 은빛을 주신 주님이었어/ 나를 가슴에 품으신 분은 내가 울며/ 노래 부르며 풀어낼/ 슬픔의 묵주 하늘에 별을 박으시고/ 끝없는 공간을 만드신 분/ 제비들을 애도하신 분 아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내가 노래 부를 때/ 무엇을 부르는지 나는 모르네/ 운명의 섞임/ 그리움(Saudade), 연정, 그리고 아마도 사랑 그러나 나는 노래하고 있음을 아네 그가 수심에 잠길 때/ 나도 같은 감정을 느끼네 그리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드네 주님이었어/ 바람에 목소리를 주신 분/ 창공에 빛을 그리고 바다의 파도에 푸른색을 주신 분 주님이었어/ 나를 가슴에 품으신 분은 내가 울며/ 노래 부르며 풀어낼/ 슬픔의 묵주 꾀꼬리의 시를 만드신 분/ 들판에 로즈마리를 심으시고 봄에 꽃을 주신 분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봄에 꽃을 주신 분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주님이었어(https://youtu.be/kgQ0QFQ69YM 작사, 작곡, 노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김정인 모니카 역 |
파두(fado)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인 Foi Deus(주님이었어)는 파두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랫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와 아랍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를 거쳐 간 포르투갈은 그 파란만장한 역사가 한민족만큼이나 많은 나라입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바다에 기대어 삶을 이어 왔고, 바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온 그들은 바다와 자신들 사이에 생겨난 많은 이야기를 담은 파두를 부르면서 사우다드 즉, 삶과 꿈에 대한 겸손과 사랑, 순종, 연민, 그리움, 용서, 참을성, 차별, 순종의 섭리를 받아들였습니다. 한민족의 ‘한’과 비슷하게 여러 가지 뜻을 가진 ‘사우다드(Saudade)’는 ‘그리움으로 인한 슬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무엇을 부르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르지만,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아마도 그리움(Saudade)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숙명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따름입니다. 그러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드네’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슬픔 속에 흘리는 눈물이 ‘이겨내기 위하여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라는 것을 깨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픔, 이것은 사탄에게는 황홀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어떤 시간에 슬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슬픔에 몸과 마음을 내맡겨 무기력한 실망과 원망에 빠지는 것이 죄가 될 뿐입니다. 사탄은 누가 정신적인 무기력에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면 곧바로 달려들기 마련이니까요. 슬픔은 시련 중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기쁨은 슬픔 중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 기뻐해야 합니까?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를 가슴에 품으신 주님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멈추어 서서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 속에 인자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바로 그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은 ‘주님이었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 세 가지, 정말 모를 일이 네 가지 있으니, 독수리가 하늘을 지나간 길, 뱀이 바위 위를 지나간 길, 배가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길, 젊은 여인의 가슴을 거쳐 간 사내의 길! (잠언 30장 18절) |
잠언에 나오는 이 말씀은 참으로 경외와 놀라움입니다. 네 가지의 길로 비유된 세상의 모든 변화와 조화는 모두가 주님의 섭리로 이루어진다는 은유가 있으며, 진실한 그리움을 경험한 사랑의 길을 마지막에 두어 신적, 인간적 사랑의 신비를 노래함으로써 그 의미에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해와 구름이 미소를 짓는 하늘을 쳐다보고, 그리고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아직은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지만, 파두를 노래하고 사랑하는 이들처럼 우리와 하늘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다리로 바다를 바라봅니다. 해돋이에 의한 새벽이 아니라 주님의 새벽이 다시 나타나 바다를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였으니, ‘사우다드(그리움)’를 노래하는 행복한 사람들! 그들은 지극히 행복하고, ‘사우다드’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도 지극히 행복합니다.
- "운명", "숙명"을 뜻하는 낱말인 파두(포르투갈어: fado, 포르투갈어 발음: [ˈfaðu])는 포르투갈의 음악 장르이다.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솔로 가수(포르투갈어: fadidsta 파디스타)가 부르는 노래 형식이며, 포르투갈 기타(포르투갈어: guitarra portuguesa 기타하 포르투게자)와 클래식 기타(포르투갈어: viola 비올라) 연주가 함께한다. 어쿠스틱 베이스 기타(포르투갈어: viola baixo 비올라 바이슈)나 콘트라베이스가 반주 악기로 포함되기도 한다. 2011년 11월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는개: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가는 비
-닻별 ; 별자리 중에서 카시오페아를 달리 부르는 말
추천곡
이상한 삶의 방식 (Estranha Forma de Vida)
주님의 뜻이었네
내가 불안 속에 사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한탄은 나의 것이며
모든 그리움은 나의 것이라네
주님의 뜻이었네
참으로 이상한 삶의 방식을
내 마음은 가지고 있지
길을 잃은 채 살아가는데
누가 마술 같은 힘을 준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한 삶의 방식이지
제어할 수 없는
독립적인 마음
사람들 속에 길을 잃은 채 살고
고집스레 피를 흘리는
독립적인 마음
나 이제는 너와 함께 가지 않으리
멈춰, 그만 뛰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달라지는지
나 이제는 너와 함께 가지 않으리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 황윤기번역)
Chuva(비)
인생의 통속적인 것들은
열망을 남기지 않네
아프게 하거나 웃음을 짓게 하는
추억만을 줄 뿐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남은 사람들과
이름을 들은 기억조차
없는 사람들
간직한 열망에 대해
인생이 주는 감정들,
그대와 함께했던 것들,
잃어버리기 위해 끝내버린 것들
사람들의 영혼과 삶에
표식으로 남은 날들과
떠나버린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나
비는 나를 적셔
춥고 지치게 만드네
내가 이미 방황했던
도시의 거리들
아, 길 잃은 소녀 같은
나의 울음은
도시를 향해 절규하고
빗속에서 사랑의 불꽃은
순식간에 죽어버리네
비는 조용히
도시에 대한 나의 비밀에
귀 기울이고
여기 유리창을 두드리며
내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Sete Letras(일곱개의 글자)
-테레사 드 노로냐의 노래로 사우다드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음
사우다드는 아름다운 단어라네.
끝없는 슬픔이나 고마운 추억을 말해주는
포르투갈의 좋은 단어라네.
그것은 언제나
마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묶여있네.
(중략)
만약 그대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사우드는 셀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지.
그러나 그대의 슬픔을 노래한다면
사우드는 나의 영혼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지.
화진포의 일출-주님이 두 팔을 내미시며 세상을 축복하시는 모습
잠 못 이루는 깊은 밤에 화진포 해변에서 초도항으로 넘어가는 언덕 위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시원한 바람 소리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밤꾀꼬리들의 노래와 함께 밤 고양이의 웃는 것처럼 갸릉거리는 소리와 갈매기들의 우는 소리도 들립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제는 달이 져서 별들을 가리지 않기에 북두칠성과 북극성, 그리고 닻별은 왕과 왕비처럼 밝게 빛납니다. 그러다가 호랑지빠귀 한 마리가 그 떨리는 휘파람 소리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놓고,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소리에 화답하는 쏙독새의 쏙 쏙 쏙 소리도 겨우 들려옵니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점점이 보이고, 새벽에 출항하는 배의 퉁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버튼을 눌렀는지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립니다. 바람이 약간 강하게 지나가니 지난 저녁의 는개(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가는 비)로 나뭇잎에 맺혀있다가 포석(鋪石)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알레그로로 다시 고요가 깨집니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켜는 듯 나뭇잎 속에서 다시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이 깬 새들의 따로 떨어진 소리가 차례로 들리면서 주님 모습의 구름이 다가오며 빛이 솟아오릅니다. 두 팔을 벌리신 모습의 찬란한 해돋이가 ‘나는 믿나이다’ 하는 말을 써놓은 끝없는 책장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자연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정리하시고, 그것들을 훌륭하게 배합하시어, 사람의 구원을 위해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주신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어제는 고요하다가 오늘은 성난 파도가 일어나는 바다보다도 변덕이 심한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작은 일에 있어서나 큰일에 있어서나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자기 자신을 헤아리는 것은 사려 깊은 조심성입니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주님의 뜻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겸손과 행동으로 나타냅니다. 높새바람이 불면 세차게 이는 바다처럼 오늘의 편안함과 권력이 내일은 고통과 무기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과 시련을 잘 참아 받아서 그것이 삶의 사슬을 더 빨리 끊는 불꽃이 되도록 하루하루를 그리움(Saudade)으로 태워버립니다. 그들은 어둡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불행과 궁핍이 가득한 하루와 같은 인생을 태워버리고, 다시는 죽음도 고통도 없는 주님의 빛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며 노래를 부릅니다.
몰라, 아무도 몰라/ 왜 내가 파두를 부르는지 이렇게 상처받은 고통과 울음의 음색으로 그리고 이 괴로움 안에서 모든 것은 수난일 뿐 나의 영혼이 내 안에서 잠잠해지는 것을 느껴 내가 노래 부르는 가사들을 통해 주님이었어 눈에 빛을 주신/ 장미에 향을 불어넣으신 해에게 황금빛을 주시고/ 달에게 은빛을 주신 주님이었어/ 나를 가슴에 품으신 분은 내가 울며/ 노래 부르며 풀어낼/ 슬픔의 묵주 하늘에 별을 박으시고/ 끝없는 공간을 만드신 분/ 제비들을 애도하신 분 아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내가 노래 부를 때/ 무엇을 부르는지 나는 모르네/ 운명의 섞임/ 그리움(Saudade), 연정, 그리고 아마도 사랑 그러나 나는 노래하고 있음을 아네 그가 수심에 잠길 때/ 나도 같은 감정을 느끼네 그리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드네 주님이었어/ 바람에 목소리를 주신 분/ 창공에 빛을 그리고 바다의 파도에 푸른색을 주신 분 주님이었어/ 나를 가슴에 품으신 분은 내가 울며/ 노래 부르며 풀어낼/ 슬픔의 묵주 꾀꼬리의 시를 만드신 분/ 들판에 로즈마리를 심으시고 봄에 꽃을 주신 분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봄에 꽃을 주신 분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 –주님이었어(https://youtu.be/kgQ0QFQ69YM 작사, 작곡, 노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김정인 모니카 역 |
파두(fado)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인 Foi Deus(주님이었어)는 파두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랫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와 아랍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를 거쳐 간 포르투갈은 그 파란만장한 역사가 한민족만큼이나 많은 나라입니다. 바다를 사랑하며 바다에 기대어 삶을 이어 왔고, 바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온 그들은 바다와 자신들 사이에 생겨난 많은 이야기를 담은 파두를 부르면서 사우다드 즉, 삶과 꿈에 대한 겸손과 사랑, 순종, 연민, 그리움, 용서, 참을성, 차별, 순종의 섭리를 받아들였습니다. 한민족의 ‘한’과 비슷하게 여러 가지 뜻을 가진 ‘사우다드(Saudade)’는 ‘그리움으로 인한 슬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무엇을 부르는지는 그 자신도 잘 모르지만,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아마도 그리움(Saudade)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숙명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따름입니다. 그러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드네’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슬픔 속에 흘리는 눈물이 ‘이겨내기 위하여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라는 것을 깨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픔, 이것은 사탄에게는 황홀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어떤 시간에 슬퍼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슬픔에 몸과 마음을 내맡겨 무기력한 실망과 원망에 빠지는 것이 죄가 될 뿐입니다. 사탄은 누가 정신적인 무기력에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면 곧바로 달려들기 마련이니까요. 슬픔은 시련 중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기쁨은 슬픔 중에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 기뻐해야 합니까? ‘아,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 목소리를 주셨네’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를 가슴에 품으신 주님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멈추어 서서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 속에 인자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바로 그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은 ‘주님이었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 세 가지, 정말 모를 일이 네 가지 있으니, 독수리가 하늘을 지나간 길, 뱀이 바위 위를 지나간 길, 배가 바다 가운데를 지나간 길, 젊은 여인의 가슴을 거쳐 간 사내의 길! (잠언 30장 18절) |
잠언에 나오는 이 말씀은 참으로 경외와 놀라움입니다. 네 가지의 길로 비유된 세상의 모든 변화와 조화는 모두가 주님의 섭리로 이루어진다는 은유가 있으며, 진실한 그리움을 경험한 사랑의 길을 마지막에 두어 신적, 인간적 사랑의 신비를 노래함으로써 그 의미에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해와 구름이 미소를 짓는 하늘을 쳐다보고, 그리고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아직은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지만, 파두를 노래하고 사랑하는 이들처럼 우리와 하늘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다리로 바다를 바라봅니다. 해돋이에 의한 새벽이 아니라 주님의 새벽이 다시 나타나 바다를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였으니, ‘사우다드(그리움)’를 노래하는 행복한 사람들! 그들은 지극히 행복하고, ‘사우다드’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도 지극히 행복합니다.
- "운명", "숙명"을 뜻하는 낱말인 파두(포르투갈어: fado, 포르투갈어 발음: [ˈfaðu])는 포르투갈의 음악 장르이다.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솔로 가수(포르투갈어: fadidsta 파디스타)가 부르는 노래 형식이며, 포르투갈 기타(포르투갈어: guitarra portuguesa 기타하 포르투게자)와 클래식 기타(포르투갈어: viola 비올라) 연주가 함께한다. 어쿠스틱 베이스 기타(포르투갈어: viola baixo 비올라 바이슈)나 콘트라베이스가 반주 악기로 포함되기도 한다. 2011년 11월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는개: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가는 비
-닻별 ; 별자리 중에서 카시오페아를 달리 부르는 말
추천곡
이상한 삶의 방식 (Estranha Forma de Vida)
주님의 뜻이었네
내가 불안 속에 사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한탄은 나의 것이며
모든 그리움은 나의 것이라네
주님의 뜻이었네
참으로 이상한 삶의 방식을
내 마음은 가지고 있지
길을 잃은 채 살아가는데
누가 마술 같은 힘을 준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한 삶의 방식이지
제어할 수 없는
독립적인 마음
사람들 속에 길을 잃은 채 살고
고집스레 피를 흘리는
독립적인 마음
나 이제는 너와 함께 가지 않으리
멈춰, 그만 뛰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달라지는지
나 이제는 너와 함께 가지 않으리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 황윤기번역)
Chuva(비)
인생의 통속적인 것들은
열망을 남기지 않네
아프게 하거나 웃음을 짓게 하는
추억만을 줄 뿐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남은 사람들과
이름을 들은 기억조차
없는 사람들
간직한 열망에 대해
인생이 주는 감정들,
그대와 함께했던 것들,
잃어버리기 위해 끝내버린 것들
사람들의 영혼과 삶에
표식으로 남은 날들과
떠나버린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나
비는 나를 적셔
춥고 지치게 만드네
내가 이미 방황했던
도시의 거리들
아, 길 잃은 소녀 같은
나의 울음은
도시를 향해 절규하고
빗속에서 사랑의 불꽃은
순식간에 죽어버리네
비는 조용히
도시에 대한 나의 비밀에
귀 기울이고
여기 유리창을 두드리며
내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Sete Letras(일곱개의 글자)
-테레사 드 노로냐의 노래로 사우다드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음
사우다드는 아름다운 단어라네.
끝없는 슬픔이나 고마운 추억을 말해주는
포르투갈의 좋은 단어라네.
그것은 언제나
마음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묶여있네.
(중략)
만약 그대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사우드는 셀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지.
그러나 그대의 슬픔을 노래한다면
사우드는 나의 영혼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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