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대한 상념
김은영
남편은 칼에 관심이 많다. 박물관에 가면 철제 칼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일본 칼 장인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에게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하고는 한다. 유튜브에서도 칼에 대한 것들을 찾아 읽는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넓고 큰 집을 마련하면 벽에 장인의 칼들을 걸어두고 싶다고도 했다. 맥가이버 칼도 사이즈가 다른 것으로 몇 개쯤은 차에 비치되어 있다.
명절이면 동서는 우리 집 칼이 너무 안 든다고 난리다. 겁 많은 내가 시퍼렇게 선 날을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딱히 관리 해주지 않으니 잘 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잘 들지 않는 칼을 쓰면서 나는 삼남매를 키워냈고 집안 대소사를 잘도 치러내었다. 칼날을 믿기보다 내 힘을 믿고 칼을 써왔나 보았다.
남의 칼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우리 집 칼에는 관심이 없었던 거다. 자신의 손으로 사과 하나 깎아 먹지 않으니 집 칼날이 닳아도 알 게 무언가.
하도 칼이 들지 않는다고들 하니 명절이 다가오자 급하게 다이소에 가서 숫돌을 하나 샀다. 칼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칼을 갈아줄 것을 부탁했다. 집에 있는 모든 칼을 꺼내 갈았다. 무심은 해도 꼼꼼한 지라 칼날은 적당하게 잘 갈아 놓았다. 잘 갈린 칼날로 식재료들을 다루다 보니 은근 부아가 났다. 이렇게 수월하게 칼질 할 수 있는 것을. 그랬다면 손목과 손가락에 배구 선수마냥 파스 감고 살지는 않았을 것을.
잘 갈아 둔 것도 한동안 쓰다보면 또 둔해진다. 처음에는 신나서 잘 갈아주더니 이번에는 몇 번 지나가듯 칼 갈아 달라고 했는데 칼은 그대로다.
칼 좋아하는 양반! 칼날 좀 갈아 주. 칼갈기 귀찮으면 자동 칼 갈기가 달린 수저 통 사 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