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필사 한번 해봤습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인 만큼 내 나름 명문을 빨간 글씨로 표시해 봤습니다.
글 공부하는 여러분! 참고 하세요. (밑줄 친 부분은 저한테 좀 어렵다 생각되는 어휘입니다.)
숨어 있는 날개
방 소 윤
충남 강경 출생.
1991년 월간문학 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새는 날아갔을까.
버스 발판대를 내려서는 순간 새에 대한 궁금증이 시위를 벗어난 살처럼 스쳤다. 그건 얼굴에 와 닿는 눈송이의 차가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가 날아갔다면 눈을 흠씬 맞고 후미진 데서 필시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새삼 안타까운 섟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전 내내 끄느름하더니 눈송이가 날리고 있다.
도대체… 새는 어디서 날아왔을까.
날아든 새가 아무래도 꺼림하게 생각되는 건 어머니가 행방불명된 오빠와 새를 연결시켜 드러내는 불안의 전파에 까닭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이었다.
에구, 웬 사람! 어머니가 덴겁하듯 소리 지르는 바람에 나는 마루로 뛰어났다. 베란다의 동백나무 가지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온통 노란 색이고 목덜미께만 엷은 미색이었다. 푸르디 푸른 동백나무 잎과 노란 새는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어디서 날아왔지…
우리의 서름한 낯빛은 의아함이 아닌 괴이함을 무언중에 말하고 있었다. 처음엔 설레임이랄까 가벼운 흥분으로 한동안 떠들었다. 허나 날씨가 습한 여름날이면 지린내도 풍기는 가난한 연립주택 동네였다. 그런 고급스런 새를 키울 만한 이웃집이 없을 듯싶었는데 그럼 어디서… 로 의문이 이어져 가면서 어머니 눈에 서린 지나친 불안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에 온통 정신을 팔았다. 저 눈빛 좀 봐라. 살아 있는 것두… 죽은 것두 아닌… 지고하잖여, 웅얼거렸다.
지고하다고? 아련하게 뭔가를 뒤쫓고 있는 듯한 먼 눈빛이랄까, 어머니의 표현에 대해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무슨 조화속이라암…
어머니는 말끝에 은밀한 여운을 남겼다.
야야, 간밤의 꿈이 말여.
기어이 그녀의 음성은 막바지로 몰린 듯한 어떤 절박함에 이르고 있었다.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어머니의 잠재적 두려움은 가끔 흉몽으로 이어졌고 다음 날 내게 자잘한 주의사항을 늘어놓곤 했었다. 흉몽은 어머니의 미신적 두려움에 길들여진 상상일 것이라는, 이젠 비웃음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빨리 밥이나 하세요. 회사에 늦겠어요.
나는 어머니 어깨를 돌려 세워 앞으로 밀었다. 재빨리 어머니의 꿈 얘기를 막아버리기 위해서였다. 기실 안 듣느니만도 못할 것이었다. 어느 때는 공연한 환상에 시달리기도 하고 또 하루 종일 나를 짓누를지도 모를 흉몽에 지레 질렸다고 할까. 우연히 새가 날아들었다면 저 알아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시적시적 발을 떼며 뒤를 흘끔거렸다.
아침밥을 서너 수저 먹기 바쁘게 허둥지둥 구두를 신는 내 뒤에서 어머니는 기어이 꿈 얘기를 덧붙이고 있었다. 야야, 너 머릿살 젓겠지만 간밤 꿈에 늬 오래비가.
나는 현관문을 박차듯 밀치고 나와 힘껏 닫아버렸다. 뒤에서 어떤 유혹의 외침이 들려온다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기로 한 것은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때문인지 몰랐다. 처음엔 나타나지 않는 오빠 때문에 정신을 뺄 정도로 울고불고 하던 어머니였다. 일 년 넘어, 이제 시나브로 일상을 돌아보는 정도로 마음을 가다듬은 상태랄까. 그런 어머니가 다시 헝클어진다면 내가 어디론가 훨훨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짜증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새는 날아갔을까.
층계를 오르는데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주식 투자로 손바닥만한 시골 전답까지 날린 후 행방이 묘연한 오빠가 어머니의 꿈에 보였다는 것과 느닷없이 날아든 새는 거부감을 일으키면서 아무래도 불길했다. 오빠는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심한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자물통 구멍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짧게 울려 퍼지는 금속의 마찰음이 손끝을 타고 가슴에 파장으로 이어졌다. 그것을 단호히 밀어내듯 나는 현관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안이 조용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베란다로 면한 유리창 앞에 어머니는 등을 보인 채 오도카니 앉아 있다. 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모양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느낌이 푸르르 가슴을 휘저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짐짓 목소리를 나긋하게 굴렸다.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간밤의 꿈 얘기에 내가 귀 기울여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어머니를 또 서너살박이 계집아이처럼 토라지게 했을까.
옷을 벗으며 나는 몰강스럽게 투정을 부려보나 어쩌나 하는 망설임으로 속을 달쳤다. 망설임이 사실은 지독한 갈등이었다. 투정을 부린 후 어머니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위들 - 술 마시고 울며 불쌍한 것, 무지랭이 부모 탓에 제 힘으로 돈 좀 벌려다가 도망댕기는 신세가 되다니 - 때문에 나는 빈번이 지쳐버렸던 것이다. 아들의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나쁜 운으로 여겨주는 고단함. 빈껍데기뿐인 자신을 자책하며 멍들어가는 어머니였다.
그만두자.
쓴맛 단맛에 달통한 애늙은이가 되어 나는 별 수 없이 나를 추스렸다.
부엌에는 설거지통에 그릇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물이 유난히 뿌연 게밀가루가 풀어진 것 같았다. 나는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예감은 적중했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조그만 토우(土偶)가 보였다. 머리에 뿔이 달린 반인반수 형상의 괴물을 나는 망연히 바라보았다. 흉몽을 먹어치운다는 토우를 어머니는 흙 대신 밀가루 반죽으로 만들어 꿈자리가 사나운 날은 집안 구석구석에 놓았었다.
새참으로 라면을 끓이려고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 불을 켰다. 물이 끓을 동안 수돗물을 쏴아 틀고 그릇나부랑이를 소리 나도록 함부로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거품이 그득 일고 와그르와그르 소리 속에 씻겨지는 그릇들. 나한테 들러붙어 있는 소문도 이렇게 씻겨진다면 박경서는 다시 돌아올까.
김 상무 집까지 드나든다면서?
박경서의 이지러진 표정에서 나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을 보았다. 감내할 수 없는 슬픔과 굴욕이 가슴과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쿵쿵 북소리를 울렸다. 그 음성에 깃든 어조는 불에 벼린 칼의 매서움이 아니었다. 더러워서 물이라도 뿌리고 싶다는 차디찬 경멸이었다. 그는 내가 움켜쥘려고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허망하게 새어나가는 물 같았다.
그 느낌이 돌연 절실한 현실성을 띠고 나를 내리누른다. 허공에 대고 손의 물기를 탁탁 털어내는 일이야말로 나를 옭아맨 밧줄을 끊어내는 구체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냄비 뚜껑이 달싹거렸다. 라면 봉지 두 개를 뜯어 면을 물속에 가라앉히고 스프를 털어 넣은 후 다시 뚜껑을 닫았다. 곧 펄펄 끓는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점심이 시원찮았던 때문일까. 참을 수가 없다. 국자에다 덜 풀어진 건더기를 쬐끔 떠서 입에 넣었다.
쳇, 국자로 라면 퍼먹던 친데 말야.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달려들며 울리는 자동차의 경적처럼 오빠의 비아냥거림이 내 귓속에서 날카롭게 울렸다.
너도 알지? 오 선배.
라면을 국자에 조금씩 떠서 식혀 먹던 나를 오빠는 처량한 시선으로 보며 물었었다. 3년 전의 일이었다. 월말 회계정리로 늦게 퇴근해서 라면을 먹고 있을 때 오빠는 불쾌한 얼굴로 들어왔다.
시장통의 솜틀집 아들?
나는 그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오빠보다 3살 위이지만 군 소재지 상업고등학교의 선후배 간이라 시골 우리 집에도 가끔 드나들었다.
그치가 증권회사 대리라는 거야, 끗발 날렸더라구.
수저도 없이 국자로 라면을 먹으며 자취하던 선배가 서른다섯 평짜리 아파트에서 선녀같이 예쁜 각시랑 산다며 오빠는 비웃음 반 부러움 반 섞인 푸념을 했다. 그리고 밥상머리에 주질러 앉더니 오 선배 얘기를 계속했다.
오빠는 자신이 다니는 세무사 사무실 직원을 볼품없는 임시직장으로 쳤다. 연줄을 잡아 마땅한 중소기업체의 경리과를 노리는 중이라 오 선배한테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한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가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동창생 누구 누구를 대고 자신의 집에 모임이 있으니 꼭 참석하라며 뜻밖의 사업계획 운운으로 숫제 꼬드겼다는 것이다. 그 미끼에 솔깃해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별천지같이 해놓구 살더라. 커텐레이스가 미세한 바람결 같더라니까. 환장하겠더라고. 내가 군에 있는 동안 주가지수가 300포인트가량 상승했는데 오 선배는 순전히 주식투자를 해서 그런 번듯한 아파트를 샀다는 거야.
오빠 입이 잠시 씰룩거려졌다. 나도 믿기지 않았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열려라 참깨를 듣는 것 같았다. 아니, 어린 시절 머리 뿌리를 곤두서게 했던 도깨비방망이 얘기를 듣는 것도 같았다. 영화 장면에서나 가끔 보는, 웅장한 대리석 저택의 천정에 아스라이 매달려 있는 크리스탈등처럼 찬란한 빛… 서른다섯 평이 아니라 이하 평수조차도 우리에겐 그런 빛이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내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르자 오빠는 더욱 신명을 냈다. 우리도 주식투자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종이꽃(주식의 은어)은 아무나 피울 수 있는 꽃이 아니잖아요. 우선 돈 있는 사람들의 돈놀이일 수도 있고…
나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오빠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는 증권이란 뭔가, 자본주의 경제의 바로미터가 아니냐는 것을 서두로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부가 금융주를 준국민주로 부상시키는 것을 보라. 우리 같은 개미군단들이 꿍쳐둔 돈다발까지 산업에 투자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하므로 계속해서 증자가 있을 것이니까 열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주식. 그건 나도 알고 있는 경제용어였다. 오빠와 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나 국어보다 경제와 상업부기를 월등히 많이 배웠다. 건전한 증시는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재산증식 기회를 부여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 보다 용이한 자본조달 창구를 제공해 주며 적절한 통화 조절 역할까지 수행해 준다는, 지겹게 배워 뻔히 알고 있는 경제과목의 내용이었다. 오빠는 그 주식이라는 위험물질의 기본상식이 훤한 만큼 충동에 밀려 치닫는 욕구가 강렬한 모양이었다.
야야, 가령 말이다. 시골에서 곡식을 부쳐다 먹으면서까지 저축한다고 쳐 보자. 맥주로 입가심도 삼가고 여자 손목 한번 지분대지도 못하고, 몇 년 모아야 달팽이집만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할 것 같냐?
나는 재빨리 오빠 월급을 10배수 곱해 보았다. 그걸 다시 20배수로 곱했다. 한데…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발산하는 한기로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아득하다는 것, 그건 그래도 한발 뒤로 물러서는 느긋한 느낌이기도 했었다. 허지만 어림잡은 것임에도 계산된 세월이 머릿속에 기어들자 아득함의 너울이 순식간으로 벗겨지는 충격을 몰고 왔다. 그건 가슴을 저미게 하는 공포의 세월이었다.
기똥차지?
오빠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상체를 건들거렸다.
나도 서른다섯 평짜리 아파트를 사고 말 거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 허공에 대고 날렸다. 아파트 평수에 정신이 홀딱 팔린 것… 끝 모를 어두운 저쪽을 향해서 오빠가 첫발을 내디딘 시작이 그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까.
“들어오세요, 라면 먹게.”
라면에 찬밥을 말고 김치보시기를 얹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목청을 부드럽게 뽑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기다릴 짬도 없이 먼저 훌훌 먹어댔다. 한데도 어머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못해 다시 일어나서 마루로 나갔다. 어머니 어깨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그녀 어깨를 감쌌다.
“왜 그래요 또?”
행동과는 달리 내 음색엔 슬픔이 없다.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눈가에 눈물이 질척하게 번져 있었다.
“야야, 내가 나절가웃 다니며 집집마다 물어봤는데 새 키우는 집은 읎더라. 그리구 베란다 구석구석을 아무리 살펴봐두 쥐새끼 한 마리 들어올 틈도 없는겨. 게다가 창은 저렇게 꽉 닫혀 있었구. 암만 혀두 늬 오래비 말여. 분명 행려병자루다 죽은겨. 그 뜬귀가 저 새 아니것남.”
갑자기 견딜 수 없이 가슴이 막혀왔다. 서글픔이랄까 짜증이랄까, 아무튼 뒤틀리는 속이었다. 어머닌 이제 새로운 넋두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팔을 탁 내리며 일어나자 어머니가 내 두 다리를 감싸 안았다.
“늬 오래비가 편지루다 늘상 그랬잖여. 지 겨드랑이 죽지 밑으루 날개가 스물스물 돋아났다구. 새처럼 높은 데루 날아오를 수 있다고.”
어머니 기억력은 또 파괴되어 두서없이 아슴푸레해진 모양이다. 그전의 기억, 그후의 더 나빠진, 그래서 다달은 끝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새의 날개 부분 쪽에서만 맴도는 것일까. 그건 오빠가 보인 흥분의 절정이 어머니 의식에 섬광처럼 예리하게 박힌 채 찬란한 아쉬움으로 남겨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둠이 난분분 휘날리는 눈송이 틈새를 비집으며 밀려들고 있었다. 앞 동 어느 집 창에 불빛이 반짝 어렸다. 어둠까지 부숴내는 그 붉은 빛… 주식시세의 상한가 표시인 붉은 화살표가 방사하는 빛은 바로 환희였다.
오빠와 나는 결국 주식투자자가 되었었다. 몇 년 동안 부은 내 적금과 오빠가 시골 어머니한테 구구절절이 내용을 적어 밭 한 뙈기 처분한 금액으로 투자한 주식 값이 마구 치솟았다. 첫 출발이 근사한 운으로 뻗어나갔던 것이다. 상승에 상승을 거듭했다. 텅 비었던 가슴 속에 희열이 그들먹하게 차오를 정도였다.
그해 삼월은 그렇게 현란했다. 누가 삼월에 춘이라는 면류관을 씌워 주었는지 모르겠다. 춘삼월은 확실히 봄의 한가운데였다. 꽃이 만개하기 직전의 터질 듯한 긴장의 아름다움, 활화산대에 접근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시세판이 온통 붉은 빛으로 타오르면 타오를수록 헐떡이며, 더, 더, 속으로 외쳐댔다. 걸음을 떼어도 허뿐하게 가벼워진 몸은 나비처럼 나풀대기 마련이었다. 오빠의 개실개실 풀어진 눈알… 그건 물살처럼 번져든 황홀감일 터였다. 눈부신 날갯짓을 퍼덕이는 새처럼 오빠는 양팔을 활짝 펴서 방안을 빙빙 돌았다.
그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뎠다. 훔훔한 표정을 지으며 수시로 자랑스레 편지에다 떠벌렸다.
- 어머니, 이대로 잘만 되면 전세방 신세 면하고 아파트 열댓 평짜리라도 장만하는데 한두 해밖에 걸리지 않겠습니다. 제 날개가 더 쑥쑥 자라면 내년 가을쯤엔 누이 시집보내자고요. 혼수감을 몽땅 장만해 줄 겁니다. 혼수감이 시시하다고 시부모한테 구박받는, 참 이상한 세상이잖습니까. 또 신랑자리들은 어떻구요. 모두 눈이 벌개가지고 기왕이면 부잣집 딸을 밝힙니다. 누이가 지금 어떤 줄 아세요? 얼마나 잘난 남자인지 모르지만 회사 내 누군가를 사모하는 통에 버쩍 말라서 보기 싫습니다. -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겨났던지… 돈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상당한 여유가 생기자 먼발치에서 주눅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박경서에게 나는 과감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갈들렸던 우아한 옷차림, 우아한 식사를 즐겼다. 같은 목표를 향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보기 좋은 연인의 모습, 그것을 나는 꿈꾸었다.
그럴 즈음 오 선배가 우리에게 슬쩍 귀띔을 했다. 투자금액의 1.5배까지 융자해 주는 신용 거래를 이용해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 오지랖 넓은 듯한 귀띔이 솜사탕처럼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 가슴은 탱탱하게 부풀며 억제할 수 없는 몽상이 소용돌이쳤다. 안전성의 파괴… 오빠와 내가 현재의 찌들은 궁핍에서 벗어나려면 모험에의 도전을 위해 안전성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는 몽환성에 빠져 들어갔다.
허나 그 반기를 들 한 치 앞에서 나는 되돌아서고 말았다. 확률이 가져다주는 확률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건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빈틈없는 계산이지만 여유가 없는 형편에서 그 확률이 가져올 극도의 위험성에 나는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어떤 모험을 할 때 성공 비율이 99:1이면 사람들은 그까짓 1%쯤이야 하고 우습게 여기지만 천만에였다. 그 1%의 위험확률은 하필이면 나한테 발생할 확률이 99%인 것에 유의하라, 라는 경제의 데데한 논리가 내 발목을 자꾸 비끌어맸던 것이다. 종이꽃이란 뭔가. 꽃을 피우지 못하면 말 그대로 종이에 불과하므로.
그렇지만 그 모험이 오빠에겐 달랐다. 그의 투지에 불을 붙여 밀어대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팽배해 가는 욕망이 그 모험을 거침없이 끌어당기는 모양이었다.
오빠의 논리는 나와는 딴판이었다. 공격적 투자가 모험이라면 포기하는 것도 모험이다. 왜? 포기함으로써 나는 평생 번듯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기 힘들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주식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종이꽃이 지닌 향기를 맡을 줄 아는 후각도 지녔잖은가. 이번 모험이야말로 내 삶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 이런 최면 상태에 빠져 오빠는 선택을 선택했다. 오로지 자신이 경영주이고 기획실장이고 담당사원이고자 했다.
“나허구 시방까지 눈맞춤혔다. 봐라, 지금도 날 보잖여. 이눔이 필시 몹쓸 짓을 한겨. 작년 이맘때쯤 다락겉이 오른 집값 때문에 지 목숨 끊은 사람 한둘이 아니었잖여. 저 새가 늬 오래비 뜬귀여.”
기어이 어머니가 꺼억꺼억 하는 울음소리를 뱉었다.
그때였다. 맞은편 어는 창문을 마악 밝히는 또 하나의 불빛에서 어떤 느낌이 내 이마를 때렸다. 마치 흰빛과 푸른빛을 함께 연소하면서 낙하하는 별똥별의 찰나적 스침처럼.
새… 그건 오빠의 암호가 아닐까. 오밤중에 어떤 기구를 사용해 올라서서 2층인 우리 집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고 새를 들여보내 나한테 암시를 주려 한 것이 아닐까. 숨어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새처럼 꼭 날개를 달아보고야 말겠다는…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어머니, 새 먹이 뭣 좀 주었어요?”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뭘 줄 게 있어야지. 좁쌀하고 푸성귀 한 모숨만 사와야것다. 내일은.”
내일은 새 집을 사야 할 것이다. 나는 당장 좁쌀과 푸성귀를 사와야겠다고 서두르며 지갑을 들고 나섰다.
밖은 세찬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상가 쪽으로 향하던 나는 혹시나 하는 또 하나의 스침 때문에 주택 뒤켠으로 가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우성치듯 휘날리는 눈발과 바람뿐이었다. 살 속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첫눈치고는 매서운 추위였다.
삼 년 전, 그해 겨울의 지독한 추위가 생각났다. 그때 오빠를 지켜보던 내 심장까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잔인했던 그해 4월부터 꽃샘바람이 유난하기는 했었다.
4월 1일. 만우절답게 주가지수는 증시사상 최고치에 올라섰다. 그 날이 정점이었다. 다음 날부터 마치 어제가 만우절이었다는 것을 약올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한풀 꺾기 시작했다. 그래, 쉬어 가는 것도 좋지. 내일의 발 빠른 행보를 위하여. 오빠는 그렇게 느긋했다. 아침마다 구석구석 읽는 경제 신문의 기사도 조정기를 맞이했다는 평이었다. 그렇지만 만개한 꽃이 시들 듯, 가랑비에 옷 젖듯 주가는 빠져나갔다. 그래도 뛰어난 연금술사인 오 선배의 능란한 분석이 담긴 조언 - 잔망 떨지 말고 기다리라는 -을 오빠는 불씨처럼 가슴에 담았다.
하지만 주식은 계속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신용으로 사들인 주식의 이자만도 매월 13%씩 꼬박꼬박 물어야 했다. 계속 손해를 보면서도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아 이자를 지불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글거리는 태양 아래서도 오빠는 추위를 타 몸을 옹크릴 정도였다. 그의 입 안이 바짝바짝 타는 소리, 겨울의 모진 삭풍에서도 진땀이 흐르는 소리, 그런 것들이 내 귓전에 울릴 정도였다. 손해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매 시간 매 분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미끄러져 오빠는 거덜충이가 돼 가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오빠와 박경서와 김 상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시작한 건. 박경서와의 달콤함에 나는 함뿍 젖어들었는데 김 상무에게 상상도 못했던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행여 박경서가 오해할까 봐 두려웠다.
어찌된 일인지 김 상무는 내가 은행에 갈 때 그의 개인 통장을 맡기며 현금 인출을 부탁하곤 했었다. 동그라미가 하도 많아서 대변에 단위를 읽어내는 내 능력으로도 한참 세어야 하는 금액이 통장에 입금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돈 봉투를 들고 상무실에 들어가면 수고했다며 꼭 차를 대접했다. 비서의 사시 눈초리에 나는 초연할 수만은 없었다. 한사코 사양했다. 김 상무의 권유 또한 막무가내였다.
… 은행에 잠자고 있는 김 상무의 돈. 얼마동안만 빌려 쓸 수 없을까.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 해 겨울 밤, 한강다리의 가로등 불빛들이 낭자하게 풀어져 흐르던 수면에서 오빠가 받은 예의 신비력이랄까, 나는 그것을 지금도 이해하지는 못한다. 오빠가 녹초가 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왜 새를 한 마리 샀으며 왜 한강변을 어슬렁거렸는지 잘 모르겠다. 추측컨대 증권시장의 활황기는 물건너 갔다는 조롱의 메아리를 오빠의 무의식이 좇았던 듯싶었다.
야야, 한강다리의 가로등 불빛들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동차들이 뿌리는 헤드라이트가 물살에 번져서 도깨비불처럼 우출우출 춤을 추더라. 떨칠 수 없는 붉은 빛의 망령이었을까? 아냐, 분명 수면이 점화를 시작한 시세판이었어.
오빠는 넋을 놓고 주절거렸었다. 주가가 곤두박질하면 할수록 자율반등의 기대감은 더욱 단단히 또아리를 틀기 마련일 것이었다. 장기간 하락에 지치고 지쳤으면서도 상승에 대한 주술적 기원이 환각을 일으켰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어디서 돈 좀 꾸어 올 수 없겠냐? 너 퇴직금 담보로 잡고 가불할 수도 있지?
오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밤에 창으로 전달되는 하늘의 구도에서 농밀한 빛을 발하는 별들의 붉은 빛까지 시세판으로 견주며 그는 넋 나간 듯 횡설수설했다. 와아, 시세판에 불이 붙었다, 이러며.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던가. 궁하고 더욱 궁해지자 내 용기가 스르르 움직였던 것이다. 마침내 김 상무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얼마동안만, 이자는 드리겠다, 를 창피스러움 때문에 간신히 말했다.
뜻밖에도 그는 껄껄거렸다. 흔쾌히 통장을 내밀며 필요한 만큼 꺼내 쓰리고 했다. 그리고 의외의 말을 보탰다. 공부 더 하고 싶지 않소? 순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뜻을 이해하는 데 수 초로 충분했다. 안색이 저절로 굳어졌다. 아뇨. 그의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선심을 사양코자 나는 얼른 돌아섰다. 허나 문손잡이를 비틀 때 내 뒷덜미를 나꿔채는 그의 또 한마디가 뒤따랐다. 공부해요, 하고 싶으면.
며칠 후였다. 엉뚱한 착점에서 수순을 풀어 순식간에 판도를 뒤집는 바둑판의 묘수나 불가능한 위치에서 날리는 통쾌한 오버헤드킥처럼 오빠의 환각은 현실로 나타났다. 재무부장관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식을 무제한 사들이겠다고 떠들썩하게 발표했다.
소멸과 동시에 생성하는 종이꽃의 즉흥성. 힘찬 화살이 되어 세상천지를 떠돌다 더 높이 솟는 축제성. 오래 참고 기다린 것은 존엄하기조차 했다. 종이꽃은 자신처럼 최후까지 버티는 자만이 피울 수 있을 것이라며 오빠는 흥분으로 날뛰었다.
다시 오빠는 날개를 펴고 웃음을 흔전만전 흘렸다.
허나 나는 달랐다. 김 상무에게 진 빚에 대한 소문이 박경서의 귀에 흉하게 돌까봐 공연히 발이 저릴 지경이었다. 김 상무는 상처하고 국민학생인 두 자녀와 사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나한테 슬쩍 던졌던 선심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만약 박경서와의 애정에 영향이 미친다면… 그 초조감으로 나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빠의 구좌에 투자 원금이 채워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증시가 살아났으므로 과감히 주식 일부를 처분해서 김 상무에게 진 빚을 갚고 말았다. 오빠는 내가 퇴직금을 담보로 회사에서 임시 대출받았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야야, 아파트는 고사하고 일 년 만에 투자액의 절반 넘게 까먹었어. 한국은행의 발권력이라는 것까지 동원해서 증시를 살리겠다는데 이 기막힌 기회를 놓치라는 거냐! 집값은 어떤 줄 아니? 배나 뛰었어. 배나!
뛰어라, 아니 차라리 날아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꿈에는 아예 매달리지 못하도록.
나는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연극적인 기분이 되어보는 체념. 체념했을 때의 편안함 때문일까. 오빠의 질긴 욕망에 나는 돌연 넌더리가 났다. 그래서 끝내 냉정을 지켰다. 오빠가 종당엔 이상한 험담까지 입에 담았다.
부동산 투기의 제일 큰손이 누군 줄 아내? 바로 느네 기업야. 은행돈 대출해다가 공장 부지네 사무실용이네 온갖 명분을 붙여서 마구잡이로 땅을 사들였잖아. 수출해서 돈 번다고? 웃긴다. 새우젓까지 수입해서 구멍가게를 넘보지 않나. 허니까 우리 같은 개미떼는 평생 땀 흘려도 시르죽을 수밖에.
엉뚱한 적의의 감정까지 세우는 오빠와 나는 당연히 버성겼다. 냉기류만 가로 놓여졌다.
쌀가게에서 좁쌀을 한 홉 샀다. 그리고 상추도 한 단 사들고 나는 집으로 행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혹시 오빠가? 이 예감으로 어머니가 받을까봐 방으로 종종 내달았다.
“아, 집에 있었군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뜻밖에도 김 상무였다.
“웬 일이세요?”
나는 갈라진 음성으로 저항을 암시했다. 허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정중한 인사말로 내 저항을 교묘히 묵살했다. 그리고 아침나절에 부탁한 돈을 은행에서 찾아다 놓았는가를 물었다.
“미안하지만 사무실로 나와서 좀 꺼내줄 수 없겠어요? 급히 써야할 데가 생겨서 그래요.”
나는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그는 모임이 길어져서 사무실에 들르질 못했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돈은 오늘 꼭 인출해야 했다며 간절하게 부탁을 해왔다.
토요일, 눈보라치는 밤에 맡겨논 돈을 핑계로 사무실에 나와 달라고 하는 간절한 부탁이야말로 또 하나의 구체적인 기안이 아닐까. 치밀하게 계획하고 예정대로 한치의 어긋남 없이 진행시키는 그의 접근… 내 감정의 원추곡선을 따라 반감이 뾰족하게 일었다.
삼 개월 전에도 그는 그랬다. 그 날은 퇴근하기 막 전이었다. 사무실로 전화를 해 운전기사를 보낼 테니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좀 갖다 줄 수 없느냐고 했다. 현금과 통장, 도장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 돌담 안에 있는 그의 집은 하나의 성채 같았다. 한낮인데도 골목엔 노는 아이들이 없어 한적할 정도였다. 육중한 철대문 옆의 쪽문이 열렸다. 정원석으로 축대를 쌓은 계단을 오르니 아,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드넓은 정원의 아름드리 묘목들. 가지가 찢어질 듯 매달린 감과 모과나무에 시선을 박은 나는 알 수 없는 느낌으로 가슴에 박동이 있었다. 감당키 어려운 상실감이랄까 허허로움이랄까. 내가 지니고 있던 티끌까지도 누군가에게 빼앗긴 듯한, 절대빈곤자의 궁상스러움이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에 들어섰다.
현금 봉투를 김 상무에게 전하고 내가 돌아서려 하자 그는 굳이 차 마시고 가길 강요했다. 내가 고집을 피우며 그냥 가려 하자 그는 화를 냈다. 손목을 잡아당기며 어깨에 팔을 두르듯 강제로 끌어들였다. 별 수 없었다. 소파에 앉아 살아가는데 이토록 많은 장식품이 필요한 건가, 라는 의구심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릴 때 주방 쪽에서 낄낄거리며 함부로 떠드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저 여자야? 좀 촌스럽게 생겼다. 그래서 오빠가 좋아하나부다. 살림이나 하고 애들 키워 줄 여자로. 암튼 팔자 피는 거지 뭐. 숨어 있는 황금 날개를 달게 될 텐데.
처음엔 어리둥절해졌다. 누구? 나? 이런 의문으로 주방 쪽에 눈길을 돌렸다. 착각일까. 찻잔을 받쳐 들고 나오던 젊은 여자의 눈길이 움찔 돌아서는 것 같았다. 내 의식 속으로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불쑥 뛰어들었다. 나는 태연해야 했다. 여자들의 조심성 없는 낄낄거림은 바람 소리처럼 내 귓전을 스쳤을 뿐이니까.
허나 며칠 후부터 사내에서 소문 하나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김 상무 집에 은밀히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나와 그 외엔 모르는 일인데 누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최초로 흘러나왔을까. 운전기사?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비서 못지않게 운전기사의 입은 윗분의 품위를 위해 완강히 닫혀져야 하는 의무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측은 간단했다. 김 상무, 바로 그가 아닐까 싶었다. 이를테면 그가 내게 맡겨논 통장은 일차적으론 나에 대한 홍보용이었고 다음엔 그런 소문을 퍼뜨리기 위한 미늘인 셈일 것이었다.
소문은 무서웠다. 옥상에서 마주 선 박경서는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누르는 그런 표정이었다.
김 상무 집에 드나드는 것을 그렇게 유난스레 떠벌리는 저의가 뭐야? 나한테 접근하는 재주도 비상했지만 중늙은이를 현혹시키는 구걸 행각도 남다른 모양이지?
그는 내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팔짱을 긴 채 웃음까지 띠었다. 그렇게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내 자존심을 제쳐놓고 나는 허겁지겁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터무니없음을, 오해임을 호소하려고 했다. 그는 느긋하질 못했다. 내 손을 왁살스럽게 떼어내고 입가에 비웃음까지 얹힌 채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가방을 걸치고 나오며 어머니한테 적당히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상추를 잘게 다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걷다가 상가 귀퉁이에 있는 선술집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멈칫거렸다. 혹시 오빠가 안에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함 때문이었다. 그는 증시 비극의 최고 정점인 깡통계좌 정리 때 매일 술독에 빠져 비틀거렸다.
아직도 지난 일을 아무 동요 없이 되새김할 수가 없다. 여전히 가슴에서 주먹만한 돌덩이가 올라와 목줄기를 막는다. 지극히 미력한 최초의 진동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오 선배? 오빠?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느 곳의 아퀴가 맞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분명 모든 것의 아퀴가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기의 다른 기승전결로 빗나가 끝나버린 것이다. 나는 숨을 컥컥거렸다. 머리끝까지 치솟는 울화는 오빠에 대한 것인지 증시 정책에 대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 마구잡이로 기업공개 된 주식의 폭포수 같은 물량에 대하여 일말의 두려움은 갖지 않고 기대감에만 잔뜩 부풀어 있었던 오빠에 대한 반발이 더 강할 터였다.
재무부장관의 발권력이란 것에 매력을 털지 못하고 오빠는 나 몰래 어머니한테 호소하는 편지를 띄운 모양이었다. 그 동안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불줄기가 사그라들기 전에 도전하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 것이라고 어쩔 수 없이 투자전략의 대 전환은 불가피하므로 밭 한 뙈기 남은 것 팔아서 어머니를 아예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했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병사한 후 마음 기댈 곳을 잃어버려 안절부절 못하던 어머니는 아들 말을 믿고 따랐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허나 증시의 자율화에 역기능을 가져온다는 그럴 듯한 합리화 때문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주식은 모란꽃처럼 미련도 없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술술 빠져나가는 모래시계 같았다. 게다가 정책적으로 추진된 기업과 증권사들의 증자액이 부동산 투기자금이 됐다고 신문기사까지 요란했다. 그런 과정에서오빠가 품게 된 적의는 엇나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최후의 일원마저 기업의 투기자금으로 교묘하게 빼앗겼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랄까. 그런 원망으로 자신의 붕괴의 책임을 오로지 증시정책이나 기업 쪽으로 돌렸다.
투자자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해서 외상으로 사들인 신용담보비율이 100%를 밑돈 깡통계좌 정리는 큰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말았다. 그것을 계기로 오빠의 비극은 더 고조되기 시작했다. 간간이 강제정리를 반대하는 칼부림이 객장에서 발생했다는 신문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을 조렸다. 허나 증권사 측도 성질이 그렇게 사나운 고객은 정리를 기피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을까.
결국 오빠는 격렬한 시위대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선동적으로 소리치면서 매매주문용 단말기를 도끼로 파괴했다. 시세판도 꺼버렸다. 그러나였다. 오빠는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하루살이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큰손들은 정리대상에서 제외시켜 주면서 오빠 같은 소액투자자만이 결국 희생양이 돼 가고 있었다. 원칙을 내세워 그의 계좌를 끝내 깡통으로 처리하려는 오 선배에 대한 오빠의 감정은 배신감과 분노가 어우러져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였다.
정해진 일련의 순서처럼 다가오는 오빠의 힘겨운 함몰. 마치 나무토막에 매달려 풍랑 속을 표류하는 듯한 그 낱낱의 어려움을 읽어내면서도 나는 차라리 오빠의 끝을 기다렸다. 아니, 대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 안에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그런 자세라고 해야 옳았다. 오빠를 위해 또다시 김 상무에게 아쉬운 손을 내밀어야 될지 모른다는 압박감 때문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허나 오빠가 나한테 청각이라는 감각기관이라면 박경서는 시각이었다. 사랑에 눈이 떠졌을 때, 그 들뜬 신열에 청각은 얼마나 강도가 약해지는가. 예컨대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그럴 듯한 비유야말로 나한텐 가장 적절했다. 박경서가 결혼상대자로 선택할 가치가 있는 남잔가. 누구에게 보여도 좋을 만큼 인물이 훤하든지, 요모조모 재보고 굴려보는 그런 시선도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저돌적으로 활약하여 욕심나는 눈부신 노획하듯, 그에 대한 애욕이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휘날리는 눈발이 얼굴을 마구 때린다.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편지 한 장 없고 아무도 그를 본 친구조차 없다.
오빠가 언젠가 돌아온다는 기다림을 어머니 가슴에 품어주기 위해 나는 얼마나 수없이 그녀 귓전에 거짓말을 속삭였는지 모른다. 가끔 인편으로 연락이 와요. 일이 잘 해결되는 대로 돌아오겠대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만 그러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꽤 있어요.
그런 거짓말은 무리한 작업과 같다고 할까. 말할 때마다 선뜻한 찬바람이 가슴 속을 푸르르 휘젓듯 맴돌았다. 밤마다 어머니 곁에 누워 창으로 이따금 꼬리를 길게 그리는 유성을 꿈꾸듯 보며 오빠의 돌아옴을 꿈꾸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할까.
우연히 한번 맛본 단맛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오빠가 가출하기 하루 전이었다. 선술집에서 포렴을 들추고 나오던 그와 내가 마주쳤다. 그는 반갑게 다가들었다.
야야, 나 깡통은 안 차게 됐다.
오 선배가 봐줬어?
그 자식, 날더러 객장에서 극락 맛을 봤으면 지옥 맛도 볼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오금을 박아버리더라. 두고 보라지.
그럼, 무슨 수로?
나는 궁금증이 흥건히 배 있는 표정을 지었다.
거, 왜 터무니없이 맹랑한 돌발변수라는 게 있잖냐.
오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급성중이염에 걸려 있었다. 병원에 가서 치료 받으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오 선배한테 전화를 걸어 일종의 암호 비슷한 경제용어만 쓰며 상황 변화를 묻기도 하고 특혜를 달라고 어르기도 했다. 당신 말야, 광맥을 찾은 기회주의자까진 좋은데 개미 창자까지 빼먹으려 들었다는 것만 알아둬. 정보라고 나한테 준 것은 순 엉터리뿐이었잖아. 이렇게 윽박도 질렀다는 것이다.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오빠는 지그시 노려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치료를 해주면서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는 직업을 가진 모양이죠? 하고 물었다. 그 음성을 뭐랄까, 미심쩍음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 세무사 사무실에 나갑니다. 오빠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야야, 일이 어떻게 꼬여들었느냐면 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오판했다 이거야, 나방이 어둠 속에서 촉각으로 날아갈 방향을 찾아내듯 내 본능적 감각이 의사의 두려움이 뭔지 간파할 수 있었지. 우리의 속물 주파수가 일치한 셈이야. 글쎄 대학생 자녀들의 주소를 지방으로 옮겨 땅을 마구 사들였더라니까. 미등기 전매도 해서 차익을 엄청나게 남겼고. 내가 엄벙뗑 입을 놀리면 그치가 삽상한 눈웃음을 치며 주머니에 지폐를 찔러주더라구. 거드름 피우던 놈은 더 후끈 달아서 돈을 다발로 쑤셔넣는 거야.
미쳤수 오빠!
나는 주먹으로 오빠 등을 쳤다. 그는 입귀를 몽땅 허물어뜨리고 조소를 날렸다.
난 그치한테 으름장 한번 안 놓았어. 착각은 자우라며? 공짜로 주는 국물 얻어 먹는 건 아무 죄도 안 돼. 도둑놈들.
오빠는 울컥 올라오는, 누구에게인지 모를 혐오감 때문에 고개를 쳐들었다. 시야 가득히 별이 보였다. 아스라한 곳에 다닥다닥 박혀 있는 별빛들이 말갛게 살아나고 있었다. 한데도 가슴은 한없이 암울해졌다. 무리지어 파문지듯 흐르는 별빛에 시선을 매달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듯 가쁜 숨소리를 뿜으며 훠이훠이 걸었다.
그때였다. 정말 별이 눈에서 몇 십 개쯤 튀어나왔다. 누군가 내 얼굴을 주먹으로 냅다 갈겼다. 떨어지는 별을 손바닥으로 싸고 주저앉으며 오빠의 옆구리, 가슴, 배로 무지막하게 날아드는 낯선 사내들의 발길질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오빠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모질게도 발길질이 그의 넓적다리와 엉덩이를 습격했다. 그리고 소리 지르는 나를 향했다. 하도 급작스런 일이라서 지독한 공포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듯싶다. 깨어 보니 우리 방이었고 머리맡엔 오빠의 글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
- 당분간 집에 안 들어오겠다. 공짜 국물 얻어먹고 된밥 왕창 물어낼까봐 그런다. 걱정하지 말아라. 숨어 있는 내 날개를 반드시 찾아서 달고 오겠다. 어머니한테는 네가 알아서 이야기를 꾸며봐라. -
눈송이는 더욱 굵어져 있었다. 나는 선술집 포렴을 슬쩍 들추고 안을 기웃거렸다. 역시였다. 아무리 사방을 휘휘 둘러보아도 오빠는 보이지가 않았다. 술과 담배연기 냄새만 역겨울 뿐이었다. 이맛살을 모으며 고개를 돌리는데 저만큼 웬 사내가 가슴을 움켜잡고 숨넘어가는 기침을 뱉어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음색… 귀에 설지 않다는 다급함으로 나는 뛰었다. 그리고 사내 얼굴 밑으로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내의 붉게 충혈된 눈, 입에 허옇게 엉겨 붙은 침버캐, 더부룩한 수염. 으음… 신음 소리와 함께 나는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새는 날아갔을까.
눈보라 속을 걸으며 얼굴로 들이친 눈과 섞인 찝찝한 액체를 나는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회사에 당도했다. 수위가 김 상무의 연락을 받았는지 경리실 문을 열어놓았다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상태라 층계를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 올라가다가 나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위에서 박경서가 내려오고 있었다.
등등… 혈관이 일제히 여울을 치며 급박하게 휘돌았다. 그 와중에도 눈보라 때문에 퍼렇게 소름이 돋아 있을 얼굴이 걱정되었다. 나는 눈가루를 털어내는 시늉으로 얼굴을 누르고 검게 죽어 있을 입술을 깨물었다. 박경서가 계단 두 개 위에서 걸을을 멈칫거렸다.
“이렇게 늦게 퇴근하세요?”
나는 간신히 입을 떼었다.
“자금부라는 데가 그렇지요. 기업주가 2세들에게 미리 나눠줄 떡을 좀 맡아서 찌느라구요. 공개를 앞두고 있는 계열 기업주식을 공모예정가격보다 싼값으로 2세들이 사들이게 하는 작업 말이요. 나중에 공개되면 그들은 시세차익으로 숨어 있는 황금날개를 달게 되는 것 아뇨. 그것을 사는 일반 투자자들은 까딱하면 죽을 쑤는 거구요. 그나저나 웬일예요, 이…밤에?”
그는 음험한 시선으로 새삼스레 경어를 꼭꼭 붙였다. 나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는 사나운 눈길로 내 전신을 거칠게 훑었다.
“깃을 줏으러 왔어요? 상무실에 불이 켜 있던데!”
구두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그가 뛰어 내려갔다. 긴 여운을 남기며 여러 갈래로 퍼지는 공명음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마른침이 내 목젖을 아프게 때리며 밑으로 쑤셔 박혔다.
머리꼭지가 핑글 돌았다. 최고치에 이르는 슬픔의 절정은 어떤 기분일까. 심장이 통째로 내려앉는 울림 끝에 온 몸이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 아닐까. 축 늘어진 어깨는 천근 무게였다. 몸은 지독히 추워서 그대로 얼음으로 얼 것 같았다.
경리실은 불까지 켜져 있었다. 나는 기신기신 다가가 캐비닛 앞에 이르렀다. 비밀번호를 암기하고 있는 손끝은 여지없이 행해지는 반작용으로 번호를 맞추며 돌아갔다. 문을 활짝 열러, 다시 그 안의 금고 비밀번호를 돌리고 속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습관대로 지폐허리를 묶은 줄을 풀어내고 오른손에 지폐다발을 펼쳐들었다. 고액권인데 한 장이라도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궁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4장씩 세면 25개가 돼야 했다.
나는 오른손을 곧추세워들었다. 눈앞에 활짝 펼쳐진 빳빳한 지폐의 날개… 오빠는 그토록, 한사코 달고 싶어 하는 숨어 있는 날개를 언제나 찾아 낼 수 있을지.
새는 날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