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출산 주차장 |
09 : 00 |
베틀굴 |
13 : 11 |
바람폭포 갈림길 |
09 : 11 |
마애여래좌상 |
13 : 25 |
구름다리 |
09 : 45 |
용암사지 삼층석탑 |
13 : 57 |
사자봉 |
10 : 37 |
구정봉(705m) |
14 : 28 |
경포대삼거리 |
11 : 01 |
헬기장 |
15 : 01 |
천황봉(809m) |
11 : 20 |
미왕재(억새밭) |
15 : 10 |
삼장법사 바위 |
11 : 40 |
도선국사비각 |
16 : 00 |
점심식사 |
12 : 00 |
도갑사 |
16 : 14 |
남근바위 |
12 : 47 |
주차장 |
16 : 20 |
<불타는 열정>
불타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을 간직할 것이다.
이들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미래가 얼마나 암담하든,
늘 열정으로 스스로를 격려할 것이며,
자신의 열정이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천빙랑의 ‘나를 이끄는 목적의 힘’중에서 -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꽃 벚꽃과 월출산의 만남>
<건강하고 즐거운 귀연산행>
<봄꽃 터널을 지나는 산꾼들>
<건축중인 천황사>
<師子寺 목탑지>
월출산 아침 풍경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진경을 연출한다. 주차장에서 벚꽃 사이로 보이는 기암절벽과 암봉들은 월출산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검게 비춰야할 바위들이 조금은 옅은 색으로 봄꽃들과 앙상블을 이루고 생기가 물씬 나는 대자연의 조화는 호남의 명산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목탑지를 둘러보고 예전 천황사라는 근거도 없던 절 이름에 의아해하던 궁금증이 풀렸다.
사자사 목탑지의 발굴 조사에서 명문이 출토되었는데 고려시대 대각국사 비문에 보월산(寶月山) 사자사(獅子寺)라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기와가 출토된 목탑지는 크기가 10.5~10.8미터의 정사각형을 이루며, 계단과 법당지로 보이는 건물터 그리고 기와와 청자편, 철못, 청동화문편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사자사지의 목탑유구는 기단과 초석들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조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바람폭포 갈림길과 사자사 목탑지를 지나는 길목은 갖가지 수림들이 길손들과의 만남을 반긴다. 푸르른 상록수림과 대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식재되어 식물원을 연상시킨다.
<사자사지>
<사자사지 출토 유물들>
<월출산 구름다리>
<장군봉>
<월출산 구름다리와 사자봉>
경사가 심한 비탈길과 바위들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월출산의 비경 구름다리를 만난다. 매우 높은 고도에 설치된 구름다리는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등산객들의 사진 촬영지로 안성맞춤이다.
장군봉을 바라보고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통한 계단 오르기는 스릴과 주변 조망을 보는 산행으로 으뜸이다.
경사도가 매우 심하지만 사다리를 잘 붙잡고 오르면 안전하게 지날 수 있다. 바로 옆에서는 사자봉 암벽을 오르는 자일 타는 산꾼들의 모습이 점으로 나타나 장관을 이룬다.
선등자의 밧줄 깔기와 후등자의 로프에 의지한 마운틴 클라임의 진수를 눈으로 보니 그 즐거움이 대단하다.
사자봉 옆 조망터에서 강진쪽 암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좋은 자리를 선점한 젊은 아낙의 수육 보쌈 한 움큼도 산길 노정의 여유와 행복으로 다가온다.
사자봉 언덕을 넘어 우회로를 타면서 보이는 남쪽 월출산의 비경도 대단한 포커스를 자랑한다.
또한 아래로 보이는 장군봉과 구름다리의 화려한 모습 그리고 영암 쪽에 펼쳐지는 파란 평야의 곡창지의 기하학적 아름다움도 시야에 촉촉하다.
멀리 영산강 하구와 나주평야의 드넓은 평지의 끝없음이 평화롭고, 지난 번 갔던 수인산의 모습과 천관산 그리고 멀리 두륜산의 자태가 시야에 들어온다.
<사자봉>
<바람폭포>
<사자봉>
<영암들판>
<월출산 기암>
<월출산 기암과 미봉 1>
<사자봉>
<월출산 기암과 미봉 2>
<월출산 기암과 미봉3>
<월출산 기암과 미봉4>
<월출산 기암과 미봉 5>
<월출산 기암과 미봉 6>
<월출산 암릉>
<천황봉의 위용>
<월출산 기암과 미봉 7>
사자봉을 지나 경포대 갈림길에 이르니 남쪽 무위사 방향의 경치가 가물가물하다. 파란 차밭의 정교한 안정감과 고도감을 느끼게 하는 향로봉과 월출산 천황봉의 안정감도 찌릿한 감동의 전율로 다가온다.
사방을 둘러보고 아래를 내려다 봐도 시선을 멈출 수 없다. 천황봉과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날카로운 능선과 칼날 같은 첨봉을 머리에 인 봉우리들의 합창 또한 월출의 자랑이다.
천황봉을 보며 오르는 산길에서 구정봉과 향로봉 그리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월출의 장엄한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월출산 기암과 미봉 8>
<천황봉을 오르는 산꾼들>
<월출산 기암과 미봉 9>
<월출산 기암과 미봉 10>
<경포대 하산길 계곡
<봄의 전령 얼레지>
<통천문>
<월출산 기암과 미봉 11>
<수많은 암봉과 비경이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월출산>
조망터를 지나 북쪽 벼랑을 계단으로 오르면 통천문이 열려 있다. 통천문은 천황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의 바위로 천황봉에 이르는 문(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천문(通天門)이라 한다.
이 바위굴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월출산의 북서쪽 능선이 펼쳐지며, 멀리 영암 고을과 영산강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통천문을 지나면 월출산 최고봉 천황봉(809m)이 바로인데 이 봉우리에 서면 주변 모든 산들과 평야가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월출산은 높이 809m로 호남정맥 말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도갑산(道岬山:376m)·월각산(月角山:456m)·장군봉(將軍峰) 등이 있다. 남원의 지리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능가산, 정주의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하며 백제·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렸다. 주봉은 천황봉이며, 장군봉·사자봉·구정봉·향로봉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천황봉 동쪽의 바람골 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며, 그 밖의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다. 영산강과 탐진강의 지류들이 발원해 사방으로 흘러내리며, 곳곳에 깊은 계곡과 폭포가 있으며 산세가 매우 크고 수려하며, 기암 괴봉과 비폭(飛瀑)·벽담(碧潭), 많은 유물·유적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봉인 천황봉에는 평평한 바위, 풀밭, 기묘한 모양의 사자봉, 벼랑길, 동굴 등이 장관을 이루며,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동쪽 사면에 위치한 구절계곡은 풍치지구이며,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사이로 7단계의 폭포와 바위가 있는 칠치폭포, 구절 폭포 등이 있다.
<월출산 기암과 미봉 12>
<삼장법사 바위>
천황봉을 지나 바람재로 내려서는 험로는 위험하지만 주변 조망을 보는 장소로는 으뜸인데 구정봉 가는 길에 수많은 기암과 바위들을 만난다.
삼장법사 바위는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불공을 드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삼장법사 바위 근처의 널따란 바위위에서 모두들 진수성찬을 풀고 이른 점심을 든다. 비록 땡볕에서의 성찬이지만 주변 조망이 너무 좋아 모두들 넉넉하고 즐거운 점심을 든다.
점심을 들며 나누는 귀한 대화 그리고 모두를 아우르는 배려와 고마움의 칭찬은 모두를 즐겁고 건강하게 한다. 언제나 같이 하는 귀연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에서의 아낌없는 나눔이 있기 때문이다.
<월출산 기암과 미봉 13>
<월출산 기암과 미봉 14>
<월출산 기암과 미봉 15>
<월출산 기암과 미봉 16>
<월출산 기암과 미봉 17>
<월출산 기암과 미봉 18>
<삼장법사 바위>
<바람재에서 천황봉 오르는 능선>
<천황봉>
<월출산 기암과 미봉 19>
<남근바위>
<구정봉>
<구정봉>
<구정봉>
<베틀굴>
바람재를 지나 구정봉 오르는 길에 베틀 굴을 만나는데 이 굴은 임진왜란 때 이 근처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기 때문에 생겼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굴의 깊이는 10미터 쯤 되는데 굴속에는 항상 음수가 고여 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 부르며 굴 내부의 모습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은 형상이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더구나 이 굴은 천황봉 쪽에 있는 남근석과 마주 하고 있어 자연의 조화가 기묘함과 월출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산의 이곳저곳에 산재한 바위와 첨봉들이 저마다 전설과 기묘한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돼지바위, 선녀바위, 노적봉, 문필봉 등으로 불리며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월출산 기암과 미봉 20>
<베틀굴 내부>
<월출산에 묻힌 구국정토 마애불과 용암사터를 가다> 구정봉을 지나 북쪽으로 월출산의 비경을 찾아 험로를 따라 일행을 안내한다. 오늘 산행의 실질적 진수를 찾아 떠나는 자리에 많은 산꾼들이 기꺼이 동행한다. 그건 월출산 심심계곡에 묻힌 마애불과 용암사 삼층석탑을 만나러 가는 노정이다. 구정봉을 지나 암봉들을 휘돌아 거친 내리막을 찾아 나서기를 두어 번 이윽고 옅은 비소와 우람한 체구 그리고 윤곽이 확연하고 음각이 굵직하게 표현된 마애여래좌상을 만났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국보 14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바위 면을 약간 파서 직사각형의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전채 높이는 8.6m이며, 불상의 높이는 7m인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다. 네모진 얼굴은 몸 전체에 비하여 약간 크며, 긴 눈은 감은 듯 내리 뜨고 눈초리가 올라가 있다. 입은 꼭 다물고 있어 근엄하고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표정이다. 머리 위의 육계가 큼직하고 귀는 어깨에 닿아 있으며, 목은 짧게 표현되어 있지만 가슴과 어깨는 늠름하게 쭉 펴고 있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음각선으로 표현되어 가슴과 왼팔을 거쳐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려 대좌를 덮었다.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였고, 왼손은 배꼽 아래에 놓고 오른손으로 무릎을 감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에는 연꽃잎과 당초문이 새겨져 있으며, 둘레에는 불꽃 무늬가 새겨져 아름답다. 이 여래상은 몸체의 부분적인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당당한 인상을 주는 걸작으로 높이 평가된다. 건너에 보이는 묘한 자세의 탑신을 보고 일행은 장소를 옮겨 산 허리를 돈다. 어느 누가 먼저 탄성을 질렀을까? 탑신은 허름하고 토막 나 있지만 탑과 건너의 마애불이 마주 바라봄에 신비감을 느끼며 바위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난다. 마애여래좌상이 산 전체를 아우르고 탑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형상 그리고 어디든지 넉넉히 마애불을 바라볼 수 있는 큼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그리 장엄할 수 없다.
<마애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 맞은 편 석탑에서>
<마애여래좌상과 월출산 능선>
<아름다운 월출산 암봉들>
<마애여래좌상과 석탑>
<마애여래좌상>
<용암사지>
비경을 어찌 표현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장관을 마주함이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다. 조각의 질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건너에 있는 탑에서 보아도 부처님의 모습이 의연하고 당당하다. 마애불을 감싸고 있는 주변 암봉과 첨봉들이 마치 병풍을 연상하듯 둘러쳐져 있어 안정감을 주며 배경에 솟은 구정봉과 첨봉들이 짙게 후광을 드리운다. 마애불의 오른쪽 계곡으로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시선을 끄는 탑신이 있어 발길을 옮긴다. 그것은 오늘 산행에서 마주 대하는 또 하나의 감동적 선물이다. 파란 잡초와 맷돌 그리고 기와 조각과 우물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용암사지를 만났다. 용암사는 300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가 있으며 주변에 기암 거봉이 많다. 기와 조각과 주춧돌이 남아 있어 건물터로 알고 있었는데 1955년 용암사(龍巖寺)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용암사로 확인되었다. 이 탑이 세워진 봉우리를 일명 탑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세련된 탑신의 아름다움을 받치는 기단은 2단으로 하였는데 전체의 무게를 안정감 있게 받쳐 주고 있다. 그 위로 3층의 탑신을 쌓았으며 보물 1283호로 지정되어 있다. 둘레에 구역을 조성한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기단의 윗면에는 높직한 괴임 2단을 별도의 돌로 끼워 두었는데, 이 가운데 1매가 없어져 1966년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이 보충해 놓았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매의 돌로 구성하였고, 2·3층 몸돌은 각각 1매로 하였으며,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1·2층은 2매로, 3층은 1매로 구성하였으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 역시 1층은 5단, 2층은 4단, 3층은 3단을 두어 한 단씩 줄어들고 있다. 윗면 모서리는 석탑에서는 흔치 않게 두툼하게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1966년 무너진 석탑을 다시 세울 때, 아래층 기단에서 백자 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청자대접 1점, 사리 32과, 철편 11점 등이 발견되었다.
<용암사지 삼층석탑>
<삼층석탑네서 바라본 발봉>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능선>
<삼층석탑의 기단부가 견고하다>
<월출산 기암과 미봉 22>
<구정봉> <구정봉에 올라 월출산 정기를 받고 도갑사로>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1㎞ 지점에 있는 구정봉(九井峰:743m)은 월출산의 제2봉으로 베틀굴(금수굴)을 지나 올라간다. 산정은 평탄한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9개의 웅덩이가 있어 구정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높이 4m, 폭 2m, 길이 8m의 암굴은 캠프장으로 이용된다. 월출산계곡은 구정봉 남쪽에 있으며, 이곳에 명소인 금릉경포대가 있다. 그밖에도 북쪽 사면의 용추폭포를 비롯해 황치 폭포·대동 폭포·은천폭포·용수폭포 등이 있다. 남서쪽으로 내려가는 길목 미왕재 일대에는 억새가 우거진 갈대밭이 있다. 갈대밭 삼거리에서 도갑산으로 향하지 않고 도갑계곡으로 발길을 돌리니 시원한 바람이 숲의 향기와 함께 다가온다. 아직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산행 피로를 풀며 도갑사로 향한다.
<구정봉>
<구정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월출산 기암과 미봉 23>
<월출산 기암과 미봉 24>
<억새밭 삼거리-미황재>
<도선국사 비각>
<도갑사 부도>
도갑사에 당도하기 전 만난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는 예전의 흉물스런 때를 벗고 새로 단장된 누각에 잘 모셔져 있었다. 수미비는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조선 효종 4년(1653년)에 비가 완성되었는데 비의 돌 거북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고개를 들어 절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돌 거북의 두툼한 등에는 가장자리가 말린 연꽃잎이 새겨져 있고, 이수(螭首:용의 모습을 아로 새긴 비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은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름이나 연꽃잎이 아닌 연잎으로 비의 몸체를 받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비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비의 높이는 4.8m, 폭은 1.42m에 달하며 약 1,500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벚꽃이 만발한 부도문에 이르니 득도한 도승들의 체취가 묻어 있는 여러 기의 부도를 만난다.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의 부도가 보이고 두 줄로 배열된 부도들의 미적 아름다움도 도갑사 정취를 느끼게 한다. 도갑사에 드는 아치형 다리를 지나 미륵전에 드니 석조여래좌상이 반긴다.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의 미륵전에 모셔져 있는 석조불상인데 몸체와 광배(光背)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어서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과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를 큼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이며 도드라진 눈덩이,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은 강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넓은 어깨, 평평한 가슴, 단순한 몸의 굴곡 등은 생동감이 없는 경직된 모습이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걸쳐 입고 있으며 몇 가닥의 옷주름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갸름한 타원형 광배의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꼭지와 머리 양 옆에 각각 작은 부처가 표현되었다. 광배에 새겨진 조각은 대체적으로 생략이 강하고 치졸한 면도 보인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좌(臺座)는 밋밋한 4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본래는 연꽃무늬를 새긴 8각형의 대좌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다소 경직되고 형식화된 수법을 보여주지만 얼굴표정에서 훈훈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적 요소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도갑사 아치교>
<미륵전 석조여래좌상>
미륵전을 나와 중국풍을 느끼게 하는 정자를 지나니 용수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반긴다. 용수폭포는 도갑사 미륵전을 끼고 도는 계곡에 위치한다. 옛날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깊이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수심이 약 2m정도이고, 수폭은 5m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쏟아져 산사의 정취를 더해 준다고 한다.
<용수폭포>
<천불전>
<천년고찰 도갑사가 새로 나고 있다> 용수폭포를 지나니 내 눈을 의심할 거대한 사찰이 나타난다. 전에 초라한 산사였던 도갑사가 세월이 변해 엄청난 대찰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각종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도갑사였지만 예전에는 초라하고 빈약한 시골 산사였었는데 한창 중축중인 절에는 대웅전의 건설과 부속 건물들의 중장비들로 혼잡스러웠다. 도갑사(道岬寺)는 신라 문무왕 때에 도선 국사가 창건했으며, 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국보 제50호)·도갑사석조여래좌상(道岬寺石造如來坐像:보물 제89호)·도갑사도선수미비(道岬寺道詵守眉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 등이 있다.
<도갑사 5층석탑>
<5층석탑과 대웅보전>
도갑사 오층석탑은 보물 1433호로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상징적 건축물로 기단과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과 탑의 몸체 돌을 덮고 있는 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탑의 머리 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 전체를 받치는 지대석과 하나의 층으로 된 기단부의 면석은 4장의 널찍한 돌로 짜 맞추었다. 1층에서 5층으로 올라갈수록 각 층의 몸체들이 낮아져서 안정감이 있다. 1층의 몸체들은 보통 하나의 돌로 처리하는데 4장의 널찍한 돌로 짜 맞춘 것이 특이하다. 탑의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5층 석탑을 따라 해탈문에 이르는 양쪽에는 수많은 주춧돌이 널려 있어 예전 도갑사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해탈문 주춧돌 무늬석>
<해탈문을 통해 본 도갑사 전경>
도갑사소장동자상(道岬寺所藏童子像)
해탈문에 있던 동자상은 보물 1134호 도갑사소장동자상(道岬寺所藏童子像)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동자상은 총 높이가 약 1.8m가량이고, 앉은 높이가 1.1m 안팎으로 크기도 비슷하고 조각기법도 동일하다.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아서 사자,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두 동자상은 동물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으며, 두 손도 따로 만들어 끼웠다. 현재의 손도 후대에 다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생각된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는 매우 화려하며, 이목구비가 원만하여 동자의 천진스런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추정되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이라는 드문 예 가운데 목조상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1960년 해탈문을 해체 복원할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해탈문이 1473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곳에 모신 동자상도 문이 건립될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탈문에 놓여 있던 도갑사 소조동자상(보물 제1134호)은 분실 우려로 전시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사진으로 본 모습이 미적 감동을 준다. 옆 칸의 썰렁한 해탈문 동자상 자리가 을씨년스럽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부처님 품안에 들어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갑사 해탈문>
도갑사는 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 국사에 의하여 창건되고, 고려 말에 중흥되었다고 전하는데 이 해탈문은 1960년에 해체하여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건축물의 내력이나 고치게 된 까닭, 날짜와 시간 등을 적어둔 글)에 따르면 조선 성종 4년(1473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석조기단 위에 중앙 칸은 통로가 되고, 좌우 한 칸씩에 사천왕상을 안치하게 되어 있다. 기둥은 약하게 배흘림을 한 둥근 기둥이 사용되었고, 전체적인 건축 양식은 경북 영주 부석사 조사당과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기둥 위의 구조가 주심포식(하나의 기둥 위에 하나의 공포만을 짜 올린 형식)과 다포식(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짜 올린 형식) 양식이 섞인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해탈문 전체를 지지한 형상의 해태상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멈추게 한다. 해탈문으로 보이는 5층 석탑과 대웅전의 모습이 아름다운 산사의 정취로 다시 마음에 남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도갑사의 정취는 예전의 예스런 맛과 맛깔스런 풍경은 사라졌지만 월출산을 이고 있는 기암 절경의 바위들과 마애석불 그리고 삼층석탑의 만남으로 한층 가슴에 남는다. 도갑사 일주문을 나서며 분주한 도갑사의 또 다른 풍경에 아연함을 갖게 한다. 조용하고 아늑한 산사가 도로가 정비되고 주차장이 말끔히 단장된 관광지의 모습으로 변모함이 자못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월출산 도갑사 일주문>
<군서면 신동지구 유채꽃 단지>
<무언가를 찾았다면 그것처럼 감동적일 수 없다> 월출산! 강진을 가든 해남을 가든 그리고 완도를 갈 때면 보게 되는 월출산! 무릇 겉으로 드러난 기암과 809미터의 천황봉과 구름다리를 대명사로 일컬었지만 오늘 묻혀있던 마애여래좌상과 용암사지 3층 석탑을 만남으로 또 다른 월출산의 깊은 향기를 느끼게 한다. 언제나 미봉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월출산이 간직한 속살을 드러내고 내 가슴에 박히듯 아름다운 잔상으로 깊숙이 폐부를 찌른다. 구정봉의 둥그런 바위 우물에 비록 물이 마르고 건조한 삼림엔 짙은 녹색의 풍요로움이 부족하고 메마른 갈증이 느껴지지만 사자사 목탑지에서 시작된 월출산 속살 드러내기 종주 산행이 값진 노정이었음을 배부르게 한다. 선지 전골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노란 유채꽃 장판에서 어린 동심의 나래를 펴는 동료 산꾼들의 즐거운 하루를 허허 로이 느껴본다. 수령이 오래된 벚꽃 숲을 지나며 귀로에 오르는 산꾼의 가슴에 배부른 포말감이 슬며시 잠으로 빨려든다. 하루를 스스럼없이 월출산에서 맘껏 추스른 산행이 즐겁고 행복했다.
<흥겹게 어우러진 뒤풀이 마당>
<유채꽃 속에 묻힌 귀연산꾼들-그들이 있어 오늘 하루가 행복했다>
* 월출산 주변 참고 사항 월출산 서쪽의 군서면 동구림리의 구림마을은 백제의 왕인 박사가 출생한 곳으로 책굴·돌정고개·상대포 등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무위사(無爲寺)는 구정봉 남쪽 산록에 해당하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다. 이곳에는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국보 제13호)·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無爲寺禪覺大師遍光塔碑:보물 제507호) 등이 있으며, 극락전내의 아미타삼존불과 관음보살상을 그린 벽화가 유명하다. 무위사 북동쪽 월남리에는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으며, 월남사지모전석탑(月南寺址模塼石塔:보물 제298호)·월남사지석비(月南寺址石碑:보물 제313호) 등이 있다. 월출산의 첩첩 산줄기 위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출과 진홍빛으로 서해를 물들이는 일몰광경은 호남 제일의 장관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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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월출산의 기암 미봉도 대단했지만 마애여래좌상, 그 주변 삼층석탑, 용암사지터는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듯한 감동을 느끼게 했습니다 . 그 광경을 사진에 잘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은 기회에 다녀온 월출산이지만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 그리고 용암사지는 갈 수 없는 비밀의 화원이었습니다..이번 기회에 많은 귀연 식구들과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보월산 師子寺址라.. 아마도 월출산이 예전엔 보월산이었는가봐요.사자봉은 사자사지에서 명칭이 연유한 것 아닌가.. 목탑의 규모며 남아있는 석물들을 보아하니 상당한 勢를 지녔던 사찰인 듯 합니다
산을 다니지만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나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다시가보기 힘든 중요 지역을 빠짐없이 순례할려면 콩콩이님 처럼 체력이 좋아야 가능하지요..좋으셨죠..ㅎㅎ
내년엘랑 월출 남쪽의 월각산에서 서쪽 주지봉으로 거스른 다음 왕인박사 유적지를 답하고 싶습니다.
계속 쫓아가는 상황이어서 옆을 돌아볼 겨를이 거의 없었는데 님의 사진을 보며서 감탄하고 가네요. 프로가 이래서 좋군요~~ㅎㅎ
두 분을 구름다리에서 부터 사자봉 쪽으로 안내해 드리고 앞팀과 중간팀 때문에 먼저 갔더랬습니다..다행히 삼장법사바위 근처에서 합류하여 멋진 비밀의 화원을 보여 드리게 되어 기쁨니다..수고하셨습니다..
처음으로 가본 월출산, 암봉,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용암사지등 꽤 수확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용암사지에서 삼층석탑을 함께 보게 되어 기분이 좋더군요..늘름하고 씩씩한 호나우드님이 동행이라면 어디든지 갑니다...총무보시느라 수고많아요...그래도 귀연과 함께라면 1거 4득은 문제 없습니다..
그날 컨디션이 안좋아서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용암사지를 못보고 와서 많이 아쉬웠지만 사진으로나마 보니 위안이 되네요...
산꼭대기 대장님도 컨디션 안 좋을 때가 있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하지만 그날 밀려든 감동은 주체하기 힘들군요..
행복은 기다림 만큼 커지나 봅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백이 있었기에 가슴이 더 후련했고 다시 살아났음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결코 나를 버리고 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랜만에 따라나선 자신없는 발걸음이라 구정봉에서 아쉽게 돌아서야 했지만... 장엄한 암봉들의 침묵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는 지나간 역사의 숨결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교통사고...아찔한 순간이 나머지 삶에 큰 도움이 되겠죠..뒤에서 강회장 챙기려 조심조심 갔는데 다행히 천황봉을 거뜬히 오르길래 엄청 기뻤습니다..차근차근 산행 강도를 높이며 가자구요..그날 못 본 우리 문화 유산 다음에 꼭 보세요..전 숨이 막힐 뻔 했습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음부터는 뒤에서 가겠습니다.
가뿐하게 산을 타는 모습이 퍽 인상적입니다..날렵한 체구와 건강하고 부드러운 미소들이 너무 좋습니다..실력이 좋으시니 이젠 두루두루 보고 즐기며 함께 가도록 해요..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용암사지와 아름다운 삼층 석탑을...... 정말 아쉽습니다.
그저 큰 기대없이 다가갔던 용암사지와 삼층석탑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어요..물론 탑의 바위에 올라 마애불을 본 것도 대단했구요...늘 같이 함에 감사드려요..
동양화폭 같았던 산에다 처음 들렀던 마애불과 용암사지까지 아주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면서도 못보았던 광경들 사진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숨겨진 모두를 보셨지만 카메라를 분실하여 그러네요..용암사지에 내려가신 뒤에도 주변을 샅샅이 찾아도 없어서 허망했지요..좋은 카메라 장만하는 기회로 삼으세요..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