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장마철이 시작되었는데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고 산들바람만 가로수의 검푸른 잎사귀에 살랑대고 있었다. 인적이 끊어진 거리에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술 취한 사람들이 택시를 잡느라고 비틀대는 것이 보였다. 가게를 올케 김경주에게 맡기고 참석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었다. 1차로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신 뒤에 2차 호프집까지 가자 절반은 떨어져 나가고 얼마 되지 않은 남녀가 노래방까지 갔다가 나오자 거리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미숙씨는 내가 데려다가 줄게.”
동창들이 다투어 택시를 타고 떠나자 최동준이 택시를 잡아 이미숙을 태우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미숙과 방향이 같다고 노래방에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잘 가라.”
동창들이 거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잘 가.”
이미숙도 동창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만나 한바탕 떠들어대서인지 동창들이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호동이요.”
택시가 출발하자 최동준이 중년 나이의 기사를 향해 말했다. 이미숙은 어리둥절했다.
“천호동에는 왜 가는 거야?”
“모처럼 만났는데 한잔 더 하고 가자.”
최동준이 이미숙의 어깨에 손을 감았다.
“늦었잖아?”
이미숙은 최동준의 손을 살며시 떼어냈다.
“집에 돌아가 봤자 아무도 없어. 나 좀 쓸쓸하다.”
“얘가 왜 이래?”
이미숙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최동준은 초등학교 때 얌전한 범생이었으나 어른이 된 뒤에 달라져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몇 년에 한 번씩 우연히 만났고 대학교에 다닐 때는 데이트를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만나지 않게 되었다. 최동준은 이미숙에게 그녀가 고무신을 거꾸로 돌려 신었다고 원망했다.
“우리가 애인이었냐? 무슨 고무신을 돌려 신어?”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와 데이트를 했어도 사무치게 그리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때때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자 동창일 뿐이었다.
“애인이 아님 뭐냐? 몇 달 동안 데이트를 했는데….”
“그렇다고 키스를 했냐? 같이 자기를 했냐?”
“야. 내가 널 아껴서 그런 거야. 그리고 키스도 한 번 했다.”
“뭐? 언제?”
“네가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너네 집에 업어다가 주면서. 정신없이 취해서 모르더라.”
“이런 도둑놈!”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한바탕 웃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구나. 천호동을 향해 강변북로를 달리는 택시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이미숙은 아련한 회상에 잠겼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최동준에게서는 거친 사내의 땀냄새가 풍겼다. 최동준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화이트칼라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 친구 있냐?”
최동준의 말에 이미숙은 장대한의 얼굴이 떠올라왔다.
“응.”
이미숙은 짧게 끊어서 대답했다. 며칠 전 이미숙은 국수집 2호점을 내기 위해 장안동에 갔다가 호텔에서 나오는 장대한을 보았었다. 장대한과 그 여자는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차에 오르자 격렬하게 키스까지 하고 있었다.
‘여자가 있었구나.’
이미숙은 장대한에게 배신을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가슴이 싸하게 저렸다.
‘돈 많은 남자가 혼자 살면서 여자가 없을 수는 없겠지.’
이미숙은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야. 그에게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이미숙은 우울한 기분을 달래려고 동창회에 나왔는데 최동준을 만난 것이다.
“나를 두고 남자 친구가 있다니 실망인데….”
“넌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었잖아?”
“먹고살기가 바빴어. 마누라는 매일같이 바가지 긁고….”
최동준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누라한테 잘해 줘.”
“마누라하고는 갈라서게 될 것 같아.”
“왜?”
“그렇게 되었어.”
최동준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집은 어디니?”
“장안동….”
“그럼 장안동에서 한잔 더 하던지 그래.”
“그래도 좋고.”
최동준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투였다. 택시가 장안동의 큰길에 멎었다. 최동준은 택시요금을 지불하고 편의점에서 커피 두 개를 샀다.
“요 뒤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거기서 커피나 마시면서 얘기하자.”
촤동준이 이미숙을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린이 놀이터는 골목 중간에 있었고 은행나무 밑에 밴치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었으나 조용했다.
“저기가 내 오피스텔이야. 요즘은 저기서 살고 있어.”
최동준이 커피를 따서 이미숙에게 주면서 회색 건물을 가리켰다.
“집 나왔어?”
“두 달 정도 되었어.”
“그럼 밥은 어떻게 해?”
“해먹기도 하고 사 먹기도 해. 오피스텔이잖아? 주방기구들이 다 있어.”
이미숙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첫댓글
특별하신 우리 고향설 리더님
오늘도 좋은 정보 많은 글을 올려주시며
카페 등급을 걱정하시는 어른이심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부디 가내 화평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감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