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왕규의 겸손
당나라의 2대 임금인 태종의 치세는 후세까지
훌륭한 정치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태종이 임금으로 사치를 금하고
정직하고 충성된 인물들을 많이 등용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나 결단력이 뛰어난 두여희와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치밀했던 방현령,
그리고 천하에 강직하고 깨끗하기로 유명했던 위징,
청렴결백한 왕규 등이 모두 협력하여 태종의 정치를 잘 보좌했다.
어느 날, 태종이 왕규에게 물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 방현령 이하 여러 대신들과 비교하여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왕규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성실하게 나라에 봉사하고,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는 점에서
소신은 방현령을 따르지 못합니다.
재능에 있어 문무를 겸비하고 조정에 들어서는 현명한 재상이요,
밖에서는 어엿한 대장군이라는 점에서 소신은 두여희를 당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께 직간을 올리고 잘못을 바로잡기에 여념이 없기로는
또한 소신이 위징을 따르지 못합니다."
왕규는 다른 중신들보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한 것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18일
자녀를 화나게 하는 30가지
< 고함치는 것,
당황케 만들거나 우습게 만드는 것,
무시하는 것(너무 바쁘거나 귀기울이지 않는 것),
화를 내며 가르치거나 때리는 것,
아이의 필요를 고려치 않는 것,
비교하거나 편애하는 것,
민감하지 못한 것,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
인내의 부족,
너무 제약이 많은 것(또는 규제의 부족),
부모 자신은 완벽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거짓말(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과잉반응,
과잉보호,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인정치 않는 것,
능력 이상의 지나친 기대,
원인과 과정을 무시하고 결론에만 집착해 부당하게 비난하는 것,
비웃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꾸짖는 것,
부부싸움(아이들에게 한 편을 들게 하는 것),
훼방하는 것,
일관성이 없는 것,
신뢰하지 않는 것,
융통성의 부족,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거나 너무 혹독한 체벌,
비교육적인 위협(잔소리),
언제나 부정적인 면만 보는 비판적인 입장,
실수에 관해 말하는 것,
무조건 요구를 거절하는 것,
용서치 않는 것,
의견이나 결정을 존중치 않는 것,
조건적인 용납. >
19일
이해
어느 가게 문 앞에 <강아지 팝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광고를 보고 한 어린 소년이 가게 안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강아지 한 마리에 얼마씩 팔아요?"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3만원에서 5만원 사이에 판단다."
그러자 소년은 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를 꺼내고는 말했다.
"지금 저에게는 3천 5백 5십 원 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강아지 좀 구경하면 안 될까요?"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게 안쪽에서
작은 강아지 다섯 마리를 가게 통로로 내보냈다.
그런데 한 마리만은 다른 강아지들보다
눈에 띄게 뒤쳐져 달려왔다.
소년은 그 절뚝거리는 강아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강아지는 어디가 아픈가요?"
주인은 그 강아지는 선천적으로
엉덩이 관절에 이상이 생겨 그렇다고 설명해 주었다.
평생 동안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은 소년은 "전 이 강아지를 사고 싶어요."하고 말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말했다.
"아니다. 너한테 저 강아지를 돈 받고 팔 순 없어.
정 원한다면 그냥 가져가거라."
그러자 소년은 가게 주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 이 강아지를 공짜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이 강아지도 다른 강아지들처럼 똑같이 귀여운 강아지예요.
그러니 값을 전부 내겠어요.
지금은 돈이 3천 5백 5십 원 밖에 없지만,
강아지 값을 다 치를 때까지 매달 얼마씩 드리겠어요."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강아지를 너한테 돈 받고 팔 순 없어.
이 강아지는 달리지도 못할 뿐더러 다른 강아지들처럼
너와 장난을 치며 놀 수도 없단다."
그 말을 듣자 소년은 몸을 숙여 자기가 입고 있는 바지 한쪽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금속 교정기로 지탱되고 있는 소년의 왼쪽 다리가 드러났다.
소년은 말했다.
"나도 달릴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 강아지는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당신의 이해는 어느 수준인가?
20일
인생을 망치는 변명들
1. 나도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
: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는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고 '나는 인간일 뿐'이라고 변명한다.
그러자 선교사 역을 맡은 캐서린 헵번이
"우리는 그 본성을 이겨 내기 위해서 창조된 거예요."라고 대꾸한다.
인간의 물질적 본능은 인격, 용기, 양심 이 세 가지로 이겨 낼 수 있다.
즉각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하면
그 순간만 만족할 뿐 훗날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된다.
2. 다른 사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 '너 때문에…'라는 핑계 속에는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은 나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집을 지으려는데 건설업자가 불량 철근과 벽돌을 가져왔다면 어떻게 할까? 건설업자를 탓하며 부실한 집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좋은 재료를 달라고 따질 것인가?
먹는 만큼 살이 찌듯 나는 내가 행동하는 그대로다.
3. 잘못이라는 건 알지만…
: 잘못인 줄 뻔히 알면서도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인 줄 알았지만 어찌 하다 보니 그리 되었어요!"
이런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찌 될까?
하지만 만일 내가 나 하나만을 위한다면 나는 무엇이 될까?'라는
이스라엘 격언을 새겨 보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보일 것이다.
4. 그건 특별한 사람들 얘기다.
: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
양심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가?
대부분 나와 거리가 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작은 배려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린 그런 사람들의 인품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지도 않고
특별하다고만 생각하는 걸까?
5. 모든 게 세상 탓이다.
: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흔히 이런 변명을 합니다.
'왜 나만 이래야 돼!' 이런 생각에 젖다 보면
모든 일에 대해 피해의식을 느끼고 무기력해지게 된다.
이런 변명은 오히려 자신을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소외시킬 뿐이다.
불행과 실수, 실패를 자꾸 떠올리지 말자.
상처의 원인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21일
인생의 나이테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기도 하며 살아간다.
만남으로 시작되는 관계가 때로 고통스럽게 할 때도 있다.
이해하려고 애써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과의 관계는 삶을 힘들게 한다.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왜 그렇게 쉽게 토라지는지,
왜 그렇게 마음이 완악한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내 남편이나 아내라면 상처를 받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려 마음을 열면
그의 연약한 부분을 보게 될 것이다.
나무가 성장한 기록은 나이테에 나타난다고 한다.
가물었을 때, 숲에 불이 났을 때, 병충해와 질병에 당했을 때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부분이 나무의 심층부에 박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내면에 인생의 나이테가 기록되어
거기에 오래된 아픈 상처가 남는다.
그래서 그의 정서적인 문제들이 불쑥불쑥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내면의 나이테를 보려면
당신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온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며 그에게 초점을 맞춰 신중하게
그의 말을 들어 주고 그의 아픔, 상처에 공감해야 할 것이다.
공감에는 '내 신을 벗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의 입장이 되어 그의 느낌, 감정,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가 신고 있는 신을 신어 보려면,
내가 신고 있는 신을 먼저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의지, 내 사고, 내 판단을 버리고
그가 되어 그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끼리 만나서
관계를 맺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계가 아름다울 수 있음은
서로 아픔도 있고 부족함도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입의 열매
작은 시골 성당 주일 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소년 복사가 실수하여 성찬 전례 때 사용할 포도주 병을 떨어뜨렸다.
그 소년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순간, 그 시골 성당 신부는 소년의 뺨을 때리며 호통쳤다.
"어서 물러가라. 다시는 제단 앞에 오지 마라!"
이 말은 소년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소년은 그 후로 교회를 떠나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가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다.
다른 성당에서 한 소년 복사가 미사를 돕고 있었다.
역시 성찬 전례 때 사용할 포도주 병을 떨어뜨렸다.
그 신부는 곧 이해와 동정이 어린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그래, 넌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은 자라서 유명한 추기경 풀톤 쉰이 되었다.
한 소년은 신부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제단에서 물러가
하느님을 비웃는 공산주의의 지도자가 되었고
다른 소년은 신부의 말대로 귀한 하느님의 일꾼이 되었다.
이처럼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은 자신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긍정적인 말,
남을 살리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한다.
당신의 말은 어떤가?
23일
용서
스페인의 시민전쟁이 전국에 걸쳐 맹렬하게 퍼지고 있었다.
국군이 한 마을을 탈환했다.
그 때, 어느 건물의 한 모퉁이에서 가슴에 심하게 총상을 입은
적군 병사 한명이 죽어가면서 안타깝게 소리쳤다.
"제발!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니 신부님을,
제게 신부님을 모셔다 주세요. 제발."
이 소리를 들은 군인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 욕설을 퍼부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나쁜 놈!"
그러나 그의 동료 중의 어떤 군인이
적군 병사의 애절한 호소에 안타까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그의 부탁대로 급히 신부를 찾아 모셔 왔다.
신부는 죽어 가는 적군 병사에게 몸을 기울여 물었다.
"고해할 것이 있소?"
그러자 그 적군 병사는 겨우 입을 열어 간신히 말했다.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곳 성당의 주임신부님이십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자, 적군 병사는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았다.
고해성사를 마친 신부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그의 온 몸에서는 땀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침착하게 군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제들이여, 이 부상병을 집안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죽어 가던 적군 병사는 신부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저 신부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나를…"
그러자 가까이 있던 군인 한 명이 말했다.
"당연하지 않아? 신부니까!"
그러자, 병사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내손으로 32명의 신부를 살해했습니다.
마을을 침략할 때마다 사제관을 뒤져서 총, 칼, 몽둥이로 다 죽였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사제관을 뒤졌으나 신부를 찾지 못해
신부의 부모와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이 이 죄 많은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