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무더운 날씨였다. 화서2동 주민자치센터2층에 마련된 문학 강의실,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교실에는 아직 빈자리가 많은 가운데 미리부터 와서 눈길을 끌고 있는 분이 있다. 옆에는 유모차를 탄 생후6개월 되었다는 손녀를 대동하고 열심히 참석하고 있는 문학소녀 수강생 할머니다.
권선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경기평생학습관에서 처음 문학 강의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다며 너무 좋아했다. 일흔을 앞둔 나이가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문학소녀'라는 말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듣는 이름이라야만 제격이 아닐까싶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였다. 문학의 길 역시 젊어서나 늙어서나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빼지 못하고 다들 그렇게 도둑이 되는 모양이다. 경기평생학습관의 문학 강좌가 안타깝게 폐강되고 난 후 헤어져야만 했던 그 인연들이었다. 그러나 지고지순한 도둑이 된 문우들이라니, 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모두가 아쉬워했다.
보리밥 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어느 회원의 사무실을 얻어 쓰기도 하다가 마침내 둥지를 튼 곳이 화서2동 주민자치센터 강의실이다. 말하자면 사설야학당에서 국가공인학교로 그 위상이 번듯하게 바뀐 것이다. 물론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수강생도 20명을 훌쩍 넘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방학이라는 이름의 중단 없는 전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어디 그렇기만 하단 말인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하고 소식이 없던 문학소녀는 딸의 출산으로 손녀를 돌봐야만 했기에 서울과 수원을 오가며 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늘 콩밭에 있었다고, 여기 선생님의 강의 교실이 그리워 꿈속에서도 만나보게 되었다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딸의 손녀는 이제 생후6개월이 되었단다. 출근하고 없는 딸과 사위 몰래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유모차를 끌고 화서역에 내려 달려온 것이라고 했다. 후반기 개강을 하여 정식 이름을 올리고 벌써 몇 주째, 어디서 그런 열정이 솟아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의 마가 들린 것인지, 그 넉 풀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쓰지 않아도 그저 그렇게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기만 하여도 가슴이 뚫릴 듯 시원하고 좋다는 것이다.
선생님 보고 싶어 서울에서 전철타고 유모차 끌고 왔어요_1
유모차위의 아기는 칭얼거리다가도 젖병을 물려주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잘 놀아주었고, 소녀는 그래도 미안해하며 아기를 안고 조용히 밖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수업방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오히려 그에게 보내는 격려의 눈빛과 미소는 가슴을 뜨겁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시라고 생각 되었다.
강의를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아기는 가끔씩 옹알이를 하였고, 강의에 귀 기울이던 소녀는 그럴 때면 깜짝 놀라면서도 '선생님! 우리아기 자라서 시인 될 거예요!'하고 미안한 마음을 털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도둑들의 웃음 한 사발 쏟아지며, 차 한 잔씩 나누면서 쉬었다가 하잔다.
문학은 그래서 참 좋은 것 같다. 여유의 미학이다. 수학문제풀이 하듯 딱딱할 것도 없고, 안 돌아가는 머리통을 억지로 싸매고 앉아서 끙끙거리며 앓을 것도 하나 없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 느끼고 생각하는 가운데 떠오르는 것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모두가 내 마음대로다. 그래서 일찍이 달콤한 이런 맛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홍사용' 시인은 '내가 왕이로소이다'하고 세상을 향해 그렇게 큰소리로 외쳤는지도 모른다. 그가 눈물의 왕이었다면 나는 웃음의 왕이고 싶다.
선생님 보고 싶어 서울에서 전철타고 유모차 끌고 왔어요_2
이렇듯 시공을 넘나들기도 하며 내로라는 시인들의 시상과 생활의 일면들을 사유하는 시간, 그 속에 어렴풋이 알 듯 모를 듯 빠져들어 보는 재미도 좋은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 생각을 같이할 수 있어 모두가 한 우물 속의 고기들처럼 환한 얼굴의 비늘을 반짝거린다.
그러나 난해한 작품을 만나면 침묵이 흐르고 서로의 눈치 보기에 여념들이 없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견디기도 사실 어려운 일이다. 알쏭달쏭한 가운데 애매모호한 정도라면 그래도 좋다. 그런 것들이 시의 매력이며, 맛을 더해준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전혀 상상이 안 가는 알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럴 때면 이거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이런 글은 쓰지 말라고 당부한다. 스트레스 받을 것 없다며, 나쁜 시의 표본으로 일부러 발췌한 것이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다. 그러면서 절대로 남이 모르는 어려운 글은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격론도 벌이며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루 종일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생활 가운데도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즐겁고 유쾌한 가운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니, '일소일소'라 왜 그곳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소년소녀는 그렇게 꽃이 되고 벌 나비가 되어 꿀을 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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