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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리: 2004.7.21~7.22
7.21(수)05:00추성산장-05:25두지터-06:15선녀탕-06:55비선담-07:30청춘홀-07:55창암능선갈림길-08:00칠선폭포-08:15대륙폭포-아침식사-09:00출발-11:00마폭-11:30출발-13:15천왕봉-14:00출발-14:40장터목-중식-15:50출발-16:15연하봉-17:30세석산장(1박)
7.22(목)04:00기상및식사-05:00출발-05:10영신봉-05:50칠선봉-06:40선비샘-07:25벽소령산장-08:20형제봉-09:00삼각고지-09:25연하천산장-11:05토끼봉-11:30뱀사골산장-중식-12:35출발-13:25간장소-14:30탁용소-15:00반선
칠선골은 장장 50리를 심산 속에 굴곡하고 있는 깊은 계곡이다. 계류는 흘러 크고 작은 폭포로 쏟아지기도 하고, 기암과 괴석을 스쳐 급한 흐름이 되기도 하고, 잠시 고여선 신비의 소(沼)를 이루기도 한다. 계곡의 언저리는 깍아 세운 듯한 절벽이기도 하고 울창한 숲이기도 하다.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은 그 계곡을 거슬러 오른 마지막에 있다.
한 시간의 연착 끝에 남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남원역에서 택시를 타고 4명의 산꾼은 칠선골 산행을 위해 추성리에 도착하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새벽닭이 우는 마을을 지나 가파른 사릅재를 오르는 데 초입부터 힘이 든다. 오랜만에 75L 배낭이 어깨를 찍어 누른다. 칠선골 산행엔 많은 체력이 소모되므로 최소한으로 배낭을 꾸리자고 일행들에게 당부했건만 정작 나 자신의 배낭 무게는 힘겹다. 초반부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일행 모두는 사릅재에서 날렵하게 반바지와 반소매 쿨맥스 셔츠로 갈아입는다.
두지터 담배 건조장 앞에 있는 빨치산 조형물 앞에서 일행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다리를 건너 본격적으로 칠선골 산행을 한다. 선녀탕까지는 계곡을 건너지 않고 산비탈 길로 걸으며 고도를 차츰 높여 나가는데 옛날에 있었다던 칠성동 마을 터를 지나 협소한 길 아래로 깊은 낭떠러지에 추락할 위험이 있어 일행들에게 주의를 시킨다. 추성리를 떠난 지 1시간이 조금 지나 선녀탕에 도착했다. 지난 4월에 왔을 때 없던 목조다리가 새로 만들어져 계곡을 건너 선녀탕으로 이어진다. 선녀탕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잠시 후 옥녀탕을 지나는데 이곳부터는 출입이 통제되는 구간이기 때문에 산행에 많은 위험이 있다. 한사람이라도 다치게 된다면 우리의 일정은 망가지게 된다. 작년에 추락한 경험이 있어 거듭 주의를 시킨다. 좌측에 계곡을 두고 따라 걷다가 비선담을 만나는데 칠선골에서 가장 웅장한 소(沼)가 비선담일 것이다. 과거에는 옥녀탕이 최고였지만 최근에는 올 때마다 비선담의 장관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시퍼런 물이 으스스하다. 밧줄을 타고 커다란 바위를 넘어 우측 사면의 돌길을 따라 걷는다. 칠선폭포 못미처 길이 두 개로 나누어지는데 희미한 윗길이 바로 백무동 창암능선과 연결되는 길이다.
칠선폭포를 내려다보는 비탈길에서 휴식을 취한다.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수가 장관이다. 이 부근이 천왕봉까지 절반 지점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신선은 아마도 이런 곳에 살 것이다. 드디어 칠선골의 깊은 협곡 사이를 비집고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퍼지며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륙폭포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대륙폭포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8시 15분.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웅장한 대륙폭포는 언제 보아도 장관이며 시원스럽다. 간식을 먹었지만 모두 시장할 시간이다. 이곳에서 아침을 마친 시간이 9시. 아직도 마폭포까지는 먼 거리. 대륙폭포를 지나면서 길은 점차 험악해진다. 수령이 다된 거목이 고사한 채 뒹굴고, 커다란 산죽 군이 막아서기도 한다. 오래된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서기도 하고, 미끄러운 바위지대도 통과하며 물이 부른 계곡을 건너 차기도 한다. 색바랜 표지기마저 사라져 버려 때론 의심스러워 오르던 길을 뒤돌아선다.
이렇게 험준하기에 일제 말기에는 징용이나 학병을 피해 젊은이들이 칠선골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신판 임꺽정 하준수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활동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데 함양경찰서를 습격하기도 하고 붙잡힌 인질들을 구해내기도 한다. 김일성부대의 보천보 습격보다도 더 큰 쾌거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리산 자락에 숨어 은신하는 거림골, 반천골, 휴천골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도 한다. 그런 그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지리산에서 은신하고 있는 이현상을 만나 그들은 후에 커뮤니스트가 되어 운명의 흐름을 반전시킨다. 이현상은 이들 보광당의 지도자를 자처하며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공으로 당의 높은 서열을 확보한다. 이후 하준수는 당의 부름에 따라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제주도 4.3사건의 주역 김달삼과 함께 동해 신불산 지구의 사령관으로 남하를 하며 유격전을 전개하여 명성을 떨치는데, 결국 대구에서 피검되어 군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수색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항일 투쟁을 한 인물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일본군 출신의 친일했던 군인들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승승장구하며 대한민국의 재목이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모순이며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칠선골의 천왕봉 아래 마폭포에 도달한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마폭포에서 계곡이 양쪽으로 갈리는데 좌측은 중봉 방향, 우측은 제석봉 방향이다. 그 가운데 바로 장쾌한 천왕봉이 우뚝 솟아 있다. 일행은 모두 배낭을 내던지고 웃통 셔츠를 벗고 머리를 물에 담그며 더위를 식힌다. 얼굴이 시리도록 시원하다. 마폭포에서 30여 분을 그렇게 휴식하고 칠선골에서 가장 힘겹다는 마폭포와 천왕봉구간에 들어선다. 마폭포의 고도가 1,400m이니 천왕봉까지 500m의 고도를 급격히 올려야 한다. 거리는 1.5km라 표기되었지만, 실제는 그 이상일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오르느라 많은 체력소모가 있는데 다시 1시간 이상을 힘겹게 올라야 한다.
휴식년제라도 가끔 산님들이 다녀 길은 걸을만하다. 힘겹더라도 지리산에서 길을 따라 걷는 것은 그나마 행복한 일이다. 길을 잃고 산죽과 안개 바다와 암봉에 갇혀 낙담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 그동안 많은 비로 산사태가 있었지만 2년 전보다는 예상외로 마폭포와 천왕봉구간이 회복되었다. 이곳은 지리산의 최후 원시림 지대로 수령이 오래된 두꺼운 나무와 희귀한 수목, 그리고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다양하게 널리 분포되어 있다. 지리산에서도 여느 곳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다리가 뻑뻑하여 여러 차례의 쉼 끝에 제석봉과 중봉의 고도가 점차 낮아짐을 느끼면서 위쪽을 바라보니 드디어 파란 하늘과 땡볕을 만난다. 힘에 겨워 철계단을 두 번 꺾어 올라서니 드디어 천왕봉. 추성 산장을 출발한 지 장장 7시간 30분 만이다. 배낭의 무게가 가벼웠다면 좀 더 빨리 올라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가장 힘겨운 코스로 천왕봉에 올랐다는 생각에 동료들이 감격스러운 표정이다.
천왕산정에는 단체로 온 중고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잠자리 떼가 장관을 이룬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전망이 트이나 남쪽 아래로는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신비스럽다. 천왕봉에 무사히 오른 것을 자축하며 기념사진도 찍고 정상주도 한 잔씩 나눈다. 오랫동안 정상에 머물다가 천천히 장터목으로 내려선다. 장터목산장에서 더운밥과 부대찌개로 조리를 해서 맛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식사 후 주능을 따라 여유 있게 연하봉과 촛대봉을 지나 내려서니 곧 세석산장. 세석산장 역시 많은 산님으로 붐볐는데 그들 틈에 끼어 자리를 확보해 술 한잔을 위해 안줏거리를 만든다. 원래 돼지 불고기 안주 준비는 신O섭 선배가 당번이었는데 출발 전 갑자기 일이 생겨 이번 산행에 불참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준비해간 약간의 고기류와 비상용 스팸 햄을 얇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지져 상추쌈을 해서 술을 걸치니 그 맛도 정말 괜찮은 편이다. 산에서 맛이 없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방학을 맞이하여 학생들과 교사들이 세석대피소에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는데 우리가 산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 동지들이었다. 자리를 배정받고 어두워져 샘터 아래로 내려가 몸을 대충 씻고 나니 개운하다. 대피소 사용료가 7월 1일부터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되었다. 9시가 되자 소등이다. 잠에 취했다가 12시가 되어 더워서 잠이 깨었는데 더 견디지 못하고 1층 홀로 나와 뒤척이다 잠이 잠깐 들었는데 홍 선생이 깨운다. 어둠 속에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이다. 오늘의 산행을 위하여 서둘러 준비를 해야 한다. 뱀사골 산장까지 늦어도 12시에 도착해야 일정에 차질이 없다.
어제 남았던 밥과 찌개를 데워 아침을 해결하고 영신봉에 올라선 시간이 오전 5시. 동쪽에는 까맣게 짙은 어둠이 점차 파랗게 밝아오며 샛별이 영롱하게 밝다. 남쪽으로는 섬진강 골안개로 하동과 구례 쪽이 구름바다이고, 서쪽으로는 반야봉의 실루엣이 점차 선명해진다. 아마 오늘 날씨가 눈이 시리도록 맑을 것이다. 이후 산행은 교과서적으로 칠선봉을 지나 선비샘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선비샘에서 청량한 물맛을 보고 땀을 식힌다.
선비샘이 있는 덕평봉을 돌아내리면 벽소령 산장. 벽소령으로 향하면서 아래로 내려다뵈는 화개골이 장관이다. 벽소령 산장에는 빨간 유니폼을 입은 많은 여학생이 종주 길에 나섰는데 그들의 젊음이 정말 부럽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지리산 주능을 활보하던 20대의 청춘이 있었는데 꿈같은 시절이다. 다시 또 출발. 벽소령 산장에서 명선봉 연하천까지는 고도를 높여야 한다. 망바위를 지나 형제봉에 올라 골바람이 시원스럽게 부는 곳에 퍼질러 앉아 더위를 식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은 저하하고 햇볕은 더욱 강렬하다. 햇빛을 피해 그늘 속으로 숨는다. 햇빛과 그늘 사이에서 더위를 느끼는 체감 온도가 엄청나다.
삼각고지를 내려서 질퍽거리는 길을 따라 걸으니 연하천산장. 오늘도 샘터의 두 개의 굵은 물줄기가 시원한 물을 토해낸다. 지리산 능선에서 물맛이 제일 좋고 시원한 곳이 단연 연하천 샘물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샘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지리산은 정말 대단한 산이다. 홍 선생을 꼬드겨 시원한 캔맥주를 사서 마신다. 10년 만에 매점 먹거리값을 올렸단다. 고도가 높은 이곳까지 운반하고 수고한 노고에 비하면 그래도 저렴하다고 하겠다. 연하천에서 술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 주당 산꾼들에게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술 때문에 연하천에서 1박을 하거나 비박을 한다는 산꾼들도 많다는 풍문이다.
이번 산행에서 인상적인 구간이 있었다면 연하천-토끼봉구간이다. 지척이라고 생각했던 이 구간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총각샘을 향하면서 낮아졌던 고도는 반야봉만큼이나 거대한 토끼봉이 저 멀리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또 한 번 힘을 써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역시 토끼봉은 종주 때나 역종주때나 지친 산님들에게 절대 만만치 않다. 결국 토끼봉을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 후 겨우 올라선다. 토끼봉 아래로 가혹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피부에 불붙을 듯 매우 뜨겁다.
산님들이 그늘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화개재를 지나 뱀사골 산장에 내려섰는데 그동안 많은 발전을 했다. 취사장도 별채로 예쁘게 지었고, 산장 지붕도 손을 보았고, 대형 지리산 안내도도 새로 만들어 놓았다. 산님들을 위해 아낌없는 배려를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샘터의 물줄기가 예전보다 무척 약해졌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세석에서 남긴 밥과 맛난 점심을 먹는다. 시장이 반찬이다. 지금까지 여정이 원만하게 맞아 예정시간에 하산한다. 그동안 뱀사골의 상류도 태풍과 폭우로 상당히 훼손되었는데 그 또한 자연의 섭리인 것을 어찌하랴. 그래도 간장소부터 뱀사골의 풍광은 변함없이 그대로 재현된다. 암반 위를 매끄럽게 흘러가는 물줄기와 수량이 풍부한 이름 모를 소(沼)를 지날 때는 소금에 절인 배추 같은 몸을 계류에 담고 싶지만 그대로 진행하다가 제승교를 지나,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텀벙한다.
뱀사골 산장까지는 간편한 복장의 피서객들이 오고 가기도 하고, 계곡 경치 좋은 곳에서는 여지없이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도 그 유혹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뱀사골은 곳곳이 선경이며 비경이다. 금포교 아래에는 기가 막히게 커다란 소가 만들어져 있는데 물놀이를 하다가 자칫 목숨을 잃을까 두렵다. 어디나 지리산의 계곡물은 수온이 낮으므로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
탁용소와 요룡대를 지나면서 뱀사골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틀 동안의 지리산행을 마무리하며 뱀사골의 숲속을 빠져나왔을 때는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를 불에 달군 듯 강렬하였고, 우리는 그리 멀지도 않은 버스정류장이 왜 이리 머냐고 투덜거리며 마지막 힘을 곤혹스럽게 쓰고 있었다.
*산행을 다녀온 후 게으름에 오늘에서야 산행기를 씁니다. 모든 것이 더위 때문이겠지요. 남원역이 곧 이전한다는군요. 역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있고 단골 콩나물국밥집이 있어 좋았는데 이제 여러 가지로 불편할 일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2004.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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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7년 전 일이네요
더 늙기전에 벙개한번 합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