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연제구 보훈단체협의회
전적지 순례
오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나라사랑
보훈의 의미를 더욱 다짐하기위해 영남지역
전적지 순례
신불산 공비토벌작전
영남알프스에 얽혀진 6·25 전쟁의 뼈아픈
역사는 한낱 이야기 거리로 다뤄질뿐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6·25 전쟁 전후 서부 경남 전선에서 패한
북한군과 여수, 순천 사건에 참여했던 병사
들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었고 이들 중 일부
가 울산으로 이동해왔다.
‘빨치산’으로 불리는 공비들은 영남알프스
주봉인 신불산과 가지산, 고헌산, 대운산 등
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민가를 습격하고
군초소를 공격했다.
국군과 경찰, 민간의용대는 1949년말부터
1954년 초까지 공비 토벌 작전을 벌여
신불산 일원에서 활동하던 북한 남부군
제5지대장 김원팔 등 450여명을 소탕했다.
이 과정에서 우익 인사와 경찰관, 의용대,
군인 등 146명이 희생됐다.
신불산 전투는 6·25를 전후해 신불산,
가지산, 고헌산 등에 거점을 둔 좌익
공비들이 밤낮 없이 출몰하여 양민살해 등
온갖 만행을 자행하자 이 곳 울주군 애국
청년들이 의용경찰대에 자진입대하여
군경과 합동작전을 펼쳐 다수의 순직자가
발생하는 등,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전개된
군번 없는 병사들의 전투였다.
간월재 휴게소 뒷편에 위치한 큰 바위 일대
에서 아군과 공비들간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동족 상잔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지만 신불산
일대에는 6·25 격전지 였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나 안내문을 제대로 찾아볼수가 없다.
그나마 간월재 인근에 세워져 있던 공비 토벌
전적지에 관한 안내판마저도 목재 데크를 설치
하면서 슬그머니 없애 버렸다.
울주군 상북면 석남사 인근 주차장에 있는
신불산 공비 토벌 작전 기념비만이 호국 영령
들의 혼을 달래주고 있다.
이러다보니 울산 시민뿐만 아니라 탐방객들이
영남알프스에 감춰진 비극의 역사를 전혀 모르
거나 알수가 없다 .
과거의 역사는 미래를 예측하는 척도라고 한다.
가슴 아픈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소중하게 담아내고 알리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기성 세대가 후손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할 소명이자 책무인 것이다.
이 사실의 산교육장을 찾아서 참배하는 참
의미를 알고 소풍가듯 관광가는 목적이
아님을 분명코 명심하여 다시는 뼈아픈
전쟁은 없어야 한다.
튼튼한 자주국방 튼튼한 안보를 위해
확고한 정신무장이 필요하다.
ㅇ일시 : 2024년 5월9일(목) 08:30 ~
ㅇ장소 : 신불산 공비토벌작전 기념비 참배
ㅇ참석 : 44명(무공수훈자회 4명)
위령비 비문
유구한 역사에 어찌 환란이 없으리오마는
광복의 기쁨이 체가시기도 전에 한반도에는
민주주의의 우익계열과 공신주의의 좌익
계열로 남북이 갈리게 되었고 1950년 민족의
비극 6.25사변을 전후하여 우리 고장 에도
저들의 만행이 자행되었나니 전쟁을 전후하여
영남에서는 신불산에 거점을 둔 좌익계열이
유격대를 조직하여 신불산. 가지산, 고현산,
아미산 치술령을 주변 일대에 산재한 마을
양민의 재산과 목숨을 약탈함에 이에 이 곳
울주군의 우국청년들은 자치적인 전투대를
조직하여 공비토벌 작전을 벌이게 되었으니
1949년 서울의 공비토벌과 1952년 이른봄
맹호부대를 주축으로 한 군경 합동 소탕적전에
참가한 것이 그 대표적인것이었으며 이 시기에
군.경 전사자를 제외한 우리 고장의 순수한 양민
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이 스물여덣 분이나 되니
그 슬품을 어찌다 말하리오, 무고히 숨진 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반세기가 흘러간 지금 그 당시
작전에 참가하여 생존한 우리 전투 요원들은
가지산 기슭 이 자리에 한 개의 돌비를 새우나니
그분들의 모습 다시 볼 수 없어도 이 산하 어딘가에
한송이 꽃으로 피어날지니 지나는 길손이여
머리숙여 그 분들의 넋을 위로 하소서 우리
생존자들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슴 에 새기고
평화통일의 그 날을 염원하며 삼가 가신 임들의
명복을 비나이다.
서기 2002년 1월에 향인 문학박 강인수 지음
서기 2005년 11월 27일에 신불산참천유공자회 재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