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한 내 의견을 정리하기 전에, 한 가지 이야기해둘 것이 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 전체가 공정한가 불공정한가의 문제는 사실 정확하게 답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에서 가장 큰 기둥은 수시와 정시 이 두개라고 볼 수 있다. 이 둘은 하나라고 보기에는 너무 다르고, 그 특성과 문제 기타등등이 반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극명하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학입시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시험으로 여겨지는 ‘수능’, 즉 정시에 포커스를 맞춰 논지를 전개하되, 논지 중간에 수시, 사회자배려전형, 지역균등선발 등 다른 입시제도에 대한 의견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수능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능보다 더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수능이 어떤 시험인지부터 정확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능은 표준화 시험의 일종이다. 시험 응시자에게 객관적으로 균등하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규범화된 시험을 통해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점, 주관적이거나 개별적인 요소가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인가? 이에 관해서 논쟁이 많다. 먼저 수능으로 인해서 사교육이 강화된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대중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수능은 사교육에 의존할수록 성적이 더 잘 나오는 시험이다’이다. 그러나 2018학년도 고교 사교육비 증가폭이 증가했을때 그 원인을 조사했더니, 오히려 수시와 학종의 비율 확대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히려 정시 모집 비율을 증가시켰을 때 상대적인 사교육비 증가폭은 다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수능 비중을 늘리면 사교육이 강화될거라는 주장은, 사교육계의 홍보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해 생긴 편견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사교육을 증가시키는 요인을 굳이 꼽자면 킬러문제를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수능의 한 요소일 뿐이고, 킬러문제는 수능 외에 수시, 학종 등 다른 입시 제도에도 등장하고, 더 넓게는 모든 상대평가 시험에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수능 탓으로는 돌릴 수 없을 것이다. 비슷한 입장으로 수능은 과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수능이 없어진다고 해도 이 과한 경쟁이 사라질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 교육계를 골치아프게 하는 과한 입시 경쟁은, 대학이 무엇보다 중요한 학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대학 입시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이 학벌주의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이 과한 경쟁 추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논쟁의 여지로, 교육환경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능 및 대학 입시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기본적으로 가진 환경이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기준으로 똑같이 사람을 평가한다고 해도, 출발선이 달라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실 입시제도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위에서 학벌주의를 지적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경제 이념인 자본주의의 문제이지 입시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대입 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가령 공무원 시험이나 예체능 입시 등) 돈을 투자하면 그만큼 더 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자본주의나 학벌주의 자체를 뿌리뽑고 사교육을 금지해야지,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시대는 지났고, 이전과 달리 EBS와 인강 시스템의 발달로 지역간 교육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물론 지역별로 어느정도 인프라의 차이는 존재할수밖에 없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런 입시 준비 체제를 갖춰 발달해온 대치동, 목동 등이 기타 지방에 비해 더 좋은 컨텐츠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사고에 다녔고, 그래서 서울의 온갖 사교육을 다 받고 자라온 친구들을 옆에서 지켜봐온 내 경험적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치동이든 지방이든 어딜가도 입시정보와 컨텐츠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성적을 올리는 것은 오로지 학습자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조차 누릴 수 없는 당장 생계가 급박한 극빈층은 입시제도를 바꿔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개선과 교육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자배려전형과 지역균형선발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마다 기본적으로 가진 환경이 다르고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불공정한 문제는 생길 수 있다. 출발선이 너무 달라서 격차를 해소할 수 없는 경우의 사람들을 배려해 만든 제도는 위에서 이야기한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들에 포함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이 제도들이 오히려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들어올 수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멀쩡한 목표와 취지를 가지고 만든 제도를 악용하는 개개인들의 문제이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정리하자면, 수능이라는 입시제도보다 더 공정한 제도는 아직까지 나오기 힘들다. 사람마다 능력을 평가하는 정확한 지표를 만들기엔 개개인의 환경이 너무 다르고, 현재 인간의 기술과 상식 선에서 이보다 더 공정한 시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이상화된 것을 바란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재 입시제도의 문제점 중 상당수는 수능 시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수능이 계속해서 변화해가면서 본래 목표를 잃고 변질되어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했듯, 우리가 할 일은 수능에 문제가 있다면서 계속해서 무의미한 개편을 반복하고 수능체제의 초심을 흐릴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개선하고 교육 복지를 통해 격차를 줄여나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