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한글 기초를 가르쳐 준 후, 스스로 책을 보고 테이프를 들으며 한글을 뗄 정도로 야무지고 똑똑했던 것 같다. 늘 적극적이었고, 관찰력도 좋았고, 호기심도 많았고, 기억력이 좋고, 원리를 파악해서 무언가를 빨리 배웠다. 그러나 아주 어렸을때부터 엄마아빠가 싸웠을때, 집안이 어두울 때 들어온 슬픔과 무기력, 공포와 좌절과 낙심, 쉽게 절망하는 것, 소망없음이 삶의 바탕이 되었다. 기억이 세살 때 정도 어렴풋이 있는데, 엄마가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어두운 집안 환경에서, 늘 눈치를 보며, 나름대로 부모님을 배려하며, 애어른처럼 내 의사와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적어도 세 살) 늘 느꼈던 생각과 느낌을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악한 영이었다는 것이 인지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에게 질문을 하면 주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혹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로 혼이 났는데, 자연스럽게 생각이 제한되었고, 입체적이고, 건설적인 대화 같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기회도 부족한 상황과 맞물려 억압적이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로 자랐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잘 놀기도 했으나, 여행이나 체험학습, 견학 등 직접적인 경험이 많이 없이 책만 많이 읽었다. 물론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은 것은, 기본적인 문법과, 맞춤법, 문장력, 어휘력, 이해력, 논리력 등 학습 능력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머리가 아주 나빠진 때도 어느정도,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책의 세계 너머의 경험과 소근육 등 감각기관의 경험과 이해력의 발달이 부족했다.
비록 악한 영의 영향력이 있더라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교우 관계도 좋고,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발표 기회를 주실 때마다 난처하실 정도로 매번 손을 들었을 만큼,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했는데, 5학년 때 원치 않던 전학을 가고, 부모님이 학원 사업을 시작하면서 환경이 많이 바뀌고, 점점 집안이 기울어지기 시작해 어두워지고 예민해졌고, 그와 맞물려 사고력, 독해력, 조울증, 불안장애, 학습장애, 무기력도 점진적으로, 한 해가 다르게 빠르게 나빠졌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충분히 자고, 아침에는 늘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불쾌한 기분과 눌린 느낌, 몽롱한 느낌으로 일어나기가 힘들었고, 잠을 깨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신문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가서는 시험에 대한 불안함과 조급함, 무기력과 사고력 저하가 더 심해져 책도 읽으려고 해도 금방 흥미를 잃고, 읽어도 잘 이해가 안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가 잘 될 때도 꽤 있었기 때문에, 잘 될 때는 독서실에서 새벽 2-3시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잘 외우기만 해도 어느정도 성적이 나왔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력과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외우는 기계가 되어갔다. 집안 형편은 한참 예민하던 중학교 사춘기 시절 가장 나빠서,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자아 성찰을 하며 자기를 돌아보며 발전을 도모하기도 했으나, 날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어찌어찌 공부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중3 겨울방학 때 공부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멍을 때리고, 잡생각에 빠져들어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인지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으나, 늘 감정적으로 피곤하고, 두렵고 공포스럽고, 공부해야 할 양에 압도되어서, 마음이 산만해서, 정보를 처리하기 귀찮아서 그냥 눈으로 쓱쓱 훑을 때도 많았다. 무엇보다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글을 읽을 때, 늘 “이게 뭐지? 예전에는 됐는데, 이제는 왜 안되지?” 하는 공포와 의심과 두려움과 자괴감이 있었고, 문장들이 지속적인 이해가 전혀 안됐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내용 파악이 틀릴 때가 많아서 선생님이 요약해주신 내용을 늘 옆에 적었다. 머리가 나빠졌다는 것을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머리는 느려지고 귀찮아졌는데,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하려고 늘 애썼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자기개발서를 읽으면서 동기부여를 하고, 버스에서든 어디서든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려고 했다. 고등학교때 예배 사회를 보는데, 말씀을 소리내서 읽어도 글자는 읽어도, 하나도 이해가 안됐다. 그래서 소리 내어 공부하라는 방법은 내게 효과가 없었다. 글을 읽으면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소리로 들리고, 문장의 상황과 배경의 이해가 되지 않고, 주입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언가를 읽으면 사고력이 마비되어 의미가 확장이 되지 않았다.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 순간 자괴감과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에게 공포와 긴장감을 주는 방식으로 머리를 깨워보려고도 했는데, 당연하게도 잘 안되고, 또 그것은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즉 죄와 악한 영을 붙들고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방식 자체로 부작용이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오히려 키워가기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등학교 때는 나를 학대하듯 공부를 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누르고, 무시하고, 공부하기가 두렵고 싫었지만 어떻게든 책상에 나를 앉혔다. 선생님의 말씀은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받아적었다. 나도 모르게 멍때릴 때가 많고, 즉각적인 이해가 잘되지 않아 인터넷 강의 학습을 선호했다. 왜냐면 내용을 놓쳐도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가서 여러번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여러 번 같은 강의를 들으면 이해되기도 했다. 사회탐구 과목의 경우, 모의고사가 끝나면,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무료로 해설강의가 제공되는데, 사탐 과목마다 20문항의 오지선다 문제에서 정답은 왜 정답이고, 오답은 왜 오답인지, 모의고사 시험지 가득 20-30분짜리 수업을 2-3시간에 걸쳐 받아적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 잘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벌로 다스렸다. 그래도 공부를 놓을 수는 없었다. 집안과 나 스스로가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휴식의 효율이 떨어졌고, 혹은 휴식이 불가했고, 부정적인 생각을 다스리고, 피하기 위해,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 또 공부를 붙들기도 했는데, 이 역시 지혜없고 어리석은, 역효과만 가득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수능을 봤다. 그해 수능은 역대 최고의 불수능이어서, 나뿐 아니고 많은 이들이 못 봤고, 덕분에 등록금 부담이 적은 국립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대학교 1학년 때도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정도로 열심히 있었고, 1학년 1학기 성적은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학년 2학기 때부터, 그나마 고등학교 때 나름대로 효과가 있던 받아적기나 인강 방법이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읽거나 들었던, 바로 전 문장이 기억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다시 보거나 누군가 말을 하면 기억나긴 하지만, 매번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심했을 때는, 내가 어떤 말을 하는데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을 하는 시간이 1분도 되지 못해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정말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다. 선교단체의 모임과 예배와 단기선교를 가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며 기분을 좋게 하려고 하고, 핸드폰의 세계에 빠져들어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고 하고, 핸드폰 미디어 금식을 시도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가까운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기분전환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내적 치유를 하는 교회를 가기도 하고, 인강 요법을 다시 시도해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기도 해보고, 다이어리를 쓰기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고, 백색 소음이 많은 카페에서 공부를 해보거나, 조용한 도서관에 가거나, 자연 속에서 쉬는 등 정말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도 벼락치기가 효과가 있다고 해서 해보기도 하고, 공부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다 결국 4시쯤 돼서 지쳐 잠들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순하고 순종적인 성향 덕에 교회를 성실하게 다니고, 목사님의 말씀은 잘 받아들였다. 그러다 대학교 때 열정적인 선교단체에 가입한 덕분에, 나름대로 신앙은 자라갔고, 꿈과 야망이 많았지만,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만큼, 신앙이 많이 위로가 되었다. 갈급함 때문에 선교단체의 예배와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말씀과 신앙 서적도 많이 읽었다. 그러다 22살에 들어서 “예수님의 무명시절”이란 책을 읽었고, 그 후 문득 “어느 다른 장소에 가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미니 광야에 들어가고 싶다.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3살이 될 무렵, 동아리방에서 2-3시간 동안 기도나 묵상을 하는 등, 전에 하던 것보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상태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조울증이나 불안 등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어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몰랐었다. 그냥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마음으로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가정의 불화로 인한 정신질환, 악한 영 등 인터넷 검색을 하다 23살 7월 말 무렵 신상래 목사님의 사이트를 알게되었다. 목사님의 구원관이나 신앙관이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과 같고, 내가 궁금했던 부분, 특히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세상은 사건사고가 일어나는가 등의 질문이 많이 해결이 되었다. 정신질환 등 귀신이 일으키는 질병 등 대한 내용도 있어 좋은 사이트라 생각하다, 8월 초, 마음이 곤고하여 회개 기도를 하던 중 젊은 나이에도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이러다 지옥에 갈 것 같아, 목사님은 의인인 것 같으니 목사님께 기도를 요청하면 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목사님은 기도훈련을 하지 않으면 중보기도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여,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기도를 시작하고 가장 신기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십수년을 갖은 노력을 정성스럽게 기울여도 부정적인 생각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도 평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고, 그 덕분에 기도를 계속 할 수 있었다. 귀신의 공격이 세지자 목사님이 계시는 대전의 원룸으로 가서 축출 기도를 받기도 했으나, 2개월이 지난 후쯤, 목사님이 충주에 영성학교 문을 여시면서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기도를 계속 하면서 결국 15년 3월부터 매주 목금토일 영성학교에서 지내며 기도 훈련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기도를 하면서 기도훈련 전보다 10키로 이상 빠질 때도 있었다. 밖에도 나가기 힘들 정도로 공격이 심했고, 겨우 엄마가 직장에 다니시는 사촌동생들을 돌보는 알바를 하며 지냈다. 17년 3월 부터는 아파트에 과외 업체의 전단지를 다섯 시간씩 붙이는 알바를 일주일에 2-3일 하며 영성학교에 갈 차비와 최소한의 용돈을 마련했다. 그 당시 목사님이 상태가 어떠한지 매주 물어보셨는데,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머리가 맑아지고 있어요”였다. 18년 여름이 되자, 지금도 종종 언급되는 역대급 더위에 일을 하기 힘들어서, 초등학생에게 파닉스 등 기초를 가르치는 영어학원 파트타임 광고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많았고, 영어에 대한 지대한 흥미를 보였으나,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늘 시험을 위해서 문법과 문제를 잘 푸는 법을 배웠고, 문제를 풀고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체크표를 하며 나를 채찍질하고, 자괴감을 겪는 것이 매순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파닉스와 더불어 회화나 언어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문법을 다시 공부하고 언어교환 앱을 사용하여 기본 회화나 구문, 문법 연습을 많이 하였다. 영화나 앱, 유튜브/온라인 강의 등 꾸준히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하였고, 21년 미공군 계약 업체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때는 행정업무를 보아 영어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한국계 미국인 소장님이 가르쳐주셔서 기본적인 업무 이메일을 쓰는 연습을 했고, 이따금 영어를 쓰는 환경에 노출이 되었다. 일이 끝나면 매우 피곤했기에 불규칙적으로 공부를 해서 영어가 크게 늘지는 못했다. 회사에 입사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찾게 되면서 언어능력과 경험에 의한 이해력이 향상되었다. 관찰력, 이해력, 인내, 끈기, 흥미, 창의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었다. 늦은 나이에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한만큼, 또 영성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려고 했고, 내가 원하는 방식을 주장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성격이 밝아지고, 부정적인 상황이 다가와도 회복하는 속도나 능력이 좋아져 대인관계 능력도 좋아졌다. 직장 상사분이 어느날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것이 부럽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기회를 주셔서 22년 같은 회사 대구 지부에서 환경, 안전, 건강 (Environmental, Health, and Safety) 매니저가 되었고, 매일 미국인 동료들과 일을 하면서, 영어로 된 문서들을 보면서, 이메일을 직접 쓰기 시작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말로 된 전문적인 글도 이해하지 못한 때가 있는데, 영어로 된 전문분야 글은 읽기 더 힘들었고, 이메일부터 공식 문서 작성 등 많은 것들이 영어로 되어있기에, 쉬운 일에도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되어 23년에는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을 많이 늘렸고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영어 공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나, 절대로 나의 힘대로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축출기도의 힘이 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부분에서 부정적인 생각에 잡혀있었는지, 나는 어떻게 공부를 잘못하고 있었는지, 언어의 원리는 어떠한지 지혜를 주셔서 언어를 더 쉽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뇌의 한정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빠져나가게 되니, 창의력, 이해력, 사고력, 논리력, 기억력, 독해력, 집중력 등 전반적인 뇌의 능력도 향상되었다. 사람들과 대화도 잘 하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이야기하는지 그 의도가 잘 파악이 된다. 적절한 타이밍에 농담 같은 것도 적재적소에 던질 줄 안다. 때로는 내가 이래도 되는건가 싶기도 할 정도로, 공부를 안해도 조급하고 죄책감이 안 들 때가 있다.
몸도 많이 회복이 되었는데, 악한 영이 머리와 몸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몸도 약하고 건강하지 않았지만, 비교적 어릴 때여서 그런지, 혹은 몸을 아프도록 공격하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특별한 병명은 없었다. 다만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기도할 때, 생활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매주 축출기도 덕분에, 또 하나님의 은혜로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이 닥쳐와도, 시간이 걸려도 항상 회복을 했다. 또한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 운동은 25살 때부터 시작했는데, 집에서 벽스쿼트 30초, 맨몸 스쿼트 3세트, 15회로 시작하여, 점점 운동량도 늘려가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겨우 성공하긴 했지만, 2년 전에는 무등산, 작년에는 금오산 정상에도 올라갔다. 28살 때, 영어 가르치는 파트 타임 4시간을 하고, 헬스장에서 30분 걷기나, 기구를 사용하여 운동해도 피곤했는데, 이제는 직장 후에 저녁까지 일을 하고 공부해도 괜찮을 때가 많다. 물론, 일정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잠을 잘 못자면, 다시 피곤해지만, 잘 쉬면 회복한다. 또 영양을 신경쓰게 되었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때가 비록 20대 초반이었지만,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또 귀찮았는데,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는 몸에 해로운 것을 저절로 조절하고 줄이게 되었고, 건강한 음식이 더 맛있어졌다. 때에 따라 적절한 영양제도 잘 챙겨먹게 되었다. 또한 진정한 휴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쉬어도, 공부를 안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이 많을 때는 예전처럼 쉬어도 쉬지 못할 때도 있지만, 휴식을 충분히 취해 일의 능률이 올라갈 때가 많다. 그래서 매우 행복하다.
몇 년 전부터, 지난달까지 몇 개월에 한번씩 꾸준히 꾸는 악몽은, 고등학교 1학년이나 3학년 첫 수업으로 돌아가는 꿈이다. 수학을 싫어하고 잘하지 못했는데, 문과생이 수능때 미적분을 보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세대여서, 다시 수능을 보는 것은 미적분을 해야 하는 것과 같고, 졸업한 지 꽤 오래 지났기 때문에 수학뿐 아니라 잘하던 다른 교과도 많이 잊어버렸다. 꿈이어도 내가 왜 또 수능을 봐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꿈에서 깨어도,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공포와 고민과 괴로움이 가득하다. 그 주,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미적분을 공부해야 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 선생님께 손을 들고 잘 모르겠다고 질문을 하자 선물이 마구 쏟아졌다는 꿈 이야기를 하시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와도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면, 불쌍히 여겨주신다는 말씀을 듣고는 아직까지 그런 악몽을 꾸지 않았고, 또 그런 악몽을 꾸더라도, 꿈속에서라도 말씀하신 것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과 싸워야겠다는 마음을 종종 먹는다.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글읽는내내..감탄했어요^^ 어쩜 이렇케 잘 썼는지요^^ 은혜받고 갑니다
할렐루야~!!
마음에 감동이 되는 훌륭한 내용 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