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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미얀마 답사(10)- 애증의 역사(세인넷 암마페야, 슐라마니, 담마양지 사원)
무진당 추천 0 조회 94 10.01.27 20:24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②애증의 역사(세인넷 암마페야, 슐라마니, 담마양지 사원)

 

  식당에서 만난 현지인들

 

현지인들이 먹는 식당에 간다고 할 때부터 걱정이 되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 못 먹겠다. 음식마다 오징어나 북어포를 썩힌 듯한 꼬질꼬질한 냄새가 나고, 육수마다 누린내가 배여 있다. 우리나라에도 청국장이나 홍어같은 발효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냄새와는 또 다른 향과 맛이다. 몇 번을 먹어 보려 시도하다 결국 포기했다. 아,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구나. 해외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고 새로운 세계를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새로운 장소에 와서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지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고 아무리 자책을 해 봐도 못 먹는 것은 못 먹는 거다. 이런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이자. 한 3일 굶기면 없어서 못먹을 거라며 글로벌한 입맛을 가진 분들의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결국 컵라면으로 떼웠다. 매 식사때마다 가이더가 컵라면을 내놓았는데 이번만큼 많은 사람들이 컵라면을 찾는 경우는 없었다. 음. 입맛의 순결성을 지닌 분들이 의외로 많군.

 

점심을 먹자마자 도착한 곳이 세인넷 암마 페야다. 이 사원은 한 장소에 두 가지 형식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곳이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탑과 사원이란 단어를 뒤섞어서 썼는데 미얀마에서는 두 개 모두 같은 개념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능에 따랴 페야와 제디로 나뉜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내용이다. 즉 사원 형식으로 탑 내부에 불상이 안치된 탑이 ‘페야’이고,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리탑 형식이 ‘제디’이다. 세인넷 암마페야는 페야와 제디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사원의 탑은 바간의 여섯 번째 왕인 나라파티시투왕의 두 딸이 만들었다고 한다. 세인넷은 공주 이름, 암마는 언니, 페야는 사원이라고 한다. 세인넷 암마페야는 ‘언니 세인넷이 만든 사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탑이 언니가 만든 탑이고 어느 탑이 동생 것인 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층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을 만들고 불상을 안치해야 하는 페야는 건물의 구조상 1층이 높게 설계된 반면, 사람들이 바깥에서 예배하는 제디는 기단부가 낮고 탑신부와 상륜부가 강조된 것 같다. 두 탑의 하단 높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왼쪽이 페야, 오른쪽이 제디

 페야는 내부에 불상을 모시는 사원탑이라 1층이 높고,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는 제디는 사리탑이라 기단이 낮다

 제디의 세부

 

 

 

 

 

 페야의 세부

 

 

 

 창문이 구멍 뚫린 벽돌로 막혀 있는 형식이라 내부가 컴컴하다. 후대에는 벽돌이 없어진다. 

 페야에 올라가서 찍은 바간의 탑

 왼쪽 멀리 탑빈유 사원이 보이고 오른쪽 끝에는 아난다 사원이다.

 

 

1.아노라타(Anawrahta:1044-1077):33년, 쉐지곤 계획, 쉐산도, 마누하

2.솔루(Sawlu:1077-1084):7년

3.쟌시타(Kyansittha:1084-1113):29년, 쉐지곤 완성, 아난다

4.알라웅시투(Alaungsithu:1113-1160):47년, 쿠바욱지, 탑빈유

5.나라투(Narathu:1160-1165):5년, 담마양지(미완성)

6.나라파티시투(Narapatisithu:1165-1211):46년, 슐라마니, 세인넷 암마페야

7.제야테인카(Zeyatheinka:1211-1231):20년

8.나라틴카 우자나(Narathinhka Uzana:1231-1235):4년, 틸로민로

9.쨔스와(Kyaswa:1235-1249):14년

10.우자나(Uzana:1249-1256):7년

11.나라티하파티(Narathihapati:1256-1287):31년, 밍글라제디

 

미얀마 답사 글 4번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바간 왕조를 여기서 다시 언급한 것은, 말없이 서 있는 탑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세인넷 암마페야는 바간의 여섯 번째 왕인 나라파티시투왕의 딸들의 발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나라파티시투왕이 직접 주도해서 만든 탑이 슐라마니 사원이다. 슐라마니 사원은 그의 아들 나라틴카 우자나가 지은 틸로민로 사원의 모델이 될 정도로 외양이 흡사하다. 거대한 사원의 내부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밀교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불상들이 모셔져 있고, 복도 벽에는 민화처럼 단순하고 순박한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기법이 서툴러서 사원이라는 위압감이 대번에 누그러진다. 나라파티시투왕 때의 문화는 세련되고 귀족적인 세인넷 암마페야 사원과, 술라마니 사원의 벽화가 공존할 만큼 문화가 풍요로웠던 것 같다. 46년동안의 재위 년간을 봐도 큰 정변없이 긴 세월을 유지했던 것 같다.

 

 슐라마니는 아래의 틸로민로 사원을 모델로 만들었다.

 틸로민로 사원

 이하 슐라마니 사원

 

 

  

 내부 복도 벽에는 대형 벽화가 그려졌는데 기법이 단순하고 순박하다.

 

 

 

 

 

 

 다른 미얀마 불상과는 달리 상부에 닫집처럼 장식이 되어 있다.

 부처님이 부다가야에서 49일동안 명상에 잠길 때 용왕인 나가가 자신의 몸을 덮어 폭풍으로부터 부처님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슬퍼하거나 연꽃을 바치는 제자들의 모습이 민화처럼 그려졌다.

 부처님의 열반상 위로 슬퍼하는 제자들의 모습

 부처님의 열반상 발 부분에서 연꽃을 바치는 제자들

 해질녁까지 계속되는 미얀마 정장

 

슐라마니 사원을 나오자 마차가 기다린다. 진행자의 특별 배려에 의해 마지막 사원부터는 식당까지는 모두 마차로 이동한단다. 사람 좋아 보이는 마부 곁에 아들이 앉고 나는 뒤편에 앉는다. 나와 동갑이라는 마부는 행여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자리에 멈춰 서서 기다려 줄 정도로 배려심이 깊다. 연신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나와 동갑이라는 데 얼굴이 태양빛에 그을려서 꼭 내 오빠뻘은 되어 보인다(남들이 객관적으로 보면 평가가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아이가 몇이냐고 물어봤더니 여섯이란다. 큰 애는 22살, 막내는 6살. 혼자 벌어서 여덟 식구가 먹고 살려니 무척 힘들다고 한다. 학교는 다닌 적이 없다고 해서 영어는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 마부를 하기 위해 기술학교 비슷한 곳에서 배웠단다. 기분 좋은 사연이 담긴 사원을 보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 행복한 시간.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극의 담마양지 사원

 

 

 

 내부가 어두컴컴하다.

 벽돌 사이로 바늘같은 틈만 있어도 이 형기구에서 손을 잘렸다. 

 

 

 

 이상 자료제공:정민호 선생님

 

마지막으로 들른 담마양지 사원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건립된 곳이다. 바간에서 가장 거대한 사원중의 하나인 담마양지는 나라파티시투왕의 아버지인 나라투왕이 세운 사원이다. 나라투왕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아버지 알라웅시투왕과 동생 그리고 아내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 왕이 된 후에는 자신의 왕위를 빼앗길 것이 두려워 왕자들과 신하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리고 보위에 오른 후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기 위해 지은 사원이 바로 담마양지다.

그러나 잔인한 성질이 참회 한 번 했다고 해서 어디 가겠는가. 사원 공사 중 노역자들을 너무 혹독하게 대하는 바람에 많은 원성을 샀다. 꼭 들어 맞아야 할 벽돌과 벽돌 사이에 바늘을 끼워 넣어 바늘이 통과하면 벽돌을 쌓은 사람들의 손을 자르거나 처형시켰다. 피붙이를 죽인 과오를 참회하려는 마음이 진심이었다 한들 그 참회를 위해 또 다른 과오를 저지른다면 그것을 어찌 진정한 참회라 할 수 있겠는가. 선택적인 참회나 일시적인 참회가 완전한 참회가 되려면 긴 시간동안의 수행이 필요하리라. 마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에 배인 습관까지 다 고쳐 나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성자들은 깨달은 후에도 수행을 계속하지 않은가. 성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잔악한 성질을 가진 나라투왕이나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말해 무엇하랴. 마음이 곧 몸이라지만 마음에서 몸으로 건너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지 모른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그것이 수행의 완성이리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못하고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먹지못하는 나도 반성 좀 해야겠다.

극악무도한 전횡을 휘두르며 왕이 되기 위해 2년 동안 피에 손을 담근 후 나라투왕이 왕관을 쓰고 산 시간은 겨우 3년이었다. 나라투왕의 부인은 인도의 한 왕국 빠떼익가야출신이었는데, 자신의 딸이 사위 손에 죽은 것을 안 빠떼익가야 왕이 8명의 무사를 바간에 침투시켜 나라투왕을 살해한 것이다. 그래서 나라투는 미얀마 역사에서 인도인에게 목숨을 빼앗긴 왕이라는 뜻으로 ‘끌라쨔 민’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어리석은 끌라쨔 민이여. 그대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고 얻고자 했던 것이 겨우 3년의 세월이었는가. 나 또한 끌라쨔 민처럼 뭔가를 얻기 위해 소중한 것을 잃고 살지는 않을까.

결국 나라투왕의 죽음으로 담마양지 사원은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그의 아들 나라파티시투왕이 슐라마니 사원을 지으면서도 이렇게 웅대한 담마양지 사원을 완성시키지 않고 남겨둔 것이 조금 의아하다. 노역자들의 한과 원망이 서려 있는 원한의 장소를 돌아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그런 사연을 들었기 때문인 지 사원 내부를 둘러보는데 왠지 서늘한 기운이 내부에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특히 노역자들의 팔을 잘랐던 형기구에 팔을 대어보던 일행들도 바삐 자리를 뜬다. 나 또한 사원 앞에서 기념 사진 한 장만을 찍고 얼른 마차에 오른다. 이라와디강변 곁의 노천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울적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다(계속-조정육)

 

 이라와디 강변의 노천 식당

 

 

 스타 근성이 발동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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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1.27 23:44

    첫댓글 사원 내부의 모습과 이라와디 강변의 풍경도 멋있지만 ~~ 영혼이 머무는 사원인 우리들의 몸 ~~특히 아드님이 몸으로 표현한 작품은 완죤 예술입니다요!^^* 아드님께 전해주세용ㅎㅎ

  • 작성자 10.01.27 23:49

    네~꼭 전해드리겠습니다. ^^*

  • 10.01.29 13:03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미얀마에 이렇게많은 사원이 있는줄 처음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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