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쯤 신문에 연재된 황주리 화가의
[삶의 향기] 라는 코너에 실린
‘나는 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는 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명언인 ‘나는 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에 관해 떠오른 생각을
적은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내용 중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견해에 있어 다소간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지만
여기서 언급한 여러 철학자들의 말에서처럼
‘대다수의 편에 서는 게 꼭 옳은 건 아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 사고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라는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 읽어봤습니다.
말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라 한다면 글은 그보다 좀 더 정제된
그 사람의 의식과 깊숙한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 봄으로써 내 생각의
편린들을 맞춰보고 정리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일부 구절은 생략해 내용을 좀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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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오늘까지도
유효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거나
자기가 누군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게다가 날이 갈수록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도 밥 같이 잘
먹다가 기분이 상하기 일쑤다. 같은 일에 대해
너무 다른 견해를 갖고 서로 옳다고 우겨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치 보며 말없이
밥만 먹는 자리는 피곤하고 재미없다.
그처럼 내 가까운 사람의 진짜 속내도 모를
판에 매스컴에서 매일 보는 정치인을 너무도
잘 아는 듯 핏대 올리며 욕하든지 역성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순진하고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오래된 인연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낯선 외계인으로 느껴진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길에서 처음 본 사람보다 더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도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에 관해 그를 잘 아는 듯
생각하고 말한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알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가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보장해” 등등.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이런 확신이
사라져가는 게 정상이다. 그게 누구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욕을 하거나
무작정 편을 들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비록 그 상대가 내 혈육이거나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비현실적인 과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무조건
자신에게만 관대한,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자기애성 성격장애라 부른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런지 인식 못 하는 채 그 병에
걸려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다.
습관적으로 모든 게 거짓말이기 일쑤이고,
수치심과 죄의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결국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이는 병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늘 우리
가까이 편재해 있었다. 한때 혹은 오래도록
우리가 기댔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가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래전에 이렇게 예언했다.
“대다수의 편에 서는 게 꼭 옳은 건 아니다.
우리는 광기 있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걸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무릇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다.
생각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건 사이비종교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칼 융에 의하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
사고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라 한다.
치우친 생각에 속고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걸
너무 뒤늦게 알게 되는 우리는 늘 어리석다.
다음 생이 있다면 지혜롭게 살리라.
하지만 인간은 계속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살다가 죽는 게 일반적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개인이, 그렇지 않은 세상이 존재한다면
인류의 전쟁은 오래전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끝없이 되풀이해온 분노와
복수를 드디어 끝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지혜로운 세대를 감히 우리가 꿈꿀 수 있을까.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고,
물질이 마음을 이긴지 오랜 세상,
오늘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살아있다는 건 참 쓸쓸하고도 아름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