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고속도로를 달리며
김 성 문
고속도로 개통은 우리의 생활시간을 단축한다. 1984년 대구에서 광주까지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개통했다. 명칭은 88세계 올림픽대회의 서울 유치를 기념하여‘88올림픽고속도로’로 명명했다. 2015년 12월부터는 전체 구간을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하여 종점과 기점의 이름을 따서‘광주대구고속도로’라 한다. 대구에서 광주까지는 교통이 꽤 불편했다. 그런데 고속도로 개통 후부터는 마음만 먹으면 잠시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변했다.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당시를 회상해 본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동서 화합의 문이 활짝 열렸다. 개통의 대축제로는 고속도로 시작과 종점의 나들목을 중심으로 국토순례대행진, 사이클대회, 단축마라톤, 민속씨름대회, 청소년야영대회, 궁도대회 등 20여 가지의 각종 행사를 펼쳤다. 광주와 대구 사이의 고속도로 요소요소 마다 동서 화합을 위해 사물놀이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것을 보는 나 역시도 흥이 나서 함성이 저절로 나왔다. 소요 경비는 8개 고속도로 시공회사가 협조했다니 동서 화합을 위해 시공회사도 나섰다.
체신부에서는 그 당시 고속도로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의 디자인도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깔았다. 아랫부분에는 들판이고 윗부분은 저 멀리 높은 산들이 고향 산처럼 정겨워 보인다. 산기슭으로 지나는 왕복 2차선 고속도로가 왼쪽에서 중앙을 거쳐 다시 왼쪽으로 돌아 나가도록 시원스럽게 표현했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높은 가로등이 촘촘히 서 있는 모습이 전봇대가 정렬해 있는 것 같다. 전체 화면의 아랫부분에는 왼쪽에 광주, 오른쪽에 대구를 기록하고 굵은 선으로 연결함으로써 한 가족이 된듯하다. 아랫부분에는 액면가인 70원이 표시되어 있고,
“88 올림픽 고속도로 개통 기념”
“대한민국 KOREA 1984”
로 디자인했다.
누가 작사와 작곡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개통의 주제가도 있었다.
“아~ 우리의 길
88올림픽고속도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졌노라
아~ 우리의 길
사랑이 넘치는 고속도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졌노라.”
국내 처음으로 시멘트를 사용한 88올림픽고속도로는 콘크리트 포장 도로였다. 아스팔트 도로보다는 승차감은 적으나 우리의 기술로 도로를 포장함으로써 국내 산업 육성에도 이바지했다.
88올림픽고속도로가 왕복 2차선일 때는 중앙분리대 없는 고속도로였다. 운전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추월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처음에는 중앙에 분리봉도 없었으나, 2000년대 중반에 추월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쭉한 분리봉을 설치했다. 그중 여러 나들목에서는 왕복 4차선이 펼쳐져서 추월은 가능했다.
내 앞에 시속 80km 이하로 달리는 저속차량이 있으면 차들이 줄지어서 기차처럼 긴 줄로 천천히 달려야 했다. 간혹 고속도로라는 생각 때문에 몇몇 위험 구간을 빼고는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려도 큰 위험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는 광주에 가다가 그만 속도위반에 걸렸다.
“죄송합니다.”
“속도위반입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위반 스티커를 받고 달리다가 또 속도 위반으로 걸리게 됐다. 이놈의 차가 왜 그렇게 빨리 달렸는지 원망스러웠다.
“조금 전에 속도위반으로 위반 스티커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말로 용서받은 적도 있다.
현재의 광주대구고속도로는 왕복 2차선일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 환경이 변했다. 왕복 2차선일 때는 조금 높은 고개는 저속차량이 갓길로 비켜 주면 추월할 수 있었다. 터널도 오르막길을 어느 정도 오르다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터널을 더 많이 뚫었고 지대가 낮은 곳은 교각을 세워 도로가 거의 수평이 되도록 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도로 환경이다.
현재는 아스팔트 구간도 있고 시멘트 구간도 있다. 아스팔트 구간은 포장이 잘 되어서 차가 달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중앙분리대는 반대편 차로로 달려오는 불빛을 가려 줄 수 있을 만큼 높다란 시멘트로 만든 분리대가 안전 운행에 도움을 준다. 확장한 도로는 시원스럽게 활주로처럼 보인다. 운전대가 잠을 자는 듯하다. 운전하는 팔도 조용하다. 자동차는 스스로 속력이 가해진다. 잠시 달리는데 규정 속도를 훨씬 넘는다. 아차! 싶어서 옛날 생각이 나서 속도를 줄인다. 그래도 자동차는 혼자 신이 난 듯 자꾸만 달린다.
지리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개통 당시 이곳에서 영호남 간에 부부의 인연을 맺는 8쌍의 합동 혼례식도 있었다. 혼인한 부부는 벌써 50대로 사회의 중심인물로 큰 역할을 하고 있을 연령이다. 휴게소에 있는 300년 된 소나무가 만든 두꺼운 그늘은 휴게소를 찾는 이에게 활기를 주고 있다. 휴게소 광장 동쪽에 있는 영호남‘우정의 동산’에 가 보았다. 8각의‘지리산88정’은 그 운치를 더하고 있다. 잠시 정자에 오르니 주위의 높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산들은 휴게소를 감싸고 있어 나 또한 포근함 속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긴다. 휴게소에서 파는 춘향남원추어탕이 생각난다. 추어탕의 맛이 여느 때와는 색다르다. 휴게소는 그 지역 특산품으로 요리한 음식들이 제맛을 낸다.
고속도로는 우리의 생활을 일일생활권으로 해결해 준다. 옛날에는 대구와 광주 사이를 왕복 하루가 소요된 일정인데 이제는 편도 3시간이면 해결된다. 남는 시간은 가고 싶은 곳을 가 볼 수가 있다. 광주에서 밤에 출발했다. 교통량이 적어 밤인데도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 앞에서 대구방향, 촬영: 2022.9.22.
첫댓글 88고속도로를 읽는 중 직접 달리는 기분으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날 되세요.^^ 장희진
장 선생님!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보람된 한 주 보내셔요.^^
대구 사람이 광주가는 것도 광주 사람이 대구 오는 것도 쉽지 않은 세월이 있었지요.
거리가 먼 탓도 있고 지역감정도 있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엊그제 회장님과 광주 나들이 갔는데 교통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그렇다고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그만큼 가까운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을 바라보니. 글을 잘쓰는 방법 중 하나는 다작이라니 아마도 좋은 결실을 얻으실 것 같습니다. 화이팅
조 선생님! 읽어 주시고 의미가 있는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
'한국은 딱히 부존자원이라 할 게 없다.
그저 산 많고 사람 많다.'
요렇게 아는 게 우리들의 상식인데,
기실 그나마 좀 있는 자원이 있습니다.
바로 석회석입니다.
따라서 시멘트 산업도 대단합니다.
반도체나 조선만큼 소문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데 이 시멘트란 것이 가끔 과잉생산이 되어 골칫거리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새마을운동이란 걸 할 때는
정부에서 국비로 매입하여 모범마을에 주기도 했죠.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이러고 나서도 또 과잉생산!
그렇다면 고속도로를 아스팔트 대신 시멘트로 까-알자-앗!
역시 한국인들의 창의성과 역동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김 선생님! 시멘트에 대한 생각 감사합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
88고속도로가 2차선일 때 몇 번 가보았는데 지금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있다니 가보고 싶네. 경상도와 전라도화합의 도로 이름은 더 정답게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채성만
채 선생님! 읽어 주시고 좋은 멘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