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은 머리를 깎고 일반인들은 기른다. 스님들은 내면을 보고 일반인들은 밖을 본다. 스님들은 화합의 색깔인 회색을 입고 일반인들은 개성있는 칼라 색을 입는다. 승복은 앞뒤도 없고 남녀의 차별이 없다. 일반 옷은 그 반대로 반드시 구별된다.
스님들은 명예를 버리려고 한다. 일반인들은 그것을 어떻게든 가지려고 한다. 스님들은 돈을 버리려고 한다. 일반인들은 그것을 쟁취하려고 한다. 스님들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일반인들은 악착같이 그것을 취득하려고 한다.
스님들은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 한다. 일반인들은 사적에 이름을 남기려고 한다. 스님들은 근원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일반인들은 지류로 내려가고자 한다.
한 부류는 해탈하려고 하는 무리들이고 한 부류는 속박 당하려 하는 무리들이다. 고통과 재액으로부터 해탈하려고 하면 출가를 하여야 한다. 반대로 고통과 괴로움에 속박 당하려 한다면 세속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선택은 자유다. 누가 시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떠민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해탈과 속박이라는 두 가닥을 두고 과감히 한 개를 잡는 결단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만약에 전자를 택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출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드디어 부처가 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내게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용어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서 절집이라는 말이 하나 있다.
도대체 어느 덜 떨어진 사람들이 자꾸 절에다가 집을 갖다 붙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도 출가한 세속 집에 미련이 많이 남았다고 절에다 자꾸 집을 갖다 붙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다.
절은 절이고 집은 집인 것이지 절집이라는 말은 없다. 한자 어느 경장이든지 논장이든지 간에 사찰을 지칭해 사가寺家라는 말은 없다.
불국사는 불국사 절인 것이지 불국사집은 아닌 것이다. 크렘린궁은 크렘린궁이지 크렘린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백악관은 백악관으로 끝나지 백악관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집과 절은 사는 사람도 차이가 나고 담겨져 있는 내용도 엄연히 차이가 난다. 집이 싫어서 절에 온 사람도 이 집이라는 세속적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 입만 벌리면 절집이라고 자기 주처지를 천격하 한다.
집은 중생을 낳고 절은 부처를 생산한다. 집은 세간을 담고 절은 출세간을 담고 있다. 집은 혈통을 낳고 절은 죄업의 혈통을 끊어 버린다. 집은 번뇌를 기르고 절은 번뇌를 자른다.
그러므로 절에 들어가는 것을 출가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번뇌를 끊고 수행의 길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절집이라는 소리는 좀 그만 쓰고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절은 집이 아닙니까?''
''아니리니깐. 절과 집은 태생 상 다르다니깐.''
그래도 절집이라고 부르고 싶은가. 그럼 이렇게 예를 들어주면 이해가 될 것 같다. 닭이 살면 닭장, 개가 살면 개집, 대통령이 살면 청와대. 임금이 살면 대궐. 사람이 살면 집. 귀신이 살면 폐가. 스님이 살면 절이라고 말이다.
''절간이라는 말은 어떻습니까?''
''미쳤다. 정말.''
어느 이상한 불교신자가 이렇게 부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저 사람은 아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고 스스로 위안하였다. 왜냐하면 맨 정신을 갖고서는 절을 도저히 그렇게 낮춰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특히 불교를 아주 깔보고 천시하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부르지 어디에 감히 중생들을 살리기 위해 수행하는 성스러운 수행처를 그렇게 비하할 수 있단 말인가.
사찰은 대궐과 품격이 맞먹는 수준이다. 그러므로 대궐에만 있는 용마루가 사찰에도 있다. 물론 일반인 가옥에는 이 용마루가 허락되지 않았다. 아무리 기세를 부리던 명문 대감저택이라도 그랬다.
''이조 불교 때도 그랬읍니까?''
''넌 왜 자꾸 삐딱하게 나가냐?''
''사실을 묻는 것입니다.''
''넌 왜 이조불교만 아느냐? 신라불교와 고려불교는 너에게 없느냐?''
그러므로 절간이라는 말은 절집보다 한 수 더 떨어진 격하된 말이다. 왜냐하면 절 밑에 절집이 있고 절집 밑에 절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또 예를 들어 주겠다. 절에는 옛날에 농막이라고 해서 가옥들이 달려 있었다. 그 가옥이 집인 것이다. 이제 집 속에 간이 달려 있다. 어떤 종류의 간이냐 하면 헛간 잿간 뒷간 똥간 마굿간 외양간 같은 간이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절을 이 간과 같은 위치에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놀랄 일이겠는가. 절집이라고 해도 상당히 듣기가 거북한데 절간이라니. 이게 정말 말이나 되는가.
그 사람은 자기가 아직도 남의 집 외양간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마당쇠인 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간 위에는 집이 있고 집 위에는 절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왜 내가 절간이니 절집이니 하는데 대해 기분 나쁜 반응을 보이는지 완전하게 이해가 되었을 줄 믿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두 번 다시 이렇게 격이 맞지 않는 말이 이 나라 안에서 재삼 언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악의적으로든 어떻게든 절을 비하시키고자 안간힘을 썼던 이조시대 때의 슬픈 시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출처:바이로차나 1권_공파스님 역해_맑은소리맑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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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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