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미가서 6:6-8
제목 : 선교적 삶을 향한 보내심(38) - 인자를 사랑하는 삶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감사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앞에 옆에 계신 성도님들과 서로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안성전에서 예배 드리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같은 은혜가 임하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또 귀한 날 복된 날 허락하시고 특별히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난 반 년을 돌아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또 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님, 이 자리를 기름 부어 주시고, 예배당 안의 공기조차도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정의를 행하는 선교적 삶
우린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삶을 살면서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행한다 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에 신경을 쓰고 귀를 기울이는 걸 말하지요.
그리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인데, [정의를 행하는 것과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정의를 행하고 인자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라는 말씀이지요.
우리에게 이 소중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해준 미가 선지자는
주전 7세기에 이스라엘의 남왕국 유다에서 활약했던 선지자였습니다.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와 같은 자가 도대체 누구냐?' 그런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같은 분은 없다" 그런 말이지요.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비교할 자가 없다 그런 뜻입니다.
그는 이런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그 당시에 타락하고, 선과 악이 뒤바뀌어 버린
부패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불같은 메세지를 선포했습니다.
그의 메세지의 핵심이 바로 미가서 6장 8절 말씀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하십니다.
여기, 정의 미쉬파트라는 말, 그 사람의 신분여하에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나 권리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
지난 주일 1부 예배에 제가 주안성전에서 설교했기 때문에 부평 1부에 나오시는 여러분들이 오늘 돌아가셔서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지난 주일 제가 했던 설교를 들으셔야 됩니다.
지금 이게 연속되는 설교이기 때문에, 지난 주 설교를 여러분이 들으셔야 오늘 설교가 훨씬 더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권세 있고 지식 있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고 무시 당하고 자신들의 몫과 권리까지 빼앗기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그런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선교적 삶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누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대변해 주고 돌봄으로
정의를 행하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 설교의 내용입니다.
2. 공의와 정의에 대하여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이 정의 미쉬파트라는 단어와 쌍둥이처럼 항상 등장하는 단어가 또 하나가 있는 걸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공의라는 단어입니다. 짜데카라는 단어인데,
우리는 정의와 공의를 때때로 같은 뜻으로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성경을 보면 단어가 달라요. 엄밀하게 보면 뜻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예레미야 22: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짜데카)를 행하여 - (단어가 달라요)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여기 정의는 미쉬파트 이고 공의는 짜데카인데 쌍둥이처럼 동시에 등장해요. 이런 경우가 성경에 참 많습니다.
지난 주에 정의란 뭘까?
"정의"(미쉬파트) - "각 사람에게 저마다 고유한 권리를 부여한다"
"공의"(짜데카) - "올바른 관계 가운데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의'라는 말, 우리가 해석할 때 관계로 해석을 합니다. "의" - 올바른 관계
J. 모티어라는 성경학자는 공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에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관계를 바로잡는 일에 자연스럽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 J. 모티어 -
그러므로 공의란 먼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고,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자연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의로운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팀 켈러는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성경이 말하는 짜데카(공의)는 하루하루 가족 및 사회적인 관계들을
공정하고 공평하며 관대하게 이끌어 가는 일상적인 생활을 지칭한다."
- 팀 켈러 『정의란 무엇인가』 -
따라서 성경에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짜데카)가 계속해서 나란히 등장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거지요.
왜냐하면, 정의는 아주 쉽고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주로 개인, 특히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공의는 모든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회적인 공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의로움이란 두 가지 차원이 다 포함돼요.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성경은 정의와 공의라는 말로 나란히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편 33: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또, (렘 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18:5)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 이렇게 성경에는 정의와 공의가 계속해서 나란히 등장하는 걸 보는데,
팀 켈러 목사는 그의 책에서 이 정의와 공의가 나란히 사용되는 경우가 성경 전체에 보면 30회가 넘는데,
이 경우에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정의와 공의 이 두 단어의 의미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이 있는데,
"그 표현이 바로 사회정의다"라고 말합니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 : 정의 + 공의)
그러므로 지난 주일에 말씀을 나누었듯이, 우리가 진정 의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정의]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갖지 말아야 되고,
오히려 믿는 사람들이 불의와 부정과 상식없음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위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팀 켈러가 그의 책에서 개인 구원에만 몰두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제 교회만이 누리는 샬롬은 그만 둬라"라고 강력하게 표현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오늘 본문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주제에 관한 한 질문을 던졌는데,
그것은 [사랑과 정의가 입맞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랑과 정의가 입맞출 수 있는가?]
- 그리고 그는 사랑과 정의가 입맞출 때 관대한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랑과 정의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없는 정의'는 냉혹하고,
정의없는 사랑'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만 이야기해요.. 잘못했는데, 정의를 빼 버리면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사랑과 정의는 항상 같이 가야 됩니다.
3. 인자를 사랑하라
그래서 본문에서 미가 선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려면
반드시 먼저 정의를 행하고 동시에 인자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인자'라는 말은 '헤세드'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입니다. 가장 중요한 단어지요.
"인자(헤세드)" -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steadfast love)" * 변함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가 [헤세드]인데,
여기에 해당되는 신약의 단어가 [아가페]입니다.
'아가페' - 희생적인 사랑, 헌신적인 사랑
구약의 '헤세드'와 신약의 '아가페'가 결국은 같은 단어지요.
헤세드, 이 단어는 구약에서 주로 은혜, 인자, 자비, 인애 등으로 번역이 돼요.
오늘 본문에 "인자(헤세드)를 사랑하라" 하는 말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자격없는 이웃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라"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 은혜는 뭡니까?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주는 선물이고 사랑이잖아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 그게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인자를 사랑하는 삶, 즉 자격 없는 이웃들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먼저(저와 여러분이 먼저) 그런 헤세드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즉, 무조건적인 구원의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전에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의 삶을 살았어요.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고,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그렇게 죄와 사망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지옥불로 떨어지는 것을 불쌍히 여기사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요.
자격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방적인 헤세드를, 조건없는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 자리에 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 일방적인 헤세드,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이제 우리가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조건없이 나눠야 하는 거지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줘야 되지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한다면
우리는 우리 옆의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에게 헤세드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자면,
만일 우리에게 우리 옆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그것을 즉 다른 말로 하면 정의(미쉬파트)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어야 돼요.
"정의는 힘없고 약한 자들이 자신에게 돌아갈 몫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말했어요.
그런데, 내 옆의 힘없고 약한 자들이 자기 권리를 못 찾아 빼앗기고 있어요.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봐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나만 예수 믿고 잘 살면 그만이지.."
그렇다면... 그런 신앙이라면... 내 믿음을 다시 돌아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그 일방적인 은혜에 진정 감격한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들의 몫과 권리를 보호해 주는 정의에 무관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는 이 책에서 유명한 얘기를 했어요.
"값없이 베푸시는 구원이야말로 정의사회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 팀 켈러 『정의란 무엇인가』 -
참 의미있는 말을 했어요.
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일방적인 헤세드를 생각하면,
나도 이제 받을 자격없는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자격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헤세드를 은혜로 받았다는 사실을 뼈속 깊이 깨달은 사람은,
이제 세상에서 곤경에 처한 이들을 자격이나 조건에 상관하지 않고 도울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진정한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진정한 정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팀 켈러 목사가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을 했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온 마음으로 절감한 이들은 공의를 행하게 마련이다.
정의롭게 살지 못한다면, 입술로는 그분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고백하지만, 마음은 주님과 동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는 처사는, 좋게 얘기해야 스스로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모르고 있다는 뜻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다. 은혜는 인간을 정의롭게 한다."
- 팀 켈러 『정의란 무엇인가』 -
* 더 나아가 팀 켈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은혜는 인간을 정의롭게 한다.
정의롭지 않다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 팀 켈러 -
자격 없던 내가, 하나님의 헤세드를 받은 것을 진심으로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깔보거나 그들의 아픔을 쌀쌀맞게 외면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지적한 거예요.
(야고보서 2:15-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설교의 주제로 바꿔서 표현하면, '정의로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거다' 그 말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구제를 요청할 때, 또 재난 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특별구제헌금이나, 혹은 여러분의 재능기부를 통한 봉사와 헌신, 중보기도를 요청할 때,
예를 들어서 오늘 여러분 주보에 보면 지난 주일 주보에도
'장애인 사역국에서 우리 사랑1,2부 여름수련회 하는데 봉사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교회에서 봉사와 헌신을 요구할 때,
오늘 '의료선교회 회원을 모집한다. 의료에 종사하는 분이 아니어도 좋다.' 이런 모집한다는 요청이 나올 때에,
그런 요청들이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다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혹은, '나도 힘든데 무슨 도움을 줘..'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격없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셔서 헤세드를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지금 내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된 신자에게는 사랑(헤세드)과 정의(미쉬파트)는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의 헤세드를 실천한 서서평(徐徐平: 1880-1934) 선교사 이야기
여기, 하나님의 헤세드를 먼저 받은 자로서 그 헤세드를 몸소 실천함으로 관대한 정의를 이루었던 한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벳 조안나 쉐핑'입니다. 그녀의 한국이름은 서서평인데, 영화로도 만들어졌지요.
서서평 선교사님, 서서평이란 이름은 원래 영어 이름 쉐핑의 발음을 따라서 붙인 한국이름이지요.
그녀는 1880년 독일에서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세살배기 딸을 조부모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쉐핑은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쉐핑은 태어나면서부터 버림과 외로움을 몸소 겪으면서 자랐지요.
그녀의 나이 열아홉 살 때, 어머니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 한 장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 미국 이민길을 떠납니다.
어머니를 재회한 후에 그녀는 카톨릭 재단의 성 마가병원 간호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901년 뉴욕에 있는 시립병원에서 간호사 실습을 하면서 동료의 권유에 의해서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선교사 비전을 가지고 성경교사훈련학교에 입학해서 훈련을 받게 됩니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조선은 알려지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쉐핑 선교사는 조선 선교사를 지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는 선교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쉐핑은 조선인을 위해서 그의 평생을 바쳐 헤세드의 사랑을 나눌 것을 다짐하고
1912년 2월 미국 남장로교 의료선교사 신분으로 부산항에 도착해서 작은 예수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전남 광주에 가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풍습을 읽히면서 이름도 서서평, 한국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서평은 서양 선교사라기보다 진정한 한국인이 되고자 했지요.
조선 사람들이 평소에 입는 한복과 고무신을 신고 조선말을 하던 서양처녀였던 서서평 선교사는
광주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결혼도 거절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서평의 첫 사역지는 광주제중원, 군산예수병원, 그리고 서울 세브란스병원,
이 세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간호사들을 감독하고, 또 간호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어느 기자가 서평과 인터뷰하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조선 여성들 가운데서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는 일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어요.
부모의 반대로 학교에 전혀 입학하지 못하는 여자 아이들, 결혼을 했지만 소박당한 여인들,
남편과 사별한 여인들, 불우하고 기회를 놓친 다양한 계층의 여인들을 상대로 성경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웠는데,
그 '이일학교'가 지금의 전주에 잇는 '전주한일장신대'입니다.
그리고, '조선간호부회'를 설립하였는데, '대한간호협회'를 이분이 세우신 거지요. 그들을 가르치고 자립을 도왔어요.
쉐핑 선교사님은 일년에 최소 100여 일을 조랑말을 타거나 아니면 봇짐을 지고 다니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순회전도하고 그들의 벗이 되어주고 그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전도여행을 다녀온 후에 이렇게 기록을 남겼어요.
"이번 여행에서 500명이 넘는 조선 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의 여성들은 돼지할머니, 개똥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렸습니다.
여인들은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단 이유로 팔려다녔습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순회전도사역, 그리고 간호사역, 그리고 헤세드를 통한 관대한 정의를 위한 사역에 최선을 다했는데,
그때, 선교사들에게 주어진 하루 식비가 3원이었는데,
그녀는 십전으로 1/30에 해당하는 10전으로 끼니를 때우고 나머지 2원 90전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다 썼어요.
걸인들을 데려와 씻기고 옷을 입히는가 하면, 버려진 아이들을 수양아들로 삼아서 길렀어요.
그렇게 데려다 키운 아이들이 열네 명, 고아 아이들을 모아 키운 거지요.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나거나 오갈 데 없는 여인 38명을 보살폈어요.
이런 일도 있었지요. 어느 추운 겨울날, 선교사님은 광주천 부동교 밑에 어느 움막 속으로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곳엔 거지 노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무 거리낌없이 거적을 덮고 잠을 청하던 그 거지 할아버지를 깨우면서 말합니다.
'최씨 아지씨, 아직 안 죽고 살았소? 이불을 가져왔으니 덮고 주무시오.' 그녀는 이불과 요를 주고 어둠 속으로 촘촘히 사라졌어요.
추운 겨울 한밤중, 빈민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덮고 쓰던 이불과 요를 그들에게 나눠줬고,
정작 자신은 이불은 없었고, 옷만 단 두 벌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의 종교에서 구제를 제해버리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난한 사람 구제는 사랑의 발로입니다. 제 아무리 십자가를 드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예수님을 부르고
신자라 자처한다 할지라도 구제(헤세드)가 없다면 그는 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 서서평 선교사 -
* 거적대기를 덮고 자는 사람에게 그녀는 자기 담요의 반쪽을 찢어주고
남은 반쪽으로 앙상해진 몸을 가린 채 이 땅의 삶을 그렇게 살았어요.
그녀는 그렇게 22년 간 조선에서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헤세드의 삶을 살다가
정작 그 자신은 영양실조로 1934년 6월, 54세의 젊은 나이에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품은 강냉이가루 두 홉, 현금 7전, 반쪽짜리 담요 한 장, 딱 그거였어요... 그게 그녀가 남긴 유품입니다.
시신마저 기증하고 떠나는 그녀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뤄졌고,
그날 장례행렬을 따르던 천 여 명은 통곡하며 한 목소리로 '어머니', '어머니'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헤세드의 사랑에 붙잡힌 바 된 한 작은 여인의 삶을 통해서 사랑과 정의는 입맞추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땅에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겁니다.
5. 선교적 공동체(Missional group)에 동참하여 사랑과 정의를 행하자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난 반 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헤세드의 사랑과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주일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먼저 받은 바 하나님의 헤세드를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그 받은 바 사랑과 은혜를 이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합시다.
그리고 인자(헤세드)를 사랑하면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합시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이를 위해서 미셔널 라이프 운동본부를 중심으로 각 교구 내에 선교적 공동체, 미셔널 그룹을 만들어서
우리의 받은 바 사랑과 은혜를 우리의 이웃과 나누고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데 헌신하고자 합니다.
모든 여름 수련회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겁니다.
먼저는 교구를 중심으로 선교적 그룹을 만들어서 각 교구 내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
독거노인들, 노숙자들, 조손 가정들, 또 여러 기관들, 탁아소, 보건소, 공부방, 직업훈련소 등을 돕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 교회 안에 만들어져 있는 여러 자발적 봉사그룹,
예를 들어서 의료선교회, 이미용선교회 등 여러 그룹들을 더 활성화하고 지원해서
사랑과 정의가 입맞추는 사역을 감당키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섬김으로 치유하고 회복하는 선교적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설립한
주안복지재단과 우리 각 교구들이 연계해서 우리가 인자를 사랑하고 정의를 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교구별로 혹은 자발적으로 선교적 그룹을 만들어서
[주안복지재단]이 지금운영하고 있는 '부평건강가정 지원센터', '나래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부평구 다함께 돌봄센터',
'연수구 가족센터', '장애인 보호작업장 어울림카페', '연수구 럭키 송도 다함께 돌봄센터', '서로이음 학대피해 아동쉼터'
등에 직접 참가하셔서 봉사하거나 혹은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후원함으로 도울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지금 우리 주안복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서구에 있는 '서로이음 학대피해 아동쉼터'는
가정에서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당해서 몸과 마음이 상처를 입은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기저귀부터 시작해서...
그런 물품들을 한 교구의 선교적 공동체가 담당해서
매월 정기적으로 작은 것이지만 지원하는 것도 우리가 정의를 행하고 헤세드를 사랑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또 주보에도 보니까, '부평 꿈자람터', '초등 다함께 돌봄센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그랬어요.
이런 일에 온 성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셔야지요..
그럼으로써 우리는 정의와 사랑이 입맞출 때 일어나는 관대한 정의를 행하는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우리의 삶과 헌신은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산 제사가 될 것입니다.
미가와 동 시대에 활동했던 호세아 선지자가 이렇게 외칩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헤세드)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삶을 통한 예배)를 기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어요.
6. 나가는 말 :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선교적 삶을 살자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천의 수양도,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도, 혹은 일천 번제의 제물보다도 인애를(헤세드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선교적 삶을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주안의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우리 주안교회 공동체로 함께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선교적 삶을 살아서
그 결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열납되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헤세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지난 반 년간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함께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헤세드를 전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결단하는 마음으로 "은혜" 찬양 함께 부르겠습니다.
♬찬양 : 은혜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아멘! 아멘!!
†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십자가의 정의와 사랑으로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은혜입니다. 은혜입니다.
이제 주안의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함께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선교적 삶을 살게 하시고,
그 결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열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