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
김선희
방문을 열 때 은은한 모란꽃 향기
오체투지로 카일라스산을 경배하며 돌고 있는
순례자들의 기록을 한 시간쯤 읽었다
그곳에는 수천 미터 숨쉬기 힘든 산이 솟아있고
그들은 문명의 첨단 위에서 지구의 꼭대기를 찾아갔다
육신을 갖고 있을 동안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의 끝을 향하여
꺾인 외로움 때문에 조금씩 시드는 모란꽃 잎사귀
마침내 꽃병 속의 오랜 사색이 꽃을 시들게 하고
은은한 향기를 제 안으로 거두어들인다
모란꽃 향기를 마시며 어두운 새벽
지구의 중심에 들어 명상을 했다
그 속으로 조심조심 모란꽃이 들어왔다
2020. 한국시인협회 사화집『꽃』(2020. 12. 동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