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두환에 가장 분노하는 건
- ‘서울의 봄’을 보고
지인들과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내가 다음날 ‘서울의 봄’을 보러 간다고 했더니 ㅈ선생이 이야기했다.
“휴가 가야 할 때 10.26이 터졌어. 그래서 휴가는 취소되고 밤새도록 총 들고 보초 서야 했어. 그러고 한 두 달 지나 제일 먼저 휴가 신청해서 나간 게 12월 5일이었어. 복귀해서 들으니 우리 부대가 동원됐대. 반란군이 아니라 진압군이었대. 서울 다 갈 무렵 돌아오라는 명령이 내려서 돌아왔대.”
“왜요?”
“몰라. 아마 아군끼리 총 쏘는 게 큰 문제가 될까 해서가 아닐까?”
“......”
“그래 그걸 내가 블로그에 올렸더니 누가 영화 만든다고 찾아와서 내가 아는 만큼 얘기해줬어. 아마 그 사람이 만든 영화가 아닐까?”
오 ㅈ선생 동료들이 그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니. 영화에서 회군하는 공수부대를 보고 ‘아 저게 ㅈ선생 부대구나.’ 끄덕였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아마 대다수 관객들이 결말을 알면서도 그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신들린 듯한 황정민의 연기와 늘 2% 부족하게 느꼈던 정우성의 혼신의 힘을 기울인 연기, 그 외 여러 연기자들의 열연이 어쩌면 지루할 지도 모를 영화를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갔다.
마지막에 나오는 애달픈 음악이 가슴을 쳤다. 저토록 슬픈 노래는 군가일까? 군가는 보통 씩씩한데 저렇게 서글픈 곡조의 군가가 있는 걸까? 제목을 알고 싶어 끝까지 남았지만 자막에서 찾지를 못했다.
“너무 무능해. 우왕좌왕하고 말이지.”
“자(저)들은 권력을 갖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까 눈 벌개서 덤벼드니 이길 재간이 없었겠지.”
함께 관람한 우리들 평이었다.
슬픈 음악과 더불어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의 진압 실패와 특전사 김오랑 소령의 죽음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들어가니 벙커문을 지키다 죽은 정선엽 병장의 이야기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평범한 이에 대해서 그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았구나. 그런데 이 사람이야말로 병역 의무를 다하러 갔다 죽은 이가 아닌가!
ㅊ선생은 전방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그는 노태우에게 가장 치를 떨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전방을 비우고 군인들을 빼돌리다니! 그는 12.12 쿠테타에 가담한 군인들은 안보에 조금만치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영화에서도 전두광이 말하지 않던가?
“야! 북한군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쳐내려와!”
그래 놓고 걸핏하면 북한이 쳐내려온다고 우릴 옥죄고, 간첩으로 조작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게 했던가!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넘어 병역의 의무를 지키러 군에 간 우리 아들들을 반란군으로 이용하여 총을 들게 하고 국민에게 총을 겨눈 사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지금도 아들을 논산 훈련소에 데려다 준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남편은 복무기간이 36개월이었을 때 군 생활을 했다. 대학생이 많지 않았던 때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많이 당해서 군대라면 치를 떨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얘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땐 우리나라도 남북 관계가 좋아져 모병제로 바뀌지 않을까? 그러면 군대 안 가도 되겠지.” 희망을 했는데, 20년 후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들과 같이 논산에 들어서니 군사 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몰려왔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부모와 친구, 여자 친구와 둘러앉아 밥을 먹는 짧은 머리 젊은이들을 보니 눈물이 난 것이다.
겨우 눈물을 그치고 본부석에 앉아 아들과 이별식을 하고 모두 운동장에 모이라는 안내에 “부모님! 사랑합니다!” 외치며 삽시간에 운동장을 가득 채운 젊은 남자애들 모습에 다시 눈물이 났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모았는가?
그렇게 우리 아들들은 군에 갔다. 우리는 아들들을 군에 보냈다. 애인을, 오빠를, 동생을 군에 보냈다. 그런 그들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쓰다니! 그래 놓고 무슨 안보를 말하며 국민과 국가, 정의를 말하는가!
선배의 남동생은 5.18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다. 그는 자기가 총 쏜 이들이 북한 공산군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청문회를 거쳐 그 진상이 밝혀진 후, 그는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꾸었다. 누가 이 젊은이가 자신의 군 복무를 부끄러워하게 만들었는가?
광주에서 복무했던 ㅇ 선생은 술만 마시면 “형님, 난 잘못 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면서 운다고 했다. 누가 그를 이렇게 울게 만들었는가? 그저 병역의 의무를 다하려 갔을 따름인데...
그게 전두환 무리들의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전두환의 악행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을 굽어보는 파주 높은 산 위에 무덤을 만들어달라니! 그렇게 죽었다 깨어나도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면서 반란을 주도했던 이를 그곳에 묻는다니! 이미 부지를 사놓고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반성하지 않는 그들 무리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또다시 그들의 반란을 구경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