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장례절차.
이웃주민 부부와 날이 밝기도 전에 출발하여 20분정도 도착한 곳은 공항 앞 동네 고밥,
육군 부대(보로이) 평소에도 빈증, 동나이, 롱탄골프장 갈때 이 도로를 이용할때가 많다.
지금은 롱탄 신공항 예정지에서 탄손녓공항과 연계된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40분 정도가 단축되어
아주 인기있는 도로가 되었다.
그 도로 진입전 군부대 옆에 자리잡은 군 장성들만 이용한다는 장례식장이라고 아내가 말해준다.
웅장한 대문, 안내하는 군인들의 절도있는 행동에 속으로 오늘 구경 잘 왔구나 하면서 인사를 받았다.
깨끗하게 포장된 주차장에 벌써 버스와 승용차 등 30여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우리가 타고간 승용차는 안내 군인의 지시대로 안쪽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마치 한국군 의장대 같은 복장을 한 안내원이 도착하는 조문객을 개별적으로 안내 한다.
어머어마한 큰 건물 실내와 외벽이 모두 검은 대리석으로 치장한 약 3층건물 높이인데 1층건물이다.
넓이가 50미터 정도에 길이가 100미터 정도의 마치 체육관 같이 큰 콘크리트 건물인데 실내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게 특징이다. 천정도 콘크리트인데 이상하다. 용적율을 산정 중량을 고려해 건물을 짓는게
상식인데 이렇게 큰 콘트리트 건물에 기둥이 없다는게 정말 신기하다.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장례식이 거행되는 내내 엉뚱한 생각에 정신이 산만했다.
안내원이 입구까지만 동행 들어가 적당한 줄에 서있는데 잠시후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왼쪽은 집계가족 위치, 복장부터 다르다 모두 검정옷을 입고 있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
중간줄은 장례의식에 관계된 사람들이다. 하얀복장의 운구팀, 종교의식에 관한 스님들,
주례스님의 복장은 천주교 교황의 복장과 흡사한 긴 지팡이 짚고 처음엔 천주교로 착각했었다.
십자가가 안보여 불교의식으로 알게되었다.
맨 뒤에는 군악대, 약 20여 명, 악기도 보통의 베트남 장례집에는 색소폰 피리 정도인데 여기는
여러개의 악기소리가 체육관 같은 건물에 가슴까지 울렁거릴정도로 순간순간 크게 울려준다.
일반 조문객은 오른편에 6명씩 줄을 마추어 서 있었다. 아내와 나는 두번째 줄에 서서 처음보는
의식을 한순간 한순간 자세히 보며 머리에 저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건물 정면벽에 베트남 글자로 써있는 글자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65 뚜오이 남 이라고 적혀있다.
이상하다 분명히 83세인데 왜 65세라고 하는지 알수가 없지만 그냥 패스.
단상 중앙 약 2미터 높이(바닥에서는 3미터)에 올려놓은 시신이 들어있는 관이 아주 특별하게 보였다.
보통 장의사에서 판매하는 일반 관보다 더크고 색갈도 금색으로 아주 멋지게 만들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부에서 유공자에게 공급한 특별 주문제작한 관이라고 한다.
그 관 아래 제상에는 제물들이 차려져 있는데 우리네 같이 음식은 없고 쌀과 간단한 과일정도와 향 그릇,
그리고 각계 각층, 그리고 자녀들의 직장에서 보내온 조화(거의 똑같은 난꽃)가 약 200 여 개가
양 옆과 단상 좌 우로 병풍처럼 빼곡히 진열, 세워져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65세라고 써져 있던 것은 프랑스 식민시대 18세 때 호찌민 비밀부대(베트공)에
입대하여 죽는날까지 공산당원으로서 프랑스군과 미국군을 물리친 국가를 위해 몸바친 일생이
65년 이란 뜻이란다.
아내의 고향 언니라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 분명 고향이 하노이인데 두살된 어린아이를 데리고
동나이로 이주, 이곳에서 60년을 살았다니 이해가 안되었다.
그러나 아내의 설명을 듣고 깜짝놀랐다.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면서 아주 가난한 생활자로 살면서
비밀공작원으로 활략, 프랑스로부터 해방을, 미국으로부터 승전을 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몇 안되는 유공자라고..
다시 장례진행 합니다.
묵념이 끝나고 약력보고가 시작 군 관계자가 나와 두꺼운 책을 다 읽는데 엄청나게 많은 공적들,
나야 이해가 안되어 많이 지루했지만 이들은 가끔 입에서 흘리는 존경의 표시를 감지할 수 있었다.
족히 1시간 가까이 약력보고, 다시 악기가 울리고, 이어서 진행원들이 불 붙여진 향을 한개씩 나누어준다.
아이고 큰일이구나 두번째 줄에 있으니 다음은 우리줄 차례, 구경만 해봤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모른다.
하나님이 이런짓 하지말라고 했는데 어쩌지요. 우상앞에 절하는 죄를 범하다니 가족도 아니고
베트남에서 옛 베트공 시신앞에 향을 올리다니...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진땀이 났다.
아내도 내 눈치를 보며 연신 걱정하는 모습, 군대식 대열로 서있으니 빠질수도 없는 분위기,
그런데 그때 바로 기적이 일어났다. 시간 관계상 앞줄만 조문하고 뒤 분들은 생략한다고 하는 사회자의 말,
한 움큼씩 불 붙인 향을 들고 옆에 서있던 군인들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주여!!
이번엔 종교의식,
교황과 비슷한 예복에 자기 키보다 훨신 큰 지팡이를 들고 나온 대표스님이 강론을 하고 제를 올린다.
여자 스님들의 찬불가와 목탁을 치며 한바퀴 돌아 위치로 돌아간다.
곧 이어 가족대표인 큰아들이 나와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큰아들과 둘째는 베트남 항공사에
근무한다. 아마도 유공자의 자녀라서 국영기업체인 베트남 에어라인에 특채된 모양이다.
베트남 항공사에서 대형버스 2대 중형버스2대를 지원해줘서 장지까지 운행했다.
장례의식은 끝나고 운구가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역시 군 의장대들이 긴 나무 두개를 관 밑에 넣어
조심스럽게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때 악기에서 울리는 곡은 석별의 정인가요. 내가 정확히 몰라서
이산가족 만남행사에서 마지막 혜여질때 은은히 울려퍼지는 그 음악 있잔아요.
찬송가 곡도 있는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아는분은 알지어다.
베트남 장례식장은 곡하는 소리도 없고, 눈물 흘리는 사람 한사람도 보지못했다.
그리고 음식물도 전혀없다. 가정집에서는 녹차정도만 끓여 내놓는다.
농촌지역은 식사, 국수를 대접한다고 하는데 도시는 음료수도 안준다. 한국같이 육계장에 소주,
이곳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왜 힘든데 음식을 제공하느냐 술마시고 시끄럽게 하는 사람
한사람도 없다. 친척들도 배고프면 슬며시 나가 주변 식당에서 몇일이고 개인적으로 사먹는다.
동나이에 사는 큰처남이 2년전에 돌아가셔서 이틀동안 있었는데 각자 해결했기에 정확하다.
이 장례식장 이용은 특별한 국가 유공자에게만 적용되는 정부 즉 군에서 관리하는 시설.
조문객 동시 1천명 수용, 냉동실을 갖춘 최고급의 시설 3일장으로 제한하며 의자도 없다.
조용히 조문하고 서서 유가족들 위로, 인사하고 부위금 내고 그냥 돌아간다.
장례식장 3일 이용료와 장지 모든 시설 관, 합계 유족이 부담하는 금액은 400불 이라고 들었다.
이정도면 완전 국장 수준,
글이 길어 장지에서의 절차를 다시 올리겠습니다.
밤을 새며 적다보니 오타가 넘 많을겁니다. 이해 바랍니다.
첫댓글 역시 세월은 못 속이나 봅니다.
새벽3시에 글을 쓴다는건 새벽잠이 깨었다는..............
좋은글!
자알 읽었습니다.
우리 시간이야 3시지만 베트남에서는 보통 5~6시에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한국도 5~6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 많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