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중국 문헌 중 서양에 가장 많은 번역서를 내게 한 노자의 도가사상.
만물이 생성되기 전에 존재하던 이름붙일 수 없는 무無
세상에 이치로 이름붙여진 유有
ㅋㅋㅋ.
요르단에서 태어난 하산 마호메드.
1990년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에 15세로 나와 득점왕과 MVP를 탄 그. 비록 팀은 4강에서 북한에게 좌절되었지만 말이다.
1991년 포르투갈 세계 U-20청소년축구대회에 북한의 불참으로 대신 참가하여 아시아국가로는 한국과 함께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잉글랜드, 스페인, 우루과이와 그룹 D조에 속한 요르단. 1승 2무로 스페인에 이어 2위로 본선에 진출. C조 1위국 오스트렐리아와 8강전을 가졌다.
이 경기는 16세의 하산 선수를 세계에 알린 경기가 되었다. 그는 6골을 넣고 팀을 4강에 올려 놓았다.
4강전에는 멕시코를 연장전 끝에 2:1로 이기고 올라온 대회 개최국 포르투갈을 맞아 3:2 분패하고 말았다. 경기 직후 포르투갈 신예 LUIS FIGO이 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두 골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7번이 공을 잡으면 우린 두려워 해야만 했다. 놀라운 선수다."
또한 유망한 미드필더 RUI COSTA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난 빠른 발을 가진 선수는 아니다. 허나 여태껏 남에게 부족하다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 내 생각은 바뀌었다. 7번은 놀라울 만큼 빠른 발을 가지고 날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그를 막는다는 것이 몹시 싫었다."
하산은 대회 adidas Golden Shoe를 수상하였다. 그의 비공식 인터뷰중 이런 말이 있다.
"당신들은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그 둘이 합하여 셋이 되는 이 이치가 보이지 않나요?"
수많은 구단에서 유혹하였지만 이슬람의 총애를 요르단은 놓아주지 않았다.
94년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릴때 BBC의 짧은 기사로 세계 축구계는 흔들거렸다.
- 요르단 태생 축구선수인 하산 마호메트는 알라를 부정하는 언행으로 사형구형! -
세계는 축구천재를 구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하여 2년 여의 설득 끝에 그를 요르단에서 구해올 수 있었다.
FIFA는 국제적 미아가 된 그를 받아줄 나라의 신청을 받았다.
또 다시 4년이 흘렸다. 이기적인 FIFA 가입국들의 행태로 그는 임시로 무종교인 몽골에서 생활해야 했다. 말을 아끼던 하산 마호메트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저의 부족한 지식으로 알라신을 모욕한 죄가 너무도 큽니다. 모든 아랍인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허나 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넜기에 참회하며 새로운 삶을 살려 합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랍국들은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종교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용서하여 주었다. 하여 다시 기사회견이 열리니 세계인들의 초점은 몽골로 향하였다.
"저의 국적은 몽골로 정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4년간의 생활로 많은 적응력이 키워졌고 또한 대영웅 징기즈칸이 자라난 이곳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를 용서해준 아랍인들이여. 감사합니다."
하지만 3일 뒤 몽고 정부의 부정으로 그의 뜻은 좌절 되었다. 이유는 그가 망명으로 내세운 조건 때문이었다.
"칸의 칭호를 달라!"
다시 1년의 세월이 지났다. 몽골에 이어 여러 나라들이 그를 망명시키려 하였지만 높은 요구의 벽은 넘을 수 없었다.
- 하산 마호메트. 그는 축구선수가 아니라 연예인이다. 26세의 그는 이미 7년이나 축구를 하지 않았다. - BBC 다큐멘터리에서...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하여 한국축구연맹회장은 야심찬 계획에 나선다. 하산 마호메트의 선전 효과를 이용하여 단독 계최를 노렸다.
기자회견에는 아직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한국은 날 형제처럼 받아주었습니다. 2002년 한국 월드컵에서 저의 실력을 뽐내어 보이겠습니다."
마치 월드컵 개최지가 한국으로 결정난 것처럼 말하는 그는 병역과 세금 면제, 한번의 사면권을 받았다.
FIFA는 하산 마호메트의 국가대표 자격을 제한하는 논의를 하였고 기권1표를 빼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은 일본에서 단독으로 치뤄지고 말았다.
하산은 한국이름을 낙하산으로 정하고 K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현대의 스폰서를 받는 울산과 전북이 가장 근접하였지만 그는 수원을 택하였다. 하여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울산은 나에게 주전보장을 하지 않았고 전북은 나에게 주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수원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이상의 대우를 해 주었지요."
이 말로 인해 수원은 비리조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높은 변호사 로펌의 벽은 검찰로써는 넘을 수 없었다.
2002년 시즌 12경기 출장 26골 21도움. 경기로운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포터즈를 폭행하여 전치 12주의 진단을 내게 하였고 6개월간 유치장에서 생활해야만 하였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게는 한번의 사면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정도에 쓴다면 온 천하가 절 비웃을 겁니다. 서포터즈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저의 행동의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에서 영원히 제명되었다.
징역을 살고 나온 그는 이탈리아로 향하였다. 그의 정착 구단은 아마추어였지만 착실히 축구에만 전념하였다.
3년 뒤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고 피오렌티나로 입단하였다. 이 일이 한국에 알려지고 국회는 마비되었다. 하지만 그의 2중국적을 허용하는 대신 사면권과 세금 면제를 해제하였다.
2005년 피오렌티나에서 첫시즌 23경기 12골 5도움으로 무난한 대뷔를 하였다. 하지만 옛날 만큼의 폭팔력은 보이지 않았다.
2006년 두번째 시즌. 감독과의 불화로 5경기에 나와 2골만 넣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계약은 해지되었다. 그의 나이는 32살이 되었다.
월드컵이 끝이나고 2007년 시즌 그는 잉글랜드 행의 비행기를 타고 왓포드구장으로 향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9경기 출장 16골 15어시스트. 왓포드는 강등위기에서 14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다음시즌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결산 핫 이슈 1위에 뽑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이를 먹고 나니 제 과거가 몹시 부끄러워지는군요. 앞으로는 성실히 축구만 바라보고 살려고 합니다."
34살의 나이로 그는 자신보다 18살이 어린 잉글랜드 여성과 결혼하여 또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 세금 문제가 터 졌다. 하산 낙. 한국으로 송환! - BBC
- 징역 2년 6개월. 왕포드구단 선수 포기. - BBC
- 파경! 전 부인의 성폭행 혐의로 영국경찰 조사중. - 한국일보
그는 점차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2010년 그는 다시 세상의 빛을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타고 피오렌티나구단으로 향한다.
피오렌티나 주장 장훈선수의 인터뷰중 .
"만약 그가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킨 다면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장훈선수는 올해 38살로 사우디 아리비아 리그에서 4년전 Claudio Cesare Prandelli 감독과 함께 이적하여 왔다. 그는 파워풀한 공격수로써 4시즌 총 120경기 63골 46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현제는 수비수로 전향하여 리그 순위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하산은 피오렌티나로 전격 입단하였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오랜만에 글을 쓰는군요. 취업하느라 공부하느라 바쁜 일정 속에 하나의 취미를 얻는 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조절하며 FM을 사랑합시다. (ㅡ.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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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대되네용^^
드디어 나왔구나 ㅠㅠ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드뎌나왔네요..ㅋ 너무 기다렸습니다 ㅋㅋ
와우 바탕은 어떻게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