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박무형
우산은 항상 그랬다. 비 오는 날 쏟아지는 빗줄기로부터 몸을 보호해 줄 때는 우리의 필수품이지만 비 오지 않는 평온한 날씨에는 집 안 구석 어디를 굴러다니는지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물건이다.
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는 누구보다 소중한 동반자이나 비가 그치면 전철이나 버스 택시에 두고 내려도 굳이 찾지 않게 되는 망각의 존재, 이렇듯 이중적 속성을 가지는 우산은 그래도 늘 우리 곁에 영혼처럼 붙어있는 익숙한 물건이기도 하다.
과거 나에게로 왔다가 인사도 없이 수없이 흘러가 버린 우산들,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미련도 일화도 남기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딱 하나의 예외가 있다. 유난히 하나의 우산이 내게 추억을 남기고 갔다. 지금도 그 우산이 그리운 사람처럼 추억 속에 우뚝 서 있다.
그 우산은 80년대 말쯤, 광화문 청사 부근 퇴근길에서 주운 우산이다. 주인을 찾아줄 수 없어 집으로 가져왔다. 외제 상표가 붙어있는 그 우산은 새것은 아니었지만 첨단 소재로 만든 3단 접이식 우산, 색상과 줄무늬가 고상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가볍고 부피가 작아서 식구들 모두 좋아하는 우산이 되었다.
나도 여행 갈 때, 산행할 때면 꼭 그 우산을 챙겼다. 10여 년이 지나서 천이 바래지면서 나의 전용이 되었다. 은퇴 후에 산행을 많이 하게 되면서 등산 배낭에 꼭 넣은 채 다녔다. 고장이 나면 수선을 하여 가면서도 사용했다. 몇 번이나 잃어버렸다 찾기도 했고 우연 찮게 되돌아오기도 했다.
인연을 맺은 지 20여 년이 되어갈 무렵, 청계산에서 소나기를 만나 사용한 것을 끝으로 그것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마치 혈육을 잃은 듯 애달프기까지 했다.
조선 시대 유씨 부인이 27년간 애용하던 바늘이 부러지자 <조침문>이란 바늘을 애도하는 글을 남겼는데 나도 '오호통재라!' 하며 잃은 우산을 의인화하여 애도하고 싶은 마음조차 일었다. 그후 나는 <우산을 잃고>이란 글을 쓰기도 했다. 나의 첫 수필집에는 그것을 <주홍빛 줄무늬 우산>이란 제목으로 옮겨 실었다.
첫댓글 비올때 우산이 되어준 물건을 잃었을때 허탈함.
20여년간, 함께한 우산.
다른우산으로 대체하였지만 잊지못한 우산에 대해.
잘 읽었습니다.
짧지만 우산에 대한 주제가 명료한
글 잘 읽었습니다. 쓰임새가 있다가 없어지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군요. 좋은 글 잘 감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