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ppeteer
[명] 꼭두각시 부리는 사람
***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뭐든지 안 풀리는 재수 없는 날도 있지만, 드물게 모든 일이 좋은 방향으로 풀리는 행운의 날도 있는 법이었다.
오늘이 피리아에게 그런 날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는데 몸이 나는 듯이 가볍고, 온종일 기쁜 일만 가득할 것 같은 기분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하러 내려가니 지라스와 그라보스가 그녀보다 먼저 아침을 차려 놓았다. 팬케이크는 예쁜 갈색에 동그랗고, 계란 프라이도 토스트도 적당하게 노릇노릇하고, 버터와 생크림과 잼과 꿀은 신선하고 달콤하고, 소시지와 햄과 베이컨도 적당하게 익었다. 우려진 홍차까지 유독 맛이 완벽했다.
“지라스 삼촌, 그라보스 삼촌 정말 맛있어요!”
“그렇죠? 오늘따라 눈이 일찍 떠져서 요리하니까 요리가 손에 착착 감기더라고요.”
“제 여우생에서 이토록 동그랗고 부드러운 팬케이크는 처음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먹어야 하는 게 아깝지만, 맛있어요!”
“차도 너무 맛있게 탔네요. 물이랑 온도 어떻게 맞춘 거예요?”
“그게,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되더라고요?”
행운은 아침 식사에서 멈추지 않았다. 잡화점으로 가니 잡화점 앞에 웬 보따리 상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가 이 가게 주인인가요?”
“네, 이 모닝스타의 주인 피리아 울 콥트에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보따리 상인은 피리아를 보자마자 도자기를 모은다는 아가씨의 소문을 듣고 도자기를 팔러 왔으니, 물건을 보라고 했다. 상인이 가져온 도자기는 보기 드문, 동방의 귀한 청자 도자기였고 그 가치에 비해 싼 가격으로 구매했다. 그 상인은 피리아가 돈을 더 내겠다고 해도 원가만 받겠다고 하고 길을 떠났다.
“주인장, 여기가 골드 드래곤이 운영한다는 가게가 맞는가?”
청자를 조심스럽게 보관하며 행복하게 잡화점을 청소하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네? 네, 맞아요. 제가 이 잡화점의 주인인 골드 드래곤입니다.”
그 손님들은 본인들이 괴짜 수집가라고 하며 이곳이 골드 드래곤이 운영하는 가게라 희귀한 물건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 피리아가 뭐라 말하기 전에 그들은 잡화점을 둘러보더니 일 년 넘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처분이 곤란했던 골동품들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애물단지 골동품의 가치를 설명하더니 거금을 내놓고 유유히 갈 길을 갔다. 가게 자릿세, 생활비, 바르의 학비를 반년 동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액의 목돈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가족과 나누고 싶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러 시장에 가기 위해 가게 문을 일찍 닫았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행운이 이어졌다.
“바르 엄마, 마침 잘 만났어!”
푸줏간 주인이 전에 아이를 치료해 준 것이 고맙다고 오늘 새로 들어온 질 좋은 고기를 선물로 줬다.
“바르 엄마, 이리 좀 와요.”
목장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장마 때 울타리가 망가졌고 그 울타리로 소들이 도망쳤는데 지라스와 그라보스가 소들을 전부 되찾아 주고 공짜로 울타리도 고쳐줘서 고맙다고 신선한 우유와 치즈, 생크림, 버터를 한 아름 안겨줬다. 양봉장은 벌들이 꿀을 너무 많이 가져왔다고 꿀 병을 하나 주고, 버섯과 약초를 캐는 할머니는 오늘 산에서 산딸기를 가득 땄다고 피리아에게 한 바구니를 선물로 줬다.
시장에 가기도 전에 음식 재료를 잔뜩 얻은 피리아는 드래곤으로 변해 등 뒤에 음식 재료를 운반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피리아는 저녁을 준비하며 보관할 음식 재료를 정리하는데 지라스와 그라보스가 상기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보스!”
“누님!”
“또 무슨 좋은 일이에요?”
“네!”
잡화점 운영만으로는 돈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지라스와 그라보스는 의뢰를 받아서 돈을 충당했다. 둘은 그 바닥에서 베테랑이었지만 이따금 돈을 제대로 지불받지 못했다. 그런데 용병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사기를 친 사람이 해외로 도주하기 직전에 붙잡혔고, 기존 의뢰비에서 몇 배로 더 돈을 돌려받았다.
“이제 몇 달 동안 가게 자릿세나 생활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몽둥이와 총도 손질할 수 있고, 누님이 눈독을 들였던 한정판 티 세트도 살 수 있고, 바르님 옷과 장난감을 새로 사도 돈이 남을 거예요!”
열린 문으로 바르가 환하게 웃으며 100점이라고 적힌 시험지를 들고 뛰어왔다.
“엄마! 삼촌! 나 오늘 시험 백 점 맞았어요!”
피리아와 그라보스, 지라스, 그리고 바르는 오늘 하루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행운에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냈고 밤이 왔다. 피리아는 오늘은 화룡왕의 거대한 은총이 내려진 것에 확신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목욕 준비를 했다.
오늘이 행운의 날인 것에 확신하는 이유는 이 좋은 일들 끝에도 제로스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왕의 하나뿐인 수신관 제로스는 오늘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그의 불쾌한 기운 한 자락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리아는 그가 나타날 때마다 그녀의 일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떠오르는 것만으로 꼬리가 튀어나왔다. 본인 내킬 때마다 그녀 앞에 나타나 잡화점을 들쑤시고, 집안 살림을 거덜 내고, 그녀의 선량한 심신을 분노로 더럽히고, 가정을 불안으로 떨게 만드는 원흉 그 자체였다. 그런 존재도 오늘만큼은 그녀의 완벽한 행운의 날에 흠집을 내지 못 하리라.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사랑을 찾고 있는걸, 두 손을 펼쳐요 하늘을 나는 작은 새처럼.”
피리아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조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욕조에 거품이 나는 입욕제도 넣어 향긋한 향과 몽실거리는 하얀 거품이 욕실 안을 떠다녔다. 욕조에 몸을 담근 피리아는 기분 좋게 한숨을 쉬며 오늘 같은 날에 걸맞은 고급 홍차를 마시는 호사를 즐겼다. 오늘 선물로 받은 우유와 꿀까지 홍차를 곁들이자 한층 더 행복해졌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제로스가 나타나서 모든 걸 망치는 날 말고도.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다. 물이 적당히 욕조를 채우자 피리아는 수도꼭지를 끄려고 했다.
“어?”
욕조 아래부터 수도꼭지에서 물소리가 이상해졌다. 점차 찬 기운이 느껴지고 물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던 물이 얼어붙으며 욕조 안의 물까지 언 것이었다. 욕실 안의 수증기가 허옇게 서리가 되어 거울과 유리에 뒤덮였고, 순식간에 피리아는 추위에 갇혀 몸을 떨게 되었다.
“제로스!”
누군지 찾지 않아도, 그녀에게 이런 짓을 할 존재는 오로지 제로스 뿐이었다.
“이, 이, 이……! 국으로도 못 끓여 먹을 냉동 심해어 대가리야!”
추위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한 마디를 지르자 허공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에 피리아는 이성이 뚝, 끊어졌다. 드래곤으로 변신하기 직전이라 공기 중에 마력이 요동쳤고, 그녀는 드래곤의 힘으로 얼음을 깨트리고 일어섰다. 그런데 얼음을 깨며 욕조 또한 산산조각이 났고, 얼어붙은 욕실의 처참한 모습을 보자 피리아는 분노가 폭발했다.
“제로스!”
그녀는 창밖으로 몸을 던져 드래곤으로 변신했고, 집 앞 나무에 앉아 있는 제로스를 향해 브레스를 쏘았다.
“피리아씨, 달이 아름다운 밤이네요.”
“달이 아름다워?! 죽어버려! 너 때문에 내 욕조가 박살 났잖아! 내 욕조 책임져!”
“여태 제 상관을 모욕한 되갚음입니다. 냉동고에 갇힌 기분 어떠세요?”
피리아는 대답으로 제로스에게 브레스를 쏘았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순간이동을 하면서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분노에 찬 드래곤의 포효와 마족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풀벌레의 노래와 반짝이는 별들을 가려버렸다.
피리아와 제로스가 이 동네의 하늘을 찢고 달에 구멍을 낼 듯이 싸우는 것을 지라스와 그라보스가 겨우 말렸다. 그들은 피리아를 달래 집을 수리하는 일에 착수했다. 밤중에 피리아네 집을 수리하는 것에 이골이 난 마을의 수리공들은 진작 연장을 챙기고 피리아 집으로 달려왔다.
“이거 큰일이네요.”
“뭐가 큰일인가요?”
제로스와의 싸움으로 피리아가 부순 벽과 기둥, 꺼트린 지붕과 바닥을 수없이 본 수리공들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피리아, 지라스, 그라보스는 불길한 기운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수리공이 고개를 저었다.
“집 전체의 배관을 완전히 못 쓰게 되었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게 왜……?!”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여기 배관이 팽창하고 여기저기 물이 새어 나가는 틈이 보이시죠?”
“이 집안 배관 전체를 순식간에 얼려서 배관을 타고 흐르던 물이 얼어 물의 부피가 커지며 배관이 견디지 못하고 망가졌습니다.”
“집 전체의 배관을 교체해야 하는데, 차라리 이사를 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가, 가격이 얼마길래…….”
수리공들이 말한 가격은 오늘 피리아와 지라스, 그라보스가 운 좋게 얻은 목돈만큼 나왔다. 셋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리아 옆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제로스에게 시선이 꽂혔다. 세 쌍의 흉흉한 눈빛에 제로스는 어쩔 줄 모른다는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로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낸 피리아의 눈은 시뻘겋게 빛이 났다. 주위의 마력이 회오리치며 금발의 긴 머리칼이 불꽃 너울처럼 위로 솟구쳐 흔들렸다. 아스트랄 사이드에 있는 그의 본체를 욕조처럼 깨부술 기세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몸을 공중에 띄웠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제로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남은 피리아와 그라보스, 그리고 지라스는 누구 하나 서로를 말릴 생각 못하고 사라진 제로스에게 화를 냈다.
***
집 전체의 배관을 수리하는 동안, 가족이랑 밖에서 텐트를 치거나 여관을 오가며 생활하게 된 피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마족 놈이 두 번 다시는 우리 일상을 망가트리지 않게 하겠어요!”
그녀는 잡화점에 따로 보관하고 있던 먼지 쌓인 드래곤의 마법서를 가져와 책을 펼쳤다. 그 페이지에는 강마전쟁 당시 마족이 접근하지 못하는 강력한 결계를 만드는 마법이 적혀 있었다.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피리아와 달리 그 페이지를 읽은 지라스와 그라보스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 누님, 좋은 생각이긴 한데 수신관이 보통 마족은 아니잖아요. 정말로 이게 통할까요?”
“구해야 하는 재료도 무지막지하게 까다롭고 비싸네요.”
“당연히 통하고, 당연히 비싸죠. 그 제로스를 막기 위해 드래곤들이 따로 고안한 결계니까요.”
화룡왕의 신관이자, 마족에게 대항하는 신성 마법을 아는 피리아의 보증에 그라보스와 지라스는 군말 없이 그날로 결계를 만들 준비를 했다. 순마족 중에서도 마왕의 장군과 신관을 맞서려는 강력한 신성 결계라 두 수인은 몇 주 내내 여기저기 수소문해 마법서에 적힌 비싼 마법 재료를 구했다. 피리아는 피리아대로 결계를 만들 때 마법에 도움을 줄 다른 드래곤을 알아보고 다녔다. 고위급 마족을 막는 결계는 피리아의 힘만으로 만들 수 없었고, 강마전쟁을 겪은 여러 드래곤들이 흔쾌히 피리아를 돕겠다고 나섰다.
신성 결계를 준비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길지만, 순조로웠다. 신성 결계를 만들 준비를 하는 동안 제로스가 아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세상 어딘가를 파괴할 음모를 퍼트리고 있겠지, 피리아는 콧방귀를 뀌며 생각했다. 나타나 봤자 그녀의 신경을 긁고, 결계를 치는 데 도움은커녕 훼방을 놓을게 뻔하니 피리아에게는 호재였다. 역시 그녀의 인생에 마족이 없어야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피리아씨?”
집수리도 끝나고, 신성 결계를 칠 준비도 거의 끝자락에 왔을 때 제로스가 나타났다. 손님이 오지 않는 잡화점에서 차를 마시며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문도 열지 않고 그녀 앞에 섰다.
“몇 달만이네요. 그동안 당신을 즐겁게 해줄 제가 없어 우울하고 힘든 나날을 보낸 것처럼 얼굴에 인상이 쓰여 있네요.”
몇 달 만에 나타난 제로스를 보자마자 오만상을 찌푸려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치 그가 몇 달 전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고, 설령 잊지 않았더라도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다는 뻔뻔스러운 유쾌함이었다. 하긴 이 정도로 악의로 들이찬 존재니, 그녀와의 첫 만남에 화룡왕의 안부나 묻겠지.
“바빠요. 나가세요.”
그런 제로스에게 화내는 것도 이제 끝이었다. 피리아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잡화점을 청소 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다. 이미 오전에 청소하고 오는 손님도 없어서 먼지 한 톨 없이 반짝거리는 가게였지만, 제로스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공기가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허접한 잡화점을 쓸고 닦으면 뭐 해요. 보통 장사 안되는 가게를 파리만 날린다고 하는데 피리아씨의 잡화점은 날파리조차 날아다니지 않잖아요.”
제로스는 말을 끝내고 피리아를 살폈다. 벌써 빗자루와 물걸레는 물론이요, 철퇴가 열 번은 더 날아왔어야 했다. 그런데 피리아는 이를 갈며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빗자루질했다. 저 거칠게 바닥을 쓰는 몸짓에서 바닥에 그를 눕혀 마구잡이로 쓸고 담고 싶다는 생각이 다 보였지만, 그는 눈웃음을 치며 계속 말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골드 드래곤 피리아씨?”
“당신이 아는 골드 드래곤이 저 외에 더 있겠어요?”
“셀 수 없이 많아요. 애석하게도 강마전쟁 때 제가 알던 드래곤들을 거의 다 죽였을 뿐이죠.”
피리아는 발걸음을 멈췄다. 고의로 강마전쟁과 드래곤 슬레이어로서의 본인 명성을 틈만 나면 자랑하는 제로스한테 익숙해질 법도 한데, 들을 때마다 화가 쌓였다.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그에게 소리를 지를까, 빗자루를 던질까, 철퇴를 던질까, 잡화점 밖으로 뛰쳐나가 그에게 브레스를 쏠까 고민하다가 겨우 인내심을 발휘해 그를 무시했다.
“배수관 일, 아직도 화 안 풀렸어요?”
그의 도발을 무시하자 제로스는 몇 달 전에 있었던 배수관 사건을 말했다. 피리아는 일부러 빗자루질을 더 세게 했고, 그만 막대 부분이 부러졌다.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빗자루였다. 피리아는 다른 빗자루를 꺼내며 역시 제로스가 있으니 흉수가 몰아쳐 온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배수관 일은 제가 좀 과했어요. 집수리하느라 돈 많이 들었죠?”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잡화점 한 가운데에 나무 궤짝이 나타났다. 문이 열린 나무 궤짝 안에는 금화랑 보석이 가득 차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집을 수리하는데 들어간 돈을 상회하고도 남을 보물의 향연에 순간 피리아도 눈에 빛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성의 표시에요.”
보물을 본 여느 드래곤처럼 피리아의 동공이 확장되고 새파란 눈이 비로소 그에게 시선을 향하자 제로스는 무언가를 더 꺼냈다.
도자기였다. 하지만 어디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도자기가 아니라, 이중투각 기법으로 모란꽃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아름다운 청자였다. 동방에서 이런 도자기를 만든다고 들었지만 직접 그녀의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귀한 도자기를 본 피리아는 그 도자기를 제로스가 가져왔다는 것도 잊고 양 볼이 상기되어 돋보기로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때요, 마음에 들죠?”
질문이지만, 당연히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로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눈웃음은 상냥하고, 태도 또한 정중했지만 피리아는 잘 알았다. 지금 제로스는 잘못해서 미안한 것이 아닌, 그 때문에 일이 생겼지만, 그에 준하는 것을 돌려줬으니 충분하다고 생색을 내고 있었다.
그런 제로스를 보자, 피리아는 왜 신성 결계를 만들기로 결심했는지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드래곤으로서, 자릿세를 내야 하는 가게의 주인으로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금화와 보석을 보면 고민할 줄 알았는데 일말의 망설임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제로스에게 오만 정이 떨어졌다. 더는 제로스랑 엮이고 싶지 않았다.
“피리아씨, 도자기 안 챙겨요?”
피리아는 도자기를 가져가는 대신 다시 빗자루를 들어 잡화점을 청소했다. 분명 제로스는 피리아가 도자기에 마음이 동한 것을 봤기에 의아했다. 그가 일으킨 작은 소동에 화를 내도 그가 적당히 보상하면 피리아는 다시 그와 투닥거리며 잘 지냈다. 그건 피리아와 제로스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었고, 제로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피리아가 단단하게 화난 모양이었다.
“앞으로 목욕할 때 안 건드릴게요. 제가 산 것이 아니라서 당신 같은 존재에게 의식주가 귀하다는 것을 간혹 잊어버려요.”
감정을 가진 산 존재는 성가시다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제로스는 마족의 입장에서는 몸소 사과 비슷한 것까지 했다. 제로스는 피리아의 증오 어린 감정 에너지를 즐겼지만, 그 감정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피리아와 다투는 것을 선호했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같은 재료라도 다양한 조리법으로 먹어야 물리지 않듯, 피리아 또한 제로스에게 그러했다.
피리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 않고 청소에만 집중했다. 제로스가 없는 것처럼 굴어도 그를 아예 무시하지는 못하는지,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듯 꼬리가 튀어나왔다. 치마 밑에서 나온 꼬리가 빗자루질 박자에 맞춰 채찍처럼 휙휙 허공을 맴돌았다. 다른 때라면 그 광경을 보고 손과 꼬리가 같이 움직이는 도마뱀의 특성에 관해 놀렸겠지만 제로스는 눈썹이 꿈틀거렸다. 드래곤 슬레이어로서 드래곤에게 대놓고 무시당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피리아씨, 저랑 평생 말 안 하고 살 건가요?”
그녀가 그를 무시할 수 없도록 피리아 앞으로 날아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워 이마와 콧대가 맞닿을 지경이 되자 피리아는 펄쩍 뛰며 그에게서 물러났다. 제로스가 팔짱을 끼고 그녀에게 어서 대답하라고 무언의 재촉을 하자 피리아도 행동으로서 대답했다. 물건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놓고 제로스 노려보며 고개 끄덕였다.
“진심이세요? 아니, 진심이 맞군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골드 드래곤의 시퍼런 눈을 보자 제로스는 지루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는 지금 신경질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리아가 말초 신경만 살아 있는 도마뱀처럼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산 것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배수관을 얼려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늘 그랬듯이 수고스럽게 잃은 돈 이상으로 재화를 가져오고, 특별히 피리아가 좋아하는 도자기를 구해다 줬다.
제로스는 그의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억지로 웃는 입매가 떨렸다. 지금 그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피리아가 여태 마족에게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관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을 그가 얼마나 관대하게 용서해줬는가. 드래곤 슬레이어인 자신에게 수없이 대들어도 그는 피리아를 얼마나 재미있게 봐줬는가. 그런데 피리아는 고작 얼음 세례를 받았다고 그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마족으로서 미치고 팔짝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우 얼음 세례 좀 받았다고 꽁해 있을 거예요?”
“맞아요, 이번에는 고작 얼음 세례였죠.”
피리아는 잠시 빗자루를 놓았다. 그녀는 본인 허리에 손을 얹고 아이를 가르치는 투로 쏘아붙였다.
“그전에는 도자기를 부수고, 그그전에는 제 방의 벽과 지붕에 구멍을 내고, 그그그전에는 오븐에 불을 내서 집 절반을 태우고, 그그그그전에도 온갖 일이 다 일어났죠.”
“그거 엄밀히 따지자면 당신이 화내다가 일어난 일이잖아요?”
제로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죽거렸다. 그게 뭐 별거냐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전 그때마다 도자기랑 보석 꼬박꼬박 갖다줬잖아요. 설마 화룡왕께서 도자기와 보석을 꿀꺽하라고 가르쳤나요?”
피리아는 잠깐 이마에 핏줄 올라오는 듯 했지만, 제로스가 마족이라는 것을 되뇌며 금방 평정을 찾고 싸늘하게 말했다.
“지겨워요.”
제로스는 그 말의 어조가 굉장히 불쾌했다. 권태기를 맞이한 연인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시답지도 않은 상황극에 던져진 역겨운 느낌에 제로스는 피리아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도 무시했다.
“피리아씨, 저희가 서로를 지겹고 말고를 운운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아뇨, 지겨워요!”
맑은 물을 한바탕 헤집어 흙탕물로 만들려는 미꾸라지처럼 또 주제를 멋대로 흐리려는 제로스의 수가 보였다. 그 수를 알아도 피리아는 매번 그의 손바닥 안에 놀아났고, 이번만은 말려들기 싫어 소리를 질렀다.
“당신과 연관된 모든 것이 진절머리가 나요! 당신이 날 약올리고, 난 맞대응으로 뭔가를 부수게 되고, 당신은 웃으면서 도망치고, 다시 돌아오면 보석과 도자기를 주며 얼렁뚱땅 넘어가도 결국 이 양상이 반복돼요!”
그리고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안일하게 넘어가느라 속에 담아 놓은 말들을 비로소 내뱉었다.
“난 이제 당신이, 당신이 내 삶과 내 소중한 이들에게 가져올 위험이, 당신이 일으키는 모든 혼돈이 지긋지긋해요! 당신의 가증스러운 머리칼 한 올조차 내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어! 평생!”
처음부터 이 관계는 어긋나 있었다. 세상을 수호하는 드래곤과 세상을 멸망시키는 마족. 둘은 지향하는 것이 너무나도 달랐고, 그 이해의 간극을 좁힐 수도, 누구 하나 생각과 행동을 고칠 수도 없었다. 같이 있을 때마다 뭔가 망가지고, 피리아는 부정적인 기운에 심신이 피곤해졌다. 억지로 이어가던 관계를 끊고 신은 신대로, 마는 마대로의 운명에 순응할 때가 왔다.
할 말을 속이 시원하게 다 한 피리아는 한결 개운한 얼굴로 제로스를 보았다. 그는 두 눈을 뜨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그는 생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피리아는 제로스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제로스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금 그는 정말로, 정말로, 기분이 거북했다. 고작 골드 드래곤 한 마리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도 불쾌해 아스트랄 사이드에 있는 그의 본체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산 존재로 표현하자면 맥이 빠르게 뛰고, 열이 솟구치고, 온몸의 피가 흐르는 분노가 그의 본체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만약 그가 막 태어난 신마전쟁 시대였다면 제로스는 지금 이 땅 전체에 불붙은 돌을 비처럼 쏟아지게 했을 것이다.
그는 여태 마족의 입장에서 피리아의 편의를 봐줬다. 에인션트 드래곤의 어미이자, 화룡왕의 강력한 신관으로서 이용 가치가 넘쳤기에 다른 마족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리아가 에인션트 드래곤을 양육함에 지장이 없도록 그녀에게 접근하려던 드래곤 헌터나, 수인 사냥꾼, 미친 과학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줬다. 감히 마족에게 분노하는 피리아의 당돌함이 재미있어 그의 애완동물 비슷하게 귀여워해 줬는데 은혜를 전혀 모르고 배은망덕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이래서 산 것에게 자비를 베풀어봤자 쓸데가 없다고 되뇌며 제로스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더는 피리아 편의 봐주지 말고 저 가족 놀이를 하는 수인 두 마리 죽여버리고, 바르를 반용반마로 만들고, 피리아는 반용반마가 된 바르를 인질로 그녀의 예지력과 신성 마법을 마족을 위해 쓰게 할까. 피리아의 오만함에 그가 주제를 가르쳐주는 상상만으로 제로스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피리아가 무너지던 순간을 선명하게 그의 일부로 새겨 놓았다. 절망할 때 눈물 흘리던 질퍼런 눈동자가 태양과 달보다 찬란하고, 비명이 노랫소리보다 감미롭고, 주저앉아 맥없이 떨리던 몸이 바다에 쓸려 내릴 모래알보다 더 하얗고 보드라워 보였다. 그때 그녀가 이 세상에 내뱉은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는 그 무엇보다도 황홀했다. 피리아의 멸망을 그의 것으로 점찍은 이유였다.
“기분 나쁘게 웃지만 말고, 뭐라 대답이라도 하시죠?”
정적을 깨고 피리아가 말했다. 원래는 제로스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녀와 아무 관련 없지만, 두 눈을 뜬 채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돌연 미소 짓는 제로스의 얼굴에 등 뒤로 소름이 끼쳤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 불길한 어둠이 공기 중을 스멀거리며 마족에 대항하는 드래곤으로서의 본능이 경고를 보냈다. 피리아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으르렁거리며 제로스를 노려보았다.
“대답이라, 글쎄요.”
제로스는 여전히 상황 파악 못하고 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이 드래곤 아가씨가 우스워서 소리 내서 웃고 싶었다. 당장 그의 계획을 실행시키고 싶다. 그러나 이리저리 저울을 재봐도 강마전쟁 이후 온 생명이 그를 경외하거나 두려워하는데,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피리아만 그러지 않았다. 아직 멸망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 성가시고 재미있는 존재를 벌써 망가뜨리기엔 그쪽에서 아쉬웠다. 피리아가 괜히 화룡왕의 은총을 한 몸에 입은 게 아닌지 운 하나는 기가 막혔다.
“알았어요, 피리아씨. 당신이 원하는 대로 앞으로 두 번 다시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당신의 하찮은 삶에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마음을 정한 제로스는 피리아에게 대답했다. 그 말에 피리아는 몸이 주춤거리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저, 정말요?”
“저도 마족으로서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 은혜 모르는 골드 드래곤을 더는 상주하고 싶지 않거든요.”
제로스가 순순히 물러난다고 하자 피리아는 좀 얼떨떨했다. 여태 오지 말라고 입이 부르트도록 외쳐도 귓등으로도 듣는 시늉을 하지 않아 신성 결계를 준비할 지경까지 오지 않았는가. 어쩐지 몇 달간 신성 결계를 만들려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지만, 제로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작별 인사라도 하려고 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겠어요?”
“뭘요?”
피리아가 질문하자 제로스는 혀를 차며 조롱했다.
“여태 피리아씨와 저 수인 두 마리, 그리고 바르가브씨가 무사한 이유가 제가 다른 마족에게 내린 접근 금지령 때문인 거, 몰랐죠?”
당연히 그걸 알 리가 없는 피리아는 입을 뻐금거렸고 제로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라고 했으니, 제가 내린 금지령도 풀어야죠.”
“뭐, 뭐라고요?!”
“그러면 모든 마족이 에인션트 드래곤을 노릴 테고 매일같이 마족에 시달리다가 당신은 결국 잡화점을 스스로 떠나거나 마을이 당신네 가족을 쫓아내겠죠? 그 과정에서 같잖은 수인 두 마리도 죽을 수도 있고, 바르가브씨가 전생처럼 반용반마가 되게 하는 운명을 피리아씨 두 눈으로 전부 담게 되겠죠?”
하지만 제 알 바가 아니죠. 제로스는 무심하고도 잔인하게 피리아의 불행을 읊조렸다. 말문이 막힌 피리아를 보며 제로스는 손까지 흔들었다.
“그럼, 피리아씨 안녕히. 어쩌면 피리아씨가 이렇게 두 수인과 환생한 바르가브씨랑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마지막…….”
제로스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피리아가 철퇴를 꺼내 그를 때릴 듯이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볍게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철퇴는 그를 때리지 못하고 그의 얼굴 바로 옆에 멈췄다. 철퇴는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가 철퇴를 쥐고 있는 피리아를 보자 그녀는 이마 끝까지 분노로 붉어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
“제로스……제로스, 당신……당신은……!”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말을 할 수 없다면 그를 있는 힘껏 후려치고 싶었다. 피리아는 제로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데, 뜨거운 감정만큼 차가운 이성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녀는 지금 제로스의 자비 아래 이 평화를 영위하고 있었다. 피리아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수신관의 감시 아래 있다고 여겨지기에 드래곤도, 마족도 그녀가 바르를 키우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그런데 그걸 이런 식으로 비참하게 깨닫고 싶지 않았다. 제로스를 쫓아내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 그리고 자신을 받아준 마을에 어떤 재앙이 올지 모른다는 것에 지독한 무력감이 덮쳐 왔다.
피리아는 철퇴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 모습은 무릎을 꿇고 패배를 시인하는 굴욕스러운 광경과도 같아 제로스는 저열한 희열이 차올랐다. 그녀가 본인의 주제를 깨달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피리아에게 몸을 숙여 말했다.
“피리아씨, 우리 절교하는 거 아니죠? 저 계속 피리아씨 찾아와도 되는 거 맞죠?”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모욕이었다. 피리아는 대답 대신에 울부짖었고 제로스는 순박하게 웃었다.
“그럼 내일 또 봐요, 피리아씨.”
그 인사를 끝으로 제로스는 유유히 날아갔다. 창밖은 노을이 저물고 있었고 마족에게 굴복한 골드 드래곤의 눈물과 어울리는 붉디붉은 황혼이었다. 피리아는 제로스가 주고 간 도자기와 보석과 금화가 있는 궤짝을 노려보며 오래오래 울었다.
***
궤짝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 피리아는 지라스와 그라보스에게 신성 결계를 만드는 것을 그만두자고 말했다. 몇 달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음에도 둘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피리아의 얼굴과 궤짝을 보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껴안아 줬다.
다음날, 피리아는 새벽부터 일어나 초콜릿 쿠키를 구웠다. 주말이 아닌데도 구워진 초콜릿 쿠키를 본 바르는 신나 하며 친구들과 간식으로 먹겠다고 챙겨갔고, 피리아는 지라스와 그라보스에게도 일하면서 먹으라고 도시락에 같이 넣었다. 가족이 모두 각자 할 일을 하러 가자 피리아도 잡화점으로 갔다.
시간이 지나자 아무도 없는 피리아의 집 안에 제로스가 나타났다. 그 어디에도 부엌에 산 같이 쌓여 있는 초콜릿 쿠키가 제로스의 것이거나, 그더러 먹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거리낌 없이 탁자로 향했다. 제로스는 탁자 앞에 앉아 피리아가 구운 초콜릿 쿠키를 하나 집어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골드 드래곤의 눈물 젖은 쿠키만큼 달콤한 건 이 세상에 없다니까요.”
그는 초콜릿 쿠키를 양껏 먹으며 오늘은 그녀에게 무슨 장난을 칠까 고민했다.
+++)
현실에 할 일이 많아 제롯피랴 글 적는건 또 오랜만이네요. 이번 글은 확실히 부부 싸움에서 제로스가 이겼군요. 제로스의 시선으로 그의 감정이나 생각은 마족이라 어려워서 잘 안 적는데 한 번 도전해 보았어요. 그런데 역시 제로스는 생각을 알 수 없을때 매력적인 것 같네요. 아니면 제가 피리아를 더 사랑해서 피리아에 비해 제로스는 난이도가 높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죠.
제로피리, 마음에 닿는 날까지 쓰고 싶은게 남아 있는한 계속 글을 적고 싶은데 어느 순간 제로피리를 더는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고 제가 좋아했던 다른 모든 장르들처럼 관심에서 멀어질까 좀 걱정돼요. 전 제로피리는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지금 같은 짧은 조각글을 적을 애정과 힘이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봄이 오네요. 제롯피랴 선배님들 모두모두 힘내고 여전히 이곳에 찾아와 제 글을 읽어줘서 고마워요. 우리 존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