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어,삼성퇴? :你从哪里来,三星堆?
출처: 신화통신 작성자: 童芳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장강 상류 문명의 중심지인 삼성퇴는 중화문명의 '하늘이 가득한 별' 중 가장 신비로운 별들로 현재 발굴된 면적은 1000분의 1 정도.쓰촨성 문물고고연구원 탕페이 원장은 최근 새로운 삼성퇴 고고학 발굴 연구 계획을 수립했으며 삼성퇴 유적에 대한 심층 조사, 탐사 및 발굴을 재개하여 삼성퇴의 신비로운 옛 나라의 실체를 더욱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황금마스크를 붙인 청동인 두상은 삼천 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천하를 놀라게 했습니다. 삼성퇴가 최초로 발견된 것은 1929년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80년대입니다. 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출토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20세기 인류의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라고 불렸습니다.
그것의 발견과 인지 과정은 여러 세대의 고고학자들이 끈질기게 추구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전설적입니다. 1929년 청두 북쪽 광한(廣漢) 난싱(南興)진에서 신앙심이 깊은 수재 옌다오청(延道誠)과 아들 옌칭바오(延靑保)가 집 옆에 도랑을 파다가 한꺼번에 300여 점의 옥기를 파낼 줄은 몰랐습니다.
1934년 화서대 박물관장이었던 거웨이한은 고고학팀을 조직해 옥석기로 추정되는 움이 발견된 인근에서 열흘간 발굴을 벌여 도자기 석기 옥기 등 600여 점을 출토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학계는 유적지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1949년 이전에 효과적인 고고학적 발굴을 조직하지 못했습니다.
신중국 건국 이후 풍한기 선생의 주도로 동은정, 심중상, 왕가우, 양유윤, 임향, 장훈요, 송치민, 마계현, 왕유붕 등이 유적 조사와 발굴에 참여하였고 삼성퇴는 발견된 고촉나라의 가장 중요한 중심 유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1986년 삼성퇴 청동종목탈의 엄청난 놀라움은 삼성퇴의 '양갱'(양갱·제사지내는 구덩이 두 개)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대형 청동입인, 청동신수, 종목면, 청동신상, 황금마스크, 금장, 대량의 옥기와 상아가 계속 출토되어 국내외를 뒤흔들었습니다.
장아이핑 장군은 삼성퇴(三星堆)라고 제사를 지었습니다. 양갱 발굴을 주도한 두 고고학자는 이진(二陳)으로 불리는 쓰촨성 문물고고연구원의 천더안(陳德安)과 천셴단(陳顯丹) 씨.천더안의 기억에 따르면 1986년 7월 18일 오전 9시경 인근 벽돌공장 근로자들이 삼성퇴 고고공작소 사무실에 난입해 "천 선생님, 벽돌을 태우고 흙을 파내서 물건을 파냈어요
. 구리, 돌, 칼, 아주 예쁜 칼이 있었어요." 천더안(陳德安)과 천셴단(陳顯丹) 등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벽돌 공장 노동자들이 땅에 버린 물건을 모아보니 '칼'이라고 부르는 물건이 옥고(玉戈)와 옥장(玉璋) 같은 것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곧 국가문물국의 인가를 받아 고고학적 발굴이 시작되었고, '1호갱'에서는 금장, 금면마스크, 청동인두상, 옥석기 등의 유물이 속속 발견되었고, 유기, 금기, 옥기 등 진귀한 유물 420점, 상아 13점이 출토되었습니다.
8월 초순, 제1호 구덩이 발굴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제2호 구덩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청동대립인, 청동신수, 황금마스크를 붙인 청동인 여러 두상, 옥석기 다량입니다.
▲ 삼성퇴에서 출토된 금장들은 부분적으로 중화문명을 재인식한다' 삼성퇴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 이론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즉, 중화문명의 기원이 황하유역에만 국한되어 있습니까?"유명한 고고학자 동은정 선생이 말했다. 1980년대 이전에는 학계에서 중화문명의 기원이 황하유역에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양저, 스자허, 싼타오 등 중요한 유적지가 장강유역에서 발견됨에 따라 학계에서는 중화문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명한 고고학자 쑤빙치는 삼성퇴로 대표되는 고대 촉 문명이 하상 시대에 '고성, 고대 국가, 고대 문명' 단계에 진입했으며 '중국 문명의 기원의 다원적 통합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습니다.이 관점은 후에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 되었습니다.
삼성퇴 출토 유물 중 청동존, 罍, 옥장, 옥종, 옥벽, 옥고 등은 황하 유역과 일치하여 삼성퇴가 중국 문화의 공통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청동 신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큰, 가장 완전한 청동 입인상, 세계에서 유일한 청동 종목 가면 및 기타 모양이 독특하고 대기가 넓고 풍부한 고대 촉 왕국의 뛰어난 '작품'은 고대 촉 문명의 찬란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중국 고대신화를 기록한 산해경에는 동양과 서양에 우뚝 선 부상 약목 신수가 나옵니다.삼성퇴의 거대한 청동 신목은 고대 중국의 "우주 신목"을 전시하여 고대 신화의 가장 직관적인 "실물 견본"이 되었으며, 천 년 동안 "신목", "십 일" 및 "태양새"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을 완벽하게 해석했습니다.
▲ 삼성퇴 청동신수 삼성퇴 1호갱에서 출토된 금장(金杖)에는 새·활·물고기·대관(大冠)의 두상이 그려져 있습니다.왕권을 대표하는 토템으로 전설의 촉왕인 어부왕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고고학자들도 있습니다.
삼성퇴 금장, 금가면, 청동인상 등은 황하 유역에서 보기 드물고 이집트,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출토유물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고대 촉 왕국의 '신들'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예술적 표현입니다.
"삼성퇴로 대표되는 고촉 문명은 중화문명 시스템 구축에 깊이 관여했고, 남방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로 동남아, 서아시아, 더 먼 지역 문명과 긴밀하게 연결됐습니다."탕페이(唐飛)가 말했습니다.
▲ 삼성퇴 1호 제사 구덩이. 당신이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인 신중국 건국 70년 동안 삼성퇴 고고학 발굴과 연구가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는 것뿐입니다.그러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뿐이며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더 많습니다.
중국사회과학원 학부위원인 왕웨이(王巍) 교수는 "세계 청동문명에서 삼성 더미는 분명 눈부시겠지만 고고학적 작업이 많이 남아 있어 궁궐과 제사, 심지어 왕릉까지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합니다."
▲ 삼성퇴2호 제사갱 "유적의 규모가 워낙 커서 발굴면적이 너무 적어서 고성의 중요한 건물들의 성격을 알 수 없고, 높은 등급의 무덤이 흔적도 없고, 금사와 같은 제사장이 있는지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당비는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삼성 더미에 또 다른 큰 발견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쓰촨성 문물고고연구원의 연구원이자 삼성퇴공작소장인 레이위(雷雨)는 "'누에숲과 어부, 개국이 어찌 막막한가'라는 찬란한 고대 촉 왕국의 역사, 그중 도대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삼성퇴에서 발생했는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사람들의 탐구를 불러일으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쓰촨성 문물국 제공)
분류:고고학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