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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34주간 화요일(2010-11-23)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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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는 것은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마지막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희망론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완성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세상의 종말을 재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한 인간의 종말인 죽음처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비극을 ‘해피 엔드’로 바꾸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하시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순교자, 또는 성 골룸바노 아빠스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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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추천성가] : 시작성가 : 27번 이세상 더없이 봉헌성가 : 211번 주여 나의 몸과 맘 332번 봉헌 512번 주여 우리는 지금 성체성가 : 153번 오소서 주 예수여 163번 생명의 성체여 177번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 파견성가 : 519번 영원한 안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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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34주간 화요일(2010-11-23) | 미사 전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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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 시편 66(65),4 참조
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 노래하게 하소서.
[본기도] :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주님의 평화를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말씀의 초대] :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사람의 아들이 천사들과 함께 낫을 대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실 것임을 전한다. 수확의 날은 곧 사람의 아들의 날로서 종말의 때를 가리킨다. 그때에는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의 심판을 도울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예루살렘 성전이 다 허물어질 것을 예언하신다.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그 구심점은 무너지고, 새로운 구심점인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공동체)을 세우실 것이다 (복음).
[제1독서] :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4-19 14 나 요한이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9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시편 96(95),10.11-12.13 (◎ 13ㄴ)
◎ 세상을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 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복음환호송] : 묵시 2,10ㄹㅁ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 알렐루야.
[복 음] :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저희가 이 거룩한 신비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 시편 23(22),5 참조
주님이 제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진실은 덮이고 거짓이 판을 칩니다. 권력과 명예와 재물이 숭배를 받을수록, 진리와 사랑과 정의와 평화는 가려지고, 가짜와 사기가 판칩니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진리와 진실, 정의와 평화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신에 재물과 권력과 명예 따위가 그 자리를 차지하니, 더불어 가짜와 사기와 중상모략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이고, 가짜이며, 사기꾼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양만 보고 그들을 따라나섭니다. 휴거니, 종말이니, 재림이니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짜처럼 흉내를 내었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들 뒤를 따라가다가 낭패를 당하였습니까? 종말, 곧 주님의 날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은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주님께서 오시는 날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종말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종말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믿음이 깊은 이들에게는 주님을 만나 뵙는 기쁜 날이지만, 가짜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슬픔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가짜 그리스도와 권력과 명예와 재물에 현혹되지 말고, 참그리스도를 만나 뵐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주님의 자녀답게 성실한 마음으로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
주님, 저희가 천상 양식을 함께 나누고 비오니, 사랑의 영을 부어 주시어,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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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34주간 화요일(2010-11-23) | 미사 강론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Lectio Divina & Comtemplation] * 독서 : 묵시 14,14-19 / 복음 : 루카 21,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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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1> : 풍요로운 마지막 날
오늘도 기쁨 속에 하루를 시작하시고, 자신의 일생 속에서 가장 가치있는 하루를 지내고 계시는지요?
오늘의 성경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시면서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 여러 가지 징표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교를 표방하는 여러 종파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던 사건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헌납하고 마지막 날을 기다렸지만 지도자들이 예고하였던 그 어떤 사건도 표징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허탈하게 공황 상태에 이른 추종자들에게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변명을 일삼다가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간 여러 사건들을 접하면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루가 21:8)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고 표방하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따르지 않는 것과 그러한 잘못된 지도자들이라고 칭하던 사람들의 거짓된 언행만을 따르고 성경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추종자들 모두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굳이 ‘참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 즉, 사랑의 복음 말씀에 기초하여 세상의 삶을 올바로 살아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셨던 하느님의 사랑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은 언젠가는 올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삶이 끝나는 날 즉, 지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이 될 것이고, 세상에는 어느 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참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서로 서로를 사랑하여 미움과 질투 그리고 싸움과 전쟁이 사라질 때,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라 여겨질 때가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에는 더 이상 지상의 삶이 필요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나부터 출발하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 하루의 삶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이 날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이나 더 갖기를 갈망했던 내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노라면, 나의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하루가 더 주어진다면, 사과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일, 즉, 나를 사랑해준 이들에게 ‘고맙습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던 그 말 ‘사랑합니다’라고 진정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요 기회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갑자기 들이닥친 생애 마지막 사건에 초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기쁨을 살 수 있다면 인생 전체를 기쁨의 바다에서 유람할 수 있을 것이며, 나의 기쁨으로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마디가 세상에서 미움도 질투도 갈등도 전쟁도 없앨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아내, 남편, 부모, 자식, 형제들, 동료들, 이웃들에게 여러분이 먼저 이 말들을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말씀자료 : 김원석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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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2> : 그날,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날
“저 돌들이 어는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날, 태양이 솟아오를 무렵, 성녀 체칠리아는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들이여, 어두움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이승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보다 본격적인 삶에로 건너가기 위한 일종의 사다리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체칠리아였기에 그리도 당당하게 떠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체칠리아는 이 지상에서의 삶이 천상에서 누릴 영원한 삶에 비교한다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영원한 삶, 불멸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다보시는 종말의 징후들은 사실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입니다.
-거짓예언자들의 출현과 그들이 벌이는 사기극, 그로 인한 백성들의 혼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민족, 나라들 간의 전쟁 -계속되는 지진과 해일 -에이즈, 조류독감 등의 확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예견하시는 주님의 날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보다 날카롭게 촉각을 곤두세워 우리 시대의 징표들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요구됩니다.
주님의 날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스런 공포의 날이 되겠지만, 그날은 잘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불완전했던 사랑이 완성되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그분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환희의 날, 희미하게 느껴왔던 그분의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날, 그간 우리를 괴롭혀왔던 갖은 죄악과 병고,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날, 작은 물줄기를 버리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꽤 정통한 유다 역사학자로 정평이 난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운 돌’은 그 크기가 얼마나 컸던지(가로: 12m, 세로: 5m, 높이: 4m) 보는 사람들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성전 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값진 예물로 온통 치장되어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유명했던 예물 가운데 하나가 헤로데 왕이 바친 것이었답니다. 황금으로 제작된 포도나무였는데, 그 크기가 실물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장중하고 화려한 성전 앞에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무렵, 예수님께서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날이 올 것이다.”
지당하고 지당한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유형의 성전은 모두 유한한 성전입니다. 외형적인 성전들은 언젠가 모두 무너집니다.
규모가 아무리 웅장하더라도, 아무리 공사비가 많이 들었더라도, 아무리 기초가 탄탄하더라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건물은 수명을 다할 것이고, 마침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모시는 사람들의 모임, 그분의 가르침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백성, 그분의 영성을 추구하는 영적인 사람들, 그분의 사상과 가치관에 따라 사랑과 나눔, 봉사와 친교를 생활화하는 사람들, 그들이 곧 진정한 성전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 아무리 큰 성전이라도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지 않는 성전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사랑과 나눔, 봉사와 친교가 생활화되지 않는다면 그 성전은 빈껍데기뿐인 성전, 이름만 성전에 불과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건축도 중요하지만, 보다 진실한 성전, 보다 영적인 성전, 보다 영속적인 성전을 건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지상의 삶,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의 삶은 언젠가 우리가 나아가게 될 영원한 삶에 비교한다면 “쨉‘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지상의 삶은 영원한 삶에 비교한다면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가 누린 기쁨과 평화는 하느님 품안에서 누릴 영원한 복락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큰 희망, 더 큰 기대, 더 큰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말씀자료 : 양승국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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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3> : 사랑과 희망으로 기다리는 세상 종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년에도 태풍으로 인해 가옥이 침수되고 재산 피해가 심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깊어가는 가을인데도 날씨가 봄을 맞은 것처럼 계속 포근하여 개나리, 벗꽃, 목련,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이런 심상치 않은 일련의 현상에 세말을 생각하며 다소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오늘은 「사랑과 희망으로 기다리는 세상 종말」이란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46년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건립한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성전의 견고한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있지 못하고 깡그리 무너지고 파괴될 것"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예고는 그대로 들어 맞았습니다. 기원후 66년부터 70년 사이에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정에서 벗어나려고 독립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70년 8월 말 로마 군단의 디토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성전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 웅장하고 화려했던 성전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돌위에 제대로 얹혀 있는 돌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영화는 이처럼 다 지나갑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세상종말의 징표로 보았기 때문에 종말이 언제 올것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말의 시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시지 않고 '그때는 반드시 오며,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루가21,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연적인 재난, 하늘로부터의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종말을 생각하기를 꺼려합니다. 죽음과 결부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죽음과 종말을 생각할 때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불안과 공포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물론 세말에는 파괴도 있고 죄악으로 더러워진 온갖 형태는 변화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이들에게 세상종말이란 새하늘 새땅, 새예루살렘처럼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고, 인류에 대한 하느님 구원 사업의 완성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믿음, 희망,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세말을 두려워하고 겁낼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종말의 날자를 계산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종말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 끝이 있는 법이라 반드시 종말은 옵니다.
종말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살아 생전에 주님의 뜻대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의 업적은 세말 후에도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부터 순수하고 깨끗하게 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5, 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전라도 남원에 감사가 새로 부임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아침, 세수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하인이 비누를 가져왔는데 팥가루같이 생겼습니다. 감사는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기가 창피해서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팥냄새가 분명했습니다. 이 고장에서는 세수할 때 팥가루부터 먹나보다 생각하면서 양칫물로 단숨에 팥가루를 들이켰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용기를 내어 "대감님, 그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씻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감사는 첫날부터 기가 죽으면 안된다싶어 시침을 뚝떼고 임기응변으로 "내가 그것을 몰라서 먹은 줄 아느냐? 너희는 그것으로 얼굴만 빤질빤질하게 씻지만 나는 마음을 깨끗이 씻는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세상종말이 오더라도 마음이 깨끗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늦가을에 봄꽃이 핀다해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기쁨에 마음 설레이며 희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것입니다. 비록 일상생활이 단조롭고 고달프더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산다면 보람있게 사는 것입니다................◆
[말씀자료 : 최경용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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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4> : 우리 자신의 종말에 대한 묵상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저와 함께 복음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초점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반듯이 종말이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의 종말 즉 죽음에 직면할 때 우리가 한 일에 후회없이 만족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의 종말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합시다. 옛날에 땅 갖기를 좋아하는 욕심쟁이가 있었습니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땅을 꼭 사곤 했습니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는 그를 불렀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인가?"
"예, 땅을 많이 갖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땅을 선물로 주겠다. 여기 이 말을 타고 하루동안 마음껏 달려라. 네가 탄 말이 밟고 지나간 땅은 모두 주겠다."
이 욕심쟁이는 신이 나서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말을 몰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도록 쉬지 않고 말을 달린 욕심쟁이가 돌아왔습니다. 큰 땅 부자가 된 그를 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부러운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던 욕심쟁이는 긴장이 풀려 말에서 떨어져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사람의 땅은 이 나라의 절반이나 될 뻔했지만 지금 그의 땅은 한 평의 무덤 밖에 없도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남에게 인정받고 뻐기고 싶은 욕심, 마음껏 놀고 싶은 욕심, 좋은 집, 좋은 차, 갖고싶은 욕심 등등 하루를 살아가면서 온갖 종류의 욕심이라는 두 글자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욕심을 잘 조절하여 잘 다스리는 것이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길이요 덕인이 되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종말이 올 때 쯤에는 무서운 일들과 기근과 전염병, 지진 등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개인의 종말에 대해서는 무슨 징조가 없을까요? 애청자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 본일 없이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형님이 네 분이나 계셨는데 세 분은 이미 작고하시고 한 분은 메리놀 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이 넘도록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느낌에 형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마도 자기 삶의 종말을 예견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늘 깨어 준비하는 생활을 하기를 주님께서는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는 이야기로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원주민이 자그마한 조롱박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밤과 땅콩 같은 것을 가득히 넣어 가지고 해가 질 무렵에 그걸 커다란 나무에 튼튼히 매달아 놓았습니다. 밤이 되자 뭔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원숭이가 나무에 올라 이 조롱박을 발견하고 조롱박 안에 먹을 것이 들어 있는 것을 안 원숭이는 얼른 그 안에 손을 넣었습니다. 조롱박에는 간신히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고 이 구멍을 통해 원숭이는 손을 조롱박 속에 넣어 땅콩과 밤을 집었습니다. 그렇지만 구멍이 작아서 땅콩과 밤을 집은 손은 빠지지가 않았습니다. 손을 빼려 안간힘을 쓰지만 손이 빠질 리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아침은 밝아 오지만 땅콩을 잡은 원숭이의 주먹은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다가와 미련한 원숭이를 사로 잡았습니다. 주먹에 든 먹을 것만 놓으면 손이 빠질텐데 - 그리고 목숨도 건질 수 있었을텐데 - 안녕히 계십시오 내일 또 뵙겠습니다..............◆
[말씀자료 : 한영일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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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강론-5> : 다가올 세상 종말의 징조
교회의 전례는 이제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세상의 종말을 계속 이야기하며,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기도하고, 그리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할 것을 간절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번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반성하게 하고, 참회하도록 해서, 뱀이 허물을 벗듯이, 우리도 우리의 좋지못한 행실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옷을 입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루가복음 21장 이하의 내용을 통해서, 다가올 세상 종말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은,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함에 감탄해 하니깐, 예수께서는 그 성전이 돌 위에 돌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철저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전이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기원 후 70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었는데, 포위공격으로 110만 명이 죽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할 정도로, 참으로 예루살렘은 철저히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부터 흔히 예루살렘하면은, 聖都 즉 거룩한 도시,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 등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고, 그래서 이곳에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는, 하느님의 궤를 성전 안에 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보면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모독하는 듯한 표현을 쓰셨지만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지도급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지 않다 보니, 당시 예루살렘이 온갖 부패와 불의의 온상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무리 하느님의 도시라 하더라도, 참회하지 않는 삶,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경우,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도시라면 다른데 보다도 오히려 더욱더 모범을 보여서 봉사하며 하느님다운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이 기득권을 향유하고자 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그 죄는 오히려 더 크다는 것,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살지 않을 때,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을 때, 그들을 꾸짖으신다는 교훈을 오늘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 자는 하느님을 믿는 자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직자는 성직자다워야 하고, 수도자는 수도자다워야 하고, 평신도는 평신도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워야’ 한다는 말은, 권리도 당연히 주장해야겠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책임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할 때, 그럴 때 ‘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요즈음,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묵상하고,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간직한 바를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말씀자료 : 전동기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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