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아침 6시, 아직 여명이 밝지 않은 시간, 스님 공양을 준비하러 갔는데 레스토랑이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중국에서 온 순례객들이다.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아마도 이른 출발을 위해 서두르는 것 같았다. 산만하고 들떠있고 복잡 복잡했다. 스님 공양을 준비해야 하는데 음식은 이미 동이 나서 사람들은 빈 접시만 들고 오갔다.
어제는 이 시간에 식사하는 사람들이 외국인 두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스님 공양 준비를 도와주었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한꺼번에 몰려온 손님들 때문에 그들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자리를 확보하고 미옥씨와 함께 과일과 견과류를 셋팅하고 곧이어 스님께서 오셨다. 음식들이 보충 되는대로 스님께 올린다. 습관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제 오전에 드신 음식으로 19시간 빈속이셨으니 많이 시장하실 것이다.
스님 모시는 것에 익숙한 미얀마 사람들 앞에서 한국인인 우리가 미얀마스님?을 챙기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툰툰은 우리가 스님 챙기느라 이것저것 일정 묻는 것을 참견하고 잔소리 한다고 여겨서 불쾌해 했다. 우리가 왜 그러는지 설명해도 들을 귀가 없는 것 같았다. 우리로서는 난감하고도 황당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마냥 맡길 수는 없었고 우리가 항상 나서는 것도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어서 눈치껏 해야 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는 아예 공양시간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상대방 마음을 잘 읽지 못하는 둔한 나에 비해 미옥씨는 오랫동안 큰스님을 모신 경험으로 센스 있게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에서 마지막 공양을 스님께 올렸다.
스님께선 오늘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신다고 하셨고 우리는 막바지 여정을 시작한다. 먼저 시장에 들르는 일정을 잡았으나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툰툰은 버스를 마하빠사나 동굴로 돌렸다.
마하빠사나 동굴은 양곤 불교대학 옆에 있었고 6번째? 결집 장소라고 했다. 이곳에서는 현재 2달 동안 전국의 스님들이 모여 큰스님 앞에서 삼장법사 시험을 본다고 했다. 수험자는 외우고 큰스님은 확인하는 식으로 시험이 진행된다고 하셨다. 엄청나게 방대한 3장을 모두 외운다는 건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8만4천경, 5부니까야. 경전, 율장, 논장. 나는 아직 5권으로 번역된 마찌마니까야도 몇권 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외운다는 건, 상상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마음을 쏟아야하는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경전에 보면 그런 삼장법사가 수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바보라고 하시면서 수행하라는 부처님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한 그 삼장법사는 수행을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하신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오후 시험을 위해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험을 보기 때문에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대강당처럼 넓은 사원, 정면에는 어디에나 그렇듯이 부처님이 안치되었고 좌우 위쪽에 그동안 배출된 모든 삼장법사 스님들의 상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현지인 젊은 남녀가 멀리 부처님을 두고 삼배를 올린다. 처자는 한참 동안 기도를 하고 남자는 그 옆에서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나도 그들처럼 가만히 삼배를 올리고 기다린다. 나오는데 보니 뒤로 젖혀진 사원 입구 나무문에 섬세하고 고급스럽게 새겨진 연꽃봉오리를 든 조각상이 아름답다.
툰툰에게 물으니 미얀마 불교에 나오는 신으로, 사람들이 세상에 살 때 지은 선업-불선업 과보를 보고하는 신으로 <로까빨라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누가 우리나라 사천왕상에 해당한다고 했던 것 같다.
밖으로 나와 맞은편 사원으로 향했다. 가바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첫 번째 부처님이 내려다보고 계신다. 왼쪽으로 돌아 두 번째 부처님 앞으로 나가니 붉은 가사를 두른 스님께서 예불을 드리고 계셨다. 나도 스님 뒤에 앉아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데 누가 나를 부르며 핸드폰을 들어보인다. 삼배를 올리면서 옆에 놓았던 것을 잊고 그냥 일어난 것이다. 감사했다. 한 바퀴 돌았는데 안쪽에 또 다른 부처님이 계시다. 그 안에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꺼내 올리는 것 같다.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차욱탓지 파고다에는 67미터가 되는, 미얀마에서 두 번째 큰 와불 사원이다. 거대한 부처님이 누워계신 사원. 특이한 것은 부처님의 발바닥에 삼세의 세상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새겨져있었다. 스님이 안계시니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니 다가오는 감동도 달라진다. 부처님의 발바닥이 만져보면 부드럽고 야들야들할 듯 참 잘 만들었다는 가벼운 생각.
사원 한쪽에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신 부처님들이 있었다. 부처님들은 아름다웠지만 각각의 자세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와불상의 발 아래쪽에는 스님들의 실제 모형이 안치되어있었는데 어떤 스님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겉모습만 훑고 있었다.
시장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처럼 재래시장과 정비된 시장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미 바간에서 재래시장을 경험한 터라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간의 재래시장이 더 미얀마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늦은 점심 식사 후 무조건 2시까지는 쉐다곤 파고다에 가야한다고 툰툰이 강조했지만 이미 2시를 넘긴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툰툰 자신이 시간을 늦추고 있었다. 여행사에서 선약한 레스토랑과 계산서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실갱이가 벌어진 것 같았다. 그는 일을 처리하는 마음가짐이 참으로 미숙했고 자기 역할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 자신은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끝까지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들은 많은 부분을 감수하고 있었다.
2시 반이 넘어 쉐다곤 사원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원으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니 갑자기 쉐다곤 파고다 앞이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탑에 압도된다. 미얀마를 대표하는 탑답다. 경이롭다. 그리고 찬란하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앞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본다.
쉐다곤은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타푸사와 발리카라는 두 형제 상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받은 부처님의 머리카락 8개를 모신 곳이라고 했다. 처음 세울 때는 65미터였던 것이 지금은 325미터에 이른다고 했다. 황금으로 뒤덮인 탑이 햇빛에 눈부시도록 빛났다. 밤이면 더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대체로 밤에 많이 온다고 한다. 탑의 끝에 매달린 다이아몬드와 수많은 보석들이 유명했지만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탑 옆의 건물에 자세한 사진으로 쉐다곤의 구석구석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쉐다곤의 축소판으로 주변에 탑을 세워놓았다.
이들의 탑에 대한 사랑을 대단해 보였다. 오늘까지 미얀마를 여기저기 돌아다녀봤는데 여기도 탑, 저기도 탑이다. 그렇게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절절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절절해질까. 어떤 사람은 쉐다곤 사원만 봐도 몇날 며칠을 봐야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탑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깊이 느낄 사이도 없이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떠나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탑을 향해 열심히 기도를 하고 예불을 올리느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겨우 삼배를 올렸다. 나는 정말 미얀마의 상징인 쉐다곤을 느끼지 못하고 떠나온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쉐다곤 아래 수많은 기념품 가게에서 사고 싶었던 종을 샀다. 다 함께 버스를 타러 가야했는데 한 사람이 없어졌다고 툰툰이 우왕좌왕했다. 알고 보니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쭈띠마를 찾았던 거다. 화가 난 툰툰은 버스 안에서 빈정거린다. 5시까지 가면 정말 잘가는 거라고. 양곤은 교통체증이 심해서 스님을 모시고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호텔로 가는데 2시간 안에 가기 힘들다고.
우리는 7시 50분 비행기를 타야하고 공항에는 5시 50분까지는 도착해야 했고 지금은 3시 반이다. 상황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왜 그런지 큭큭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툰툰의 말대로 차들은 한번 막히기 시작하자 정말 지독한 변비에 걸린 것처럼 빠질 줄 몰랐다. 그래도 버스는 5시전에 호텔에 도착했고 화장실 다녀오고 분주하긴 했어도 공항까지 5시 반쯤에 도착했다. 이제 툰툰과도 이별이다. 수행을 위해 남을 케마와 주띠마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각자의 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짐을 부쳤다. 나는 잊지 않고 화덕을 챙겼다. 비행기에 들고 탈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방콕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기내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낮에 시장에서 산 간식거리들을 풀어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입안에 넣기 시작한다. 역시 한국의 아줌마들은 어디서나 퍼질러 앉아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공항 관리인들이 뭐라 할줄 알았는데 웃으며 지나친다. 탑승구로 향하시다가 우리를 보고 스님께서 웃으신다.
비행기에 탈 때까지 남은 1시간 동안 우리는 가지고 있던 짯-미얀마 화폐를 다 소비하기로 작정하고 이것저것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지막 획을 긋듯 누군가는 커다란 와불상을 샀고, 대나무로 만든 반찬통을 샀고, 불상을 샀다. 나도 사고 싶었던 불상을 하나 샀다. 코브라가 부처님을 보호해주는 나무 조각 불상. 조금 작은 듯 했지만 그래도 섬세하게 매만져진 조각과 부처님의 인자한 낯이 잘 드러나도록 조각되어진 것이 마음에 꼭 든다.
곧이어 비행기 탑승. 방콕에 도착한 후 2시간을 의자에서 보내고, 다시 비행기 탑승. 한국 땅에 도착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워낙 들어오는 여행객이 많은 것은 미얀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렇게나 여행객들이 많나! 김포로 가는 일행들과 9시 비행기에 탑승을 해야 했지만 티켓도 발권이 안 된 상태였기에 대기하는 수하물들 틈에서 우리는 마음이 급했다. 게다가 누가 그랬는지 8시 반까지는 수하물을 부쳐야한다기에 스님께 인사도 못드리고 짐을 찾자마자 급하게 국내선 쪽으로 달려갔다.
일행 중 호수가 먼저 뛰어가 발권을 하고 짐을 부치고 나니 미옥씨 문자가 우리 넷의 카톡에 와있다. 스님께 인사드리고 모두 헤어졌다고. 그렇게 스님과 함께한 14일간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여행 후기
집에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집에 도착하고 준비해놓고 간 반찬들로 곶감 빼먹듯이 14일을 버텨온 딸과 남편은 이젠 정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투덜거렸다. 나중에 보니 그리 좋아하지 않는 미역줄기까지 반찬통은 텅텅 비어있었다.
함께 밖에 나가 오랜만에 순대국밥을 먹고 와서는 여행 가방에 싸들고 온 여러 가지 잡스러운 선물들, 비닐 안에 꾸겨 넣었던 빨래감들이 내장 삐져나오듯 여기저기서 흉한 몰골들을 드러냈고 거실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딸애는 면세점에서 스위스 초코렛을 사오지 않았다고 툴툴거렸고 결국 미안한 마음에 대형마트에 가서 초코렛까지 사왔다. 그러고 나니 난장판이 된 거실을 치울 생각도, 엄두도 안 났다.
피곤으로 완전 파김치가 된 채 겨우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그대로 몸살과 장염으로 탈진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루 반을 꼬박 앓았다. 어찌나 끙끙대며 앓았는지 새벽 3시에, 잠 많은 남편이 일어나 집에 있는 약을 챙겨줄 정도였다.
머리가 아픈 듯 탁했고 온몸 마디마디가 쑤셨고 끊임없이 설사가 나왔다. 나중에는 찐덕찐덕한 진액까지 빠져나왔다. 병원에 갈 체력마저 고갈되자 딸아이가 한약방이며 약국에서 조제되어 나온 몸살감기약과 지사제를 사왔다.
2주 동안 실컷 놀다 와서 왜 아프냐는 남편의 걱정 섞인 핀잔에 농담으로 받아칠 기운도 없이 이틀이 지나갔다. 그렇게 끙끙 앓고 나자 몸이 서서히 기운을 되찾았다. 그러자 군대에서 쌍둥이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북적북적 2~3일이 지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몸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좀 더 휴식이 필요하다.
사실 이번 여행이 내게서 어떻게 실현될까 나는 너무나 궁금했었다. 우리 가족은 올 1월말부터 2월 초에 걸쳐 유럽여행을 하려고 작년 중순 이미 비행기를 예약한 상태였기에 그것이 취소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미얀마 성지 순례에 합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가고 싶었고 왠지 갈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의 깊게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며 유럽여행이 취소되었다. 나는 지켜보며 놀라워했다.
여행가기 전과 지금, 나는 내가 바뀌었다는 걸 안다. 외골수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어는 순간 죽어라고 수행만 했었다. 남편이 그랬다. 보통 사람들은 힘들고 불행하다고 느낄 때 수행을 하던데 당신은 누구보다도 행복하지 않냐고! 자기가 그만큼 나한테 잘해주지 않냐는 간접광고? 였지만 그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고 받아들였었다.
일상이 크게 불행하다고 느껴지진 않았지만 수행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15년 이상 수행에 매달려 온 것 같다. 그리고 위빠사나를 만나면서 30년 몸담았던 성당을 포기하고 부처님께 귀의한 것이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비도우 사원에서 뵌 스님의 제자 스님들은 세속의 나이로 치면 30이 갓 넘었지만 법랍으로 따지면 17, 18년 이상이라고 하셨다.
50대 중반인 내가 살아왔고 경험한 한국이란 좁은 세계에서, 더군다나 기독교적 전통에서 일을 하고 젊은 시간을 보냈던 나는 부처님에 대한 예경, 그리고 부처님의 공덕을 기억함이 나의 수행을 어떻게 고양시키는지 몰랐다.
미얀마 성지 순례는 머릿속에 생각하던 삼보-특히 상가에 대한 공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언제부턴가 법이 함께한 현실이 그토록 많았는데도 별것 아닌 것처럼 무시하면서 살아왔던 시간들. 참으로 무지했던 시간들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한 시간이었다. 지금 내게 부족한 것과 해야 할 것이 더욱 선명해진 시간이었다. 오직 정진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많이 게을러졌다는 분명한 것을 본다.
앞으로 나가는데 해야 할 것들이 먼저 서원을 세우는 것인데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예전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처럼 서두르지 않고 돌아보며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얀마 여행을 추진해주신 스님께, 그리고 그 시간동안 함께 한 모든 분들, 도반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첫댓글 성지순례 일기 잘 읽었습니다.
제가 갔었던 때를 떠올리면서
웃기도 했고,
현재 님들의 모습이 부러운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순례기였습니다.
그라고요,
수수꽃님의 문장력이 이리 뛰어남에
감탄했습니다.
ㅎ~~~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얀마에 안가도 그림이 그려지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열수하시어 이생에 도과를 성취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사두사두사두()()()
큰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고 수행하시며
도와 과를 이루시길!
사두사두사두 _()_
짧은 글이나마 제 글을 정리하느라 샘의 글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세세한 설명과 묘사력, 마음으로 보는 통찰력. 잘 읽었습니다. 글 마디마디에 감동이 묻어납니다. 어제 번개모임에서 샘의 글과 사진을 묶어 소책자로 엮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잊을만 할때 그 순간의 감동을 되새기며 순례여행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샘..
두고 두고 꺼내어 읽어볼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기억이 생생할 때 저도 나름의 후기를 하나 써보아야할텐데 몸마음이 분주합니다. 사띠 사띠~~~~
서울분들은 전혀 관심없겠지만 10여년전부터 김해공항 미어터진다고
새공항만들어야 한다고 부산시에선 계속 중앙정부랑 씨름중입니다.
순례기를 읽는동안 마치14일간 미얀마에서 가 있는듯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시고 이렇게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