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에 관한 시모음 3)
봄소식 /민미량
내 고향 봄이 오면
하늘 가득 촉촉이
뿌연 가랑비 내리면
수양버들 꽃잎 살랑바람 춤추고
마을 앞 샘터에서
흐르는 도랑물 따라
송사리 떼 물에서 그림 그리면
어린 꼬마 내 손에 잡히는 날
가난한 시골 마을 맛있는 별미였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파란 새싹보리 돋아 오르면
싹둑 잘라 된장국 끓여 먹고
다음 날 미안해서
잘 자라다오 부탁하며
내 작은 발로 꾹꾹 밟아주고
안개 낀 승 방산 진달래 꺾어
앞마당 장독 위에 꽂아놓고
담장에 피어난 아기 개나리꽃
영원히 내 마음 가득 담아 놓았다.
내 생에 첫 작품
바늘로 꿰매 만든 꽃무늬 월남치마
굽 높은 플라스틱 슬리퍼 신고
동네를 누비며 어르신들께 자랑하며
봄 노래 부르고 봄소식을 전하던
승방리 고향마을
내 집이 동네 집 되고
내 부엌이 동네 부엌 되어
함께 어울려 살았던 동네 사람들은
이름 가족 남기고 영원히 떠나는데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 철로 길에서
애달픈 기적소리만 승방산에 울려 퍼진다.
이제, 생각만 하여도 그 시절 그리워라!
이제, 생각만 떠올라도 그 시절 고마워라!
서서히 잊혀 가는 고향의 봄소식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던 그 고향을
언제까지 주름진 뇌 머리는 기억해 줄까?
언제까지 더 기다려 줄까?
봄 소식 /목필균
먼 산에 초승달 떠오르듯
네가 오려나 보다
쏟아지는 금빛 햇살에
잔기침 소리 잦아들고
굳어진 관절도 기지개 켜는 이즈음
꽃눈 틔우는데
속울음 소리 없이
그 향기 만질 수 있을까
찬바람에
으슬으슬 몸살기 나는데
네 숨결 가랑비에 젖어
내게로 온다
봄소식 /장선희
따스한 기온의 좋은 예감이 온다.
남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
내 신변에 가족력이 되어
생사의 기로를 몇 번이나 다녀왔다.
모든 일이 기막히지만
선택받은 삶에 감사함이 먼저 오고
젊어서 고생한 건 무시하듯 보상처럼
덤이라는 특별 인생의 행복으로
심오한 깊이를 가지게 하며
대단하게 느꼈던 삶에 인생무상이 달려든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특별할 것이고
큰 보람으로 나만의 대단한 일이 아니며
인간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경이로움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우여곡절 많은 인생이라 잘된 일이고
별다른 이상 없는 심심한 세월이 부럽지 않아
노력하며 열심히 살았다는 인생은
헛되지 않게 보낸 추억이 많아서 좋다.
봄 소식 /이의자
입가에 머문 미소만큼
복사꽃 활짝 펴
봄 향기 날리며
내 곁에 임마중 하네
뒷동산에 올라보면
앙상했던 가지가지마다
뽀얀 입술 내밀고
땅속에서 갓 올라온
새아기는 수줍어 윙크 하듯
두 손 들어 얼굴을 가랑잎에 숨긴 채
살포시 햇살에 초록으로 안겨
사랑의 멜로디로
음률을 띄우니
산들바람도 신이나 춤사위로
가지에 걸터앉아
딱따구리와 입맞춤하네
봄이여 ~~
그대는 마음의 환희
나의 꿈
나의 희망.
봄소식 /신창홍
봄볕이 따사로운
낮은 언덕엔
방금 도착한 기다림의 편지처럼
읽기도 전에 두근대는 가슴 따라
산수유 개나리 활짝 피었다
개울가 맴도는
상큼한 바람은
마음을 적시는 위로의 안부처럼
비릿한 풋풋함이 코끝을 스칠 때
생(生)을 보채듯 버들가지 나풀댄다
봄 소식 /박인걸
샛노란 유채 꽃이
섬 들녘에 넘실거리고
매화 꽃 망울이
남녘 산비탈을 물들여도
내 가슴 한 편에는
차가운 눈이 쌓이고
시린 겨울 냉기는
심장까지 파고듭니다.
내 곁을 떠난 그대는
소식이 없고
하염없는 봄비만
가슴을 적십니다.
봄이 오고 있다고
설렌다는데
그대 없는 내 가슴은
한 겨울입니다.
봄 소식 /노정혜
시원한 생수 닮은 봄
미인 노정혜
시원한 생수 같은
봄 소식 들려주소서
차디찬 얼음 녹여
봄은 오고 있습니다
죽은 듯 숨었던 생명들
꿈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봄볕에 생동하는
희망 기쁨 사랑
움터는 봄
우리 크게 기지개 켜요
꽁꽁 숨게 놓았던 꿈
삼월이 오면
생동의 물결 봄바람에
춤을 춥니다
봄소식 /변학규
산 능선 푸른 안개 피어나는 햇 솔가지
오솔길 장끼울음 푸득이는 올볕살에
구름도 졸음에 찔려 방문 여는 산울림
보리밭 이랑 갈며 마중 나온 종달새
아지랑이 노을 걷고 홑치마 등단 초가
초승달 밤 어둠 꿰고 물에 빠진 금 화살.
눈부신 고개 넘어 강물 긷는 아침해
그림자에 털 달고 이슬 쪼는 햇병아리
손자애 할아버지 등 위에 말 타는 개울소리.
우물가 홰나무 빛을 긷는 가지 끝에
아쉬움도 구름 녹아 이슬 듣는 목숨으로
벌 나비 제 깃에 취해 울짱 넘는 풀 향기.
실 개울 징검다리 물길 가는 한길 가에
등성 받쳐 떼를 깔아 삼삼이는 초록 지평
사방에 터놓은 물살 풀려 가는 꽃 물무늬.
까마귀 시육 놓고 돌고 있는 정자 고목
갈퀴 손목 풀에 젖어 불러 보는 논구렁에
온 마을 민들레 웃는 개나리 순색치마.
금렵구 흰 목패 눈 부라린 외딴 골에
산비둘기 날개 핧고 전잎 터는 솔밭 바람
저수지 넘어오는 볕살 발목 적신 산그늘.
유혹의 봄소식 /정찬열
폭설도
눌러버린
봄의 눈물 뿌려댄다
하얀 안개비가 절뚝거린다.
무등산 높은 봉에
잔설은 백 포를 치고
민 둥 가지 손짓하며
넘실대는 꿈을 부르고 있구나.
수은주 솟아올라
움츠린 몸 털어내며
재촉하는 겨울비에 젖어
성큼성큼 오는 봄을 꿈꾼다.
감각으로 받은 전율
얼어붙은 추위를 걷어 내려고
내리는 빗소리에 싱그런 미소
세찬 비바람은 초록에 유혹인 것을….
봄소식 /임재화
벌거벗은 나무에도
봄이 다가오는 소리 들리고
땅밑에서는 새싹과 꽃을 불러요.
늘 푸른 소나무에도
벌써 송화가
피어나는 것도 같고요.
추운 겨울 잘 견디어 낸
백목련의 유백색 꽃봉오리도
점점 뽀얀 솜털을 벗고 있네요.
매화나무 꽃망울도
제법 그 작은 입술을
조금씩 벌리려 하고 있어요.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작은 새들도
목소리를 높여서
봄이 오는 것을 재촉합니다.
봄소식. /황우 목사 백낙은(원)
아직은 만물이
찬바람에 웅크렸지만
봄의 여신이 탄 꽃수레
굴러오는 바퀴소리 들린다.
아지랑이 보이지 않고
종달새 소리 들리지 않아도
매화가 고운 부리 열고
봄의 여왕 오심을 노래하네.
이 삭막한 동토에도
3만 번의 충돌로
대지를 뚫은 새싹들이
나물 캐는 아낙들 불러내겠지.
봄소식 /박은형
이번에는 화분 깨는 일을 얻었습니다
이전 난전에서나 멸치 배를 따 차려내던 쌈밥집에서나 사랑에 별반 차도를 얻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다시는 그리 웃지 마셔요
나의 화해는 매번 속내만큼 살뜰하지 못했고 이제 수중에 으깨질 살점이 남아있지 않아 다행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보니 깨쳤다는 이들의 말씀이라는 것은 혼자 남기에 도통한 후의 어법이었습니다
당신이 비워진 내 심경은 그지없이 쇠락해졌고 당신을 물들일 아름다운 염료를 한 번도 구하지 못했다는 대목에서는 지금도 목이 멥니다
과일 싼 봉지처럼 벌레와 비를 견디었습니다
꽃의 집이었던 이 화분들처럼 목숨의 집은 바래갑니다
이것들을 콸콸 부수어야 한다니요
주인이 붙인 이 일의 조건은 절망의 내재율인 필생의 쾌감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일이 끝나면 내 몸의 유일한 부산물인 그림자에 눕고 싶습니다
파열음을 모은다면 찾아와도 좋습니다
혹 눈에 띄면 불구덩이에서 단단해진 찰나의 음률도 간수해 놓겠습니다
딱히 사주한 적 없건만 무릎 가까이 각다귀 같은 봄이 옵니다
당신을 조마조마하던 그 어느 때의 이력이 봄이라면 저 봄은 다시 봄일 리 만무합니다
봄소식 /유영인
창가에 다소곳이
수줍은 듯 찾아오는 햇살
겨우내 거칠어진 뺨을
살짝 입맞춤 해 주어
핑크빛 미셀메이언처럼
내 뺨은 발그레이 피어오른다
지긋이 감은 두 눈엔
아지랑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촉촉이 미소짓는 입가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난 들녘에 서서
봄노래를 부른다
여인네 젖가슴처럼 부푼 내 가슴
남녘땅 가까이 온 봄소식에
산모가 입덧하듯
애간장 태우는구나
봄소식 /유창섭
山頂(산정)에는 아직도 殘雪(잔설)이 남았는데
남쪽에서 올라오던 꼬리 긴 열차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뜻 모를 기적 울리며
산모롱이를 돌아간다
양지녘 떨어진 햇살 휘어 감고
졸던 메마른 풀섶
선잠을 깨는 간이역
누구의 가슴에 꽂혔던 葉信(엽신)인가
철길에 나뒹구는 풍문 주워 들고
발길 돌리면
볕 바른 길 옆
제 혼자 놀라 눈 뜨는
개나리 꽃망울
봄소식 2 /一向 조한직
주춤주춤 봄이 오네
하얀 겨울 강을 건너서
실바람을 타고 봄이 오네
강가의 버들가지
눈 뜨는 소리 즐거워
일렁이는 강물은
두 귀에 노랫소리 경쾌하다
돌고 돌아서
봄은
강물이 바람에 춤을 추는
그 사이로 오는구나.
꽃 피고 사랑이 흐르는
봄은 기쁨 중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