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장군 동상이 바뀌었다?’
부여군청 앞 로터리.
백제의 상징이자 부여의 대표로 일컫는 계백장군 기마상이 서있다.
계백장군이 출전명령을 내리기직전의 기마상이라는 이 동상은 계백장군이 오른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장수가 오른손을 든 모습이 ‘패전한 장수라서 항복의 의미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던 기마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동상은 원래의 계백장군 동상이 아니다. 한번 세워놓으면 지역의 상징으로 반 영구적으로 모습이 보존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백장군 동상은 13년 만에 모습이 바뀌었다.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바뀌었다.
그렇다면 1966년 당시 제작된 최초의 동상은 어디에 있을까?
‘논산시청이 소유하고 있다’ ‘부여의 한 초등학교에 있다’ 등 소문이 무성했지만, 40살이 훌쩍 넘은 계백장군은 논산시 연무읍 구자곡 초등학교 뒷 뜰에 있었다.
전교생 50명의 작은 시골 초등학교 뒷 뜰에 서있는 계백장군의 모습에는 40여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지금보다 좀 더 역동적인 말을 탄 계백장군의 오른손에는 5~6m 길이의 삼지창이 들려있다. 삼지창 모양의 투구를 쓰고 있고 활, 칼도 지니고 있다.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말의 꼬리는 서 있고, 계백장군의 표정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갑옷과 말의 근육까지 섬세함이 느껴진다.
이 동상은 부여의 백제중학교 미술교사였던 조각가 故 윤석창 선생의 작품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말을 타고 있는 ‘기마상’을 제작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계백 장군의 동상이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79년 당시 연무 인터체인지 앞에 이 계백장군 동상이 버려져 있었다는 것.
풀숲에 쓰러져 1년 가까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계백장군 동상을 안타깝게 여겨 연무읍 주민들과 구자곡 초등학교 19회 동창회에서 비용을 모아 모교 교정에 모시게 됐다.
황산벌의 고장인 논산지역에서 계백장군의 동상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모습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당시 19회 동창생들의 증언이다.
구자곡초 19회 졸업생인 권주원(71세)씨는 “당시 너무 오랫동안 풀숲에 방치돼 있어서 학교 육성회장과 19회 졸업생들이 승락을 받고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쌀 2가마부터 조금씩 모금액을 모아 축대를 세우고 동상을 옮겨왔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차에 실고 가다 버리기 귀찮으니까 인터체인지 입구에 버렸다”“말이 사람보다 커서 비율이 안맞아서 바꾼거다”“말이 뒤로 후퇴하는 모습이라 버려졌다”는 등 각종 소문만 무성한 상태다.
어느날 갑자기 동상이 바뀌게 된 이유, 먼저 있던 동상을 아무렇게나 방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민영 기자 min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