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추에서 가는 길’
장흥 알프스의 들머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구파발에서 버스를 타고 직접 가는 방법이고
둘째는 구파발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북한산 서편을 따라 북쪽에 있는
도봉산으로 이동 후 오봉 탐방지원센터 조금 전의
송추 초등학교 근처에서 장흥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환승을 하는 방법이다.
당연히 첫째 방법이 편안하고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첫째 방법이 약간 이슈가 있었는데
“내 기준”으로는 너무 늦다는 점이다.
물론 “보통”의 기준으로는 최적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도 이 김에
한번 보통 기준으로 낮추어서 함 편안하게 가볼까 싶었지만
아직 그 경계를 넘는 것은 조금은 불편한 것 같다.
그래서 일단 기존과 같이
두 번째 방법으로 해보기로 했다.
물론 여기에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조금의 교통비가 더
들어가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사실 가성비를 따지면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암튼 두 번째 방법으로 목적지에 가려면
집에서부터 무려 최대 “6번”의 환승을 해야 한다.
버스 – 버스 – 전철 – 버스 – 버스 – 버스 등
여기서 전철은 당연히 구파발까지 가는 3호선이고
전철 앞쪽의 버스들은 전철역까지 가기 위한 서울 지역에서 환승이며
전철 뒤쪽의 버스들은 송추와 장흥 지역에서의 환승이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맨 마지막에 있는 버스가
기실 구파발과 들머리 간을 오가는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첫째 방법의 바로 그 버스다.
이건 너무 늦다고 패스했는데, 결국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버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만일 이 방식으로 버스를 타려면
구태여 이렇게 돌아돌아 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 방법에 있는 마지막 즉 6번째의 버스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5번이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마지막 버스 구간이 대략 1~ 2km 내외 구간이다.
때문에 걸어도 충분하고도 남는다.
어차피 걸으러 나온 길 아닐까?
아무튼
집에서부터 거리는 훨씬 짧지만,
목적지로 가기 위한 환승 수로 따진다면
강화 나들길을 교동도 가는 길보다 훨씬 험(!)하다…^^
그래서 체감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어차피 걸으러 나온 날인데~ 하는 생각으로
앞쪽에 있는 두 번의 버스 환승도 한 번으로 줄였다.
그래서 결국 줄인 교통편은
버스 – 전철 – 버스 – 버스였다.
맨 마지막 버스는 경기도 360번 버스로
의정부와 불광동을 오가는 버스이고 나름 자주 있는 버스다.
또한 360번 버스 바로 앞의 버스는
구파발을 지나는 34번 또는 704번 버스로
이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북한산과 도봉산 서쪽을 통과하는 버스다.
그래서 이 버스를 타면,
‘북한 산성 16성’ 또는 ‘사도북’ 생각이 나지 않을래야 나지 않을 수 없는 노선이다.
겨울이 왔지만 눈이 오기 전에 북한산에 한번 다녀 오고 싶은 생각인데
며칠 전 어느 유투버가 올린
야간의 북한산 오르기 영상을 보니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봉에 벌써 상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목도 없고 무슨 상고대 싶지만,
이른 새벽에 정상에 있는 안전난간에 상고대가 있었다.
에고~ 벌써 상고대..
국민 등산화인 캠프라인 블랙스톰처럼 바위 접지력이 우수한
등산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아이젠을 신음으로써 기동력이 떨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어쨌건 겨울 산행은 이래저래 버거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상고대 하면 덕유산인데,
겨울의 69 종주는 어떤지 모르겠다.
지금도 안내 산악회에서 꾸준히 프로그램은 띄우는 것 같고
또한 산 관련 정보 사이트에서 보면
다른 시즌 대비 겨울에 급상승하는 산행 코스가 덕유산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덕유산은 여름의 원추리 산행과
겨울의 상고대 산행이 브랜드 파워인 것 같다.
그리고 상고대는 케이블카가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오를 때는 케이블카, 내려갈 때는 “좀” 걷고…
개인적으로는
덕유산 정상인 설천봉도 좋지만
눈 덮인 중봉이나 무룡산의 “덕유평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가운데,
나 홀로 나있는 길 위가 더욱 예쁠 것 같다.
물론 보는 것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걷는 것은 엄청 고생길일 것이다…^^
각설하고
구파발에서 이제는 익숙한 약 10여분간의 버스 기다림을 하여
드디어 704번 버스를 탔다.
앞 버스와는 조금 이른 간격이 있었지만
뒤 버스와는 너른 간격이 있어서
평균 잡아서는 적당한 때에 도착한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전과 같은 시간에 승차를 했는데
승객은 전혀 달랐다.
해 뜨는 시간은 점점 늦어져서 그런지
버스에 승차하는 “등산복”은 나 빼고는 딱 1명 밖에 없었다.
한 삼 주 전만 하더라도
그 시간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돌 많이 탔는데…
그 사이에 어둠의 시간이 길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 승차 직후
송추 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환승 해야 하는 360번 버스 상황을 살펴 보았는데,
의정부 종점을 출발한 그 버스를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만큼 740번 버스의 스피드가 좋았고,
또한 이른 아침 시간이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마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누구의 코멘트처럼
구파발을 통과 후 대략 2~3 정거장을 거치고 난 후부터
갑자기 기가 찰 정도로 내가 탄 버스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그러면 안 되는데, 기사님이 통화 중이었다.
그리고 이 통화는 산성 입구를 지나 예비군 훈련장까지 이어졌다.
역시 세상이란 맘 먹은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역시나 현실은 그랬고,
송추 초등학교 정류장에 도착하니 360번 버스는 이미 버스가 지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버스 전광판을 보니 다음 버스는 17분 후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360번 말고 사실 다른 버스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분산해서 오지 않고
꼭 두 대가 함께 쌍둥이처럼 오고 있었다.
17분을 기다릴까 싶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컴컴한” 상황 때문이었다.
장흥 알프스가 크게 걱정할 만한 거친 코스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헤드 랜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어두워서 빨리 가봐야 산을 오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전에 봐둔 지도에 의하면
송추에서 장흥까지 그리 먼 길이 아니었던 것도
‘그냥 걷자’로 결론을 낸 이유 중 하나였다.
한 3~4km 정도였기 때문이다.
치악산 들머리로 이동하기 위해 8km를 걸은 후부터는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지
5km 내외의 들머리 이동은 별 생각 없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예전만 하더라도,
들머리도 아니고 날머리인
한북 정맥 노채 고개에서 일동 시외 버스 정류장까지
한 5km 정도 되는 거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졌는데,
그것 보면 치악산이 참 커다란 생각의 전환점을 이루게 한 것 같다..^^
치악산이 대스승인 셈이다.
암튼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 시간 조금 안팎으로 걸어서
그 동안 종주 산행에 대한 워밍업도 좀 하고
또한 걷은 동안 날이 좀 밝아져서
산행을 시작 할 때는 사물을 분간하면서 싱싱하게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마침 장흥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자전거 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가끔 버스가 어디쯤 오나 체크해 보기도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더디게 오고 있었다.
드디어 지금은 폐선이 되었고 추억이 아닌 잊고 싶은 역이기도 한
장흥역 조금 이전 쯤 오니
버스 두 대가 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곳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까 말까 살짝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미 장흥 유원지 근처 가까이 와 있었고
또한 그 버스를 타고 가봐야
어차피 반대 방향으로 걸어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지 않았다.
사실 버스에 타지 않은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어쩌면 그냥 걷는 것이 들머리에 더 빨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것이 가능한지 아닌지의 대한 결정적 요소는
교외선 철길로 가는 길이 있는가
그리고 그 철길을 따라 하천을 건널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도에는 찻길에서 기차길로 가는 방법이 없었다.
그건 도박이었다.
그런데 현장에는 길이 있었다………^^
[2] ‘기억의 철길’
두 주 전쯤
소요산을 하산하고 마차산으로 가기 위해
3번 지방도로를 따라
마차산 들머리로 이동하는 도중에
동두천과 백마고지 간은 운행했던 통근 열차 레일을 보았다.
그때는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준이었다.
기본적으로 기차길과 도로는 이격 되어 있었고
가뜩이나 레일을 본 곳은 다리 위에서였다.
다리 아래에 레일이 있었다.
그래서 레일은 말하자면 그냥 물끄러미 꿈길이었다.
그런데 만 두 주 만에
과연 현실 속으로 그 꿈길을 가져 올 수 있는 아닌가 하는 것이 이슈였다.
360번 버스와 조우했던 곳부터 들머리인 장흥 유원지까지를 “원안대로” 가자면
차로를 따라 걷다가 장흥 유원지로 가는 차로를 만나면 방향을 바꾸어 걷는
말하자면 V자와 같은 모양의 길을 걸어야 한다.
즉 V자의 오른쪽 끝에서 가운데 점으로 걷다가
다시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어 다른 쪽의 끝점으로 걸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V자의 양쪽 끝점 간은 아니더라도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도 다른 쪽 길로 넘어갈 수 있는 나름 “지름길”이 없었다.
왜냐면 두 꼭지점 사이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고,
또한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반 다리가 아닌 교외선 레일이 놓인 철교 다리가 있었다.
그래서 출발 직전에 얻은 결론은
레일이 놓은 그 다리를 건널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것을 건널 수 있으면
버스를 탄 것보다 더 빨리 들머리로 이동을 할 수 있었고
단순히 트랭글의 도보 수보다도 훨씬 큰 가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와 조우했던 곳을 지나서 조금 더 내려가
교외선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타겟” 예상 지점 근처에서
하천 건너편으로 바라보니
장흥 유원지 방향으로 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훤했다.
저 하천만 걸으면 만사형통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어떤 희미한 길이 오른편에서 스쳐 지나갔다.
혹시~??
하고 한 30m를 뒤로 돌아서 올라와선 그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 갔다.
그런데 길이 향하는 저 아래 쪽으로
창고 같은 것이 보이며 개가 짖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꽝~인 것 같았다.
사유지, 그것도 개가 있는 곳에 들어갔다가는
미국 같으면 총 맞아도 할말이 없을 상황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사유지에 마구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미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 길이 가지치기를 해서 밭 옆을 통해 기차길로 이어지는 것 같다.
가평의 낙엽 깊은 희미한 등로를 통해
나도 모르게 훈련을 받은 덕분이었다.
그 길을 따라 가니
역시~… 그 길은 교외선 철로로 이어졌다.
행운이었다.
오래 전, 기차를 타고 가던 길을 마침내 발로 걷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정말 수십 년이 걸렸다. 물론 폐선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레일을 따라 걸어서 하천을 건넜다.
대낮에 보았다면 경찰이 호루라기 부를 상황이었다. 컴컴해서 다행이었지…
하천을 건너는 순간 기뻤다.
확실히 버스를 탄 것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문제는 이 레일은 도로 위의 나름 높은 고도에 있다는 점이었다.
저 아래로 어떻게 내려가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에는 엇비슷한 희망사항이 있는것 같다.
다리를 건너자 마침 옆쪽으로
도로로 내려가는 “역시” 희미한 길이 보였다.
완전 대성공이었다.
비록 지도에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길이 있었고
나름 도강에 성공을 한 것이다.
물론 폐선이건 활선(?)이건 어떤 식이든
철로를 걷거나 넘는 것은 불법이다.
사실 이 점이 좀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오래 전 기차를 타고 이동했던 철로를
수십 년이 지난 후 어느 이른 아침에
아무도 없는 가운데 발로 밟아보았다는 의미 때문인지,
아쉬움보다는 기쁨이 큰 것이 사실이었다.
교외선 그리고 경춘선
이 노선은 그 시대의 하나의 기억의 아이콘이었다………
추억이든,
아니면 그 반대이든…………
이렇게 2020년에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했다.
산행을 마치고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와
낮에 본 근처에 걸려 있던 플랭카드에 의하면
2023년에 교외선이 다시 재개 된다고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먼 후 어느날 교외선 기차를 타고 가며
장흥의 철교를 건널 때 즈음
몇 해전 이른 아침에 도강했던
지금의 이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첫댓글 산행 시작부터 추억거리를 만들었군요. 정말 교외선 타본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소리없이 떠났던 교외선이 2023년 재개통하는 군요. 시간과의 전쟁 수고했습니다^^*
찾아보니 교외선이 중단된 때가 2000년이라고 하네요. 여러 가지 사정때문이겠지요. 그런데 2023년에 복원하려면 참 많은 손이 갈 것 같습니다. 철길은 녹이 슬었고, 차단기 등 신호등도 거의 폐폐물 된 것 같던데요. 계획은 그럴지라도 실제 운행되는 것은 더 늦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이 종주로는 예전에 봉우리님이 한번 이야기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 분 잘 계시나 모르겠네요.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