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시편 23:2
제목 : 시편 강해(2) - 쉴만한 물가로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날 복된 날 또 저희들에게 허락하시고 주의 전에 나아와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가 또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찬양대의 찬양이 참 감사합니다.
오늘 찬양이 정말 너무 좋았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귀한 찬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1. 들어가는 말 : 피곤함에 지친 영혼들
어떤 구두쇠가 있었습니다.
이 구두쇠가 지독하게 일하고 돈을 많이 모아서 가게를 크게 하나 장만을 하게 됐는데, 그만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임종할 시간이 되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의 임종을 슬퍼하고 있는데,
막 죽어가던 그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부인을 찾으면서 "당신 왔소?"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부인이 "예, 저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가 "아들은?"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급하게 "예,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라고 하니까,
이 구두쇠 아버지가 말하기를 "며느리도 왔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예, 아버님, 저도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했는데,
갑자기 이 사람이 소리를 빽 지르면서 "여기 다 와 있으면 가게는 누가 봐?"
하고는 덜컥 죽어 버렸답니다. 참 웃픈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조금 과장되게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웃기는데 웃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웃픈 이야기다...
여러분, 이게 오늘을 살고 있는 슬픈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고 명예와 권력과 지위와 인기를
조금이라도 더 모으려고 온갖 힘을 쓰다가 결국은 육신이 병들어 쓰러져 갑니다.
그리고 과중한 업무와, 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항상 긴장 상태에 있고
그로 인해서 결국 정신적인 문제까지 와서 우울증과 불면증과,
(오늘 우리 간증 들었는데), 불면증과 심지어는 공황장애로 고통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영적으로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므로, 이런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심령의 참된 안식일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에게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상징되는 쉼과 안식이 정말 필요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오늘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참된 안식과 쉼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2. 참된 안식은 오직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있다
다윗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로 노래하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요 우리의 목자이시고 그분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라고 노래하지요.
양은 선한 목자를 바라보고 따라갈 때에 가장 안전하고 온전한 쉼과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유대 땅, 넓게는 팔레스타인 땅은 사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그런 땅이 아니예요.
팔레스타인 지역의 70% 이상이 황무지(광야)입니다.
제가 지난 2019년 안식월 때에 두 달 동안 지나면서 다녀본 팔레스타인은 대부분이 메마르고 건조한 광야였습니다.
다윗이 어렸을 때에, 목동으로 양을 치던 베들레헴도 제가 가 보니까,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광야입니다. 푸른 풀은 잘 보이지 않아요..
* 짧은 영상 보기(베들레헴 들판, 목자 교회 - 목동들에게 천사가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 주었던 바로 그 장소라고 함)
- 거기에다 교회를 세움
대부분이 황무지입니자. 저렇게 메마르고 뜨거운 볕에 그을러서 갈색으로 변한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양들이 생존하려면 목자들이 절대적으로 있어야 하는 거지요. 일단 저런 황무지에는 먹을 풀이 많지 않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푸른 풀과 맑은 물, 시원한 그늘, 그리고 비바람과 사나운 맹수들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 등은
양들이 생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푸른 초장, 맑은 물, 그리고 시원한 그늘, 피난처..
선한 목자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들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지요.
다윗은 그의 목동 생활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에 양과 같은 자신을 그렇게 인도해 주시고, 도와 주시고,
또 보살펴 주시고, 먹여 주시고, 재워 주시고 지켜주신 분이 바로 나의 목자, 여호와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울 수 있도록 도우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다"라고 노래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 단어가 있지요.
[누울 수 있게 도우시고,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3.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
먼저, 다윗은 선한 목자 주님께서 자신을 푸를 풀밭에 눕게 해 주신다라고 했어요.
여기, "누이시며"라는 단어가 참 기가 막힌 단어예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양의 묘한 습성에 대해서 알아야 되는데,
필립 켈러라는 분이 쓴 『양과 목자』라는 책이 있어요.
저 책은 필립 켈러는 아프리카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나서 아프리카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늘 양과 목자를 잘 알고,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목자 일을 하고 나중에 목사가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시편 23편을 쓴 책이 바로 저 책입니다.
제가 지금 시편 강해를 준비하면서 책을 지금 한 20권 정도를 보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저 책은 여러분에게 가장 권하고 싶습니다.
시편 23편을 목자였던 분이 해석해서 쓴 책입니다. 굉장히 아주 좋은 책입니다.
그런데 저 책에 보면, 양은 성질상 네 가지 조건이 충족이 안되면 절대로 누울 수가 없다고 합니다. 눕지 않는대요.
첫째, 양들은 겁이 많아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 누우려 하지 않는다.
둘째, 양들은 집단 안에서 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불화(갈등)가 있는 한 누우려 하지 않는다.
셋째, 파리나 기생충 때문에 괴로울 때도 누우려 하지 않는다. 해충이 없어야 양들은 긴장을 푼다.
넷째, 배부르게 꼴을 먹지 않으면 누우려 하지 않는답니다. 반드시 배고픔에서 벗어나야 한다.
- 필립 켈러, 『양과 목자』 -
그러니까, 양들은 온전히 쉴려면(눕는다는 것은 쉰다는 건데),
온전한 쉼을 위해서는 두려움과 긴장과 괴로움과 배고픔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절대로 스스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어요.
이런 여러가지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이는 오직 목자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이 눕는다라는 것은 바로 앞의 이 네 가지 문제들이 목자를 통해서 다 해결될 때에 눕는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첫째, 양은 두렵다 그랬어요.
두려움이 있으면 절대 눕지 못한다 그랬는데, 양은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방어 수단이라곤 전혀 없는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저 겁이 많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양무리가 지나가다가
숲에서 토끼 한 마리가 톡 튀어나와도 전부 다 놀래서 양떼가 온통 다 도망칩니다.
그러면, 뒤에 있는 놈은 왜 뛰는지도 모르게 막 그냥 같이 달려가는 거예요. 이게 양의 모습입니다. 두려움이 많지요.
목자가 있을 때, 목자를 통해서 양들은 안전하고 안심하고, 누울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다 양과 같다 그랬어요.
오늘 찬양대도 "주의 기르시는 양이라" 그랬어요. 찬양의 가사를 보니까, "우리는 주의 양이다"
맞습니다. 우리는, 저와 여러분은 주의 양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사야 53: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랬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많은 긴장과 두려움과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 인생들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아무도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염려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잠 못 이루는 경우도 많지요.
그러나,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당신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무슨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주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지 않으니까 두려운 거지요.
그 다음, 모든 동물 집단 안에는 지배질서가 있어요.
소위, 쉽게 말하면 누가 우두머리이냐?가 항상 문제가 된다 그럽니다.
예를 들어서, 서열을 어떻게 세우냐 하면
닭장 안에서는 그거를 쪼는 순위로 세운답니다. 제일 잘 쪼는 닭이 우두머리가 되는 거지요.
양들은 머리를 들이받는답니다. 머리를 들이받는 순위로 결정을 한대요.
그러니까, 양떼 안에는 세력 다툼을 위한 경쟁이 있어서 긴장감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 양들은 절대로 누울 수 없대요.
그런데 목자였던 필립 켈러 목사님의 그 책에 보니까, 신기하게도
자기(목자)가 나타나면 양들이 그 경쟁의식을 잊어버리고 싸움을 그친답니다.
목자가 함께 있을 때 양들의 행동이 전혀 달라졌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런 경쟁과 갈등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요즘 서울 강남에서는 세살짜리 네살짜리 아이들이 영어 유치원에 입학하려고 영어학원 다니고 시험을 본답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는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들이받고 경쟁하느라고
어린 아이서부터 시작해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면서
오직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우리는 모든 경쟁의식, 세상의 욕심을 다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지요.
또, 양들은 날파리, 쇠파리, 진드기 등의 해충에 시달려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면 결코 누워서 쉴 수가 없대요.
그러므로 선한 목자는 늘 양떼를 위해서 여러가지 해충제를 뿌려주고
진드기가 떨어져나갈 수 있도록 양들을 살충제로 잘 씻어 준대요.
그리고 상처 난 곳은 기름을 바르고...(나중에 제가 다른 설교 시간에 기름 바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하겠지만)
그래서 양들이 안전하게 휴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선한 목자 주님께서는 이런 벌레물림으로 인해서 상처받은 우리들,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인해서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데,
이런 벌레물림에 대해서 성령님의 역사로 오늘도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지금 간증 듣고 있잖아요...
성령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심으로 병고침과 위로를 베풀어 주세요.
그래서 우리의 영육이 고요함과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양들은 배가 고프면 절대로 눕지 않아요.
그러므로 목자는 항상 양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풀밭을 찾고 양들을 그곳으로 인도해요.
그래서 양들로 하여금 풍족히 꼴을 먹게 하고 그들로 만족하게 하지요.
그러면 양들은 푸른 꼴을 마음껏 먹고 난 뒤에 이제 평안하게 누워서 되새김질을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의 필요와 정신적인
그리고 영적인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선한 목자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적당한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도록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서 만족하며 쉬게 만들어 주십니다.
바라기는, 선한 목자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는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의 삶 속에
히브리서 4:16절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항상 함께 함으로 우리의 입술에서도
"그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4.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 다음, 목자는 양들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한다 그랬어요.
목자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양들에게 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양은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 몸의 성분이 70%가 물입니다. 그러므로 물을 마시는게 너무 중요하지요.
양들은 목이 마를 때에는 참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헤매고 다니면서 갈증을 해소할 물을 찾습니다.
마실만한 맑고 깨끗한 물이 없으면, 종종 간디스토마 혹은 기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과 기생충으로 득실거리는 웅덩이의 오염된 물을 마시는 거예요. 분별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목자가 양떼들을 맑고 깨끗한 물가로 인도하는게 너무 너무 중요하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목자는 세 가지 수원(물의 근원)을 통해서 양떼들에게 물을 제공하는데
첫째는 풀잎에 맺힌 이슬, 두번째는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마시게 하거나,
세번째는 샘물이나 잔잔한 시내에서 물을 얻습니다.
필립 켈러 목사님의 『양과 목자』라는 책에 참 중요한 사실을 소개하는데, 양들은 날씨가 지나치게 덥지 않은 경우에는
매일 아침 먹는 풀잎에 맺힌 이슬이 흡족히 맺히기만 하면 물을 마시지 않고도 여러 달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흔히 양들은 습관적으로 동 트기 직전에 일어나서 먹이를 찾아 나서는데,
이른 새벽에는 초목이 이슬로 젖어서 양들이 동 트기 전후로 풀을 뜯을 때에는
상당한 양의 수분을 동시에 흡수하게 된다고 하는 거지요. 그것은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이슬입니다.
"동이 틀 때 나뭇잎과 풀잎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은빛 이슬방울보다 더 찬란하고 고요한 물은 없다"
- 필립 켈러, 『양과 목자』 -
그리고, 부지런한 목자는 양떼들을 데리고 일찌기 나가서 이슬 맺힌 풀을 뜯어먹도록 인도해 준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단어가 "쉴 만한"입니다.
"쉴 만한"(메누호트)라는 단어는 "평온한" "움직임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 단어를 "still waters", 또는 "quiet waters" 즉 "움직임이 없는 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양은 세게 흐르는 물에서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요.
마시지 못한대요. 왜냐하면, 양은 입과 코 사이의 간격이 너무 짧아서
물살이 센 곳에서 물을 마시다가는 물이 콧구멍으로 들어가서 질식사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본능적으로 물을 두려워한다고 해요. 왜냐하면,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요.
모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물 속에 집어던지면 막 헤엄을 치는데, 양은 그렇지 못해요.
왜냐하면, 털이 물에서 스펀지 역할을 해서 양이 물에 빠지면 물에 털이 다 젖어서 십 중 팔구 가라앉습니다. 익사하는 거지요.
그래서 양은 아무리 얕은 물가라고 해도 흐르는 물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있다고 합니다.
중동 지역의 삶과 문화에 대한 전문가인 '케네스 베일리'는 『선한 목자』라는 그 책에서 보니까
"양은 물이 빠르게 흐르면 마시지 않는다"라고 지적을 합니다.
"목자들은 물살이 강한 시냇가를 만나면, 그 가장자리 끝에 물이 고이도록 해서 양이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면 양들은 재빨리 잔잔한 물가로 나란히 다가와서 갈한 목을 축인다"라고 설명합니다.
목자였던 다윗은 이 모든 걸 알았고, 나에게는 잔잔한 물가가 필수적인 사실을 인식하고,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라고 노래한 거예요.
이렇게 외부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푸른 풀밭 잔잔한 물로 만족을 얻은 양들은 먹은 풀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마침내 자리를 잡고 눕게 되는 겁니다.
싱싱한 풀이 무성한 초원과 그 옆에서 잔잔한 물이 흐르고 그늘이 드리워진 곳,
그곳이야말로 양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인데, 다윗은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자신을 그렇게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겁니다.
비록, 그의 삶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지요. 살인도 했고, 근친상간 하고 배신하고 간통하고 여러 사건들이 있었어요.
시련도 있었어요. 아들 압살롬이 배신하지요. 내전이 일어난 겁니다. 그리고 결국엔 고통과 아픔이 있었어요. 아들이 죽었지요.
그러나, 그 많은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도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그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셨기에
그는 그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쉼과 안식과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다라는 고백입니다.
5. 양은 오직 목자만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제가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지만, 오늘 많은 사람들이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핍절하고 갈급함 가운데 살고 있어요.
심지어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조차도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고,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에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왜 그럴까요? 왜 그렇지요? 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도 자꾸 바라보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오늘 나의 목자는 정말 누구십니까? 여러분과 저의 목자는 누군가요?
성공이 나의 목자입니다.
재물이 나의 목자입니다.
지위가 나의 목자입니다.
직장이 나의 목자입니다.
명예가 나의 목자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오직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야 됩니다.
왜 불안한지 아세요? 왜 쉼을 누리지 못하는 줄 아세요?
목자가 아닌 다른 것을 나의 목자로 따르기 때문에 그렇지요. 우리가 주님만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어리석고 우둔한 양들처럼, 또 때로 더러운 세상의 웅덩이에서 갈증을 채우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과 쉼과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은 선한 목자 예수님입니다.
선한 목자 여호와를 떠나서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코 우리의 영육간의 갈증과 필요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예리한 지적을 했어요.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하나님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그랬어요.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메마르고 바싹 타들어간 인생들, 그래서 목말라 탄식하고 있는 인생들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묘사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두 가지 악이 있는데,
무엇보다 먼저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를 버렸다는 거예요. 선한 목자인 주님을 떠났다는 거지요.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아니라 세상의 것들을 목자로 삼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그 갈함을 채우기 위해서 웅덩이를 팠는데,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였다는 거예요.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터진 웅덩이,
아무리 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그런 바닷물과 같은 웅덩이를 팠다는 거예요.
이게 세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는 거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혹시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돈과 마약과 술과 섹스를 통해서 자신들의 사람을 채우려고 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그것들은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혹은 우리들 가운데는 좀 더 고상한 방법으로 세상의 웅덩이에서 자신들의 메마른 삶에 갈증을 채우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서 혹은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 혹은 사교활동을 열심히 함으로 취미생활에 몰입하거나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므로 뭔가 부족함을 채우려고, 갈증을 채우려고 그래요.
또, 어떤 분들은 예술과 문화와 음악과 혹은 문학에 심취해서 거기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해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참 만족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허탈하고 여전히 공허하고 내적인 갈등으로 채워지지 않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생들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방법이나 어떤 것으로도 참된 만족과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겁과 두려움이 많은 양처럼, 양들이 광야 같은 이 세 상 어디에서 참된 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4세기의 성자 어거스틴이 이렇게 고백했던 거예요.
"오, 하나님! 주님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 영혼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쉬지 못합니다"
- 성 어거스틴 -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양들이 선한 목자의 품 안에 있을 때에만 만족함을 느끼며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듯이
우리들도 오직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품 안에 있을 때에만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만 바라보고 그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가 주시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목자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참 평안한 양의 모습을 보았지요?
* 맨토파 목사님의 그림(양을 안고 있는 목자의 모습)
양의 얼굴을 보세요. 주님 품에 안겨서 편안한 모습으로 자고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저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 대단한 것 아니예요. 대단한 것 아니예요.
그것은 바로 매일 아침, 혹은 정한 시간에 그리고 순간 순간
주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목자이신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를 위해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매일 이른 아침에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양은 새벽에, 즉 풀잎에 이슬이 가장 많이 맺혀 있는 시간에 풀을 뜯어 먹음으로써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양과 같은 존재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잔잔하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아 하루를 위해 그분의 말씀의 꼴을 섭취하므로
예수님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른 새벽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하루 동안 푸른 초장과 맑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되는 복된 순간은 바로 이른 새벽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나누는 묵상과 기도와 찬송은
우리의 심령을 모든 세상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른 새벽이나 정해진 시간에 경건의 시간(Quite Time)을 가지면서
목자 되신 주님과 대화하며 생명의 말씀의 꼴을 먹을 때,
우리 심령의 갈증은 해갈되며, 우리의 심령은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 넘치게 되고,
모든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그래요.
매일 아침, 혹은 정해 놓은 시간에 목자 되시는 주님 바라보고
기도로 그분과 대화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꼴을 먹고 되새기고 묵상하면서
목자이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갖는 사람은 그 심령이 맑아지고 새로워지게 돼 있습니다.
모든 욕망과 갈증은 다 사라지고 우리 마음에 만족함을 얻게 되고 바울처럼 마침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지요.
(빌 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러분, 이 고백이야말로 모든 욕망과 욕심과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참 자유인의 외침이 아닌가요..
바라기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도 이렇게 우리의 선한 목자 이신 예수님만을 매일같이 바라보고
그와 함께 기도로 찬송으로 말씀으로 그리고 필사로 교제하고 동행하므로
그가 주시는 참 평안과 안식과 쉼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6. 예화 : 한 의사의 간증
김남준 목사님의 시편 23편 강해를 보면, 목자이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참 평안을 누린 한 의사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습니다. 아마, 그 교회의 교인인 것 같아요.
한 독실한 크리스천 의사가 있는데, 그는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유능한 의사입니다.
그의 의료기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환자들이 그의 병원에 몰려 왔지요
그래서 그는 병원을 하나 더 운영하기로 생각을 합니다.
그 상황에서 병원을 하나 더 운영을 하면 한 달에 평균 2억의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수입이 더 들어오면 그는 그것을 가지고 선교를 위해서 유용하게 쓰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분명한 이런 음성을 들려 주셨어요.
"얘야, 나는 너의 재물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너의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와의 관계를 원한다. 나는 너와의 관계를 원해.." 주님께서 그의 마음 속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음성을 듣고 이 의사가 곰곰히 생각합니다.
동기 자체는 순수했지만, 이미 늘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가고 있는 자신의 영적 삶을 마침내 바라보게 됩니다.
새벽기도 시간이 아침 진료와 일과에 쫓겨서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평소에도 하나님보다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는 마침내 새벽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교제 시간을 위해서 매월 발생할 2억원의 수입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결정을 한 후에그의 심령 가운데는 정말 세상이 줄 수 없는 커다란 평안함이
그 메마른 영혼 속에 가득히 밀려드는 것을 경험했다고 그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7. 나가는 말 : 새벽이슬을 머금은 꼴을 먹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은 그의 양 된 우리가 그만 바라보고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세요.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가 항상 목자이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푸른 초장에 눕고,
쉴 만한 물가에서 주님의 생수를 마시면서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새벽마다 아침마다 혹은 시간을 정해서 새벽이슬을 머금은 말씀의 꼴을 먹읍시다.
그러면, 필립 켈러 목사의 말대로
"이른 새벽 시간에 고요히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성령의 고유한 이슬이 우리의 생명과 영혼 깊숙이 스며들게 될 것입니다.]"
- 필립 켈러 -
이런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매일 같이 참 목자이신 주님 바라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우리는 성령의 이슬이 맺힌 풍성한 말씀의 꼴을 먹고 만족하고 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를 마시게 될 겁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우리의 참된 양식이요 우리의 참된 음료가 되셔서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 손 붙잡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면서 참된 안식과 쉼을 누리고 전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 :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주님,
우리를 항상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혹은 정해 놓은 시간에 목자이신 주님 바라보며 기도하고 찬송하고
주님 주시는 말씀의 꼴을 먹고 되새기며 필사하는 가운데
주님 주시는 참된 안식과 쉼과 평안을 누리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