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손 안에서
오미진 율리아 목포 대성동성당 신비로운 장미 Pr. 단원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까떼나 –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
저는 유년시절에 엄마 손을 잡고 교회를 따라다니던 아이였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고모님이 부모님께 개종을 권유해 부모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종교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도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따라 성당을 다니게 되었고,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지만, 청소년기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주일 미사만 참례하고 냉담을 반복하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을 무렵 엄마가 “주일에 미사라도 다시 나가보자”라는 말에 순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성당을 기억했습니다. 그때서야 주일 미사라도 나가봐야겠다하고 성당을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중미사를 나가던 중에 신부님과 청년들의 권유로 청년미사를 나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청년회 활동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청년 레지오 한번 해볼래?”라며 레지오 선배 언니가 함께 활동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레지오가 무언지도 잘 모르지만, ‘묵주기도라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2005년 성모님의 달 5월에 성모님의 군대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각해도 회합만 참석하면 되지, 활동보고 할 것도 없는데, 그냥 가지 말까.’ 하는 생각들로 회합만 겨우 참석하는 부실한 단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단장을 선출할 때가 되었는데 단원들 모두가 선뜻 쉽게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때, 수녀님께서 “쉽게 결정하기 어렵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때 하느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하던 방법이었다”고 하시며 제비뽑기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단원들 모두도 제비를 통해 해답을 주실 꺼라 믿으며 기도하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순간, 저는 ‘저만 아니게 해주세요!’ 라고 속으로 읊조리고 제비를 뽑았지만, 부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단장이 퇴단하게 되었고, 단장을 다시 뽑아야 하지만 모두가 부단장인 제가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부단장을 해봤으니 더 잘 할 거라면서 단장을 할 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였고, 레지오를 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느껴져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단원들의 격려와 배려로 단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아마 이때부터 진정한 성모님 군대의 일원으로 성장하게 되고 레지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뜻이었나 봅니다.
까떼나를 매일 노래처럼 부르며 성모님과 연결
그렇게 단장이 된 후에는 두렵고 떨리는 순간도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잘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어렵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행동단원들 수도 많이 늘어나, 꾸리아에서 분단을 권유했습니다. 고민 끝에 평일 Pr.과 주말 Pr. 2개의 청년 Pr.으로 분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Pr. 분단이후 저희 청년 레지오에 가장 힘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주말 Pr.으로 분단한 Pr.의 주회 참석률이 나날이 저조해지고, 새로운 행동단원의 모집도 점차 힘들어져서 결국 새로운 Pr.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게 서툴렀던 제가 단원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회합만 잘하면 되고, 임기만 채우면 된다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레지오를 꾸려나가려고 했던 거 같아 단원들에게도 정말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 이후로,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더 노력하였고, 때론 공부에 지치고, 직장 일에 힘들어하는 청년 단원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드리고,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까떼나를 매일 노래처럼 흥얼거리면서 바쳤습니다. 그러면 왠지 까떼나라는 말이 ‘고리-끈’이라는 뜻처럼 우리 단원들 하나하나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성모님께 이어지는 ‘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 Pr.이 성모님의 뜻을 따라서 임무를 수행하는 진정한 군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설렘과 또 저에게도 작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처럼 묵주 알을 많이 돌려보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요.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
시간이 지나면서 단원들도 많이 교체되고, 새로운 단원들도 입단하게 되면서 점차 Pr.이 안정되어가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레지오와 관련된 교육이나 행사는 되도록 모든 단원들이 참석하게 했습니다. 또 본당에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먼저 앞장섰습니다. 주일학교 봉사, 소년 Pr. 파견, 그리고 이후, 매년 성모의 밤 행사에서는 찬양과 율동의 예쁜 모습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또 본당 뿐 아니라 청년 레지오만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도 단원들과 함께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동 복지단체인 경애원에서 청소 및 빨래, 김장봉사를 했고, 음악학원을 하는 단원 한 명이 경애원 학생들에게 피아노 레슨 지도 및 관현악단 지휘를 10년 동안 해 왔습니다. 그리고 매년 성탄절이 되면 성모재가 복지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작은 선물도 나눠드리고, 단원들과 함께 준비한 춤과 노래로 기쁘게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가 함께 얘기 상대가 되어주고, 안
마도 해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해도 항상 우리를 반겨 주시고 무얼 하든 환하게 웃으시면서 잘한다잘해 라고 하시며 좋아해주시면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실 때는 ‘아! 이런 게 레지오를 통해 또 한 번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단해서 시작했던 레지오였지만 7년이라는 시간동안 단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순명이라는 것을 배웠고,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기 위해 노력했으며, 레지오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또 하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참 행복한 시간들이였습니다.
또 단원들에게는 한없이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믿고 따라 와준 단원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더 큰 어른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제는 단장이 아닌 행동단원의 자리에서 성모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레지오 단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한 번 더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레지오와 함께한 제 청년의 시간들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며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큰 길잡이로 삼을 것입니다.
지난 2018년 11월28일에는 우리 Pr.이 2000차 주회를 맞아 지금까지 청년 레지오를 거쳐 간 선배 및 단원들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쁜 회합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힘들 때마다 서로 격려하면서 이웃에 봉사하고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더 많이 베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 단원들 역시 성모님과 연결된 끈이 끊기지 않고 진정한 성모님의 군대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서로 사랑하는 신비로운 장미 Pr.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