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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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찍 호텔 조식을 마치고 밀라노로 달렸다. 인솔자의 환한 미소와 멋진 안내 멘트가 한층 여행의 맛을 더할 쯤 창밖에 스치는 풍경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번 인솔자는 ‘류명숙‘ 여자 분이셨고 참신한 외모에 언제나 웃는 고운미소의 소유자였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인솔자가 풍경에 꼭 맞는 음악을 들려주었고. 아름다운 풍경에 멋진 음악을 감상하던 나는 움베르토와 그의 책 〈장미의 이름〉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것이 20세기 최대 지적 추리 소설이 아닌가 싶다. '대충의 줄거리' 중세의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인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저자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기호학 이론이 조화를 이뤄 이끌어 가는 책이다. 1327년, 영국의 수도사 월리엄, 그를 수행하는 아드소와 함께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 도착한다. 수도원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연쇄 살인이 묵시록에 예언된 내용대로 벌어지고, 사건의 열쇠를 쥔 책은 그들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는 마침내 암호를 풀어낸 ‘월리엄’이 수도원을 지배해 가는 광신, 정체를 보게 되는 내용인데…….이 책은 이해가 될 때까지 몇 번 읽어보기를 권해 드린다.
나는 지난날 읽은 것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여행 갈 때, 또 문득 생각날 때는 다시금 줄거리만 훑어 읽기도 한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기호, 미학, 언어, 철학, 소설가며, 역사학자였다. 1932년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으며 변호사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토리노대학교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56년~64년까지 이탈리아 라디오-TV에서 문화부장을 지내며 토리노대학에서 강의했으며, 그 뒤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가르치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철학 학부 기호학 교수로 임용되어 2007년 은퇴 후에도 열정적 저술활동에 몰두하다. 2016년 2월 19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움베르토 초기 연구는 미학이었고 그의 첫 저서는 자신의 박사 논문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문제Il problema estetico in San Tommaso〉(1956)다. 1962년에는 미학 분야의 주요작품인 〈열린 작품Opera aperta〉(1962, 개정판 1972·1976)이 출간시켰고 움베르토가 소설가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1981) 내놓고 부터다. 신학, 철학, 학술, 역사적 시각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이 소설이 40여 개국에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에코 역시 이 소설로 명성을 얻었다. 1986년에는 〈장미의 이름〉을 바탕으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움베르토를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차는 밀라노로 들어서고 있었다. 3시간 조금 넘어 도작한 곳은 이탈이아 경제, 중심가 밀라노 패션 메카였다. 이탈리아를 걷다 보면 차림세가 세련된 멋쟁이들로 넘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 이탈리아인들의 가장 중요 관심사의 하나도 패션이다. 여성은 옷장에서 밍크코트를 꺼내며, 질 좋은 인빅타(invicta) 가방을 매고 작은 스쿠터를 타고 가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긴 양말을 신는 것을 좋아하며 베네통을 위시한 스웨터를 목에 걸고 시내를 걷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이곳의 패션 산업이 이탈리아인들의 의복 문화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패션 도시 밀라노에는 늘 새로운 유행을 찾기 위해 전 세계 패션 관련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조르지오 알마니(Giorgio Armani), 쟌니 베르샤체(Gianni Versace), 구찌(Gucci), 발렌티노(Valentino), 미소니(Missoni), 베네통(Benetton) 등 세계적으로 유명 브랜드들이 바로 이탈리아가 패션, 의류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창의적 감각은 바로, 상품으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렇게 이탈리아가 패션에서 두드러진 것은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작품 속에서 살아온 이탈리아인들의 개성과 가족 중심의 가내 수공업이 발달하였고, 이로 이루어진 장인 정신이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비엘라(Biella) 지방 중심의 직물산업, 베네토(Veneto) 주 중심의 의류 제조 산업, 코모(Como) 지방, 실크, 프라토(Prato) 지방의 직물 산업, 피렌체(Firenze) 중심의 가죽 의류 산업의 지역적인 특화가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 패션 대부분이 세계 시장에서 일류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패션은 의류뿐 아니라 신발, 가방, 향수 등의 잡화, 액세서리 부문에서 가구, 자동차,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부문에 개성적이고도 세련된 상품 선호도가 널리 알려지고 있다.
두오모(Milano Duomo,두오모는 그지역 ‘대표성당’을 이르는 말이다.)
성당은 2245개의 거대한 조각군 으로 장식된 걸작이며 135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고 길이 148M 측면이 91M 높이 108.5M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다 1386년 밀라노 공 잔 갈레아치오 비스콘티 공작의 명으로 착공된 두오모는 45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고 19C 초 완공되었다. 성당은 정면 앞쪽으로 광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1~2KM 안에 광관지가 집중되어 있다. 이 광장은 1862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의 설계로 중앙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기념 동상이 서 있으며 밀라노 시민들의 휴식 명소다. 자세히 보면 그 많은 조각과 첨탑과 기둥으로 된 바로크, 신고딕, 네오클래식 양식의 종합체이다.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인 ‘두오모’의 착공 시점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특히 성당 전면 부는 나폴레옹의 지시로 프랑스 건축가 보나빵테르가 1809년에 다시 지은 것이며 1535년~1713년까지 밀라노는 스페인의 영토였고 이후 1815년까지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성당 내부에는 건축 초기에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고 뒷면에는 두오모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어 두오모 상층부에서 밀라노 시내를 내려볼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여러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11세기 십자가가 포함되어 있는 대주교 아리베르토의 묘, 오토네, 조반니 비스콘티의 조형물, 쟌 자코모 메디치의 묘, 산 바르톨로메오의 조각과 마르코 카렐리의 묘 등이 있다. 트라다테의 교황 마틴 5세 조형물, 밤바이아의 추기경 마리오 카라칠로의 묘, 사제관의 제단, 16세기 후반의 의자들, 트리불지오의 촛대 등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저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붐비는 가운데 구경에 눈이 휘둥그레 있을 때 갑자기 집시 남자 한사람이 다가와 아이 엄마한데 옥수수를 4~50 알 건네니 비둘기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고 그는 우리를 보고 사진 찍으라고 서툰 영어로 친절하게 말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비둘기들이 달려들어 먹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그때 다시 아들에게 먹이를 조금 주며 사진 찍으라고 했고 다시 나에게도 반복 했다. 그리고 우리가 고맙다고 돌아서려는데 돈을 달랜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사람에 10유로 (약13000) 우리는 돈 없다며 10유로를 주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친절하게 다가서거나 사진을 찍어준다거나 어쨌든 다가서면 무조건 'No thank you' 가 최고다 (아래사진참조)그들은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고 가격 또한 정해 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낭패 볼 수가 있으며 무조건 사건이 일어나면 불리하다. 별것 아니지만 잠시 기분을 몽땅 망쳤다. 그 아름다움이 상쇄된 것이다 바로 옆 패션 거리와 유명 브랜드 명소를 둘러보고
밀라노의 중심쇼핑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Galleria Vittorio Emanuelle II) 이 멋진 갤러리는 두오모 광장(Piazza Duomo)과 스칼라 광장(Piazza della Scala)을 연결해주는 교차로 역할을 하는, 밀라노의 중심 쇼핑몰로 19세기 말에 지어졌다. ‘쥬세페 멘고노’가 파리와 런던에 있는 건축물들을 보고 그 영향을 받아 지었다는데 눈을 현혹하는 저 건물들 지금은 고급 상점과 커피숍이 가득하다. 두오모 옆에 있어 밀라노의 명물이지만 배낭여행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냥 지나가면서 눈요기만으로도 호강하는 것 같았다. 중앙 사거리에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4개의 대륙이 특징적으로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고 지금 이름은 이탈리아 왕국(Kingdom of Itlay)에서 최초로 왕에 올랐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이름을 딴 것이란다 이것을 그에게 헌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주세페 멘고니가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디자인을 따라 설계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는 그 자체만으로 밀라노에서 빠질 수 없는 광광 명소라 하겠다.
다시 우리는 스칼라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적인 오페라 전당(Teatro della Scala)은 유럽 최고의 성악가들이 공연하는 곳이며 단 한 번이라도 이 무대에 서본 적이 있는 성악가라면 항상 그의 경력, 맨 처음에 ‘스칼라 공연’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권위 있는 극장이란다. 극장 건물은 1778년에 건축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어 현재는 복원된 모습이며 1800년대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로시니, 푸치니, 베르디 등의 작품을 올렸으며 항간에 한국 사람을 잘 발탁하지 않는다는 리카르도 무티가 오랫동안 음악감독으로 있던 곳이다. 이 극장은 로마나 베로나와는 달리 겨울에 주로 공연 하며 이 극장 출신의 가장 유명한 성악도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를 들 수 있다. 극장 옆에는 여러 오페라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스칼라 박물관(Museo della Scala)이 있었다. 이렇게 밀라노 여행을 마치고 다음여행지 루체른으로 이동 약 (3시간 반 정도) 가는 내내 버스 에서 인솔자의 안내와 적절한 음악을 들으며 가는 길은 누구도 불평 없이 아름다운 여행길이었다.
다음, 루체른 여행 계속…….
첫댓글 즐거운 시간되세요
후기를 잘 쓰셨네요
멋지십니다
사진도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