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정기술
손 원
요즘 은행 갈 일이 잘 없다. 스마트 폰에 거래 은행의 앱을 깔아 놓아 은행 창구를 찾지 않아도 원하는 거래를 스스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뱅킹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다. 나의 소중한 예금을 믿음이 가고 선호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한 번은 예금을 하러 은행에 갔는데, 온라인 뱅킹 이용자에 대한 우대금리가 있다기에 한번 해 보도록 권유받았다. 앱을 깔아주고 사용법까지 친절히 알려 주었다. 금방 익숙해져 지금까지 거래 시마다 창구를 찾은 나의 고집이 시대착오적임을 깨달았다. 폰으로 송금을 하고 공과금을 납부할 수가 있어 정말 편리하다.
디지털 시대지만, 나는 아직 아날로그를 선호한다. 디지털의 편리함은 알지만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 보일러 조정기는 로터리식이 간단하고 편리한 데,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것이 불편하다. 요즘 가전제품의 조절기는 거의 리모컨이다. 우리 같은 기성세대는 본체에 부착된 조절기에 익숙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요즘 가전제품은 대부분이 리모컨으로 출시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좋든 싫든 디지털 문화를 좇아가야만 한다. 젊은시절부터 전동 면도기를 사용했지만 최근에 일회용 면도기로 바꿨다. 삼중 날이기에 수염이 부드럽게 잘리고, 면도하는 재미도 있다. 면도 후 잘 씻어 보관하면 일주일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신기술이 아닌 전통 면도칼이 간편해서 좋다.
요즘 시골에는 농가마다 고가의 농기계를 갖추고 있다. 트랙터는 수천만 원, 고추 건조기는 수백만 원. 웬만큼 갖추다 보면 억대가 된다. 농업 규모, 사용자를 고려하여 꼭 필요하다면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가끔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농지 면적 1헥타르 미만의 소농임에도 트랙터, 경운기 등 수천만 원 대의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다른 농가 일을 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구입에 따른 가성비를 따지면 너무 낮다. 농기계 과잉 보유는 정부의 무분별한 보조금 지원 때문이다. 구입비용의 절반을 보조해 주기에 일단 구입해 놓고 보자는 심리다. 구입 후 연간 일주일 정도 사용하고 방치한다. 시골 마을마다 트랙터 등 거대한 농기계가 마을 길 여기저기에 세워져 통행 불편마저 야기한다.
아버님은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기계보다는 인력 위주로 일했다. 일소 한 마리로 논밭을 갈아 농작물을 심었다. 농번기 때는 마을에 경운기 한두 대가 온 들판을 누볐다. 논갈이에 이웃 집 경운기를 부탁하여 순서가 늦기라도 하면 소에 쟁기를 걸어 논밭을 갈았다. 아버님은 평생 경운기 없이 소 한 마리로 농사를 지으셨다. 여든이 넘고부터는 농지 대부분을 임대를 주고 있다. 그래도 농사에 손을 놓기가 아쉽다면서 밭 한 뙈기는 경작하셨다. 삽과 호미만으로 몇 해를 이어가시다가 손을 놓으시고 지금은 내가 물려받아 경작하고 있다. 부전자전이라고 기계 다루기가 부담스러워 나 역시 삽과 호미로만 경작하고 있다.
웬만하면 관리기라도 구입했으면 하다가도 텃밭 규모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150평 정도의 밭이기에 삽만으로는 무리다. 야생조수 피해도 심하여 울타리 설치를 고려해 보았다. 여가로 짓는 농사, 마늘과 들깨를 심는다면 품도 덜들고 야생조수의 피해도 없다. 지난 봄에는 마늘, 양파, 감자를 수확해서 이웃에 인심도 썼다. 단으로 묶어 처마 밑에 매단 마늘은 양도 제법 되어 형제들께 김장용으로 나눠줄 생각이다.
5년 정도 밭을 경작하고 있다. 삽 한 자루로 농사짓는다고 하면 모두가 놀란다. 그러면 나는 할 만하다고 한다. 경운기, 관리기, 동력분무기를 이용해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첫째는 다루기가 어렵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승용차 트렁크에 든 삽 한 자루면 그만이다. 농기계를 갖추면 기계를 가동하여 조작해야 하는 부담감만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성비다. 수익을 바랄 수 없는 소규모 농사에 과잉투자는 바람직하지 않아서다. 농민의 아들로서 농지를 묵히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최소한 잡초라도 안 나게 하여 농지답게 보존하고자 한다.
이 정도 면적이면 혼자 삽 한 자루로도 충분하다. 며칠 전 밭 전체에 들깨 모종을 심었다. 한 뼘 정도 자란 모종을 심는 작업이었다. 이틀 전 제법 많은 비가 내려 땅이 물렁물렁했다. 밭에 못줄을 대고 뾰족한 괭이로 골을 내어 모심듯 모종을 하니 쉽게 능률적으로 일을 마쳤다. 이 정도의 일에 경운기나 트랙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오히려 번거로울 것 같다. 나에게는 적정한 방법이었다. 올봄에는 마늘 한 리어카, 양파 한 리어커를 수확했다. 가을이면 김장배추 무도 한 리어커 정도 수확한다. 들깨는 알곡으로 서 말 정도를 수확한다. 수확 시기도 각기 달라 리어커에 실어 나르면 된다. 운반을 위한 경운기가 필요치 않다. 손수레면 충분하다. 낮은 단계의 농기구지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소위 적정기술이다.
적정 기술은 1973년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의 중간기술에서 유래했다. 슈마허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과 민중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통해 첨단기술이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수동형 발전 펌프나 구식 라디오 등 선진국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기술('후진적' 기술)이 주로 적정기술로 큰 활약을 하기도 한다. 최신의 기술이라도 제작비나 유지비를 최소화하여 가성비가 높다면 그것 역시 적정기술이 될 수 있다. 요즘 국산 무기의 가성비가 높아 무기 수출의 청신호가 되고 있다. 지상 최고의 전투기는 미국이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지만 가격과 유지비를 고려할 때 가성비가 낮아 개발국은 물론 무기 수입국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그보다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효용성이 충분한 전투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초의 국산 제공전투기 KF-21 보라매가 바로 그것이다. 오래되지 않아 우리의 주력 전투기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효자 수출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국력에 맞는 적정기술은 생산과 유지에 부담을 줄여 국익에도 부합한다.
농기계 없이 인력으로 소규모 밭 뙈기를 경작하고 있지만 만족하고 있다. 아버님 때는 소로 밭갈이 정도는 했는데 내가 물려받은 최근 5년간은 간단한 농기구가 전부다. 시골 헛간에는 리어카, 수동분무기, 삽, 괭이, 호미, 낫 정도가 있다. 아버님이 사용하시던 지게와 바지게도 있어 경사길은 리어커 대신 등짐을 지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최고가 아닐지라도 자신에게 가성비 높은 적합한 생활방식을 찾아서 생활한다면 더 윤택하게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적정기술은 가성비와 만족감을 높힌다. (2023. 7. 14.)
첫댓글 적정기술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글은 농사일에 시작해서 적정기술이라는 이론을 소개하고는 결론이 조금 부족합니다. 수필은 수미상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 부분도 농사일이나 농촌으로 매듭지웠으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조금 더 글을 다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지도 감사드립니다.
다듬어 보겠습니다.
현대화된 농기구 없이 삽과 곡괭이 리어카 정도로 그만한 수확을 하시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100평이 넘으면 농사짓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거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