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그리스도를 의롭다 한 근거가 무엇인가요?
율법의 의는 사람이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행위로서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았고, 우리 또한 의를 성취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2.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을 바르게 해석하셨습니다.
율법은 성령에 의해서 쓰여졌고, 또한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짐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는 성령의 법보다 하위의 개념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을 재해석 하심으로서 문자에서 영으로 바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로 재해석되지 않은 율법 그 자체의 해석과 적용은 신약성도에게 잘못된 것이지요.
해석은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과 같이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것은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구석구석 해석을 해야 옳습니다.
3. 율법 자체는 악하지 않고 선한 것입니다.
1) 바울사도의 견해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7:12)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딤전1:8)
2) 사도요한의 견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요한1서 5: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3)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2)
4. 율법 그 자체를 폐하여졌다고 볼 수 있는 측면
율법의 제사법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고, 시민법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김으로 폐하여졌습니다.
그리고 도덕법 중에서도 문자 그 자체적인 해석은 엄밀히 폐하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신약성도에게는 산상수훈적 재해석된 영의 말씀으로만이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중 성도에게 요구되었던, 죄로 인한 심판대 앞에서의 정죄기능과 행위구원적 요구는 완전히 폐하여졌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5. 회개의 근거로서 율법의 역할
율법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죄에 대해 볼 수 있게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은혜의 방편으로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법을 기록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 말씀 기준입니다.
6.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 작은 예수그리스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룬 의는 율법에 대하여 의를 이룬 것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는 행위언약을 성부하나님께 온전히 이뤄드렸고,
믿는 우리는 그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계획하신 것이 은혜의 언약인 것입니다.
고로 우리가 율법과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우리에게 하나님앞에 더욱 순종하고 신앙의 열심을 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더불어 복음에 감사하는 작용도 하고 있지요.
7. 이 모든 것 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주님께서 율법의 일점일획도 폐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7-19) ]
8. 결 론
Window 운영체제를 예로 들면 쉽겠습니다. Window XP SP1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2년이 지난 후에
Window XP SP4로 바꾼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성능면서 SP4가 월등하고 바이러스에도 강하겠죠.
율법을 구형 Window XP SP1라고 한다면 성령의 법은 업그레이드 SP4(서비스팩)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기존의 구형 OS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업그레이드 SP(서비스팩)이 있어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패치버젼은 구형 OS가 있어야만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구형 OS를 가지지만, 성령님이 함께하는 우리는 신형 OS가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는 구형 운영체제인 Window XP SP1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운영체제를 완전케하러 오신 것입니다. 즉, Window XP SP4로요..
우리중에는 업그레이드 SP(서비스팩)만이 완전하다고 주장하며, 구형 OS는 버린 분들이 있습니다.
업그레이드 SP 자체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첫댓글 정경(케논)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약이 월등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구약이 월등한 부분도 있습니다. 구약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신약 자체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직 구약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황당, 답답... 율법은 옛 언약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이지요. 위의 설명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나마 적용 가능성이 있지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혀 적용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고요.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SP1이 주어진 적이 없답니다.
우리는 율법을 거쳐서 성령님의 법에 이르른 것이 아닙니다. 곧바로 성령님의 법으로 이끌림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법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요. 율법으로 갔다가 와야 제대로 알 수 있거나 그 모든 은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전혀. 이미 율법은 모두 녹아 완전하게 변화되었거든요. 성령님의 법 안에. 그러니 율법을 거쳐야 할 이유가 없지요.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엡 2:15상). 표준새번역. 아주 이해하기 쉽게 잘 번역되어 있네요.
님의 율법관과 성령관이 많이 진화했네요.. 예전에 님이 쓴 글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성령님을 좇음, 아무런 근거나 기준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일까요? 각 개인에 대하여 성령님께서 개인적으로 행하시는 역사이고 신자는 개인적인 인도를 받는 것일까요?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요 16:14). 성령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를 따라 말씀하십니다. 교회(나)를 향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그분 안에서 율법을 재해석하셨습니다. ]
엿장수 맘대로 율법관과 성령관이 왔다리 갔다리 변합니까? 해명해 보시죠
그것 참... 님이 인용한 글과 제가 지금 적은 글과 무엇이 다르다고요. 같은 글을 가지고 다른 글이라고 읽는 님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여야 합니까? 율법의 재해석이 성령님의 법이라고 여러차례 말했는데요. 그 당대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님의 법만이 유효하다고 여러차례 말했고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만 율법도 유효하였다고도요. 지금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참빛교회님과 논의 중이기도 하지요. 율법의 재해석과 율법은 다른 것입니다. 이 아래 '전혀 다른 것을 같다고 우기지 맙시다'에서 말하였던 바이기도 하지요.
엡 2:15상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하기야 님은 본문이 무엇이라고 해도 님의 생각을 앞세우는데에 아주 익숙해 있으니 이해는 됩니다. 옳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8:4)].... 이 말씀들이 증거하죠~ 성령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뤄지게 하시지요.
그리고 성령께서 은혜의 방편을 통한 말씀과 함께 하심으로 그 요구를 이루십니다. 성도의 양심에 성령의 법을 쓰실때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하시죠. 우리의 신앙적 성장과 회심에 역사하실 때는 성령께서는 말씀이 없이 역사하시지는 않습니다. 식인종이 성경이 없이 성령만 받았을 때 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그분 안에서 녹여서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새 언약의 법 곧 성령님의 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재해석이지요.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것과 야고보 선생이 말씀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자유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이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법, 사랑의 법, 성령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굳게 세워진 율법이 바로 성령님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OS-SP4 는 그다지 개운한 비유가 아니네요. 이 비유는 율법이 본질(OS)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우리는 이제 실체인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하신 실체를 통해확실히 알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믿으며 그림자를 통해서 살아가려 합니다. 왜일까요? 더 큰 문제는 율법에 완전하지 못한 우리가 그러는 와중에 어느새 율법의 속성에 굳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자님 같은 사람은 음란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율법의 1차원적인 논리만 알았지 창기의 태어나서 어린시절부터 자라온 삶의 면면과 그녀의 영적인 문제에서 파생된 여러복합적인 상황을 읽지 못하고 그녀에게 돌을 던져 정죄하려
하는 율법의 속성에만 충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SBS TV 프로그램인 SOS 를 보시는지요? 도입부에 나오는 어떠한 폭력적인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름니다. 그런데 말미로 가면 그도 어린시절 심각한 폭력의 희생자였슴을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 누구도 사랑은 커녕 증오로 키워진 아이였다면 나 역시도 똑 같이 참혹한 사람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쉽게 돌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사랑없슴에서 비롯합니다. 완전한 사랑만이 인간의 뇌에 깊이 패인 상처들을 치료하여 줍니다.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허물을 덥어주시는 아버지의 영원하신 사랑으로 피곤한 인생은 구원을
얻습니다. 징계가 있는 것은 사생자가 아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전한다며 구원한 이후에 잘못하면 내어 버리는 부모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부모는 세상에 많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근본문제를 아시기에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와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의 복음만이 인간의 심령에 생긴 상처를 아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