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는 바람이 세고 차다
동해 바닷가 모래톱 바지랑대에 걸려있는 새끼줄
명태가 바닷바람에 항거하듯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입 크게 벌리고 눈 부릅뜨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놈들
직장 생활 30년에
입 굳게 다물고 말조심하고
눈치 보느라 본 것도 못 본 체하고
연방 굽실거리는 허리를 가지셨던 장씨 아저씨
그 한을 푸시는 건지
내장 따 빼버린 명태들을
벌린 입 더 크게 벌리고
부릅뜬 눈 다시 한 번 닦고
곧은 허리 더 꼿꼿하게 세워서
한 놈 두 놈 새끼줄에 매달고 있다
내가 명태만 당하지 않았어도……
내가 명태만 당하지 않았어도……
경상도가 고향인 아저씨
명퇴와 명태 발음이 잘 안 되어서인지
애매한 명태만 물고 늘어진다
- 계간 『애지』(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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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덕장하면 강원도 인제의 용대리나 대관령 일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산골에서 말린 것은 황태이며, 거진항이 있는 고성 등 바닷가에서 바로 말리는 명태를 북어라고 한다.
북어보다 황태를 더 고급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바닷가 사람들은 황태를 별로로 친다.
말리는 방식은 비슷하나 황태는 맛이 싱겁고 깊은 맛도 덜해 고성 사람들은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쐰 북어를 최고로 취급한다.
겨우내 줄에 꿰어져 잘 말린 북어가 본격 출하시즌을 맞았다.
다만 국내산은 어획량이 줄어 잡히는 족족 생태로 팔려나가고 대부분 러시아산 명태로 말린 북어란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30년 일한 직장에서 명퇴를 당하고 명태 덕장에서 일하는 장씨 아저씨는 명태를 손질하면서 연신 ‘내가 명태만 당하지 않았어도……’를 되뇌인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명태의 ‘벌린 입 더 크게 벌리고’ ‘부릅뜬 눈 다시 한 번 닦고’ ‘곧은 허리 더 꼿꼿하게 세워서’ ‘한 놈 두 놈 새끼줄에 매달고 있다’ 좀 더 당당하게 맞서 소신껏 살아왔다면 그리 억울하지는 않겠다.
‘입 굳게 다물고 말조심하고/ 눈치 보느라 본 것도 못 본 체하고/ 연방 굽실거리는 허리’로 30년간 버텨온 직장생활인데 원치 않은 ‘명퇴’라니. 그동안 비굴하게 직장상사의 비위를 맞춰가며 일만 열심히 해왔던 자신에게 화딱지가 났다.
하지만 애먼 명태에게 화풀이할 게 뭐람. 양명문의 시에도 나오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짝짝 찢어져 몸이 없어질 때까지 전신으로 인간을 위해 복무해 온 물건이 아닌가. 새로 이사 간 집의 문지방 위나 개업고사 때 실에 감겨 걸리는 것이 바로 마른 명태이다.
눈을 부릅뜨고 있어 악귀를 쫓고 집을 수호한다는 의미 외에, 다른 생선에 비해 머리통이 크고 알이 많아 자손의 번창과 부를 기원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굵은 실로 감는 것은 실처럼 일이 술술 잘 풀리고 길게 뻗어 나간다는 영속의 기원이 담겼다.
예천에서 자동차운전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문경 출신 황봉학 시인은 지금껏 지역의 여러 문화예술단체를 이끌어왔고, 지난해부터 ‘애지문학회’ 회장 일을 맡아하고 있다.
문학회 회장이란 능력과 열정 없이는 꾸려갈 수 없는 직책이다.
외곽에서 문학을 꽃 피우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황봉학 시인에게 성원과 함께 마른 명태 한 마리 실에 감아 보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