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네.
그냥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 안에 뜨거운 노래로 남아 있는 이여.」
<이 정하, "길의 노래"중에서>
또 다시 길을 나선다,
떠남은 이미 습관이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미답의 발자국들을 상상하며,
기어이 떠나려 하는 님같은 이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
내 안에 여전히 뜨거운 노래로 남아 있는 그를 만나러 간다.
제주도~!
해마다 두 번씩은 찾았던 제주,
이 가을에도 찾지 않으면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간절함을 안고간다.
마치 처음 가는 것 처럼...
우중충한 잿빛 하늘임에도 새벽 비행기는 마냥 씩씩하게 하늘로 간다.
김녕포구,
작년 이맘 때 여기다 벗어둔 등산화를 찾으려 왔다.
제주 올레 19코스에서 애절하게 배웅했던 지난 가을,
해녀 할망이 차려준 자연산 참돔회의 찰진 맛이 아직도 입가에 남아 있는 곳.
작년 늦가을에는 여기가, 허기지고 다리아픈 올레 19코스의 끝점이었지만,
오늘은 모름지기 뭍에서 금방 내려온 싱싱한 시작점이다.
올레 20코스...
신발끈 단단히 묶고 출발~!
스산한 날씨,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래서 여기는 사람들은 안보이고 동네 견공들이 대신 환송을 한다.
그래도 고맙다,
바람불어 좋은 날, 너희들도 바쁠텐데...
들머리부터 온통 시린 바람이다.
그래, 제주는 바람의 본향이 아니던가.
이 바람을 못 잊어서 이렇듯 새벽부터 한걸음에 달려왔고...
제주의 가옥에는 대문이 없다. 여기 김녕도 예외가 없고. 설사 대문이 있어도 한결같이 열려있다... 보고싶은 만큼 속살까지 다 보라는 건지...
올레 20코스는 바다와 마을, 그리고 밭길을 쉬임없이 아우른다.
마을 길을 간다고 생각할 무렵, 길은 문득 해변으로 향하고...
여기도 치열한 선거철이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공약들이 신선하다.
마을 최초의 목욕탕을 세우겠다는 야심찬 공약~!
요즘 대선에서 사탕발림으로 휘청거리는 빌공자 공약(空約)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심하게 부패하고 오염된 공직자들을 씻어줄
공무원 전용 목욕탕을 만들겠다는 본토의 위정자는 없을까...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바람이다.
바람의 창고, 제주에서도 가장 우렁찬 바람을 안고 사는 김녕지역,
그래서 제주 올레 20코스는 풍차의 길이다.
걷는 내내 풍차가 길을 열고 풍차가 길동무를 한다.
오늘 풍차들 신났다, 제대로된 바람 앞에서 바람개비 제대로 돌린다.
하지만 여행객은 죽을 맛이다.
이 놈의 마파람,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에고 힘들어~!!
성세기 해변...
왜적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오늘은 금요일...
올레꾼들이 조금씩 눈에 뜨인다.
죄다 제주시에서 오신 분들...
차림새들도 다채롭다, 히말라야 고산 등정의 복장이 있는가 하면
동네 공원가는 차림새도 있고.
자다가 금방 나오신 듯한 차림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올레길의 차림새는 모범 답안이 없다.
그냥 걸을 수 있는 모양새면 정답이다.
바람앞의 등불?
제주에서는 바람 앞의 모래다.
이렇게 해서라도 마을의 고운 모래를 지켜내야하는...
그래야만 또 내년에 풍성한 여름 잔치를 제공할 수 있기에...
바람 많은 제주만의 눈물겨운 모습이다.
때로는 포장 도로를 벗어놓고 파도곁을 가기도 하고...
양탄자보다 더욱 폭신한 길에서 발의 피로를 씻기도 하며...
아무튼 이 길은 해변의 다채로움이 가득이다.
그 다채로움의 길섶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풍차!!
어느 쪽으로 뷰파인더를 맞춰도 풍차를 비껴 갈 수 없다.
올레 20코스의 당당한 주인공, 풍차~!!
그리고 억새꽃~!!
바람따라 바다도 춤을 춘다.
마라도 코스(10-1코스)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오르막이 없는 코스,
그러나 오르막보다 바람이 앞을 막는 코스,
차라리 오름이 쉬울 것 같다는...ㅜㅜ
길은 다시 바다를 팽개치고 도로를 간다.
도로와 해안선의 길이 계속 반복되고...
정말 싫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질주하는 네바퀴 짐승과
고작 시속 5km이내로 기어가는 두 발 달린 올레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간다는 것.
아무리 저예산에 기존의 환경을 활용하여 조성한 올레길이라지만
저토록 육중한 살상무기가 굉음을 울리며
옆구리를 스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명보전을 걱정할 수 밖에 없다.
새벽 댓바람에 비행기 잡아타고 택시 대절까지 하고
여기 아름다운 섬,
제주까지 와서 명줄을 내려 놓을 수는 없으므로...
올레길이 많아지다보니...
이제는 올레 리본 묶는 방법도 진화를 한다.
갈대와 풍차...
설명이 필요없는 가을 풍경이다.
길을 다시 해변으로 갈 것을 강요하고...
네 바퀴 짐승만 없다면야 어디를 못갈까~
바다 한가운데도 풍차다.
어쨌건 올레 20코스는 풍차를 빼고는 길이 안된다.
글도 안되고 말도 안되는 길이다.
모든 길은 풍차로 통한다.
월정리 밭담길...
제주인의 명줄이 달린 텃밭이다.
어떤 것 하나라도 손을 대서는 안되는 곳.
남길 것은 오로지 길위의 발자국이요,
가져갈 것은 쓰레기와 추억 뿐.
마늘 작황이 좋다.
포기마다 손길 간 흔적이 역력하다.
모든 게 농부의 보람으로 돌아올 게 확실하다.
당근 농사도 잘 된듯 하다.
팔자좋게 남의 농토나 기웃거리는 올레꾼의
철부지 작태에 농부는 조그마한 관심도 없다.
이럴 때 나그네는 지은 죄는 없지만 조용히 잰걸음으로 지나가야한다.
고즈넉한 모습의 월정리 전경,
월정리는 풍차의 고을이다.
집들은 바람앞에 한정없이 고개를 숙이는데
풍차만은 당당히 목을 세우고 호령을 한다.
'세상의 모든 바람은 다 내게로 오라~!'
"그리하여 그 바람으로 오늘 밤 제주의 등불을 밝히리니!"
길은 다시 마을로 젖어들고...
바람향 보다는 사람향이 진한 곳...
돌담마다에는 가을 향도 색도 지천이다.
먼 길 가는 가을이 흘리고 남긴 흔적들...
두 팔 벌려 붙들고 싶어라~
월정리 해수욕장...
철지난 해변은 지난 여름이 남기고 간 사연 만큼이나 생각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이 두 분을 오랜동안 뒤따라 왔다.
두 손 꼭 잡고 도란도란 정담 섞어가며 나란히 걸어 오신 두 분.
평생을 나누고도 아직도 나눌 얘기가 있고,
일흔을 훌쩍 넘기시고도 아직도 두 무릎이 건재하시고,
그리고 같은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시고도
아직도 같이 한 방향을 볼 수 있다는 것...
혹시 저 상념속에 들어있는 생각까지도 두 분이 같지는 않을까...
어쩌면 인생의 가을을 걷고 계실 두 분...
아름다운 가을은 저런 것이 아닐까...
나도 저렇게 아름답고 건강한 가을을 만들고 싶다.
첫댓글 올 1월에만 제주도를 세 번이나 갔었지요. 여름에 한 번을 더하면 네 번을 제주도 갔었네요.
죽기전에 언젠가는 산티아고 그 길 위에 서 보리라 생각했던 꿈이 지금은 제주 올레길을 혼자 전 구간을 걸어 보는 것으로 바뀐지가 오래 되었건만 실현하지 못하고 있네요.
(물론 구간 구간 서너구간을 나누어 걸어봤긴 했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 없다는 핑계로 유보되고 있는 그 꿈을 이 글을 읽으면서 빨리 앞당기고 싶다는 생각을
이 아침에 해 봅니다. 맛있게 읽고 갑니다. 덕분에 이 아침이 그득해지는군요.
언젠가는 산티아고 길 위에 서보겠다는 그 꿈도 버리지 마세요.^^
이제 제주 올레길이 전 구간 개통되었으니, 새벽풀님의 마음이 더 바빠지시겠습니다. ^^
항상 좋은 사진과 글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점점 김작가님을 닮아가는거 같아요 ^^ 즐거운 한주 되세요!!
점점 저를 닮아간다구요??
어떻게요?? ^^
견공들의 무한 환송을 받으며 출발한 올레 20코스, 노부부의 뒷모습 만큼이나 아름답지요...
절묘하게 묶인 올레 리본, 화살표, 간세다리... 다들 중독성 강한 길벗들입니다.~~^^
20코스는 그런 길벗들이 많아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그 길벗들이 그리워 제주도에 가기도 한답니다.^^
저 풍차있는곳이 20코스군요
이곳파도는볼때마다 세찬듯요
지난겨울 차로 이곳을지나는데 파도가 날잡아먹을듯?식겁?
월정리 ?바람이 눈에 선명하니
마파람뚫고 걷는길?
나도 깊고정겨운 가을?만들고파라^~^^
이미 깊고 정겨우신걸요~^^
이곳 바람은 제주의 다른 곳과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
이 겨울, 20코스 가실 일 있으면 단단히 무장하고 가세요~^^
제주도로 한번떠나요~~조아라
언제든 마음 먹으면 가뿐히 떠날 수 있는 곳...
제주 올레길이 그런 곳이라면 좋으련만...^^
저도 올 1월에 다녀왔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두코스밖에 못 가봤네요 내년에도 가봐야 겠어요~ 제주도 좋아요~~
핑크케로로님도 겨울에 다녀오셨군요.
두코스라면...어디 어디 다녀오셨나요?? ^^
저도 가본길이라서 더욱 반갑네요......
밝은달님은 일찌감치 20코스를 점령하셨군요. ^^
20코스에서 만난 달도 엄청 밝았는데...ㅎㅎㅎ
당장 떠나고 파라~~
제주 바람이 그립군요~~
강렬한 바람의 향이 전해지네요~
다음 향기 느끼러 2탄으로 갑니다용~
항상 그렇게..제주의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지요.
그럴 땐 제주로 떠나는 것 밖에...그 외의 다른 약은 없는 듯 합니다. ^^
제주도 떠나고 싶어요^^
마음 먹으면 언제든 바다를 볼 수 있는 걷다보면님도
제주바다가 그리우시군요..^^
저 또한 제주도를 무척 사랑하는데 이번 여름방학에 혼자서 다녀왔어요ㅋㅋ 저도 올레 20코스 걸었는데 김녕과 월정리바다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그 코스... 참 좋았어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코스라서 다른 코스들 보다 좀 그렇긴 했는데 그래도 제주라서 좋은... 이렇게 다른 분의 여행을 사진으로 느끼니까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방학때 다녀오셨다함은....아직 대학생이신가보군요.
한여름의 20코스... 그 땐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엄청 고마웠을 것 같은데요. ^^
일년에 두번씩이라..저는 살면서 딱 두번 갔는데..신혼여행때와 저번 달에 한번...//다시 보니 똑 가고 싶네요. 사진 글 모두 잘보았습니다.
제주도는 100번을 가도 또 가고 싶을 것 같아요. ^^
혹니 전생 해녀..^^ 역마살이 심하신듯ㅎㅎ
늘 다이어트를 외치고 있는데,
저의 살엔 역마살도 한 몫 하지요. ㅋㅋㅋ
그런데 그 살은 별로 뺄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빼고 싶지도 않으니 어떡하죠? ㅋ
로드님처럼..떠나는 길을 좋아하시는군요. 정말 부럽습니다. 그렇게 살기도 정말 어려운데..ㅎㅎ